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239
239화
승태는 자신의 앞에 모인 이들의 면면을 바라보며 흡족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승태의 좌우로는 고순과 조운, 노숙이 앉아 있고, 태사자와 이전, 육손, 창희, 장패, 장합 그리고 장료가 막사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장수진만 보면 올스타급이네. 능히 일군의 대장을 맡을 수 있는 이들이 죄다 모여 있으니, 누구의 의견을 듣느냐가 더 어려운 일이겠어.’
행복에 겨운 고민 속에서 승태가 가만히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한창 논의를 나누던 이들이 입을 다물고는 승태에게 이목을 집중시켰다. 승태는 좌중을 둘러보며 물었다.
“지금 중요한 것은 저수가 어찌 나올지가 아니겠는가. 업성이 위기에 처했는데도 꼼짝 않고 자리를 지킬 수도 있고, 급히 군사를 움직일 수도 있는 노릇이니, 각 상황에 맞춰 전략을 세워야 할 것이네.”
그러자 제갈근이 예를 표하며 앞으로 나섰다. 아무래도 이 근방은 자신의 터전이라 할 수 있으니, 이야기할 것도 많을 터였다.
“주공의 말씀이 맞사옵니다. 저수가 아직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않았는데 먼저 움직이는 것은 너무 성급한 일이 될 것이옵니다. 또한 청주 호족들의 세가 커지며 민심이 들끓고 있으니, 그들을 건드리는 것도 하나의 방도가 될 것이옵니다.”
낭야가 고향인 제갈근은 인근 소식에 꽤나 정통하였다. 이미 가문 사람들이 주변 일대를 확실하게 장악한데다 농민들이 대거 유입되어 청주의 정보를 더욱 세밀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청주 호족들의 성향을 세세하게 파악하여 각자의 입맛에 맞춰 설득을 시도하니, 긍정적인 호응을 이끌어 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었다.
“장 태수(장패)와 태사 도독(태사자)은 청주에서도 명성이 높아 아마 두 분께서 직접 군을 이끌고 진군한다는 소식이 울려 퍼지면 스스로 뛰쳐나와 머리를 숙이는 이들도 많을 것입니다.”
제갈근이 자신만만하게 청주 점령에 대한 구상을 꺼내어 놓는 가운데, 유엽과 노숙은 그저 수염만 쓰다듬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한동안 떠들썩하던 회의가 파한 후, 승태는 제갈근을 불러 함께 낭야 일대에 자리 잡은 병영을 둘러보았다.
제갈근은 승태의 옆에 딱 붙어서 쉬지 않고 입을 놀려 댔다. 성공한 자신의 모습을 고향에 널리 보이는 것에 많이 기쁜 듯싶었다.
“강을 건너 저곳으로 가면 꽤 넓은 염전이 존재합니다. 그곳을 따라가면…….”
쉼 없이 떠들어 대는 제갈근의 수다에 귀가 아플 법도 하건만, 승태는 전혀 내색하지 않으며 묵묵히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육손은 재미있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태사자가 궁금하다는 듯 다가가 물었다.
“무엇이 그리 재미있느냐?”
“옳은 선택을 한 것에 다행이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태사 장군이 없었다면 소인은 다시 손가를 섬길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육손의 솔직한 말에 태사자는 수염을 쓸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승태가 없었다면 태사자 또한 처지가 같았을 것이다.
‘손책은 분명 뛰어난 인물이었으니, 만약 주군을 만나지 못했다면 나 역시 손가의 휘하에 들었겠지.’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명성이란 것은 사람을 맹목적으로 만드는 힘이 있으니까. 그런 까닭에 아직도 강동에는 주군의 통치에 반대하는 이들이 많은 게 아니냐.”
태사자가 손가의 영향력을 피부로 느낀 것은 양주를 점령하기 위해 직접 병사들을 이끌고 움직일 때였다.
강동에서 손가의 위상은 마치 신과 다름없었다. 손견은 혼란스런 세상을 개척해 나가는 선구자였고, 손책은 파격적인 행보를 보이는 영웅이었다.
강동의 모든 이들이 손가를 추앙하며 받들었다. 비록 둘 모두 지금은 세상에 없지만, 그런 자부심이 있는 이들에게 승태는 비굴한 인사에 불과할 뿐이었다.
일례로 손권이 강동을 떠나자마자 곳곳에서 봉기가 일어나며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난장판이 될 뻔했으나, 다행히 손분과 손보의 도움으로 어느 정도 반발심을 누그러트릴 수 있었다.
그렇지만 아직 개척되지 않은 곳들은 그야말로 무법 지대나 다름없었다. 승태의 지배를 거부하는 이들은 해적이나 도적이 되어 혼란을 부추겼다. 특히 강동에 남은 장수들이 여전히 손가를 숭상하는 이들을 현혹하여 무리를 이끌었다.
이런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진등은 머리를 쥐어짜 내며 어떻게든 수습하기 위해 미친 듯이 발로 뛰어다녔으나, 아직까지는 큰 진전이 보이지 않았다.
“휴, 어차피 손가가 양주를 다스렸어도 똑같았을 것입니다. 그나마 황조도 더는 양번에 신경을 쓸 수 없는 상황이니, 좀 낫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진등의 푸념에 태사자는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다.
* * *
저수는 수염을 쓸며 한숨을 내뱉었다. 지금 올라온 죽간을 살펴보고 있으려니, 도저히 무엇인가를 이어 나갈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느낀 탓이었다.
안 그래도 골치 아픈 일들이 하나둘이 아닌데, 사방에서 그를 괴롭히지 못해 안달이라도 난 듯했다.
원담이 구원 요청은 물론이거니와, 원상 또한 자신을 지지해 주기를 바랐다. 거기다 코앞에는 승태의 군세가 떡하니 자리하고 있었다.
왕수는 오만상을 찌푸리고 있는 저수에게 공손히 예를 표하며 물었다.
“어찌할 생각이신지 알 수 있겠나이까?”
저수는 대답을 바라는 왕수를 빤히 바라보았다. 원담이 붙여 놓은 감시역으로, 각지에서 난리가 벌어지는 와중에도 담담히 세를 이끌며 난을 가라앉힌 인물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뭘 어쩐단 말인가. 더는 병사들을 이끌 만한 인물이 없네. 자네도 잘 알지 않는가.”
순간, 왕수는 묘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저수를 바라보았다. 죽는소리를 늘어놓고는 있지만, 사실 저수가 직접 군을 이끌면 될 일이었다.
물론 전풍을 구원하는 과정에서 많은 병사들을 잃기는 하였지만, 원담이 청주의 황건을 진압하며 편입시킨 병력이 아직 건재했다.
게다가 관통과 자신이 이끄는 군세도 그리 부족한 것은 아니니, 단단히 각오하고 옥쇄에 임한다면 적을 곤란하게 만드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이렇게 엄살을 부린다는 것 자체가 저수의 머릿속에 다른 복안이 들어 있다는 의미였다.
“공은 주공의 스승이시자 청주의 인을 쥔 분입니다. 작금의 순간에 무도한 이들이 주공을 노리는데, 어찌 이리 굼뜨단 말입니까?”
저수는 자신을 타박하는 왕수를 빤히 바라보았다. 왕수는 인간됨이 진실되기에 원담 또한 그를 아끼며 곁에 두었다. 그런 만큼 왕수 또한 진심을 다해 원담을 따랐다.
그랬기에 원담이 업성으로 나간 동안 저수가 청주의 군사를 맡는 동안 왕수는 내정을 담당하였다.
한데 저수가 원담의 명도 없이 전풍을 구원하기 위해 군을 움직이며 둘의 불화는 커졌고, 작금의 상황에 이르러서는 정면으로 부딪치게 된 것이었다.
“왕 별가, 지금 뭐라고 했는가?”
“제대로 듣지 않으셨습니까.”
“자네, 말조심하게. 선을 넘고 있는 것이네.”
“선은 오히려 공께서 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당장 나서서 주군을 돕지 않는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습니까?”
마치 협박과도 같은 발언을 하는 왕수의 뒤로 많은 신료들이 저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분명 모두가 원담의 은덕을 받은 이들이리라.
청주의 호족들 중에 원담의 보살핌을 받지 않은 이가 없으니, 그들이 저수에게 이렇게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지금 날 겁박하는 것인가?”
“그런 뜻이 아니오라 약속을 이행하라는 것입니다.”
저수는 왕수와 그를 따르는 이들을 바라보며 침착한 목소리로 물었다.
“자네들도 똑같은 생각인가? 미래가 보이지 않는 원담을 따라 모두 죽을 생각이냔 말이네.”
“받은 것에 보답하는 것이 마땅한 선비의 도리요! 어찌 받은 것이 있는데 어려움이 있다고 외면하겠소?”
“…그러하군. 나 또한 그리 생각하였네.”
저수의 말에 왕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칼을 다시 집어넣으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저수가 갑자기 칼을 뽑아 들더니, 왕수를 향해 겨누었다.
놀란 호족들이 왕수를 보호하기 위해 급히 앞으로 달려 나왔고, 저수는 마치 비웃듯 미소 지으며 그들에게 다가갔다. 너무도 태연한 그 모습에 왕수도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하였다.
그간 저수의 허리춤에 매달려 있는 검이 그저 장식인 줄로만 여겼는데, 막상 모습을 드러낸 칼의 예기(銳氣)는 서슬 푸른 기세를 뿜어냈다.
“작금까지 두 명의 주인을 모셨으나, 진정한 나를 알아주는 이는 없었지. 말로는 내 능력을 칭찬하며 떠받들어 주는 듯했지만, 결국은 자기 좋을 대로 할 뿐이었어. 그래서 나는 더 이상 희망을 갖지 않고 출사를 포기하려 했지.”
잠시 말을 끊은 저수는 회한 섞인 시선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고는 다시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그런 와중에 원담이 나를 구하더군. 그래서 마지막으로 기대를 품었네. 솔직히 그리 기대되는 인사는 아니나, 전풍을 모실 때 무릎을 꿇는 성의를 보였으니 말이야.”
“이 배반자 놈, 무어라 중얼거리는 것이냐! 그냥 죽어라!”
호족 하나가 더는 참지 못하고 달려들자, 저수는 빠른 몸놀림으로 칼을 아래에서 위로 그어 버렸다.
고작 단검 따위로 저수를 죽이려 한 그는 도저히 기술면에서 상대가 되지 못했다. 호족은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자신의 목을 움켜쥐더니, 곧 솟구치는 피 분수와 함께 그 자리에 거꾸러졌다.
놀라운 실력을 선보인 저수의 모습에 왕수와 관통은 아무런 말도 잇지 못하였고, 주변에 서 있던 호족들 역시 굳어 버린 듯 꼼짝을 못했다.
그 순간, 사방에서 병사들이 나타나 무자비하게 호족들을 베어 나가기 시작하였다. 마치 미리 준비가 되어 있던 듯이 말이다.
장내는 순식간에 아비규환이 펼쳐졌다. 황급히 도망가려는 이들도 있고, 어떻게든 왕수를 구하기 위해 병사들에게 맞서는 이들도 있었으나, 결과는 모두 똑같이 죽음일 뿐이었다.
왕수는 그저 저수를 압박하여 원담을 구원할 생각일 뿐이었는데,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 가운데 저수의 담담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하지만 원담도 똑같더군. 그래서 생각했네. 어찌해야 할까. 어찌해야 나의 말을 귀담아들을 수 있게 만들 수 있을까 하고 말이야. 결국 나는 한 가지 결론에 이르렀네. 내 말을 듣지 않으면 죽여 버리면 되지 않겠냐고. 그럼 무서워서라도 내 말을 듣지 않겠냐고. 그렇지 않은가!”
왕수는 저수의 눈에 흐르는 광기를 보고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한 발, 한 발 다가오는데도 그저 꼼짝없이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때, 몇몇 호족들이 저수의 앞을 막아서고, 정신을 차린 관통이 왕수를 붙잡아 밖으로 나갔다.
“밖에 우리의 사졸들이 있으니, 우리가 북해를 장악하면 될 일이오! 저수는 이제 같이 갈 인사가 못 되니 반드시 죽여야 하오!”
왕수는 그의 손에 끌려가면서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