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600
70화
-이, 이…… 이런 빌어먹을 놈이 뭐가 어째? 괭이? 개애?
“…….”
화가 잔뜩 치민 금혼의 포효가 산을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나무가 활대처럼 휘었고, 땅이 뒤흔들렸다.
“아니면 아니지, 뭘 그렇게 소리를 질러? 시끄럽게.”
만물이 숨죽이는 포악한 기파가 사방으로 휘몰아쳤지만, 진무는 심드렁하게 귀를 후볐다.
그나저나 어디 보자, 지금 내가 도착한 데가…….
“흠, 이곳이었나? 마고의 후손들이 처음으로 세상에 나와 정착한 곳이?”
진무는 중얼거리며 주위를 둘러봤다.
거목의 인도로 도착한 곳은 중원에서 북동쪽으로 한참 떨어져 있는 곳. 조화에서 태어난 마고의 아들들이 거목의 가지를 심고 처음으로 정착해 살았던 곳이리라.
세상의 중심이 중원인 줄 알았는데…… 이곳에서 발원했던 것인가?
금혼 따위는 신경도 쓰이지 않는다는 듯, 진무는 거목의 향기가 이어진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남쪽…….
처음 심은 가지는 거목으로 자랐을 것이다.
하나 떨어진 것이라 수명은 있었을 터, 직계로 이어진 후손들이 그 씨앗을 옮겨 남쪽에 나라를 세워 번성하였을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그쪽에서는 지계의 마력이 느껴지지 않았다.
거목의 씨앗이 터를 잡고, 그 위에 신수였던 범의 기운이 스며 마(魔)가 함부로 침하지 못한 것이다.
하나 아마도 그들은 자신의 기원을 알지 못할 것이다. 세월이 많이 흘렀으니까.
다만 번성할 것이다.
온갖 시련이 닥칠 것이나, 조화의 힘이 혈통을 따라 대대로 이어졌으니 슬기롭게 헤쳐 나가리라.
스윽.
한참을 미소 짓던 진무가 쓰러진 구조를 쳐다봤다.
신력이 느껴지는 것을 보면 분명 이곳을 지키는 신령이리라. 거목의 가지가 처음으로 심겼던 땅을 지키는 신령.
왠지 남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진무는 쓰러져 있는 구조를 향해 다가갔다.
“자네, 많이 다친 것 같은데 괜찮나?”
“……예?”
“저런, 개새끼가 아주 험하게도 할퀴어 놓았구만. 내 궁금한 게 있어서 그런데 몇 가지 물어도 되겠는가?”
“…….”
구조는 싱긋 웃으며 묻는 진무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찌 금혼을 앞에 두고 저리 태연할 수가 있단 말인가? 도대체 그의 정체가 무엇이기에…….
진무가 구조에게 다가가며 금혼을 지나치던 그 순간, 금혼이 가공할 혈광을 토하며 두 발을 높이 들어 올렸다.
-이런 개뼈다귀 같은 자식이! 보자 보자 하니까 이 나를 개무시해?!
“……!”
구조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위험하다.
신령을 삼키고, 사람을 먹어 이올이 된 마귀이다. 나타난 이의 정체가 무엇이건 간에, 아무런 대비 없이 그 마력을 상대할 수는 없다.
게다가 피하기에는 너무 가까운 거리가 아닌가?
당장에…….
따악!
“…….”
이게 무슨?
예상치 못한 상황에 구조의 입이 멍하니 벌어졌다.
어깨에 올리고 있던 몽둥이였다. 짧게 내리쳤고, 금혼의 머리에 닿았다.
-크아악!
그러곤 힘차게 휘둘러지던 금혼의 양발이 제 머리를 움켜쥐었다. 곧이어 바닥에 엎드려 고통스럽게 뒹굴기 시작했다.
마치…… 매 맞은 개처럼? 응?
“새끼가, 말하고 있는데 어디서 이빨을 드러내면서 짖고 지랄이야? 이따가 놀아 주려 했더니 안 되겠네.”
“…….”
진무가 불퉁한 표정을 지으며 구조를 돌아봤다.
“치료가 필요해 보이긴 하는데…… 잠깐 견딜 순 있지?”
“예? 예, 뭐…….”
“그럼 기다려. 개새끼 버릇 좀 고치고 돌봐 줄게.”
“…….”
개새끼 버릇을 고치고? 설마 지금 금혼을…….
하지만 구조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빡!
“…….”
빠박! 빡! 빡!
서서히 열리던 구조의 입이 끝내 턱이 내려앉을 듯 벌어졌다.
맞고 있다.
몽둥이가 그리 빨라 보이지도 않는데, 단 한 번도 피하지 못하고 처맞으면서 땅바닥을 뒹군다.
정말 희한한 광경이 아닌가? 금혼이, 산군이었던 그가 어찌 저렇게 쉽게 당할 수가 있단 말인가?
-그, 그만! 그만! 제발 그만!
급기야 금혼이 미친 듯이 소리를 질렀다.
“지랄하고 있네. 개새끼가 어디 사람 말을 하고 지랄이야?”
빠각! 빡!
매질에 아량 따윈 없었다.
사람처럼 말한다고 맞고, 몸을 웅크렸다고 맞고, 이빨을 드러냈다고 맞고, 혀 내밀었다고…….
그런데 도대체 저 몽둥이는 뭐란 말인가? 대체 뭐기에, 두들겨 맞을 때마다 금혼의 마력이 흩어지는 것인가?
비단 마력뿐만이 아니다. 사람을 잡아먹으면서 쌓인 호독이 옅어지고 있다. 눈에 흉흉했던 혈광이 사라졌고, 마귀가 되면서 변한 털 색마저 원래대로 돌아오고 있었다.
“물 빠지는 것 보니까 조금만 더 맞으면 되겠다.”
-……!
순조롭게(?) 변색 중인 모습에 잠시 매질을 멈추고 금혼을 관찰하던 진무가 싱긋 웃으며 몽둥이를 들어 올렸다. 그 해맑음에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끄으으, 컹! 컹컹!
“…….”
-왈왈? 멍! 멍멍멍?
그러다가 금혼이…… 갑자기 사력을 다해 개처럼 짖기 시작했다.
겁을 잔뜩 집어먹은 듯 애절하게 떨리는 눈빛을 봤을 때, 살려 달라는 뜻인 듯했다.
그런데…… 범이 개 소리를 낼 수도 있는 거였냐?
하긴, 맞아 뒈지기 일보 직전인데 뭔 소린들 못 내겠는가.
다행히 그 진심만은 전해진 것인지 진무가 몽둥이를 멈추고 금혼을 빤히 쳐다보았다.
“개 맞구만.”
“…….”
“그만 맞고 싶어?”
-멍! 멍멍멍!
금혼이 이젠 고양잇과로서의 정체성마저 잃어버린 듯 열심히 짖어 대며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흐흠…….”
몽둥이를 내리고 고민하던 진무가 금혼의 앞에 쪼그려 앉았다.
그리고.
“손.”
“…….”
발이겠지. 네발짐승한테 손이 어디 있나.
하지만.
덥석!
매가 너무 가까이 있었던 탓일까?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자존심 따윈 개나 줘 버린…… 아니, 아예 개가 되어 버린 듯, 금혼은 진무의 손에 앞발을 올리곤 열심히 꼬리를 흔들어 댔다.
“옳지, 착하다.”
흡족한 표정으로 머리를 쓰다듬자 갸르릉거리기까지 한다.
“꼼짝 말고 있어. 좀 이따가 또 놀아 줄게.”
-멍멍!
대답까지 확실하게 들은 진무가 어깨에 몽둥이를 걸치고 구조에게 다가왔다.
스륵.
진무가 뒷모습을 보일 때까지 와신상담이라도 했었던 것일까? 금세 금혼의 눈빛이 표독스레 변하고 발톱이 삐죽하게 돋아났…….
“아! 혹시나 해서 말인데, 나 뒤에도 눈 달렸다.”
“…….”
“눈깔 예쁘게 뜨고 발톱 넣어라, 싹 뽑아 버리기 전에.”
돌아보지도 않고 말했지만, 금혼은 정말 착실하게 알아들었다. 정말로 한 마리 말 잘 듣는 개가 된 것이다.
“괜찮아?”
“……예?”
“괜찮냐고.”
“…….”
금혼에게 정신이 팔려 있던 구조는 진무가 해를 등진 채 손을 내밀자 그제야 진무를 올려다봤다.
씩 웃는 그 미소.
대체 이자의 정체가 뭐란 말인가?
신도, 마도 아니다. 사람은 더욱 아니었다.
“뭐 해? 잡아.”
“……예.”
구조는 홀린 듯 손을 뻗어 진무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힘겹게 일어…… 어?
“……?”
진무의 손을 잡고 벌떡 일어난 구조는 갑자기 생긴 해괴한 변화에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치유의 조짐조차 없었는데 상처가 사라졌다.
그냥 손만 잡았을 뿐인데?
“자네, 이곳의 신령이지?”
“…….”
구조는 멍하니 진무를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당신은 도대체 누구입니까?”
답은커녕 되레 질문을 해 버렸지만, 그 사실을 미처 자각할 새도 없었다.
“나? 진무.”
“진……무…… 진무?!”
빙긋 웃으며 답하는 진무를 바라보던 구조가 그 이름을 되뇌다 화들짝 놀라 되물었다.
“지, 진무라고요?”
“어, 왜?”
“…….”
망치로 머리를 맞은 것만 같았다. 어찌 그 이름을 모를 수가 있단 말인가?
한때 천계의 두장군이었던 인물이다. 옥황의 명으로 지계로 갔고 육계 중 세 곳을 쑥대밭으로 만들었으며, 귀모와 담판을 지어 청염을 가져오려던 인물.
하지만 귀모의 암계에 당해 사라졌다고 알려졌는데?
“두장군!”
“어? 날 아나?”
“알다 뿐입니까!”
“호오? 의왼데? 인계에 파견 나온 신령치곤 들은풍월이 제법인 모양이야.”
“그렇습니다.”
“한데 의아하네. 나로 인해 계의 경계가 무너져 이 지경이 된 것을 모르지 않을 텐데……. 구함을 받은 것 때문이라고 하기에는 눈빛이 과하게 호의적인걸?”
“물론 그러한 시각도 있습니다. 하지만…….”
“……?”
진무의 물음에 구조가 자신이 알고 있는 바를 찬찬히 설명했다.
지계와 인계의 경계가 붕괴된 이후에 벌어진 일들.
대략적인 것은 알고 있었으나 세세하게는 몰랐기에, 진무는 귀를 열고 경청했다.
“청상이? 벽장군이 되었어?”
“예. 듣기론 현 두장군이신 백양 님보다 훨씬 더 강해졌다고 하였습니다.”
“허!”
진무는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터트리고 말았다.
설마하니 청상이 그런 선택을 할 줄은 몰랐다.
“혹, 나머지는 어찌 되었는지 아는가?”
“나머지라 하시면?”
“계가 붕괴되었을 때 청상과 함께 귀천한 자들.”
“아! 황신, 백표, 이생 등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옳네.”
“그들도 벽장군의 아래에 있습니다.”
“북방군이 되었다고?”
“예. 제가 알기론 당시 청상선인과 함께 북방군에 자원하였습니다. 새로 선계에 드신 분들까지요.”
“그렇군.”
진무가 눈에 띄게 안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가슴 한편에 걱정이 가득한 차였다.
자신은 다행히 여의의 도움으로 태초의 땅에 옮겨졌지만 다른 이들은 어찌 되었는지, 무사히 천계에 도착했는지 알 수 없었으니.
하지만 이제 되었다. 그들 모두 무사히 천계에 도착했고, 청상이 북방군에 자원해 벽장군까지 올랐다 하니 한시름 놓았다.
“……잠깐, 그런데 아까 자네 뭐라고 했나?”
“예?”
“새로 선계에 든 사람?”
“아!”
“……?”
“기억나지 않으십니까?”
“뭐가?”
“저는 그들을 구한 것이 진무 님이라고 들었는데요?”
“내가…… 구해?”
“예. 사타의 업경에 남은 과적을 찢어서.”
“……!”
영문을 모르겠단 표정으로 구조를 바라보던 진무의 눈이 순간 번쩍 뜨였다.
서, 설마?
“청우가! 스승님께서!? 천계에 드셨단 말인가!?”
“그, 청우선인은 알고 있습니다만…… 스승 선인은…… 글쎄요. 그런 이름은 저도 잘.”
“명진! 명진일세.”
“아! 맞습니다. 그분도 북방군이 되셨지요.”
“……!”
순간 가슴이 벅차고 눈물이 왈칵 치밀었다.
해일처럼 밀려드는 감정이 도무지 추슬러지지 않았다.
명진이…… 스승께서…….
“그 외에도……”
“…….”
소동보, 각출…… 천우명을 비롯한 사패오왕들과 적생까지.
당시 아득바득 업경을 찢어 낸 대략 서른 명의 인물들이 진무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다행이다. 정말로 다행이다.
혹시나 잘못된 건 아닐까 생각했었다. 귀모가 암계를 꾸몄으니 자신이 업경을 찢은 일도 아무것도 아닌 게 되었을까 봐.
“다행일세. 정말로 다행일세…….”
“……진무 님.”
가슴이 먹먹했다. 다만, 슬픔이 아닌 기쁨에서 비롯된 먹먹함이다.
되었다. 살았으니 된 것이다.
“모두 천계의 북방군에 있다 하니 안전을 염려할 필요는 없겠구만.”
환하게 웃으며, 진무는 결의를 다졌다.
이제 인계에서 지계 놈들만 쫓아내면 될 것이다. 천지인의 경계를 다시 세워 다시는 서로를 침범하지 못하도록 하면 될 것이다.
“……저기, 진무 님?”
“아, 왜 그러나?”
“그, 뭔가 잘못 아신 듯합니다.”
“응?”
“청상선인은 천계에 있지 않은데요?”
“응? 아까 천계 북방군에 속해 있다고 하지 않았나?”
“예. 한데 지금은 무당산에 있습니다만…….”
“…….”
진무의 얼굴이 돌처럼 굳어 버렸다.
어디? 뭔 산?
“휘하에 있던 이들 전부, 무당산 신령지에 내려와 지계와 싸우고 있습니다.”
“…….”
“실은 진무 님의 이야기도 그분께 들었습니다.”
멀뚱히 눈을 끔벅이던 진무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이런 미친놈이!
북방칠수의 벽장군씩이나 돼서 뭐 하러 무당산에 내려오고 지랄이야!
것두!
불면 날아갈 듯한 병약한 스승까지 달고 와?!
“아오, 쌍!”
외마디 욕설을 내뱉은 진무가 곧바로 금혼의 목덜미를 움켜쥐고 등짝에 올라탔다.
“목적지는 무당, 전속력으로!”
-멍멍!
머리채를 잡힌 금혼이 힘차게 짖으며 섬전처럼 쏘아져 달렸다.
“…….”
구조는 순식간에 사라지는 둘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왠지…… 무당산에 사달이 나도 크게 날 듯한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