Three Kingdoms Shrine RAW novel - Chapter 353
00353 누군가의 개입 =========================
“장군.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원술이 직접 군을 이끈다는 것이 유훈으로서는 걱정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직도 몸이 제대로 회복되지 않은 그였다.
거기에 풍은의 말에 의하면 자면서 잠꼬대로 기령의 이름을 외치거나 알 수 없는 이를 애타게 부르는 등, 좀 더 쉬는 것이 낫다고 생각되었지만 원술은 막무가내나 다름 없었다.
“이번에 산양군을 침으로써…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곳을 기반으로 원소와 합류할 수 있다면 더욱 좋지.”
“하지만 산양군은…”
“듣지 않았더냐.”
첩자로 갔던 병사의 말을 떠올리며 유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 산양군의 병력은 일만 남짓.
그나마도 정예병이 아니라고 한다.
당장 태산군과 동평군, 그리고 서주의 지원이 있기 전에 빠르게 산양군을 친 후 물러나 태세를 정비하고 그와 동시에 원소의 지원을 받아야 한다.
“유표 역시도 허도를 향해 진격할 것이라 하니 잘 된 일이지.”
원술은 무덤덤히 말했다.
그의 말에 유훈은 감탄했다.
“장군. 예전처럼 현명하시기 그지 없으시군요. 몸이 많이 나으신 듯 하여 속하. 무척이나 기분이 좋습니다.”
황건적 토벌 이후 많은 명사들에게 추대를 받으며 약간 시야가 흐려지기는 했지만 원술은 대단한 사람이었다.
그의 대범함과 빠른 재간에 원가의 기재가 새롭게 나타났다는 이야기도 나올 정도였으니까.
기령의 죽음과 함께 광증에만 걸리지 않았더라면 더욱 좋았을 것을.
유훈의 표정을 읽은 원술이 쓰게 웃었을 때 그의 옆으로 말을 몰고 다가 온 장훈은 싱글거렸다.
“앞으로 원가의 미래는 밝을 것 같습니다.”
“그렇겠군.”
그들의 감탄과 칭찬에 원술은 빙긋 웃었다.
하지만 여전히 그의 안색은 좋지 않았다.
무척이나 피로해보이는 그를 안타깝게 바라보던 유훈은 정찰병이 달려오자 그에게 물었다.
“상황은 어떤가?”
“그게… 조금 당황스러운 일이 있어서.”
“무슨 일?”
“한번 와보십시요.”
“….”
병사와 함께 전방으로 향했다.
작은 숲을 지나 도착한 넓은 공터.
그곳에서는 막 식사를 마치고 빠진 것처럼 수많은 솥과 그릇들이 내팽개쳐져 있었다.
“어… 이건.”
“식사를 했던 흔적인가?”
함께 따라 온 장훈은 솥단지에 남아 있는 밥알의 흔적과 솥을 만져보았다.
꺼져 있는 모닥불.
그리고 딱딱히 굳어 있는 밥알과 음식물 조금.
아무리 봐도 식사를 했던 흔적이라고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그리 오래 되어보이지는 않습니다.”
정찰을 나갔던 병사의 말에 장훈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었다.
적군은 일만여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금 놓여져 있는 솥과 그릇은 뭐란 말인가.
안의 음식물 흔적은 그렇다고 치자.
하지만 이건…
“너무 많은데…”
평원 뿐만 아니라 숲 여기저기에도 밥을 지었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적어도 삼만명 이상이 먹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엄청난 양이다.
설마 벌써 지원을 받은 것일까?
하지만 자신이 알아낸 정보에 의하면 아직까지는 아니었다.
다른 곳에서 지원이 오려면 적어도 칠일, 길게는 십일 이상의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계산하면 아직은 힘들텐데…”
“무슨 일이냐.”
“예? 아… 그게.”
장훈과 함께 온 원술 역시 공터에 있는 수많은 솥과 그릇을 발견했다.
적어도 삼만명이 먹을 수 있을 정도의 솥의 개수.
다른 곳에도 있는 흔적들과 발자국들에 대한 보고가 이어졌다.
생각보다 많은 적의 수에 당황하며 머뭇거리던 병사가 보고를 끝마치자 제장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만약 적들이 지원을 통해 수를 늘렸다면 일은 골치아파진다.
적들과 다르게 자신들에게 더 이상의 지원은 없을테니까.
여남의 모든 힘을 데리고 온 자신들이다.
만약 이번에 실패한다면…
제장들의 복잡한 표정을 조용히 바라보던 원술은 피식 웃었다.
“기만이 아닐까?”
“예?”
“첩보에 의하면 적들은 일만에 불과하다고 했다. 그것은 확실하겠지?”
“예.”
유훈이 작게 고개를 끄덕이자 원술은 빙그레 웃으며 산양군 쪽을 가리켰다.
“산양군수로서는 지원이 급할 것이다. 실질적으로 싸울 수 있는 병력이 부족하니까. 그것을 생각한다면… 그들에게 있어서 가장 필요한 것은 시간일 것이다.”
“그렇군요.”
“그런 그들이 왜 이런 짓을 했을까?”
“…저희가 적의 수가 예상보다 많음을 보고 당황하여 움직이지 않기를 바란 것일까요?”
“그렇지.”
자신들이 파악한 정보 외에도 유표가 전해 준 첩보에 의하면 산양군의 병력은 그리 많지 않았다.
당연한 것 아닌가.
원술이 이렇게 갑자기 정신을 차리고 갑자기 공격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지금 조조는 원소라는 강대한 적을 상대하기 위해 모든 힘을 북쪽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런 만큼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산양군 일대에는 병력을 그리 많이 보유하고 있지 않았다.
단지 각 군의 치안을 유지하고 혹시 생길지 모르는 도적을 경계하는 정도만 있을 뿐.
첩보에 의하면 산양군 역시도 그렇다고 볼 수 있었다.
연주 내에서 부유한 군이고 연주의 물자를 책임진다고 할 수도 있는 곳.
그렇기에 그나마 일만이나 되는 병력이 주둔하고 있었다.
“그… 제갈근이라고 하던가요? 대단한 식견을 지닌 사람이었지요. 그 사람이 말하길 산양군수 진궁은 상대방을 기만하는 것에 능한 뛰어난 책사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더욱 주의해야겠지요. 언제 속아넘어갈지 모르니…”
“제갈근?”
원술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디선가 한번 들어 본 이름인데.
원술이 묻자 양홍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유표와 정전협정을 맺을 때 나와서 저희를 지원하고 두둔해준 책사입니다. 한번 이야기를 나눠봤는데 그 식견과 학식이 아주 대단했지요.”
“아. 그랬지.”
기억이 났다.
유표와 유장이 동맹을 맺을 때 유장의 주평이라는 자와 유표의 제갈근이라는 자가 협상을 하여 협정을 맺게 되었다고.
염상의 보고를 떠올린 그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유장과 동맹을 맺을 수 있었던 것도 그의 업적이라고 할 정도였으니…”
“흐음…”
항상 익주를 노리던 유표였는데 갑자기 유장과 어떻게 협력을 할 수 있게 되었나 싶더니만.
제갈근이라는 책사의 힘이었던가.
“확실히 좋은 책사 하나가 있고 없고의 차이가 크군.”
“그, 죄, 죄송합니다. 저는 그정도의 능력이 없어서…”
“하하하. 아니야. 자네 역시 나에게 큰 도움이 되어주는 사람이니까. 너무 그리 생각하지 말게나.”
“…예.”
제갈근의 앞에서 말 한마디도 제대로 못했던 것을 떠올리며 양홍은 살짝 얼굴을 붉혔다.
그를 부드러운 눈으로 바라보던 원술은 고개를 끄덕인 후 북쪽을 보았다.
“진궁이라…”
“그 간악한 진유하의 아버지라고 합니다.”
“알고 있다. 그런만큼 이번 전투에서 반드시 승리해야지. 그리고 그자의 목으로 진유하에게 죽은 이들의 원한을 달래줘야지…”
진유하.
원술에게 있어서는 찢어죽여도 모자른 원수였다.
그 원수를 생각하면 절로 이가 갈릴 수 밖에 없었던 원술은 자신을 바라보는 제장들에게 천천히 말했다.
“이대로 진격한다. 적들이 기만책을 쓴다면 그것을 무시하고 넘어가는 것이다.”
“허나 만약을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행여나 벌써 지원을 받았다면…?”
양홍과 염상이 조심스레 말했다.
그들의 의견도 틀리지 않다고는 할 수 없었다.
여남에 있는 모든 병사들을 데리고 나온 것이다.
이제 지원따위는 없었다.
솥을 유심히 바라보던 염상은 심각한 어조로 말했다.
“손빈의 병법에도 나오는 것입니다. 손빈은 추격하는 방열을 맞이하여 아군의 수가 줄어드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서 솥과 그릇으로 방열을 속였다고 합니다. 이번 역시 그런 계책이 아니라고 할 수 없습니다.”
“왜 갑자기 이런 솥이 나타나겠습니까? 아무리 이곳에서 산양군이 가깝다고 하지만 지금까지 한번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적군입니다. 이것은 적의 책략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습니다.”
손빈의 일화 정도는 다들 알고 있었던지라 양홍과 염상의 말에 모두들 더욱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솥과 그릇의 수로 자군 병력의 수를 속인다.
하지만 문제는 그 의도를 모른다는 것이었다.
삼만여명이 능히 식사를 할 수 있을 정도의 많은 솥.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아무도 말을 꺼내지 않자 염상은 조심스레 원술에게 말했다.
“이번에 정전 협정을 맺게 되며 맺은 조약 중 하나가 저희가 산양군을 치고 점령하는데 성공한다면 군을 움직여 지원을 해준다고는 했습니다만…”
“괴량과 괴월은 조조와 싸우는 것에 부정적인 의견을 내뱉고 있다지만 제갈근이라는 자의 신묘한 계책이 계속 빛을 발하고 있어서… 유표는 지금 제갈근을 신임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 것을 생각한다면 유표의 지원이 적게나마 있을지도 모릅니다. 저희들은 그들을 상대하지 않고 바로 태산군으로 치고 들어간 후 업으로 가는 배편을 이용하는 것이 나을 듯 싶습니다.”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심영과 조예가 힘을 합쳐 심배를 설득하여 저희가 합류하도록 도와주겠다고 합니다. 심영은 심배의 조카인데다가 저희가 합류하면 심배의 힘이 늘어나는 것이니…”
“흐음…”
“즉, 산양군만 차지하고 그곳을 잠시만 점령하면 된다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원소와 손을 잡을 수 있는 방향을 잡을 수 있습니다. 그것도 저희에게 아주 유리한 방향으로.”
“그리고 적들 역시 저희가 바라는 것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지금 저희는 여남의 모든 물자와 병사를 데리고 온 것입니다. 산양군의 힘만으로는 저희를 당해낼 수 없습니다. 산양군을 빼앗기게 된다면 서주와 연주 사이의 길이 막히게 되지요. 저들로서는 필사적일 것입니다. 각지의 지원을 끌어들이기 위한 시간을 버는 것이 저들에게 급선무일 것입니다. 저 흔적도 그럴 것입니다. 산양군의 병력이 많다는 허세를 위한… 그리하여 저희가 접근하지 못하게 막으려 하는 것이라고 밖에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제장들의 의견은 분분했다.
당장 산양군을 차지했다고 하더라도 동평군, 태산군, 그리고 서주의 집중공격에 맞게 된다면 기껏 얻은 산양군을 빼앗길 가능성이 높았다.
조조를 적대하는 유표의 입장에서도 좋을 것은 없는 일이다.
“그래서? 이제와서 돌아가자는 겁니까?”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다.
유훈은 힐끔 원술을 보며 말했고 다들 비슷한 생각을 한 듯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대로 진군하는 것은 무척이나 위험합니다. 실제로 적들의 수가 많을 수도 있잖습니까.”
“돌아가시지요.”
“그것이 아니면 우회하여 다른 곳을 공격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수춘이라거나…”
유훈과 장훈은 간곡히 말했지만 염상과 양홍은 달랐다.
그들은 심각한 표정으로 솥과 그릇을 보았다.
“정찰병을 더 보내 보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적들을 확인하지 않고 이러는 것은 좀…”
계속되는 그들의 말에 원술은 심각하게 고민했다.
더 이상 물러설 곳도 없었다.
그렇다면 나아가는 것 뿐.
하지만 그 나아감의 끝이 천길 낭떠러지 인지 아니면 탄탄한 돌다리인지는 원술로서도 감히 짐작할 수 없었다.
어쩌면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을 수도 있었다.
원술이 정신을 차리고 군사를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안다면 더 이상 산양군을 비롯한 다른 군에 적은 병력을 주둔시키지 않을테니까.
마지막 기회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기에 원술은 고민할 수 밖에 없었다.
물러나느냐, 아니면 나아가느냐.
결국 원술은 결정을 내리고 말았다.
“나아간다.”
“예!? 하지만.”
“허나 정찰을 하는 것이 틀린 것은 아니지. 장훈, 유훈. 병사들을 더 보내 정찰을 하도록 하라. 그리고 나머지는 병사들이 혼란스러워하지 않도록 주의하고.”
“알겠습니다.”
자신들은 그저 의견만을 낼 뿐이다.
결정은 주군인 원술이 하는 것이지.
제장들이 고개를 숙이며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자 원술은 바닥에 놓여져 있는 솥을 만져보았다.
“…근처에 있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면… 속이고 있는 것인가…”
적의 수를 정확히 파악하지 않은 상태에서 움직이는 것이다.
자신의 선택이 부하들의 목숨을 앗아가는 길이 될지도 모르지.
원술은 무거운 한숨을 내쉰 후 주먹을 꽉 쥐었다.
“…하지만 반드시 이긴다.”
대나무통을 분해해 안의 수정을 꺼내어 비단으로 감싼 진궁은 뒤를 돌아보았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나온 요화와 우금은 심각한 표정으로 그를 보고 있었다.
“어찌 되었습니까?”
“저들이 미끼를 물었다. 이계를 준비하라.”
진궁의 말에 그들의 표정이 환하게 물들었다.
우금과 요화가 본대로 달려가자 진궁은 이를 드러내며 싸늘히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