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tsky and our Joseon Royals RAW novel - chapter 195
가장 숙련된 전쟁기계들이 무력하게 쓰러진다.
“메시카인들의 화망에서 벗어나라!”
“근거리로 접근해!!”
푸레페차(Purpecha)의 전사들이 화살을 피해 급히 대오를 흐뜨러뜨리자, 이내 나팔소리가 들리더니 땅이 울린다.
그 소리만 듣고도 패닉에 빠진 병사들은 겁에 질려 흩어지기 시작한다. 장교들이 고래고래 소리쳐 불러 모아도 이미 사기를 잃은 졸병들은 분노에 찬 명령을 듣지 못한다.
“우에수스(Huesus, 예수)를 위하여! 적들을 죽여라!”
“크리스토(Cristoh)의 이름으로!!”
그리고 혼란에 찬 적들의 대오에 기사들의 돌격이 가시처럼 박힌다. 따로 흩어져 등을 돌린 보병들은 기병을 보고 대응할 여력도 없이 패주하기 시작한다.
기사들의 갑옷은, 발달된 기술에도 불구 여전히 누비 갑옷이다. 어차피 적들이 사용하는 무기는 석기와 목기로 한정되어 있으니 굳이 자원을 들여 철갑을 두를 필요는 없다.
재규어를 흉내낸 군복, 나무를 깎아 역시나 재규어의 머리를 형상화한 투구.
메시카의 엘리트 장교들인 오셀로틀(Ocelotl, 재규어 전사)이다.
유럽인들의 도래 이후 기마술과 기병전법을 익힌 그들은 여전히 대공국 전력의 중추로서 적들의 보급을 끊고, 후방을 무너뜨리며, 전방에 돌격해 승리를 거머쥐는 주역이었다.
메시카의 적들에게는 도보로 이동하는 것 외에는 다른 육상 교통수단이 없고, 말은 노획해봤자 기마술을 몰라 쓸모가 없으니.
그들로선 뺏거나 훔칠 수 있는 강철검이나 창보다도 병마(兵馬)가 가장 뼈아프고 압도적인 격차였다.
“주군, 피하셔야 합니다!”
“여기서 물러나면 바로 친춘찬(Tzintzuntzan, 푸레페차 제국의 수도)이다. 여기서 물러서면…”
“카손시(Cazonci, 푸레페차 제국의 군주)시여! 저들이 주군을 잡으면 전쟁은 끝나버립니다! 어서 피하셔야…”
그러나 더 이상 제국의 장교는 더 말을 이어갈 수 없었다. 그에게 뭔가 변고가 생긴 것은 아니었다.
그의 황제가 갑작스레 달려든 기마병의 발굽 아래 순식간에 깔려죽었을 뿐.
그 광경을 본 모든 푸레페차의 전사들은 무기를 내버리고 항복하였다.
이제 저들은 전사가 아니라 담배 농부로서 채찍을 맞으며 평생 살아가리라.
“대공 전하! 진정한 신앙을 거부하던 참칭자 황제가 죽었습니다!”
“전쟁은 끝났군. 허나…”
카스티야산 모직물을 염색해 만든 화려한 망토를 두르고서, 아샤야카틀은 말고삐를 쥔 채 서북면을 바라본다.
“전투들은 끝나지 않았다.”
가장 거대한 경쟁자 중 하나이던 푸레페차 제국은 이제 끝장이다.
수도 친춘찬에 입성하자마자 그들은 사원으로 향했다. 우상들은 유럽과 메시코의 학자들이 조심스레 테노치티틀란으로 옮겨가거나 한켠으로 치워두었다.
이 피라미드를 기반으로 하여 좌우에 익랑이, 앞뒤로 중랑과 회랑이 증축되어 십자가 형태의 성당으로 개조되리라.
그러나 주님께 이곳에 지어질 성당을, 이 도시를 봉헌하더라도 정복은 끝나지 않는다.
그러나 잔당 유격대들은 밀림과 습지 사이에 숨어들었으니. 강철검으로도, 기마병으로도 감당하기 힘들 게릴라전은 이제 막 시작이었다.
석궁과 화승총은 근거리로 숨어든 투석병들을 상대로는 우위를 잃고, 말이 허우적대는 숲과 늪에서 유리한 것은 현지 지형에 유리한 습격자들이다.
수도 근방까지 접근해 저들에게 대규모 회전을 강요하지 않았더라면 저 황제와 전사들 역시 이때까지처럼 지연전과 후방 습격으로 그들을 끊임없이 괴롭혔으리라.
황제가 죽었지만… 여전히 살아남은 적들은 아샤야카틀이 그들을 모조리 죽일 때까지 귀찮은 저항을 이어갈 것이다.
“현재 손실된 마필(馬匹)의 수효는 어떤가?”
“21 마리가 골절이 심하고, 33 마리가 이미 죽었습니다.”
“한 마리당 지불해야 할 담배를 생각하면 테노치티틀란 동쪽 외곽의 개발을 중단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자애로운 선교왕 치세에 군마는 당연히 주군의 지원으로 보충되었으나, 이제는 하나하나 귀중한 자원들을 모아 사들여야 하는 것이었다.
그만큼 망실된 병장기들, 새로 들여와야 할 마필들은 그 하나하나가 비싸기 짝이 없었다. 지금 전투가 끝나자마자 석궁병들은 자신들이 쏜 화살을 회수하려 적의 시체더미를 뒤지고 있지 않은가?
정복 사업에 드는 비용과 시간은 점점 늘어난다.
허나, 이미 사방의 세력들에 모두 적대와 정벌의 의사를 표했으니 전쟁은 멈출 수 없다.
이 땅에 메시카 대공국만이 남을 때까지 싸움은 지속되어야 한다. 그리고 선교 전쟁을 이어간다는 정치적 정당성을 이어가기 위해서라도 아샤야카틀은 그 전장의 사령관이어야 한다.
“전하! 알케부르케 공작과 셈포알라 공작 두 분 각하께서 보낸 서신입니다!!”
“…줘 보게.”
그렇기에 베라크루스에서, 그리고 테노치티틀란에서 일련의 소식이 전해졌을 때 아샤야카틀은 안도하고 기대할 수밖에 없었다.
-“전하, 이곳 베라크루스의 해안에 다시금 철선이 닿았습니다. 무리를 이끄는 것은 일전과 같이 이징옥이라 생각했으나 이번에는 상황이 다릅니다. 무려…”
“전하, 테노치티틀란으로 사절단 무리가 향해오고 있습니다. 전하께서 전투 중이라 이 서신이 빠르게 전달될 순 없겠다만. 그래도 혹여 전쟁이 끝난다면 속히 돌아와주십시오.
소련의 틀라토아니(Tlatoani)가 왔습니다.”
틀라토아니, 왕 또는 지도자.
드디어 그토록 기다리던 소련의 정식 사절단이었다.
* * *
“로밀리 동지, 내가 뭘 먼저 신경 써야 하지?”
“일단 옷부터 조심하십시오. 이곳에서 가죽옷은 천한 옷이니 직물로 짠 옷으로 고결함을 드러내야 합니다.”
“그 다음은?”
“유럽과의, 특히 카스티야와의 외교 관계입니다.”
로밀리가 무언가 빼곡히 적어둔 수첩을 넘기며 말한다.
“이 전(前)봉전제 사회는 이제 유럽과의 교류를 통해 생산력이 팽창하면서 급속한 발전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봉건제가 빠르게 도입되었고, 각 도시국가의 지도자들은 이제 유럽식 장원을 갖춘 영주가 되어갑니다.”
역사적 발전, 그리고 팽창.
“지금 아샤야카틀 대공은 교황청과 카스티야으로부터 ‘선교자 대공’으로서의 권위를 이어받은 상태입니다. 선교 전쟁을 통해 그들에게 성과를 입증해야만 하는 위치죠. 게다가 급격한 사회개혁으로 내부 불만이 적지 않으니…”
“그 내적 갈등과 동력을 외부로 표출하는군.”
“그렇습니다. 푸레페차나 여타 세력과의 전쟁은 ‘서방 십자군’이라는 명목 하에 권장됩니다.”
트로츠키는 로밀리의 보고를 들으며 무언가 골똘히 생각한다.
“…십자군이라는 명칭을 쓰나?”
“네, 지난 만남에서 토르케마다와 여러 사제들이 제게 이야기해준 바에 따르면 그렇습니다.”
“본래 지금 교황청은 오스만을 향한 십자군 모집에 열심이어야 하는데.”
그렇다면 유럽으로서도 메시카의 정복전쟁이 사회통합의 수단일지 모른다.
지금 본토가 몽골과 오스만에 짓밟히지만, 서방의 매서운 선교 사업이 그들에게 위안을 안겨준다. 그 덕에 교황과 교회에 대한 지지세는 강고해지고 많은 이들이 자원하여 메시카 땅으로 향했다.
“이곳의 도미노를 살짝 건드리면…”
유럽을 흔들어놓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다른 사항은 없나?”
“대공께서는 젊은 혈기로 군사를 일으켜 사방의 이족들을 평정하고 있소. 군무에 관심이 많고 무예를 숭상하니 분명 그를 통하여 접근한다면 능히 호감을 살 수 있을 것이오.
또한 카스티야의 국왕 전하께서 폐가입진(廢假入眞)의 명분으로서 즉위하셨는데 조선으로 치자면 신돈과 같은 이가 이곳에서 대공 전하의 측근으로 머무르고 있소. 이름이…”
“벨트란 데 라 쿠에바였지. 고맙소, 이징옥 동지. 참고하겠소.”
트로츠키는 두 사람의 보고를 들은 뒤 흔들거리는 마차 위에서 저 멀리 낯선 풍경들을 살펴보았다.
책에서, 엽서에서 보았던 폐허의 풍경이 무너지지 않은 채 살아숨쉰다.
밀림과 지층 속에 파묻혀 망각되었던 문명이 생생히 일어서고 있다.
“멕시코라, 항상 오고 싶기는 했네. 나를 지지하던 디에고 리베라(Diego Rivera, 멕시코의 벽화미술의 거장)나 프리다 칼로(Fhrida Kahlo, 멕시코 초현실주의 미술의 거장)도 이곳 사람이었고.
…그런데 어쩐지 불길한 느낌이 드는군.”
“긴장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잘 해내실 테니까요.”
“아닐세, 르네. 이건 그런 불길함이 아니라… 아닐세. 뭔가 기분이 나빠.”
갑작스레 뒤통수 쪽에서 느껴지는 얼얼한 감각에 그는 잠시 주위를 둘러보며 미간을 찡그린다.
그리고 주위에 아무것도 보이질 않자 안도의 한숨을 쉬고는 일행에게 마지막으로 당부한다.
“다들 기억하시오. 이 모든 협정은 소련의 아메리카 진출을 위한 것이니, 절대 이들에게서 적대감을 살 행위를 해서는 아니되오. 앞으로도 교유가 이어질 테니 말이오.”
아메리카, 망할 그루지야 콧수염이 트로츠키를 쫓아낸 뒤에 그의 지지자가 가장 많기도 했던 땅이다. 괜히 감회가 새로워지니 트로츠키는 다시 풍경 감상에 열중한다.
거대한 호수가 가까워지고, 수백 척의 카누가 미세 혈관처럼 저 가운데에 뜬 섬과 나머지 육지를 연결하고 있다.
이제 곧 테노치티틀란이다.
* * *
“대공 전하! 제가 한 말씀 드려도 되겠습니까?”
“말하시오, 알부케르케 공작.”
고딕 양식의 신축 궁전, 오스만에서 들여온 튤립이 핀 안뜰에 대공과 그 측근들이 모여있다.
전장에서 돌아온 아샤야카틀이 발언권을 허락하자 알부케르케 공작 데 라 쿠에바가 허리 숙여 절한 뒤 입을 열었다.
“이제 저들과 가까이 지내는 대신 카스티야 본국과의 의존관계를 어느 정도 청산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이사벨 전하의 요구가 도를 지나치고 대공 전하에 대한 노골적인 무시가 이어집니다. 이는 귀족으로서 참을 수 없는 모욕이 아닙니까?”
“틀라카엘렐?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저는 알부케르케 공작의 의견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흥분한 벨트란 데 라 쿠에바에게 틀라카엘렐이 양해를 구하듯 고개를 끄덕인다. 데 라 쿠에바의 표정은 미묘해진다.
자신의 ‘소문상의’ 딸과 결혼한 남편이라….
특별한 적대감이나 호의는 없는 듯하지만, 괜히 복잡한 마음이 들기는 하겠다.
“저희는 이사벨 전하와 주님의 종복으로서 카스티야의 영광과 주님의 복음을 퍼뜨리기 위해 정복 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정복에 소모되는 비용이 크다 해서 이사벨 전하와의 관계를 소원히 한다니 이는 모순입니다.”
“모욕을 받고서 저항하지 않음은 노예의 미덕입니다. 전하께서는 노예가 아닌 당당한 주권자로서 봉신계약을 맺으셨습니다!”
“말이… 지나치다.”
“아, 송구하옵니다.”
데 라 쿠에바는 급히 자신의 발언을 철회하고, 아샤야카틀은 그의 분노 근저에 있는 어떤 상처를 감지한다.
선왕의 제일가는 총신, 그리고 이사벨이 왕위에 오를 수 있도록 만든 풍문의 주인공.
그는 이 땅에 버려졌다.
본토의 작위는 회수되지 않았으나, 그럼에도 중앙정치에 돌아가지 못하니 이사벨에게는 원한이 서려 있으리라. 심지어 그의 딸로 알려진 왕녀까지 이곳으로 도피했으니….
“셈포알라 공작의 말이 옳다. 우리는 이사벨 전하의 신하이다.”
그러나 그 증오에 올라타줄 필요는 없다.
위정자의 권위를 위하여 태양에 사람을 바치는 것이나, 이사벨과 교회에 세폐를 바치는 것이나 결국에는 매한가지다.
대공국의 기틀이 카스티야를 향한 충성맹세에 의지하고 있는 만큼 소련과의 관계는… ‘선’을 지켜야 한다.
“일단은 무역을 청해 보도록 한다. 그러나 본국과의 교역은 끊지 않는다.”
아샤야카틀의 선언에 두 공작은 마지막으로 절을 올린 뒤 자리를 떠난다. 아샤야카틀은 천막이 설치되고 연회 요리가 준비되는 안뜰의 분주한 광경을 살펴본다.
아주 잠시간의 시간이 지나고,
이곳에서 소련의 지도자를 위한 환영회가 시작된다.
* * *
“마르크스와 엥겔스로부터 이어지는 불멸적 과학의 대변자인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맹의 틀라토아니이자 군 통수권자이자 행정부 수반, 첫번째 혁명 국가인 원산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의 틀라토아니이자 군 통수권자이자 행정부 수반, 원산 공산당의 당수이자 국제 공산당의 둘째 가는 지도자이자…”
음…
“굳이 이래야 하나?”
“봉건제를 도입한 뒤로 메시카에서는 무조건 이름과 직책을 길게 말해야 위엄이 산답니다. 국가 원수인데 이것보다 두세 배는 길어야죠.”
“맙소사.”
“…붉은 군대의 건설자이자 전 조선왕국 섭정이자 스페인 공화국을 향한 국제 여단의 지도자이자, 조선 왕국의 재건자, 인민의 벗 레프 다비도비치 트로츠키 의장 동지께 경의를 표하시오!”
환장하겠군.
로밀리와 속닥거리고도 한참을 지나서야 에티앙블의 포고는 마무리되었다.
베라크루스 주교 토르케마다나 데 라 쿠에바 공작, 틀라카엘렐 역시 기나긴 자기소개를 이어갔으나 의전상 주빈으로 온 트로츠키보다 길게 인사를 이어가지는 않았다.
그들이 모인 궁정의 담장 너머로 새롭게 건설된 거리와 운하에는 행인들이 바글바글하게 들끓어 두 세계의 화려한 만남을 지켜본다.
“저 사람이 소련의 왕이라고?”
“바보 같은 소리, 소련은 공화국일세. 도제(Doge)에 가깝겠지.”
“저 사람이 끌고 올 수 있는 철선이 수백 척은 된다지?”
“당장이라도 유럽을 불바다로 만들 수 있을 만큼의 대포를 소유하고 있다던데.”
메시카인과 유럽인 귀족들이 섞여서 수군거린다.
그들의 눈빛에 스며든 감정은 외경심과 모험심, 그리고 낯선 것에 대한 호기심.
메시카의 전통적인 연회 방식에 따라, 끽연을 즐기는 귀족들의 담배 연기가 곳곳에 자욱하였다.
칠리 양념과 담배의 매운 냄새에 몇몇 소련인들은 연신 기침을 해댔고, 누군가는 그리운 내음에 감동의 눈물을 지었다.
옥수수로 만든 전통 요리와, 메시카 현지 재료로 유럽식 연회의 만찬을 흉내낸 요리가 각계의 입맛에 맞춰 제공되었고, 한편에서는 악사와 광대가 북을 두드리고 묘기를 선보인다.
그러나 모두가 연초를 뻐끔거리면서도, 요리를 뒤적이면서도, 광대놀음을 구경하면서도 한번씩 쳐다보는 곳이 있었다.
“…나로군.”
“트로츠키 동지, 최대한 자연스레 행동하십시오.”
“이런 식의 눈치 주기는 스탈린 이후로 처음일세.”
트로츠키는 어안이 벙벙해져서는, 쏟아지는 군중의 관심에 모른 척 시가를 만지작거렸다.
“로밀리 동지, 자네가 말한 ‘메시카인들의 열렬한 반응’이 이런 것이었나?”
“아… 뭐… 그 비슷하기는 했습니다만, 역시 동지가 소련의 지도자라 그런지 수준이 다르기는 하군요.”
분명 저 유럽인 사제와 귀족들 가운데 이사벨이 심은 프락치도 있을 테고, 선왕 엔리케가 심어놨다가 끈 떨어진 끄나풀도 있을 터다.
거기에 메시카인 귀족들의 눈치싸움까지 더해져 트로츠키가 누구와 무슨 말을 하고, 뭘 먹고, 어떻게 숨쉬는지까지 감시들을 하고 있으니 머리가 아프다.
그런 분위기를 깬 것은,
“모두들 기립하시오!”
어떤 포고.
“하느님이 보우하시는 메시카의 대공, 카스티야 국왕의 으뜸가는 봉신, 메시카 땅의 모든 교회의 보호자이자 푸레페차의 정복자, 복음의 전파자이신 아샤야카틀 데 테노치티틀란 전하께서 이방의 손님들을 친견하러 오셨소!
모두들 이분이 받아 마땅한 존경과 경의를 표하시오!”
연회의 모든 환담이 멎고, 담뱃불은 급히 꺼진다. 사람들의 손길이 멈추자 음식들은 조용히 식어간다.
그 고요함 속에서 황금을 씌운 가마가, 그 위에 올라탄 젊은 군주가 나타난다.
화려한 왕관을 쓴 이 연회의 주최자였다.
“소련의 인민위원장 동지께 존경을 담아 인사드리오. 메시카의 대공 아샤야카들 데 테노치티틀란이오.”
황금의 바다 (1)
트로츠키가 아샤야카틀에게 가볍게 고개를 까딱거렸다.
“듣자 하니 막 전장에서 돌아온 참이라던데. 위대한 정복자의 승리를 축하드리오. 대공국의 강역은 더욱 넓어졌고, 그대의 업적은 언제까지나 드높이 칭송받을 것이오.”
“아닙니다. 이 모든 영광은 하늘 높은 곳에 계신 주님의 보좌에 속합니다. 그리고 지금쯤 그분의 곁에 계실 카스티야 국왕 엔리케 전하의 영광이기도 합니다.”
…즉, 이사벨이 아니라, 죽은 선왕에게 영광이 돌아가야 한다는 뜻이다.
인사치레 겸 보낸 덕담에 대한 대답조차 심상찮으니, 메시카 국내의 어지러움은 짐작할 만했다.
소란스러우면서도 칼끝을 걷듯 하던 연회가 마무리되자, 아샤야카틀은 트로츠키를 어떤 전시관 같은 곳으로 이끌었다.
그곳에는 다양한 동물과 사람 그리고 상상 속 형상을 조각하고 그려놓은 유물들이 가득했다.
“이교의 우상들을 모아놓는 곳입니다. 정복지가 늘 때마다 새로이 수거하여 이 궁전에 진열해둡니다.
이곳 전체가 메시카인들의 작은 도시국가를 대국으로 만든 이츠코아틀(Itzcoatl) 황제 폐하의 궁전입니다. 개축해서 다양한 목적으로 활용하고 있죠.”
이 궁전의 주인이라는 이츠코아틀의 사후에는 조카인 모쿠테소마가 제위를 이어받고, 다시 그 손자인 눈앞의 아샤야카틀이 제위 대신 대공위를 물려받았으니.
메시카는 제국이 되고 막 두번째 황제가 즉위하던 참에 카스티야에 복속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