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ditional Healer became a surgeon RAW novel - Chapter 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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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선형 CT 사진이 도착하자 이민호와 신희철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환자의 얼굴이 고통스러워 보이지 않았고 좌측 늑골도 멀쩡했기에 CT 오더를 내리긴 했지만, 그리 심각하지 않을 줄 알았다. 그런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나선형 CT 사진을 한참 본 신희철이 입을 열었다.
“아말라제 수치가 올라갔기에, 척추 왼쪽의 췌장 말단부의 피막과 실질이 약간 파열된 정도로만 예상했는데…….”
“그나마 신장은 괜찮은 것 같은데요, 비장 쪽은 출혈이 있는 것으로 봐서 어쩌면 절제해야 할지도 모르겠고요.”
아까는 멀쩡해 보이던 환자가 CT 사진을 찍으러 영상의학과를 갔다 온 이후에야 비장 쪽의 출혈로 인한 혈량 저하성 진행성 복막염 증세를 보이고 있었다.
“그나마 췌장의 주혈관은 손상이 없어 다행이다.”
그리고 췌장 또한 주혈관의 손상은 없지만, 췌장 주변부 지방의 출혈성 침윤과 체액누출에 의한 췌장 주위 비후 소견도 있었다.
“췌장은 괴사된 부분 절제하고 파열된 피막 위로 그물관 이식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렇지. 이건 빨리 개복수술을 해야겠다. 방 선생, 환자에게 상태 설명하고 수술 방부터…….”
“잠깐만요, 신 선생님.”
이민호가 나선형 CT 사진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리자 신희철이 말을 하다 말고 고개를 돌렸다.
“왜?”
“비장 쪽 출혈이 그리 심하지 않으니 개복보다는 복강경이 낫지 않겠습니까?”
“뭐? 복강경? 미쳤어? 췌장의 파열된 피막 위로 그물관 이식하는 것도 복강경으론 말도 안 되게 어려운 술긴데 출혈이 발생한 비장은 어떻게 하려고? 출혈량이 적긴 하지만 동맥 쪽이라 자칫하면 대량 출혈로 변해 절제를 해야 할 가능성이 높아.”
복강경이 환자에겐 부담이 적어 좋지만, 수술의 난이도는 대폭 상승한다. 그리고 수술 도중 출혈량이 많아질 경우 개복수술로 전환해야 할 수도 있었다.
“비장의 출혈량이 그리 많지 않은 것으로 보아 동맥색전술로 출혈 부위를 막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동맥 색전술은 대퇴동맥을 천자해 유도 철사와 카테터를 삽입한 다음 유도 철사를 비장 동맥까지 유도해 출혈 혈관을 코일이나 젤폼으로 막는 시술이다.
“동맥 색전술? 그걸 복강경 수술과 같이 하겠다고?”
“네,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에도 폐동맥 혈전증 환자를 스탠트 시술을 하지 않고 유도 철사로 뚫어 혈전을 제거한 적도 있습니다. 그걸 생각하면 비장의 동맥도 색전술을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신희철의 얼굴이 잠시 고심하는 표정으로 바뀌었다.
이민호가 교통사고로 팔을 절단한 환자의 폐동맥 혈전 제거술을 기존에 없던 새로운 방식으로 수술해 성공한 것은 자신도 알고 있었다.
그 방식을 이 수술에도 도입하려는 것 같은데, 어떻게 될까?
“흐음! 가능성이 크기는 한데, 정말 비장동맥의 색전술을 복강경 수술과 함께 가능하겠어?”
“네. 충분히, 가능합니다.”
“하지만 비장만의 문제가 아니라 췌장도 복강경으로 하기에는 만만치 않은데, 그렇게 복잡하게 할 바엔 그냥 개복이 낫지 않아.”
“만약 췌관의 원위부까지 파열됐다면 저도 무조건 개복을 생각했을 겁니다. 하지만 주췌관 손상이 없는 피막과 실질이 파열됐으니…… 복강경으로 그물관을 이식하면 환자의 부담이 훨씬 줄어듭니다.”
“하아! 미치겠네. 개복하면 한꺼번에 싹 다 해결될 일을 굳이 복잡하게 비장동맥은 색전술로 하고 췌장은 복강경으로 하겠다고 하는 거야?”
“그편이 환자의 몸이 받는 부담을 가장 많이 줄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비장동맥을 먼저 결찰하고 출혈 혈관을 찾아내 색전술을 하면 더 이상 출혈이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순간 신희철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잠깐만 비장동맥 색전술을 하는데 비장동맥을 왜 먼저 결찰해? 혹시 대퇴동맥을 뚫고 유도 철사를 넣는 것이 아니라…… 아! 비장동맥을 뚫어 유도 철사를 넣을 생각이야?”
“네.”
허벅지의 대퇴동맥에서 비장까지 유도 철사를 밀어 넣으면 유도 철사가 앞으로 나아가며 혈관을 안 긁을 수는 없었다. 경험이 적은 이가 하면 유도 철사가 엉뚱한 혈관을 뚫어 대형 사고가 터지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비장동맥에서 비장으로 유도 철사가 진행되면 거리가 짧기 때문에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는다.
“흐음, 그 방식이면 확실히 시간이 줄어들고 출혈도 빨리 잡히긴 하겠군. 그런데 그걸 복강경으로 가능하겠어?”
“이미 흉강경으로 폐동맥 혈전 제거 수술을 할 때 대퇴동맥을 뚫지 않고 폐동맥을 뚫어 수술한 경험이 있으니 비장동맥도 복강경으로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이민호의 설명을 모두 들은 신희철은 잠시간 고민했다.
자신이 생각했던 비장 출혈을 막는 방법은 손상된 비장의 관련 동맥과 정맥을 결찰한 후 그 부분을 모조리 절제하고 절제한 단면을 소작기로 지지고 지혈제를 바른 후 봉합하고 흡수성 메쉬랩으로 덮어주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면 비장을 많이 잘라내지만, 수술의 실패는 없었다.
하지만 이민호의 방식은 동맥 색전술로 비장의 출혈 부위를 막고 그 부위만 아주 부분적으로 절제하고 처치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수술은 어렵지만 삼 분의 일이나 절반은 잘라내야 할 비장을 극히 일부만 잘라내고 나머진 모두 살릴 수 있었다.
당연히 환자의 비장이 정상으로 돌아오는 시간도 빠르고 후유증도 적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 좋다. 해 보자, 만약 하다가 어쩔 수 없으면 개복하는 수밖에 없지만, 이 선생이 자신 있다니 우선 복강경으로 해 보자.”
“알겠습니다. 그럼 환자에게는 제가 설명하고 수술 동의서를 받겠습니다.”
“알았어. 방 선생.”
“네, 신 선생님.”
“이 선생이 수술 동의서 받는다니까 마취과에 연락해서 수술 방 잡아 줘.”
“네.”
이민호는 잠시 후 환자에게 다가가 나선형 CT 사진을 보여 주며 췌장과 비장의 어느 부분이 파열됐고 어떻게 수술할 건지 알려 주고 수술 동의서를 받았다.
* * *
이민호는 복강경으로 췌장과 비장을 수술하는 방식이 기존에 했던 것과는 약간 다르기에 자신이 직접 수술실로 들어가 수술하기 편하게 환자의 자세를 교정했다.
먼저 환자를 우측으로 눕혀 팔베개하게 한 다음 왼팔을 앞쪽으로 뻗어 턱밑을 지나게 하고 대략 60도 정도의 각도로 누운 자세를 만들었다. 그다음으로 수술 공간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 엉덩뼈능선과 흉골연 사이를 최대한 길게 하고 수술대를 구부려 역 트렌델렌브르크 자세를 만들어 내장을 좌측 상방에서 중력에 의해 멀어지게 했다.
신희철이 들어와 이민호가 레지던트들과 함께 환자의 자세를 교정하는 것을 보더니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렇게 하면 구멍을 다섯 개는 뚫어야겠는데?”
“카메라가 들어갈 배꼽 부위에 하나, 왼쪽 늑골 가장자리 사이로 네 개만 뚫을 생각입니다.”
“네 개만 뚫으면 위장을 밀어서 시야를 확보하기 어렵지 않아?”
“이 환자분이 평소에 다이어트를 하셨는지 위장이 그리 크지 않습니다.”
“아! 하긴, 아까 CT상으로 봤을 때도 위장이 보통 사람보다 조금 작긴 했지.”
“김 선생님, 수술 준비 끝났습니다.”
“네, 그럼 환자 마취하겠습니다.”
대략 십 초 정도가 지나 마취과 의사가 환자가 마취됐음을 알리자 이민호는 환자의 배꼽 부위와 늑골 가장자리에 네 개의 구멍을 뚫어 트로카를 박고 복강경 기구를 집어넣었다.
췌장의 일부가 파열됐지만, 그것보다는 비장의 출혈을 먼저 잡아야 했기에 비디오카메라가 들어가 환자의 배 속을 비추고 방우성 레지던트가 위장을 당겨 췌장과 비장이 드러나게 해 주자 가장 먼저 흡입기로 배 속에 고여 있는 피부터 빨아들였다.
흡입기의 출력을 높여 피를 빨아들여도 비디오카메라 상으론 시야 확보가 잘 되지 않았다.
서걱서걱…….
하지만 이민호는 그 와중에도 비-결장 인대를 박리해 비장 아래쪽 부분이 노출되게 만들었다.
퍼스트 어시스트 자리에서 이민호의 수술을 돕던 신희철은 비장의 출혈 때문에 화면상으론 장기가 잘 보이지 않는데도, 마치 보이는 것처럼 수술하는 이민호가 놀라웠다.
그리고 잠시 후 석션의 영향으로 약간의 시야가 확보되자 비장 바깥쪽 복막이 1센티미터의 균일한 간격으로 박리된 것을 보고 혀를 내둘렀다.
“이 선생은 어떻게 이렇게 잘 보이지도 않는데 실수 없이 수술을 하는 거야? 나는 아무리 연습해도 안 되던데.”
“나선형 CT 사진으로 환자의 배 속을 볼 때 머릿속으론 입체적인 그림을 그려 둡니다. 그러면 수술할 때 시야 확보가 안 돼도 어느 구조물이 어디에 있다고 감각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말이 쉽지. 그게 돼? 까딱 잘못하면 박리하다 동맥을 잘라 버릴 수도 있는데?”
“그러니까 조심해서 해야죠.”
이민호는 말을 하면서도 파열된 췌장의 뒤쪽에 숨어 있는 비장동맥을 찾아 결찰했다.
동맥이 결찰되자 비장에서 흐르던 피가 멈췄다.
잠시 흡입기로 고여 있는 피들을 흡입한 후 생리식염수를 부어 세척하고 다시 흡입기로 빨아들이기를 반복하자 비디오카메라의 화면에 환자의 장기들이 명확히 보였다.
“어! 이 선생, 비장이 생각했던 것보다 멀쩡한데? 혈종과 열상이 있지만, 피막 손상이 그리 크지 않고 실질 열상의 깊이도 1센티미터 정도밖에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출혈량으로 봐선 앞쪽보다 뒤쪽 손상이 더 심할 수 있습니다. 방 선생 비장 뒤쪽을 볼 수 있게 좀 들춰봐 줘.”
“네.”
방우성이 복강경 기구로 비장을 들어 올리자 뒤쪽으로 지름 3센티미터 정도의 실질 손상이 보였다.
“섬유주 혈관이 손상됐네! 이 정도면 동맥이 완전히 터진 것은 아닌 것 같은데?”
“아니에요. 동맥이 터지긴 터진 거예요. 급성파열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지연성파열도 아닌 중간 정도예요.”
“그래, 그럼 이대로 닫아 놨다간 나중에 대형사고가 나겠구나.”
“그렇죠. 30에서 40퍼센트 정도는 눌림증으로 인해 자연적 혈전증으로 동맥류가 소실될 수도 있지만 60에서 70퍼센트는 소실되지 않는 동맥류가 터져 2차 출혈로 이어질 수 있죠. 윤 선생 비장동맥 색전술 할 테니까 유도 철사 준비해 줘요.”
“알겠습니다.”
잠시 후 유도 철사가 준비되자 결찰해 놨던 비장동맥을 천자 해 유도 철사를 넣은 후 비장 내 출혈 혈관에 마이크로코일을 집어넣었다.
색전술을 끝내고 천자 했던 동맥을 봉합한 후 결찰을 풀자 비장의 손상된 실질부에서 미약한 출혈이 보였다.
그 정도의 출혈은 지혈제인 콜레그레이션을 바르고 찢어진 피막을 봉합한 후 흡수성 메쉬랩을 씌워 주면 된다.
이민호가 비장의 처치를 끝내고 췌장의 괴사 부위를 절제한 후 지혈하고 그물관을 이식한 후 폐쇄성 흡인배액관을 설치하자 신희철 펠로우가 박수를 쳤다.
“하아! 개복을 해도 어려운 수술을 복강경으로 3시간 만에 끝내다니, 어떻게 이민호 선생은 끝없이 발전하는 것 같아.”
“예전에 흉강경으로 비슷한 수술을 했던 경험이 있어서 복경경으로 비장도 가능했던 거니, 신 선생님 말대로 수술은 하면 할수록 발전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 병원에서…… 아니, 우리나라의 모든 병원에서 이 환자의 수술을 복강경으로 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이민호 선생밖에 없을 거야.”
“신 선생님도 참, 왜 갑자기 저를 이리 띄우시는 겁니까?”
“내가 요즘 이 선생을 따라잡아 보려고 미친 듯이 노력하고 있거든! 그런데 그러면서 뭘 느꼈는지 알아?”
“글쎄요? 뭘 느꼈는데요?”
“재능이 없는 아마추어는 아무리 노력해도 결국 국가대표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느꼈어.”
“네? 갑자기 무슨 소립니까?”
“이 선생의 술기는 노력해서 따라잡을 수가 없다는 소리야.”
“신 선생님이 노력을 덜한 것이겠죠.”
“내가 노력을 덜해? 아니야! 나뿐만 아니라 장태주 교수님과 방원익 과장님이 요즘 거의 하루에 한 마리씩 동물을 잡아 가며 이 선생의 술기를 연습하고 있는데, 어젠가 그젠가 그렇게 말씀하시더라고, 이민호 선생의 술기는 아무리 연습해도 따라잡을 수 없는 거라고.”
“그분들이야 연세도 있고 노안도 온지라 눈과 손이 예전 같지 않지만 신 선생님은 다르죠. 그리고 생각해 보니 고작 두 달 정도밖에 연습하지 않은 것 같은데, 너무 빨리 포기하는 것 아닙니까?”
“고작 두 달이라고 해도 사람이 연습을 하다 보면 이건 아무리 해도 안 되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때가 오는데, 지금이 그때인 것 같아.”
신희철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자 이민호는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최소한 1년은 연습을 해 보고 포기하셔야죠.”
“1년 연습한다고 될 것 같지 않아.”
“그 말은 최소 1년을 연습해 본 후,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예전에 하다가 안 되면 비법을 가르쳐 준다고 했잖아. 그런데 왜 비법을 가르쳐 주지 않는 거야?”
“최소 1년은 해야 제가 비법을 가르쳐드려도 따라 할 수가 있어서 그렇습니다.”
“예전에 소아외과 송경식 레지던트는 몇 달 가르치지 않고 복강경으로 소아 간이식 수술을 할 수 있게 만들어 줬잖아? 나도 좀 그렇게 해 주면 안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