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world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68
68화
“그래서, 생각은 좀 해 놓으신 것이 있습니까?”
강진의 물음에 황규식이 그를 보다가 입을 열었다.
“사실 오늘 엘리베이터를 오래 탔습니다.”
“왜요? 설마 저를 기다렸습니까?”
“이강진 씨가 정각에 퇴근한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퇴근 시간보다 십 분 먼저 나와서 엘리베이터에서 이강진 씨를 기다렸습니다.”
“흠…… 제 표를 원하는 거군요.”
“이강진 씨가 저에게 표를 주면, 제 표는 이강진 씨에게 주겠습니다.”
황규식의 말에 강진이 웃었다.
“제 표는 살아 있는 표지만, 황규식 씨가 저에게 주는 표는 죽은 표인데…… 굳이 제가 황규식 씨 표를 원할 이유가 없잖아요?”
황규식이야 정규직이 되고 싶어 하지만, 자신은 정직원이 될 생각이 없다.
몇 표가 들어오든 강진은 정직원이 될 생각이 없으니 그가 받은 표는 어차피 쓸 수 없는 죽은 표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제가 정직원이 될 생각이 없다 해도 저희 부서에는 저와 같이 일하는 최동해 씨가 있는데 왜 제가 다른 부서의 황규식 씨에게 표를 줘야 하나요?”
강진의 말에 황규식의 얼굴에 의아함이 어렸다.
“그…….”
“왜요? 우리 사이가 안 좋다는 소문이라도 있나요?”
“음…….”
황규식이 작게 침음성을 토하는 것에 강진이 웃었다.
‘소문이 빠르네. 아니면 동해가 그렇게 말을 하고 다닌 건가?’
남을 험담하는 것처럼 싸구려 행위도 없지만, 그것처럼 이야깃거리가 되는 것도 없다.
아마도 최동해가 인턴들과 이야기를 할 때 화제를 만들기 위해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황규식은 먼저 강진의 표를 선점하기 위해 온 모양이었다.
‘인턴들과 친분이 없으니 먼저 깃발을 꽂은 사람이 승자라 생각을 한 건가? 귀엽네.’
황규식이 커피를 마시는 것을 보며 강진이 재밌다는 듯 그를 보았다.
‘확실히 심리학이 재밌기는 해.’
지금 황규식이 커피를 마시는 행위는 무의식적인 것이지만, 그 안에는 여러 의미가 담겨 있었다.
방금 강진이 한 말에 대해 어떻게 답을 해야 하나, 생각을 할 시간을 버는 것이다.
최소한 커피를 마시는 동안은 입을 열지 않아도 되니 말이다.
그에 강진도 커피를 마시며 황규식을 보았다. 잠시 커피를 마시며 말이 없던 황규식이 입을 열었다.
“최동해 씨에게 표를 줄 겁니까?”
“최동해 씨와 이야기해 본 적 있습니까?”
“인턴 모임에서 몇 번 자리한 적이 있습니다.”
“그럼 최동해 씨가 저 말고 다른 사람에게 표를 받을 수 있다 생각을 하세요?”
강진의 물음에 황규식이 고개를 저었다.
“사실 동해 씨가 표를 받기는 어렵겠죠.”
황규식의 말에 강진은 더 말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 표는 그때 상황 봐서 제일 받을 만한 사람에게 주겠습니다.”
최동해에게 준다, 안 준다는 말은 없이 여지만을 남기는 강진의 행동에 황규식이 급히 말했다.
“저기, 이야기 조금만 더…… 표 말고도 할 말이 있습니다.”
“제가 가서 저녁 장사를 해야 해서요. 그럼…….”
말을 한 강진이 몸을 돌려 카페를 나갔다. 그리고 걸음을 옮기던 강진이 문득 입맛을 다셨다.
‘이거…… 본의 아니게 동해에게 표를 하나 가져다 준 셈인가?’
자신의 표가 아니다. 자신의 표는 그때 상황을 봐서 줄 것이다. 이왕이면 태광무역에 도움이 될 사람에게 말이다.
태광무역은 강진에게도 좋은 회사고, 좋은 손님들이 될 사람들이 다니는 회사이니 말이다.
대신 동해에게 표를 줄 사람은 황규식이었다.
방금 이야기를 나누다가 강진은 최동해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시작은 최동해가 표를 받기 힘드니 너를 줄 거면 차라리 같은 부서에서 일하는 그에게 주겠다는 것으로 시작했지만, 어쩌다 보니 최동해는 다른 인턴들에게 표를 받지 못할 사람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게 되었다.
그리고 황규식도 그것을 인지했고 답을 했다.
이번 인턴 인기투표는 자신은 유효표를 받으면서 자신이 남에게 주는 표는 죽은 표를 만들어야 한다.
혹시라도 자신이 남에게 준 표가 유효표가 되어버리면, 남이 과반수를 넘을 확률이 크니 말이다.
그러니 자신의 표는 가장 표를 못 받을 사람에게 주어 죽은 표를 만들어야 한다.
즉…… 황규식은 자신의 표를 죽이기 위해, 가장 표를 못 받을 사람에게 투표할 것이다.
최동해라는 인기 없는 사람에게 말이다.
‘이거 잘못하면 동해가 가장 많은 표 획득하는 것 아냐?’
그런 생각을 하던 강진이 고개를 저었다. 최동해가 로또에 당첨될 행운을 이번 기회에 쓰지 않는 이상은 불가능했다.
황규식처럼 표를 얻으려고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다. 황규식의 표는 강진이 심어 놓은 심리적 씨앗 덕에 어떻게든 최동해에게 갈지 모르지만 사람들의 표가 그렇게 쉽게 가지는 않을 것이다.
운으로 정직원이 되기에는, 인턴들은 절박하니 말이다.
황규식이 한 대로 그들끼리 표를 주고받으려 할 것이다.
“누가 생각했는지 몰라도…… 체육행사 속에 인턴들의 전쟁터를 만들어 놨네.”
인기 있는 인턴 뽑기를 하는 동안 태광무역 인턴들은 치열한 전쟁을 치를 것이다.
정직원이 되는 가장 빠른 황금 티켓을 잡기 위해서 말이다.
***
강진은 탕비실에서 커피를 타고 있었다. 딱히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가장 한가한 것이 강진이라 직원들이 먹을 커피를 타고 있었다.
자신도 한 잔 먹고 말이다.
믹스 커피를 종이컵에 담고 뜨거운 물을 넣을 때, 최동해가 안으로 들어왔다.
“형, 이야기 들으셨어요?”
최동해의 말에 강진이 힐끗 그를 보았다.
“회사 안이다.”
“저희 둘뿐이잖아요.”
“그건 그렇지. 무슨 이야기?”
“체육행사에서 가장 인기 있는 인턴은 정직원이 된대요.”
무슨 이야기인가 싶었더니 그 이야기였다.
“어제 황규식이라는 애한테 들었어.”
강진의 말에 최동해가 눈을 찡그렸다.
“들으셨어요?”
“응.”
“그런데 왜 저한테 이야기 안 하셨어요?”
최동해의 말에 강진이 힐끗 보았다.
“인턴들이 너 좋아해?”
“그건…… 음…… 아니죠.”
“그럼 무슨 소용이야? 네가 되려면 아홉 표를 받아야 하는데…… 너 아홉 표 받을 자신 있어?”
“그래도…… 노력해 볼 수는 있잖아요.”
최동해의 말에 강진이 손가락을 까닥였다.
“커피에 물 부어.”
강진의 말에 최동해가 들고 있던 쇼핑백을 내려놓고는 뜨거운 물을 종이컵에 부었다.
“옷 갈아입고 왔어?”
“화장실에서 옷 갈아입는데 인턴들이 들어와서 그 이야길 하더라고요. 나쁜 놈들, 그런 것 있으면 단톡방에 올려서 같이 공유 좀 해 주지.”
최동해의 말에 강진이 피식 웃었다.
“한 장짜리 티켓인데 그걸 원하는 애들은 17명이야. 그럼 그 티켓이 있다는 것을 숨겨야지. 다 알리고 다니겠어?”
“그것도…… 그렇네요.”
최동해의 말에 강진이 컵에 담긴 커피를 휘저으며 말했다.
“파우더 냄새 좋다.”
“그래요?”
“훨씬 나아.”
강진의 말에 최동해가 쑥스러운 듯 머리를 긁었다.
회식을 하고 난 이후 그는 두 시간에 한 번씩 속에 입는 티셔츠를 갈아입었다.
그리고 베이비파우더도 뿌리고 말이다. 최동해는 바뀌려고 노력을 하고 있었다.
쪼르륵! 쪼르륵!
뜨거운 물을 붓는 최동해를 보며 강진이 말했다.
“형은 네가 여기 정직원이 되기보다는 살부터 빼는 것이 우선이라 생각한다.”
“그…….”
머뭇거리는 최동해를 보던 강진이 고개를 젓고는 작은 쟁반에 커피잔을 올려서는 탕비실을 나왔다.
“커피 왔습니다.”
“땡큐!”
“고마워요.”
팀원들의 인사에 강진이 웃으며 커피를 각 탁자에 올려놓았다.
그러고는 강진이 이상섭에게 살짝 말했다.
“선배님.”
“응? 왜?”
“잠시 이야기 괜찮으세요?”
강진의 말에 이상섭이 의자를 틀어 다가왔다.
촤아악!
바퀴 굴러가는 소리와 함께 다가온 이상섭이 말했다.
“무슨 일 있어?”
“체육행사에 인기 인턴 뽑기에 대해 아세요?”
“아!”
강진의 말에 이상섭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최동해를 손짓했다.
“동해도 같이 듣자. 인턴이 알아야 하는 거니까.”
이상섭의 말에 최동해가 급히 다가와 옆에 섰다. 그리고 이상섭이 막 말을 하려다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파우더 냄새 좋다.”
“고맙습니다.”
“아니야. 사실 민감한 문제라 나도 말은 못했지만 조금 그랬는데…… 이렇게 간단하게 해결 될 줄 알았으면 진작 말할 걸 그랬다. 그럼 너도 좋고 우리도 좋고 서로 윈윈인데 말이야. 내가 다음에 베이비파우더 몇 개 사 줄게.”
“감사합니다.”
최동해가 머리를 긁으며 웃자 이상섭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좋아 너희가 어디서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인기 인턴 뽑기는 진짜로 존재한다.”
“그럼 진짜로 체육 행사에서 인턴들끼리 투표해서, 과반수 표를 받은 인턴이 정직원이 되는 겁니까?”
“바로는 아니고 인턴 기간 끝나고…… 엄청나게 큰 사고를 치지 않는 한에서 정직원으로 고용이 되는 거지.”
“와…….”
최동해의 감탄성에 이상섭이 말했다.
“실제로 지금 미국 지사에 가 있는 장대성 대리님이 그걸로 정직원이 됐어.”
“대단한 분이시네요.”
강진이 살짝 놀란 눈으로 하는 말에 이상섭이 그를 보았다.
“역시 강진이는 이게 얼마나 대단한 건지 알아보는구나.”
이상섭의 말에 강진이 최동해를 보았다. 잘 들으라는 듯 말이다.
“인턴은 모두…… 아니지, 저 빼고는 모두 정직원에 목숨을 겁니다. 그런데 그중 정직원이 될 수 있는 하나의 티켓을 남에게 양도할 생각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짜악!
이상섭이 손뼉을 치며 말했다.
“그렇지.”
“그런데 인기 인턴이 되려면 9표를 얻어야 합니다. 이건 거의 불가능한 미션과 같습니다.”
강진의 말에 최동해가 말했다.
“하지만 한 사람이 있잖아요.”
“그래서 장대성 대리님이 대단한 분이라고 한 겁니다. 그 엄청난 걸 해냈으니까요.”
그러고는 강진이 동의를 구하는 눈으로 이상섭을 보았다. 그 시선에 이상섭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내가 입사하고 이때까지 어떤 인턴도 인기 인턴이 된 적이 없어.”
그러고는 이상섭이 최미나 대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최 대리님.”
“왜요?”
“대리님 입사한 후에 체육 행사에서 인기 인턴 나온 적 있어요?”
이상섭의 물음에 최미나가 웃으며 손가락으로 0을 그렸다.
“나도 장대성 대리님 말고는 있다는 소리 못 들었어요. 그리고 나 입사하고 나서도 없었어요.”
최미나의 말에 이상섭이 강진과 최동해를 보았다.
“그만큼 어려운 일이야. 괜히 인기 인턴 되려고 고생하지 말고, 적당히 즐겨.”
“즐겨요?”
그게 무슨 말인가 싶어 보는 최동해를 보며 강진이 웃었다.
“어제 커피 한 잔 얻어먹기는 했습니다.”
강진의 말에 이상섭이 웃었다.
“확실히…… 대단해. 눈치가 기가 막혀.”
“감사합니다.”
이상섭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최동해를 보았다.
“표 때문에라도 인턴들이 친한 척하고 맛있는 것 먹자고 할 거야. 그럼 적당히 즐기면서 먹을 것 먹고 마실 것 마셔.”
“아…… 좋네요.”
최동해가 그제야 이해가 됐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좋겠다. 공짜 술에 공짜 밥에…….”
말을 하던 이상섭이 강진을 힐끗 보았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점도 꼭 기억해.”
이상섭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꼭 기억해?’
어쩐지 이상섭이 하는 말이 그냥 하는 말로 들리지 않았다. 그러다가 강진이 이상섭을 보았다.
이상섭의 얼굴에는 장난기와 호기심이 섞인 표정이 어려 있었다.
‘설마…… 인기 인턴 뽑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