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545
15화
이생의 안내로 칼처럼 뾰족한 바위산을 지나자 끝이 보이지 않는 숲길이 나왔다.
“숲……이냐?”
진무는 황당한 눈길로 숲의 입구를 응시했다.
나무가 빼곡하게 자라고 있으니 분명 숲이다. 그런데…….
잎이며 가지가 전부 시퍼렇게 날이 선 칼날일 뿐 아니라, 땅에 돋은 풀이며 굴러다니는 돌멩이마저 바늘처럼 뾰족해서 발이 뚫리거나 베일 것 같았다.
와중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굳은 핏자국에, 간간이 살점까지도 덜렁덜렁 매달려 있는 게…….
“이곳은 검수림(劍樹林)입니다. 도산옥의 외부를 넓게 감싸고 있는 숲이지요.”
“검수림이라.”
칼 나무 숲. 딱 이름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도산옥에 갇힌 혼령들은 매일 탈출을 시도합니다. 하나 대부분이 이 검수림을 넘지 못하고 포기하곤 하지요. 호기롭게 시작한 놈도 끝부분에서는 걸레처럼 너덜너덜해지기 마련이니까요.”
“그래 보이네. 근데 넌 참 잘도 빠져나왔구나?”
“그야, 저는 통로를 아니까요. 관리자급이 아닙니까?”
“풉!”
이생이 자랑스럽게 가슴을 내밀며 으쓱이는 모습에 진무의 입에서 픽 웃음이 터졌다.
하여간 이승이나 저승이나 높은 자리가 좋긴 한 모양이네.
“자, 이쪽으로 가시지요. 아무리 상선, 아니 요와 필적할 힘을 가지셨다고 해도 검수림을 통과하는 것은 무리이니까요.”
“…….”
이생이 다른 방향으로 손을 뻗었지만, 진무는 꼼짝도 하지 않은 채 검수림을 바라봤다.
“이생.”
“예?”
“하나 묻자.”
“뭘요?”
“어느 쪽이 빠르냐?”
“어느 쪽이……라니요?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이쪽으로 곧장 뚫고 가는 거랑 비밀 통로 중에서 말이다.”
“그야 당연히 곧장 뚫고 가는 게 빠르지만, 그랬다간 도착도 하기 전에 몸이 갈기갈기 찢길 걸요?”
“…….”
“어서 가시지요. 이쪽으로 조금만 가면 검수림을 나선으로 통과해서 도산으로 갈 수 있습니다.”
“흐흠, 나선이라…….”
진무가 한쪽 눈을 살짝 찌푸리며 턱을 어루만졌다.
조금 전 이생의 말을 들어 보면 검수림이라는 곳은 도산옥 주위를 둘러싸고 있다. 원이란 뜻이다.
“……그럼 당연히 직진이지.”
“예? 그게 무슨?”
“무슨 소리긴. 돌아갈 필요 없이 가장 빠른 지름길로 가자는 말이지.”
“…….”
그 말에 이생이 진무와 숲을 번갈아 쳐다봤다.
“저기, 혹시 검수림을 뚫고 가자는 말씀이신가요?”
“어.”
“…….”
진무가 고개를 끄덕이자 자기가 방금 들은 것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멍하니 쳐다보며 눈을 끔벅거리던 이생이 재차 물었다.
“저, 요님?”
“진무라고 불러라.”
“예. 저, 진무 님?”
“왜?”
“뭘 잘 모르셔서 하는 말씀 같은데, 검수림은 그리 만만한 곳이 아닙니다. 저곳을 뚫고 가다가는 반도 못 가 온몸이 갈기갈기 찢어질 거라고요.”
“음, 그래 보인다.”
“그런데도 가자구요?”
“어.”
“……왜요?”
“그야…….”
고개를 삐딱하게 꺾은 이생을 향해 진무가 환하게 웃으며 답했다.
“빠르니까.”
“…….”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아무리 천계에서 왔다고 해도 그렇지, 어찌 이리 지계 물정을 모른단 말인가? 함께 다니자면 가르쳐야 할 것이 한둘이 아닌 듯했다.
이생이 한숨을 내쉬며 재차 검수림의 위험성에 대해 주지시켜 주려는 순간.
자박.
“……!?”
진무가 검수림을 향해 걸음을 내디뎠다.
“자, 잠깐만요! 그렇게 무턱대고 가면 안 된다니까요! 검수림은 죄를 지은 망자들이 도망칠 수 없도록 하는 역할도 하지만, 외부의 침입을 막는 거대한 방벽 같은 거라구요! 무턱대고 접근하면 스스로 반응한단 말입니다!”
이생의 다급한 말대로, 검수림은 진무의 접근을 느끼고 움직이고 있었다.
차르륵, 차르르륵.
갑자기 바람이라도 분 것인지 풀이며 나뭇가지가 세차게 흔들리며 촘촘하게 뭉치기 시작했다. 마치 올 테면 와 봐라. 닥치는 대로 썰어 주마, 라고 위협하는 것 같았다.
싸가지 없이…… 숲 따위가 말이지.
“그래, 스스로 움직이는 숲이란 말이지? 말하자면 외부의 침입을 막아 내는 방패 같은 거고?”
“그렇다니까요? 정말 위험한 곳입니다. 그러니까 어서 이쪽으로…….”
이생이 다시 한번 필사적으로 설득했지만, 진무는 요지부동이었다. 검수림을 바라보던 그가 입술을 살짝 벌려 웃자, 내내 잠자코 있던 청상이 그 모습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망할 송곳니.
저리 송곳니까지 드러내 놓고 웃었으니 이생이 뭔 소리를 해도 검수림을 뚫고 지나갈 것이다. 이젠 말려도 듣지 않을 게 분명하다.
하긴, 원래 그런 사람이지. 사숙은 원래 고집불통이었다.
이럴 땐 그저…….
[자충.]진무가 내린 결정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청상이 언령을 읊자 손에서 붉은빛이 터지며 검 한 자루가 잡혔다.
“이, 이봐요! 당신까지 왜 그래? 설마 진짜 지나가겠다고? 저 미친 짓에 동참하겠단 말이야?”
이생이 기겁해 외쳤지만 청상도 진무도 들을 생각이 없는지 검수림만 보고 있었다.
“청상아.”
“예?”
“괜찮겠니? 쟤 말로는 위험하다는데?”
“먼저 갈까요?”
“큭!”
청상의 답에 진무가 피식 웃고는 여의를 꺼내 들었다.
“아니! 위험천만한 곳이라잖아? 당연히 내가 먼저 가야지. 넌 그냥 이 사숙께서 만든 길로 편안하게 걸어오거라.”
“알겠습니다.”
“자, 그럼 가 볼까!”
청상과 대화를 끝낸 진무가 기운차게 검수림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자, 잠까…….”
말리려 했으나 이미 청상도 그 뒤를 쫓고 있었다. 이생은 가슴을 쾅쾅 치며 시선으로 급히 둘을 좇았다.
뭐 저런 놈들이 다 있어? 귓구멍에 뭘 박은 것도 아니고, 왜 말을 해도 듣지를 않냐고!
촤아아아악!
때마침 검수림이 화를 내듯 다가오는 진무를 향해 가지를 날카롭게 세웠다. 그 모양이 수도 없이 많은 꼬챙이가 세워진 거대한 방벽처럼 보였다.
“니까짓 게! 그래 봐야! 방벽이지! 하아압!”
진무가 길게 늘어뜨렸던 여의의 끝자락을 잡고 힘차게 잡아당겼다.
후우우우웅!
마치 거목을 뽑아 올리는 듯 당겨 휘두르는 힘에 여의가 뒤늦게 쫓아오며 급격하게 휘었다.
“하아, 저런 미친 상선 놈……. 당해 봐야 알지. 대사충조차 죽이지 못한 법구로 검수림을 상대해? 말도 안 되는 소리.”
이생은 체념한 표정으로 한숨을 푹 쉬며 중얼거렸다.
검수림은 그저 살아 움직이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그 외피가 무엇보다 단단하고 날카로워 보통의 법구로는 흠집조차 낼 수 없다. 사람이든 쇠붙이든, 혹은 그보다 더 튼튼한 무엇이든 모조리 꿰뚫고 잘라 버린다. 그렇기에 무서운 것이다.
“어쩔 수 없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따라왔는데……. 신선 놈들에게 기대한 내가 잘못이지. 저리 죽고 싶어 난리니 명복이나 빌어…… 빌…… 어? 어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이생은 다음 순간 눈을 찢어져라 부릅뜰 수밖에 없었다.
진무의 손에 들린 여의가 검수림을 때리는 순간.
콰드드드득!
“……!”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검수림이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러 대며 구겨지다니?
“크핫핫핫! 모조리 때려 부숴 주마!”
후우웅! 콰지직! 콰지지직!
“…….”
아무리 봐도 확실했다. 진무가 미친 듯이 웃으며 마구잡이로 검수림을 두들겨 패 길을 만들고 있었다.
분명 보통의 법구로는 저리 구겨 놓을 수가 없는데……?
이생은 눈을 끔벅이며 진무가 휘두르는 검은 봉을 쳐다봤다.
대체 저게 뭐길래 저런 위력을 가지고 있단 말인가? 검수림을 저리 구겨 놓는다면 설마…… 육계의 주인들이 쓰는 법구와 같은 위력의 물건이라고?
놀라 입만 벙긋거리고 있던 이생이 문득 진무가 만들어 놓은 길을 따라 걷는 청상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너무 여유롭……다가 아니라, 저리 여유를 부리면 안 된다. 검수림의 무서운 또 한 가지 이유는 바로.
차르르륵!
바로 저 무지막지한 재생력.
진무에게 부서졌던 검수림이 순식간에 제 모습으로 돌아가기 시작한다. 다시 봐도 모골이 송연했다.
진무라는 놈의 뒤를 따라가는 저 청상이라는 신선은 반드시 죽을 것이다.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말 신기한 곳이네. 뻗어라, 자충.”
“…….”
나지막한 목소리였지만 이생은 똑똑히 들었고, 똑똑히 보았다.
청상이 나지막이 외치며 손을 뻗는 순간…….
스거거걱!
재생되던 검수림이 모습을 다시 갖추기도 전에 박살, 아니 잘려 버렸다. 청상의 손에서 엄청난 길이로 늘어나 버린 검에 의해.
휘익, 서걱! 서걱!
그리곤 채찍처럼 변해 휘둘러지며 주위에 있던 검수들을 모조리 잘라 내고 있었다.
“대, 대체 뭐 하는 새끼들이지?”
놀라서 턱이 빠질 뻔했다. 아니, 얼얼한 것을 보면 이미 빠진 건지도 몰랐다.
대체 이게 어찌 된 일이란 말인가? 한 놈은 몽둥이로 저 무시무시한 검수림을 두들겨 패고 있고, 또 한 놈은 두들겨 맞은 검수림의 칼 나무들을 나무라도 하듯이 잘라 버리고 있다.
말이 안 된다. 자신이 아는 검수림이 어찌 저리 약한…… 설마!?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귀모의 부름에 도산옥주가 자리를 비운 시점이니 혹시 힘이 약해졌을지도 모른다. 사실 그 누구도 시도해 본 적이 없었지 않았던가?
하면? 자신도 어쩌면?
구겨지고 잘려 나가는 검수림을 쳐다보며 고민하던 이생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래, 약해지지 않았다면 저리 무력하게 당할 검수림이 아니다. 어쩌면 자신도 가능할지 모른다. 이때가 아니면 저 대단한 검수림을 어찌 잘라 보겠는가?
가자.
혹시 또 아는가? 검수림을 뚫고 도산옥에 도착하는 위업을 세우게 될지.
촤르르륵!
이생이 다가오자 부서지고 잘렸던 검수림이 날을 세워 위협해 왔다.
“흥! 약해 빠진 네놈 따위에게 나 이생이 당할 성싶더냐!”
우우웅!
언제고 꼭 한번 패 보고 싶었다. 이생은 용맹하게 자신의 법구인 쇠도리깨를 꺼내 들었다.
검수림! 내 너를 뚫고 저들의 뒤를 따를 것이다!
“이야압!”
이생이 힘찬 기합성과 함께 검수림을 향해 쇠도리깨를 휘둘렀다.
까아앙!
“……?”
응? 깡? 콰득이 아니고?
진무가 만든 소리와는 전혀 다른 소리에 이생이 문득 자신의 손에 들린 쇠도리깨를 쳐다봤다.
“…….”
손잡이만 남았네?
그렇다는 것은…… 검수림이 약해진 건 아니고, 그냥 저 진무라는 놈과 청상이라는 놈이 강하다는 소리다.
그렇다면 이제 자신에게 닥쳐올 결과는?
푹! 푸푸푸푹!
역시나…….
“끄아아아악!”
이생의 처절한 비명이 검수림을 쩌렁쩌렁 울렸다.
촤르르륵! 푹! 서걱!
검수림…… 빌어먹을 자식.
두 괴수에게 처맞은 것을 화풀이라도 하는 것처럼 평소보다 더욱 지독하다.
쉭쉭! 쉭쉭!
근처에 있는 검수뿐이 아니었다. 멀리 떨어진 놈들까지 이생을 괴롭히겠다고 사력을 다했다.
이런 쌍! 안 닿으면 하지 마, 이 새끼들아! 뭘 가지를 뻗어 대고 지랄이냐!
“끄아아아!”
어느새 검수림에 휘말려 온몸이 갈가리 찢기는 고통에 비명을 질러 대는 이생의 귀에 진무와 청상의 대화가 들려왔다.
“구할까요?”
“뭐 하러?”
“…….”
“어차피 안 죽는다잖아? 안에서 만나지 뭐.”
“흠, 하긴 그렇군요.”
극락도 지옥도 순식간이었다. 이생은 속으로 절규했다.
인정머리 없는 상선 놈! 구하려 하는 걸 굳이 막을 건 뭐란 말이냐! 이 악랄한 놈아!
하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날아온 가지에 머리가 날아가 버렸으니까.
툭, 데구르르…….
하지만 고통은 여전했다. 빌어먹을 불멸, 빌어먹을 지계.
하나, 이미 진무와 청상은 멀어져 있었고……. 둘 말마따나 안에서 만나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한참 동안 이 고통에 시달려야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