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canic Age RAW novel - Chapter (153)
중 하나를 흘리듯이 말하고 갔는데, 무언가를 얻은 모양이었다. “도움이 됐다면 다행입니다.” “그러한 지식은 어디서 얻었는지 궁금하네요.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진법에 대해 토론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요.” “하하하……” 주서천이 어색하게 웃었다. 진법에 대해 알고 있는 건 정말 기초뿐, 그 이상의 것은 잘 모른다. 한편, 제갈세가의 호위 무사들은 주서천과 제갈수란의 대화를 들으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아가씨가 저렇게 말을 많이 하시다니!’ ‘가문 사람들이라면 모를까, 외부인 앞에선 하루에 열 마디를 하는 것도 보기 힘들거늘……’ ‘부럽다, 부러워. 삼봉 중 이봉과 저리 친해지다니!’ 제갈수란이 말 자체를 안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필요하지 않으면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진법이나 혹은 전술 관련으로는 누구보다 이야기를 많이 하나, 그 외의 사설은 입에 담지 않는 편이었다. ‘크으, 수상한 놈팡이라면 내 진작 혼줄을 내 줬겠지만 상대가 상대니 그럴 수도 없는 노릇이고……’ ‘최근에 주서천이 천하백대고수의 반열에 올랐다고 하던데……’ ‘무공이면 무공, 인품이면 인품. 그리고 호북 제일의 미녀와도 친하니 부러워서 배가 다 아프구나.’ 그렇게 훈훈한 분위기 속에서 제갈세가와도 나중의 만남을 기약하면서 이별을 고했다. “자, 이제 멈추지 않고 바로 가 봅시다. 산동에서 상단주께서 저희를 위해 잔치를 준비했답니다.” “와아!” 날씨가 조금 쌀쌀하다. 이제 얼마있지 않으면 설매가 피지 않을까. 무심코 그런 생각이 들었다. 호북에서 산동의 금의상단까지 오는 길에 별일은 없었다. 순탄한 움직임으로 무사히 제남에 도착했다. 급하지는 않아 서두르지는 않았다. 어차피 적림이야 줄어든 산채를 보강하고, 녹룡채의 재물을 배분하고 총채주를 새로 뽑느라 토벌대에는 관심도 없었다. 배가 고프면 잠시 멈춰 서서 사냥을 하고, 잠이 부족하면 수면을 취했다. 이렇게 여유를 부리면서 이동했는데도 산동의 제남까지는 일주일 밖에 걸리지 않았다. 일반인이라면 말을 타지 않는 이상 무리였을 테지만 하나같이 무인들이다 보니 잘 지치지도 않고 걸음도 빨랐다. “대협께서 오셨다! 길을 비켜라!” 제남에 도착하기도 전에 이의채가 소식을 들었는지 잔칫상을 준비해놓고 버선발로 뛰어 마중 나왔다. “집이다!” 제갈승계가 이제야 살겠다는 듯 환하게 웃었다. 평생을 살았던 세가보다 금의상단이 편하고 좋았다. “소란 떠시는 건 여전하시군.” 주서천이 피식 웃었다. 성대한 환영에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아이고, 정말로 고생 많으셨습니다. 방방곡곡에서 기승을 부리던 개새끼들, 아니 도적들이 대협 덕분에 활동을 멈추고 도망치듯이 사라지더군요. 하, 그동안 입은 피해가 정말 만만치 않았습니다.” “혹시 그동안 입은 손해가 생각 이상으로 큽니까?” 이럴 줄 알았으면 녹룡채에서 값비싼 것 좀 가져올 걸 그랬나 싶은 후회감이 들었다. “대협께서 나서 주선 덕에 어찌어찌 적자는 면했습니다만, 그뿐입니다. 그놈들이 기승을 부린 이후로는 손해 본 부분을 막느라 흑자를 보지 못했습니다.” 이의채가 이득 하나 건지지 못했다는 사실에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타 지방에서 계획 중이었던 사업 몇 개도 연기됐습니다. 경쟁 상단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작업장을 빼앗아서 아예 무산된 곳도 있습니다.” “그래도 적자는 면했다니 불행 중 다행이군요.” 역시 상왕은 상왕이었다. 남들 같다면 적자는 물론이고 상단 자체가 망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한 곳도 아니고 각지에서 적림도가 끊임 없이 약탈해 오고, 그로 인한 손해를 다른 돈으로 막아 냈다. “정말로 위험할 뻔했던 적도 있었지만, 무곡 어르신이 도와주신 덕분에 살았습니다. 아, 대협께서 소개해주신 그와 그녀의 힘도 든든하더군요.” 그와 그녀란 호위로 붙여 준 유령을 말하리라. 보는 눈이 있어 일부러 돌려 말했다. “마음 같아선 저승에서 고통받고 있을 맹강을 데려와 눈앞에서 다시 죽이고 싶습니다.” 이의채의 목소리에 한기가 서렸다. 그동안 낭비한 시간이나 금전적인 손해를 생각하면 열불이 터졌다.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한잔하시면서 그동안의 고생을 푸시지요.” “어이쿠, 고생하다니요. 정말로 고생하신 건 천하백대고수 매화정검! 화산파의 사대제자 주서천 대협이시지 않습니까. 주서천 대협 만세! 매화정검 만만세! 화산파 만세!” 술 한 잔에도 감사 인사를 도대체 얼마나 하는지 모르겠다. 이것도 자중하는 편에 속했다. 임무를 끝난 토벌대원들은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올라온 진수성찬을 먹으면서 연회를 즐겼다. “제가 비록 산동에서 나오진 않았지만, 그래도 영웅분들의 활약은 하나도 놓치지 않고 들었습니다. 매협검 장홍 대협, 옥매화 장서은 여협, 화산제일미녀 미점화(美劍花) 낙소월 여협까지…… 그런 분들을 모실 수 있다니! 이 상단주, 가문의 영광입니다.” 이의채가 특유의 간신배 같은 웃음 소리를 흘렸다. “아, 그러고 보니 사매에게도 드디어 별호가 생겼으니 축하해 줘야겠네. 안 그래, 화산제일미녀?” 주서천이 놀리듯이 웃었다. “정말이지.” 낙소월이 못 말리겠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여러모로 부끄러운지 뺨이 불그스름하게 달아올랐다. “과연, 화산파. 천하의 금의상단주께서도 화산파부터 기억하시는군요.” 한쪽에 앉아서 독한 술을 아무렇지 않게 마시던 당혜가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으윽!’ 이의채는 위가 아파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허허허! 그게 무슨 소리십니까? 다 같은 영웅들인데 위아래가 있겠습니까. 독봉, 아니 당가의 위명 또한 귀가 닳도록 들었습니다. 특히나 대호채에서의 활약을 들었을 땐, 절로 ‘키야! 그건 또 몰랐네!’ 라면서 무릎을 탁 치며 절로 감탄했지요.” “상단주는 턱이나 배에 있을 지방의 기름을 혀에 칠했는지 말씀도 잘하시는군요.” 여전히 말은 신랄해도 구부러진 눈썹이 원래의 자리로 돌아온 걸 보면 기분이 나아진 듯했다. “그렇게 칭찬해 주신다면야 이 상단주,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또한 제갈 공자께서도 크게 활약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기관괴협(機關怪俠)이라니, 크으. 천재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보 같은 사람들이 기이하다 하지만 경외를 담아 붙인 것이 분명합니다. 기관지술의 일인자, 대천재 제갈승계 공자님이 아니겠습니까!” “암, 그렇고말고요. 기관지술의 일인자이자 천재라면 바로 저 제갈승계가 아니겠습니까. 역시 상단주라 사람 볼 줄 아는군요!” 제갈승계가 귀를 쫑긋거리며 좋아했다. ‘저거 얼마 전까지만 해도 별호가 마음에 안 든다고 불평하던 놈 맞나?’ 주서천이 그런 제갈승계를 보고 어이없어했다. “그중에서도 제일 축하할 일은 매화정검, 주서천 대협이시지 않겠습니까. 천하제일백대고수가 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하하, 대장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알아봤다니까!” 초련이 당연하다는 듯이 술잔을 높여 웃었다. “아무렴!” 여기저기서 떠들썩한 소리가 들렸다. 대부분 금의상단 사람들만 호응했지만, 그래도 그 열기와 함성 소리는 보통이 아니었다. “자자, 얼른 제 잔을 받아 주십시오!” 주서천은 술잔을 받으면서도 생각에 잠겼다. ‘천하백대고수라……’ 수천 명의 무인 중 오로지 백 명에게만 허락된 자리. 무인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이름이었다. ‘정말로 감개무량하구나.’ 주서천도 한때 꿈꿔 본 적 있었다. 몇십 년 전인지도 모를 정도로 오래된 일. 전생이자 과거였다. 그러나 그 명성을 이름 앞에 붙여본 적은 없었다. 전란의 시대야 천하백대고수가 하루마다 바뀌긴 했어도, 그만큼 대체할 수 있는 인재가 많았다. 여타 무인들과 비교하자면 그다지 눈에 띄지 않았고, 전란의 시대가 끝나 평화가 찾아온 뒤로도 실력을 증명할 기회가 없었다. 화산오장로로서 일하느라 제법 바빴다. 그 외의 시간에도 무공 수련과 책을 읽는 데 정신이 팔렸다. 말년에 화경에 오르는 데 성공하나 얼마 가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 누구에게도 기억되지 않았던 무인. 전무후무한 전란의 역사에도 기억되지 않은 사람. 눈을 감을 때도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랬던 보잘것없는 무인이…… 지금은 다르다. ‘대협,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협객이야, 협객!’ ‘팔과 아내의 복수를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단한 무공이시군요.’ ‘천하백대고수, 매화정검 주서천!’ 사람들을 구했다. 영웅이라 불렸다. 처음에는 낯간지러웠다. 그렇나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어릴 적 꿈만 꾸었던 천하백대고수라는 이름이 앞에 붙는다. 기분 좋은 울림이었다. 가슴이 뜨거웠다. 매화검봉, 만각이천, 상왕, 독봉. 원래는 결코 함께할 수 없는 사람이다. 어딘가의 밑바닥에서 위를 올려다봐야 보였던 사람들이었다. 그런 사람들이 곁에 있다. 함께 술잔을 기울이며 떠들고, 웃는다. ‘그래……’ 마치 한여름 밤의 꿈과 같은 그 광경 속에서, 주서천은 무언가를 다짐했다. “여러분, 괜찮다면 잠시 자리를 옮겨 대화를 나눌 수 있겠습니까?” 무림의 전복을 꾀하려는 흑막, 암천회. 아무리 뛰어나다 한들 혼자서는 암천회의 음모를 막을 수 없다. 그들의 규모는 상상 이상으로 크다. 육대금공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강호에 나오면 능히 피바람을 부를 만한 비급서를 수두룩하게 보유하고 있으며, 정사와 마도이세뿐만 아니라 상계까지 깊숙하게 관련되어 있다. 아무리 과거의 기억을 지니고 있고, 미래의 정보를 알고 있다 할지라도 막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리고 이제 그 도움을 제대로 받으려면, 거짓이 아닌 필요 이상의 진실이 필요했다. ‘이제는 도약할 때다.’ 준비가 전부 끝난 건 아니다. 하지만 전처럼 숨죽이고, 자신에 대해 철저히 숨기지는 않을 것이다. 어차피 적립총채주나 되는 인물을 죽이면서 싫어도 큰 주목을 받게 됐다. 아마 이번 일로 암천회에서도 척살부의 상위에 올라왔을 터. 이제 혼자 움직이는 것에도 한계가 왔다. 앞으로는 주변의 도움도 받아야 할 필요성을 느꼈고, 맡길 수 있는 믿을 만한 사람들도 있었다. 매화검봉 낙소월, 만각이천 제갈승계, 상왕 이의채 , 독봉 당혜, 검마 무곡까지. 이 다섯 명과 이야기했다. 물론 전부를 이야기한 건 아니다. 아무리 그래도 전생했다는 사실 자체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암천회에 대한 것만 대략적으로 설명했다. 그들의 음모나 구조 등에 대해서였다. 혼자서 강호를 돌아다니 다가 암천회의 존재를 알게 됐고, 그들을 추적하다 보니 여러 가지를 알게 됐다. 낙소월은 일전에 들은 적이 있어 놀라움이 덜했다. 나머지 네 사람은 가지각색의 반응을 보였다. “허, 흉마의 무덤 건도 그들이 계획했다는 겁니까?” 제갈승계가 믿기지 않는 듯 되물었다. “그래.” “흐음.” 이의채가 푸짐한 턱살을 매만지며 고민에 잠겼다. 평소처럼 과장하거나 촐랑거리는 모습은 없었다. 눈은 가늘게 뜨고, 그 안에는 한없이 진지해진 눈빛을 담았다. “터무니없는 이야기인 건 압니다. 아마 쉽게 믿기 어려우시겠지요? 하지만 여러분의 힘이 필요합니다. 한 번 만이라도 좋으니 진지하게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진심이었다. 혼자의 힘에는 한계가 있다. 이 진리는 전생을 통해서 깨우친 것이었다. 한 세대를 풍미할 재능의 소유자라 할지라도, 수많은 전장을 겪은 무인도, 그리고 사람으로 느껴지지 않는 절대고수인 상천십좌조차도 그랬다. 영웅이건 절대고수이건 혹은 은거기인이건 암천회 앞에서는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괜히 전란의 최후에 온 무림인들이 협력하여 암천회에 대적한 게 아니다. 그만큼 막강한 힘을 지녔다. “이미 힘을 빌리고 있지 않습니까, 형님.” 제갈승계가 놀라움을 감추지 않으면서도, 주서천의 요청에 제일 먼저 손을 들어주었다. “이 제갈승계, 어릴 적에 형님에게 속은 걸 잊지 않고 있습니다. 제 혼은 이미 영약에 팔렸죠.” 제갈승계가 살짝 웃었다. 잘생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