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canic Mine RAW novel - Chapter 145
145화
“그대, 어린 친구여.”
손바닥을 마주 댄 상태 그대로 천래궁주 요천의 입이 열렸다.
염호는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요천의 희번덕거리는 눈동자를 쳐다봤다.
“그대는 이제 천도(天道)의 제단 아래 무릎 꿇고 신벌(神罰)을 맞을 준비를 하라.”
연이어진 요천의 말에 염호의 얼굴이 더욱 구겨졌다.
“뭐래는 거야?”
일그러진 표정으로 요천을 천천히 살피는 염호.
얼굴은 예전에 알던 흑제가 분명했다.
달라진 것이라곤 낯빛이 먹물을 칠한 것처럼 새까맣게 변한 것과 피부가 좀 더 탱탱해진 것, 그리고 그때보다 오히려 젊어 보인다는 것 정도.
그런데 묘하게도 이질적인 느낌이었다.
조금 전 연산홍을 상대로 펼쳐 보인 흑암마공(黑暗魔功)에서도 그렇고 손바닥을 통해 전해지는 공력 역시 단 한 줌의 마기(魔氣)도 느껴지지 않았다.
‘흠! 이 인간도 탈태환골에 반로환동을 했구나.’
자신이 겪은 일이니 흑제라고 해서 안 된다는 법은 없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뭔가 이상하긴 했다.
단순히 마기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만으로 다 이해하기 힘든 생경함은 마치 생판 다른 사람이 아닐까 하는 의심마저 들 정도였다.
“본좌 신공은 이제 하늘께 그대의 처결을 맡길 것이다.”
그 말을 뱉은 직후 요천이 갑작스레 마주대고 있던 염호의 손가락 사이로 자신의 손가락을 집어넣더니 단단하게 깍지를 꼈다.
눈을 가늘게 뜨고 요천을 살피던 염호는 순순히 요천이 하자는 대로 응해줬다.
어차피 곧 치고받고 끝장을 봐야할 사이지만, 대체 흑제 이 인간은 그동안 뭔 짓을 하며 살았기에 천래궁주라는 탈을 뒤집어쓰고 요렇게 요상한 짓을 하고 지낼까 하는 궁금증을 조금이라도 풀고 싶은 것이다.
순간 요천이 바닥에 무릎을 턱 꿇더니 고개를 바짝 들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요천과 손을 맞잡은 염호는 그 옆에 선 채 가만히 그 하는 꼴을 지켜보며 속으로 혀를 찼다.
‘허~! 요 인간이 진짜 맛이 좀 간 거 아니야?’
잠시 동안 그렇게 하늘을 올려다보던 요천이 순간 벌떡 일어선 뒤 염호를 마주봤다.
“천주의 뜻이 정해졌다.”
“?”
“혹세무민하며 세상을 어지럽힐 겁난의 씨앗.”
점점 딱딱해지는 요천의 목소리, 반면 그 하는 꼴이 기가 막힌 염호는 어이를 상실한 표정이었다.
순간 깍지를 낀 요천의 손아귀로 노도와 같은 기운이 밀려들었다.
“필사(必死), 즉참(卽斬)!”
후아앙!
살벌한 목소리와 함께 손바닥으로 밀려드는 거대한 힘.
가만히 둔다면 염호의 몸속을 헤집으며 혈관과 장기를 죄다 터트리고 말 것이다.
당연히 이런 정도는 예상하고 준비하고 있었다.
팡!
일순간 염호의 옷자락이 바람을 머금은 돛처럼 부풀었다.
천살마공을 끌어올려 밀려드는 요천의 기운을 단번에 차단한 염호, 거기서 끝이 아니라 왼손이 재빠르게 허리춤으로 들어갔다.
재빠르게 손도끼를 꺼낸 염호가 도끼날로 그대로 요천의 머리통을 쪼개려 했다.
쩡!
내내 뒷짐을 지고 있던 요천의 오른손이 번개처럼 튀어나왔다.
맨손바닥으로 도끼날을 막아낸 것이다.
그 상태로 잠시 다시 팽팽한 대치가 이어졌다.
서로를 코앞에서 응시하는 두 사람, 여전히 일말의 감정도 풍기지 않는 요천과 달리 염호의 얼굴에 순간 해죽 웃음이 걸렸다.
“흑뢰정을 몰라보네?”
“…….”
“십만대산에선 언제 기어 나왔어?”
“?”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리는 요천, 순간 염호는 확신을 할 수 있었다.
흑제가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마교주 흑제가 십만대산을 모른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세상에 제대로 이유가 알려지지 않은 마교의 멸문이나 얼마 전 출몰한 마령 역시 죄다 이 인간이 뭔가 이상해져서 벌인 일이라는 추측까지 가능했다.
흑제가 멀쩡해도 해 볼만 하다고 생각했는데 정상이 아니라면 뭘 더 망설이고 말고 할까.
흑뢰정을 쥐고 있는 왼손의 힘줄이 꿈틀 맥동을 시작했다.
흑제의 손바닥에 철썩 달라붙어 있던 흑뢰정이 미친 듯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쪽 손은 서로 깍지를 낀 상태로 염호의 흑뢰정이 섬전처럼 흑제의 온몸을 찍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타탁! 타타타타탁!
도끼를 휘두르는 염호의 손도 이를 막아내는 흑제의 손도 보이지가 않고 무수한 충돌음만이 콩을 볶는 소리처럼 요란하게 산 아래로 퍼져 내려갔다.
“이래도 안 놓는다 이거지?”
쉴 새 없이 도끼질을 해대던 염호가 흑뢰정의 방향을 삽시간에 비틀었다.
슈앙!
깍지를 끼고 있는 흑제의 왼팔을 그대로 찍어가는 것.
그때서야 내내 변치 않던 흑제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막아가는 손보다 도끼가 빠르다는 것을 알아챈 것.
결국 깍지를 끼고 있던 손가락이 풀렸다.
콰-앙!
순간 둘의 손바닥이 떨어진 곳에서 믿기 힘든 폭음이 터져 나왔다.
촤르르륵!
주르륵!
마주 섰던 곳에서 뒤쪽으로 밀려난 두 사람.
새로 깐 대리선 바닥 안이 발목까지 잠길 정도로 긴 골이 생겨났다.
염호가 밀려난 거리를 가늠하더니 보일 듯 말 듯 인상을 찌푸렸다.
완벽한 백중세, 길게 파인 골의 길이마저 똑같음을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내가 이겨.”
“…….”
“네놈한텐 혈마검이 없지만 난 다르거든.”
순간 염호가 산 아래쪽을 향해 팔을 쭉 뻗었다.
후웅! 후우웅! 후우우웅!
일대제자들에게 대충 던져놨던 패왕부가 거세게 공기를 가르며 허공으로 치솟아 올랐다.
탁!
오른손으로 거대한 패왕부를 들고 왼손엔 자그마한 흑뢰정이 들렸다.
캉! 캉!
한 번 더 히죽 웃으며 패왕부와 흑뢰정을 가볍게 두 번 부딪힌 염호.
“훗, 신공이라고? 확실히 네 놈은 지금 노망이 난 거지?”
염호가 그대로 흑제를 향해 쏘아졌다.
패왕부에 담긴 엄청난 기운.
화산 전체를 반으로 갈라버리고도 남을 엄청난 기운이 패왕부에 실렸다.
파산천강추!
물론 화산파 제자들이야 검신의 마지막 심득으로 알고 있으니 거리낄 것이 전혀 없었다.
거기에 상고의 신력 몰천력을 극성으로 끌어올려 흑제의 움직임까지 완벽히 붙잡아둔 상태.
후아앙!
무시무시한 힘을 담은 패왕부가 그대로 흑제의 머리통을 쪼개려는 순간이었다.
패왕부의 날을 향해 흑제가 다시 한 번 손바닥을 들어올렸다.
“미친!”
어이가 없어 코웃음을 친 염호, 하지만 그런 염호가 갑자기 눈알이 빠질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쑤욱!
흑제의 손바닥이 마치 주둥이처럼 열린 것이다.
그리고 그 손바닥 안에서 온통 시뻘건 검 한 자루가 솟아난 것.
‘혈마검!’
불쑥 솟아올라 흑제의 손아귀에 잡힌 핏빛 검과 패왕부가 부딪혔다.
쿠콰-앙!
염호의 신형이 날아가던 속도보다 더 빠르게 뒤로 튕겨졌다.
흑제 역시 무사하지 못했다.
콰쾅!
허벅지까지 땅바닥에 박힌 채로 뒤로 밀려나더니 굳게 닫힌 산문을 완전히 박살내고서야 멈춘 것이다.
튕긴 염호가 허공에서 몇 번이나 몸을 뒤집으며 계단 아래쪽으로 뚝 떨어져 내렸다.
“큭! 확실히 세네.”
툭툭 몸을 털고 일어선 염호.
때마침 득달같이 화산파의 장로들이 달려들려고 했다.
“오지마!”
“!”
“방해된다고 이놈들아!”
염호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다시 계단을 한발 한발 걸어 올라갔다.
흑제 역시 무너진 돌무더기에서 일어서더니 염호를 향해 천천히 걸어오기 시작했다.
그런 흑제를 마주본 염호가 목과 어깨를 우드득 털며 입을 뗐다.
“애꿎은 건물 망가뜨리지 말고 딴 데로 갈까?”
저벅! 저벅!
흑제는 전혀 그럴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염호가 어깨를 다시 한 번 으쓱했다.
“뭐, 할 수 없네. 우리도 이제 돈은 좀 있으니까.”
“…….”
“까짓, 이 참에 싹 새로 짓지 뭐.”
콰쾅!
염호가 바닥을 박차고 솟아올랐다.
동시에 왼손을 떠나 시꺼먼 뇌전으로 변한 흑뢰정.
쩡!
시뻘건 검이 흑뢰정을 쳐내는 순간 염호의 패왕부가 그대로 내리꽂혔다.
쾅!
누구도 밀려나지 않고 검과 도끼가 부딪힌 곳에서 다시 한 번 엄청난 굉음이 토해졌다.
그 순간 패왕부와 흑뢰정은 다시 한 번 미친 듯이 흑제를 찍어갔다.
쩡! 쩌정!
콰콰콰쾅! 콰콰쾅!
벼락 치는 소리와 화탄이 터지는 소리가 쉬지 않고 화산 전체를 뒤흔들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전혀 예기치 못한 일이 벌어진 것은.
하늘을 가르며 시커멓고 네모난 그림자 하나가 날아오기 시작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