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world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971
972화
촬영을 구경하는 강진과 황민성에게 김인아가 다가왔다.
“딱히 재미없죠?”
김인아가 웃으며 차가운 캔 커피를 내밀자 강진이 그것을 받아 황민성에게 내밀었다.
“TV에서 보던 것과는 다르네요.”
강진이 캔 커피를 따며 하는 말에 김인아가 촬영을 하는 배우들을 보았다.
“나중에 드라마에서는 음악 들어가고 영상 전환되고 하니 이렇게 심심하지는 않을 거예요.”
“심심하지는 않아요. 보는 재미도 있고.”
강진의 말에 김인아가 웃으며 말했다.
“신예 씨가 미인이기는 하죠.”
‘보는 재미’라는 말에 박신예를 언급한 것이다. 그에 강진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신예 씨도 그렇지만 액션도 재밌네요. 근데 아직 편성도 안 됐는데 이렇게 촬영을 해도 되는 거예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웃으며 말했다.
“통으로 찍고 편성 잡아도 되고…… 중간에 편성 잡히면 찍어 놓은 거 있으니 일정에 쫓기면서 찍지 않아도 되니까 아무래도 상관없어.”
황민성의 말에 김인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보통 드라마 편성 잡혀야 광고도 붙고 방송국에서 촬영비도 들어오는데, 저희는 이렇게 훌륭하신 제작자분이 받쳐 주고 있어서 돈 걱정이 없어요. 그래서 편하게 촬영하고 있죠.”
김인아가 웃으며 황민성을 보았다.
“사장님 같은 투자자만 있으면 드라마 만들기 정말 좋을 텐데…… 혹시 영화는 관심 없으세요?”
“영화요?”
“이번에 정말 좋은 시나리오를 찾았거든요.”
눈을 반짝이는 김인아의 말에 황민성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제가 투자를 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아직 뚜껑도 열어 보지 않은 제품에 또 투자하지는 않습니다.”
“아…… 그럼 이번 드라마 잘 되면 혹시?”
“후! 저도 재미를 보면 그 재미를 또 보려고 할지도 모르죠.”
황민성의 말에 김인아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번 드라마 정말 잘 되어야겠네요.”
“그럼요. 정말 잘 되어야죠. 이번 드라마에 돈 많이 들어갔습니다.”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슬며시 물었다.
“돈 많이 들어갔어요?”
“많이 들었지.”
“괜찮아요?”
김소희를 위해서라고 하지만 돈이 많이 들어갔다고 하니 걱정되는 것이다.
강진이 걱정을 하는 듯하자, 황민성이 피식 웃었다.
“왜요?”
“내 돈만 들어갔으면 안 괜찮은데, 투자를 많이 받아서 괜찮아.”
“투자 많이 받으셨나 보네요?”
“내가 직접 제작하는 거라고 하니 사람들이 투자를 많이 했어. 아주 다행이야.”
“드라마 만드는 데에 돈이 많이 들어가나 봐요?”
강진의 물음에 황민성이 입맛을 다셨다.
“드라마는 시작하려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돈이 들어가니까.”
말을 하던 황민성이 손을 들어 촬영장을 가리켰다.
“여기 있는 사람들 인건비 생각을 해 봐라. 한 명 한 명이 다 돈인 거지.”
황민성의 말에 김인아가 조금 미안한 듯 말했다.
“최대한 효율적으로 뽑은 예산인데…….”
“아! 그런 말이 아니었습니다. 돈은 일단 투자 들어온 것 많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드라마만 잘 만들어 주세요.”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최선을 다해 만들겠습니다.”
“꼭 그렇게 해 주세요.”
웃으며 말을 한 황민성이 촬영장을 보다가 문득 강진을 보았다.
“넌 언제까지 있을 거야?”
“저요?”
“여기 밤까지 촬영이 있어서 늦을 수도 있으니 너 가야 하면 가. 아니면 형하고 같이 가든가.”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저는 이따가 세 시쯤에 가려고요.”
“세 시?”
“강원도 온 김에 가 봐야 할 곳이 있거든요.”
“어디?”
“산삼 캐러 가는 곳요.”
강진이 힐끗 김인아 눈치를 보며 말을 하자,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이야기 나누세요.”
김인아가 몸을 돌리자, 황민성이 강진을 보았다.
“그 할머니들 사는 곳?”
“애들 밥 주러 자주 가기도 하고, 갈 때마다 어르신들께 음식은 해 드리는데 저승식당은 못 했거든요. 오랜만에 푸드 트럭 끌고 여기까지 왔으니 가서 음식 좀 해 드리려고요.”
“그럼 그전에는 어떻게 음식을 해 드렸어?”
“저승 식재들로 음식을 해 드렸죠.”
“아! 하긴, 너는 그쪽 왔다 갔다 하니까.”
말을 하던 황민성이 강진을 보았다.
“그쪽도 여기하고 별다를 게 없다고 했지?”
“딱히 다르지 않아요. 나중에 가 보면 적응하기 좋을 거예요.”
“음…… 악담인지 걱정하지 말라는 건지…….”
저승에 가 보려면 죽어야 하니 말이다.
“걱정하지 말라는 거죠.”
강진이 웃으며 황민성을 보았다.
‘나중에 어머니 가실 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조순례가 오래오래 같이 살아 주면 좋고 행복하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게다가 조순례는 나이도 많고 치매로 몸도 많이 허약하다.
지금이야 김소희가 축복을 내려주었고 옥난이 있어 건강한 듯하지만…… 그래도 한 번 쇠한 몸은 어쩔 수 없었다. 나이라는 시간 또한 어쩔 수 없고 말이다.
황민성을 보던 강진이 작게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슬프시고 아프시겠지.’
조금이라도 마음이 편하기를 바라는 마음에 저승도 이승과 다를 바 없다고 말했지만…… 슬픈 것이 슬프지 않고, 보고 싶은 것이 보고 싶지 않을 일은 없었다.
그리고 그게 어머니라면…… 말 그대로 어찌할 수 없을 것이다.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잠시 하늘을 보다가 말했다.
“이승과 다르지 않다면…… 거기도 가족들끼리 살고 그러려나?”
“저도 그건 잘 모르는데,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살고 그러지 않겠어요?”
“그렇구만…….”
강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황민성이 웃으며 기지개를 크게 켰다.
“끄응! 돈 나갈 일 많겠다.”
“네?”
강진이 보자 황민성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그러고는 황민성이 강진을 보았다.
“형도 거기 가도 되냐?”
“어디요? 산골 마을요?”
“돼랑이라는 그 친구도 보고 싶고, 내가 맛있게 먹는 김치를 그 마을 할머니들이 만드신다는데 인사라도 드리고 싶어서.”
“하긴, 형이 우리 집 김치 받아 드신 지 꽤 됐죠.”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가 너희 집 김치를 너무 좋아하시잖아.”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황민성 가족이 먹는 김치는 강진이네 김치였다.
“괜찮으면 나도 가서 인사드리고 싶네. 맛있는 것도 좀 사다 드리고.”
“시간 늦은데 괜찮으시겠어요?”
“투희 못 보는 게 좀 아쉽지만…… 어쩌겠어. 사람 도리는 하고 살아야지.”
사람 도리라는 말에 강진이 웃었다. 사람 도리라는 건 별것이 아니다. 고마운 일을 겪으면 인사를 하는 것. 그게 사람의 도리였다.
“알았어요. 그럼 세 시쯤에는 출발해야 하는데 괜찮으시겠어요?”
“그렇게 일찍?”
“오랜만에 가는데 가서 인사도 드리고 치울 것 좀 치우고 하려고요. 그리고 세 시에 가도 산이 깊어서 조심히 운전해야 하거든요.”
“그럼 그렇게 하자.”
“촬영은 괜찮으시겠어요?”
강진의 물음에 황민성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나야 그저 잘 돌아가는지 구경이나 하는 거니까 없어도 돼.”
황민성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강진은 박혜원이 몸에 물을 묻히고는 박신예 옆으로 가는 것을 보았다.
박신예처럼 피와 물에 절어 착 달라붙은 옷을 입은 박혜원의 모습에 강진이 말했다.
“이제 혜원이도 촬영 시작하나 보네요.”
“어디 보자.”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커피를 마시며 박혜원을 보았다.
박혜원의 옆에는 어느새 김소희가 자리를 하고 있었다.
“내 보니 이 연기는 눈빛이 중요해 보이네. 눈빛으로…….”
잠시 말을 멈춘 김소희가 하늘을 보았다.
“날이 좋았던 그날의 그때…… 내가 사랑했던 이들이 있던 그곳을 떠올리는 그 모습 말이네.”
자신의 목소리가 들릴 리 없지만 김소희는 자신이 느낀 것을 이야기했다.
사실 이 엔딩 장면은 김소희의 과거였고 실제 있었던 일이었다.
그날 김소희도 여기는 아니지만 이런 강가에서 왜구들과 칼을 겨누고 싸우다 죽음을 당했다.
그리고 그때 김소희가 떠올린 것도 이것이었다.
고향 전주에서 가족들과 함께 웃으며 즐겁게 있던 그 시간, 그 장면을 말이다.
죽음의 순간, 그 즐겁고 행복했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었다.
그래서 눈을 감는 그 순간 웃을 수 있었다. 힘든 현실보다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마지막을 맞이한 것이다.
김소희가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살며시 미소를 지을 때, 박혜원은 호흡을 가다듬고 있었다.
그런 박혜원을 보며 박신예가 다가왔다.
“혜원아.”
“네, 언니.”
“이번 연기는 감정선 연결이 가장 중요해.”
박신예의 말에 박혜원이 호흡을 가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이야기했지만 내 마지막 눈빛을 담아야 해.”
“모니터로 계속 보고 있었어요.”
“모니터도 중요하지만, 직접 한 번 보고 생각을 해 봐.”
한 발 뒤로 물러선 박신예는 검을 든 자세를 취하고는 허공을 보다가 슬며시 하늘을 보았다. 그 순간, 그녀의 눈에 살짝 묘한 느낌의 감정이 어렸다.
보는 이마저 뭔가 진한 그리움이 느껴지는 그런…….
눈빛에서 그리움이라는 감정을 느낀 박혜원이 멍하니 그녀를 볼 때, 박신예가 자세를 풀고는 박혜원을 보았다.
“한 번 해 봐.”
박신예의 말에 박혜원이 긴장을 풀려는 듯 몸에 힘을 한 번 추욱 뺐다가 검을 뽑았다.
그러고는 날카롭게 앞을 향해 찔렀다.
그 모습에 박신예가 미소를 지었다.
‘내 연기에서 연결을 하는 건가?’
방금 찌르기는 자신이 마지막에 펼치는 자세였다. 그리고 박신예의 생각대로 박혜원이 그 자세에서 박신예가 했던 대로 자세를 잡았다.
그러고는 잠시 허공을 멍하니 보다가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물론 이 동작들은 화면에 나오지 않는다. 성인 소희에서 아역 소희로 바뀌기 직전 나오는 동작인 만큼 화면에 나올 리가 만무했다.
하지만 박혜원은 감정선 연결을 위해 앞 동작을 그대로 따라한 것이다.
박신예처럼 그리움이 담긴 표정을 짓던 박혜원이 미소를 지었다. 정말 그린 것처럼 해맑고 밝은 미소에 박신예가 고개를 저었다.
“웃는 게 아니야. 애잔함과 그리움이 있어야 해.”
박혜원이 보자, 박신예가 다가와 설명을 했다.
“지금 김소희는 죽음을 앞에 두고 과거를 그리워하고 있어. 그러니…….”
“즐겁지 않을까요?”
“응?”
박신예가 보자, 박혜원이 허공을 보며 말했다.
“죽음의 순간에 그리운 순간, 다시 돌아가고 싶은 순간을 떠올리고 있어요. 그럼 언니는 그리움을 담아서 연기하는 것이 맞을 것 같아요. 그런데…….”
“그런데?”
“하지만 저는 그 그리움이 현실이 되는 순간의 소희예요. 그럼 저는 그리움이 아니라 즐겁고 행복함을 떠올려야 하지 않을까요?”
박혜원은 다시 박신예를 보며 말을 이었다.
“대본 보다가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대본에는 그리움을 담은 애잔한 표정이라고 되어 있는데…… 저는 그보다는 행복하고 밝은 미소가 더 맞는다는 생각이 들어요.”
박혜원이 잠시 생각을 정리하고는 말했다.
“언니는 현재에서 과거를 생각하니 그리움을 느끼겠지만…… 그 과거가 저한테는 현재잖아요.”
박신예가 ‘지난날을 추억하는 성인 김소희’를 연기하는 거라면, 박혜원은 ‘지난날의 어린 소희’ 그 자체를 연기하는 것이다.
그러니…….
‘맞네. 과거의 내가 애잔할 필요가 없잖아.’
박혜원이 대본을 이렇게까지 잘 이해했다는 사실에 박신예가 웃으며 그 머리를 쓰다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