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lcome to NBA RAW novel - Chapter 22
웰컴 투 NBA 22화
#022. Civil War
2017년 1월 14일.
매튜 나이트 아레나, 오리건.
경기 시작 10분 전.
덕스의 라커룸은 전례 없는 수준의 열기로 가득 차 있었다.
“다들 준비는 됐나?”
“아후! 아후!”
전쟁에 나서는 스파르타 군인처럼 가슴팍을 주먹으로 거세게 두드리는 선수들.
얼굴이 터질 것처럼 붉게 달아오른 알트만 감독님이 선수들에게 소리쳤다.
“우리가 원하는 건?”
“승리! 오직 승리!”
쿵! 쿵!
“상대는?”
“죽인다! (Kill!).”
“자비는?”
“자비 따윈 없다! (No Mercy!).”
“좋아! 가서 빌어먹을 비버 놈들에게 생애 최악의 악몽을 선사하고 와라!”
“와아아아아!”
장군의 돌격 명령에 우르르 몰려 나가는 병사들.
나는 순간적인 상황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라커룸에 홀로 남겨질 수밖에 없었다.
“크흠, 뭐 하나? 킴. 얼른 나가 보지 않고.”
“······방금 그건 뭐였어요, 감독님?”
“그냥 오리건 농구부의 오랜 전통일세. 얼른 준비하게. 자넨 오늘 선발 아닌가.”
내심 부끄러우셨는지, 내 시선을 피하며 자리를 뜬다.
‘이 광기는 대체······.’
그래.
오늘은 오리건 대학과 오리건 주립대의 농구 경기가 열리는 날.
일명 오리건 내전(Civil war)이 열리는 날이다.
오리건 내전,
오리건 대학(University of Oregon)과 오리건 주립대(Oregon State University) 사이에서 무려 123년째 이어져 내려오는, 미국 역사상 가장 오래된 라이벌리 중 하나다.
‘123년이라니. 세상에.’
두 학교의 첫 더비전이 열린 게 1894년이니까, 같은 시기에 지구 반대편에선 무려 전봉준의 동학농민운동과 청일전쟁이 진행되고 있었다.
‘오리건 대학의 상징은 오리. 주립대의 상징은 비버.’
둘 다 강수량이 많은 오리건의 마스코트 같은 동물이다.
오리건이 남북한을 합친 것보다 크다 보니, 어느 학교가 오리건을 대표할지의 문제 또한 굉장히 첨예한 사안.
‘미디어의 관심은 주로 두 대학의 전력이 비등한 미식축구에 집중되어 있지만.’
농구라고 해서 현지 팬들의 열기가 덜한 건 아니었다.
오히려 더하면 더했지.
왜냐고?
◎ 전반 10:49
[Oregon University 27 : 8 Oregon State]꼴 보기 싫은 라이벌을 더블, 트리플 스코어로 짓밟을 기회가 왔는데, 그걸 어떻게 참겠어.
“가라!”
“완전히 발라 버려!”
총 전적은 183승 163패로 거의 비등비등한 수준.
하지만 최근 10년간의 전적은 26승 10패로 우리가 압도적 우위에 있었다.
‘이번 시즌의 성적도 오리건 대학이 16승 2패. 오리건 주립대가 4승 14패.’
이 정도면 거의 어른과 아이의 싸움이나 다름없다.
올해만큼 두 대학의 전력 차가 극심한 적이 있었을까.
당연히 매튜 나이트 아레나는 시끄러운 이웃을 짓밟는 모습을 관전하려는 꽥꽥이들로 오늘도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UCLA전 이후, 난 벤슨을 밀어내고 선발로 나오고 있었다.
강팀을 상대로 3가드 시스템의 한계가 슬슬 드러났기 때문.
‘식스맨 역할도 꽤 마음에 들었지만······.’
팀에서 더 많은 역할을 맡겨 준다는데, 사양할 이유가 있나.
짜악!
에니스 부주장과 하이파이브를 나누며 백코트 했다.
“뭐야. 하프코트 샷을 넣고 나니까 이제 3점 정도는 쉽다 이거야?”
“뭘 이 정도로······ 오늘 슛감 좋으니까 팍팍 밀어 줘요.”
“하하. 알았어.”
슛이 잘 들어가는 날은 모두가 즐겁다.
나는 평균 득점이 올라서 좋고, 부주장은 어시스트가 올라서 좋고.
상대 빅맨들은 수비 리바운드 잡느라 괜히 고생할 일이 없어서 좋고······ 아, 이건 아닌가?
[Oregon 84 : 57 USC]18 PTS / 8 REB / 3 AST / 1 STL / 2 BLK
6/10 FG, 3/6 3PT, 3/4FT
[Oregon 81 : 58 Washington]22 PTS / 7 REB / 5 AST / 3 STL / 1 BLK
8/13 FG, 4/6 3PT, 2/3 FT
[Oregon 85 : 66 Washington State]15 PTS / 7 REB / 3 AST / 4 STL / 2 BLK
5/9 FG, 1/4 3PT, 4/4 FT
[최근 3경기 킴의 성적입니다. 확실히 득점 볼륨이 크게 올랐군요.] [3경기 평균 득점이 18.3점으로 팀내 1위. 물론 표본이 적긴 하지만, 18.3점이면 PAC-12 전체를 봐도 TOP 5 안에 드는 수치입니다. 역할을 늘려 주지 않을 도리가 없겠죠.] [아무리 모션 오펜스에서 모든 선수가 득점 기회를 가져간다고는 해도, 공격을 주도하는 에이스는 있는 법이죠. 오리건에서는 딜런 브룩스와 타일러 도르시가 그런 선수였습니다. 하지만 최근 알트만 감독은 그 역할을 킴에게도 맡기기로 한 것 같아요.] [핵심은 볼륨이 상승했는데도 높은 효율이 유지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건 마치······ 처음부터 이럴 수 있었다고 말하는 것 같아요.]지금의 라인업은 내가 4번으로 출전하는 로테이션.
어쩌다 보니 내 매치업이 된 빅맨, 드류 유뱅크스와 대화를 나눴다.
“다들 너무 과몰입하는 거 아니에요? 나만 적응이 안 되나?”
“하하. 그게 라이벌리의 재미 아니겠어? 우리도 홈이었다면 분명 이랬을 거고.”
“그거 무섭네요.”
유뱅크스, 내가 이름을 알고 있다는 뜻은 이 친구도 NBA에서 뛰었다는 뜻일 거다.
경기 내용까진 기억나지 않지만······.
‘그래도 기본기가 탄탄한 빅맨이란 건 알겠네.’
그래도 순순히 밀려날 수야 없다.
팅!
“박스아웃 해!”
“리바운드!”
스테판 탐슨.
이름만 보면 3점 슛을 기똥차게 잘 쏠 것 같은 비버스의 슈팅가드가 쏜 3점이 빗나가고.
유뱅크스가 자세를 낮추고 박스아웃에 들어갔다.
신장과 체급은 유뱅크스가 명백히 나보다 우위에 있지만.
힘은 생각보다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흐읍!”
“······!?”
있는 힘껏 용을 쓰며 좋은 포지션을 사수.
내가 골밑에서 지닌 강점은 4번을 보기에 충분한 힘과 빅맨 기준에선 반칙 수준의 민첩성.
그리고 신장의 한계를 극복하게 해 주는 7피트 2인치의 윙스팬이었다.
‘셋 다 공격 리바운드를 잡기에 적합한 조건이지.’
아, 점프력도 스몰포워드 기준 평균 이상은 된다.
탁!
긴 팔을 활용해 일단 공을 쳐내고, 재차 몸을 던져 공을 확보했다.
그리고 어느새 상대방 코트로 넘어가 두 손을 내밀고 있는 타일러 도르시에게 아웃렛 패스를 건넨다.
[타일러 도르시! For Three!]철썩!
‘쉽네. 쉬워.’
농구는 일정 수준 이상으로 전력 차이가 나면 아예 게임이 터져 버리는 스포츠.
뭐. 이런 경기도 있는 법이지.
어떻게 매번 UCLA 같은 강적만 만나겠어?
‘원래 약팀을 잘 때려잡는 것도 강팀의 조건이라고.’
삐빅!
[샷클락 바이얼레이션 by 켄달 마누엘! 오리건 덕스’s 볼!]“아아······.”
“젠장!”
또다시 35초 바이얼레이션을 이끌어 내고.
다시 우리의 공격권.
에니스와 픽앤팝을 시도해 3점 라인 바로 앞에서 공을 넘겨받았다.
그리고 가볍게 한 발짝 들어가 롱 투.
철썩!
‘오늘은 슛감이 좋은데.’
나는 꽤 기복이 있는 편이다.
원래 슈터에게 기복이란 일종의 숙명 같은 것이긴 한데.
이 기복이라는 것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팀 하더웨이 주니어처럼 슛감이 경기 단위로 오가는 타입이 있는가 하면, 클레이 탐슨처럼 쿼터 단위로 슛감이 오가는 타입도 있다.
JR 스미스처럼 경기 내내 슛감이 롤러코스터를 타는 리듬 슈터 유형도 있고.
‘나는 쿼터 단위로 슛감이 오가는 타입.’
캐치 앤 슛은 안정적이지만, 풀업 점퍼는 기복이 심한 리듬 슈터 유형이었다.
일반적인 주사위형 슈터가 1, 6, 1, 6, 1, 6인 식이라면.
나는 3, 3, 3, 3, 1, 6인데, 가끔 1과 6이 뜨는 쿼터의 경기력 편차가 엄청 큰 편이랄까.
나중에는 손이 식었다 싶으면 패스와 돌파 위주로 게임을 풀어 나가는 법을 익혔지만.
젊어서는 무리한 난사질을 하다가 게임을 말아먹는 일도 많았다.
[킴, 이번에는 아예 윙에서 공을 넘겨받아 1대1을 시도합니다. 상대는 3점을 경계하는 모습이군요.]다시 말하지만. 난 기복이 꽤 심한 편이다.
손이 식었을 때는 죽어도 안 들어가지.
그런데도 커리어 통산 3점 성공률이 39.8%였다는 건?
‘핫 핸드일 때의 고점도 그만큼 높다는 거지.’
철썩!
[또 집어넣습니다! 이걸로 4개째!] [수비수를 달고도 망설임 없이 올라가는군요. 블락만 찍히지 않는다면 컨테스트가 있건 말건 상관없다는 식입니다.] [수비 위주의 견실한 선수라고만 생각했는데, 주도적인 롤을 맡기니 의외로 폭발력이 대단합니다. 생각해 보면 올해의 덕스는 킴이 투입된 직후에 스코어링 런을 달리는 일이 굉장히 많았어요.] [수비가 좋기 때문이죠. 공격력만 뛰어난 선수들은 상대와 맞불을 놓을 수는 있어도, 이쪽으로 모멘텀을 뺏어 오기는 어렵습니다. 반면 공수겸장인 선수들은 컨디션이 바짝 선 날이면 혼자서 게임을 지배한다는 느낌을 주죠.] [비슷한 유형의 선수로는 누가 있을까요?] [글쎄요. 볼 소유시간이 짧고 폭발력이 좋은 3&D라면 역시 고교 선배인 클레이 탐슨이 먼저 떠오릅니다만······ 킴은 캐치&드라이브의 빈도도 꽤 높은 편이죠. 퓨어 슈터 유형은 아니에요. 탐슨의 수비는 견실한 1대1 수비수라는 느낌이지, 킴처럼 수비의 중핵으로 기능할 수 있는 유형은 아니고요.] [그렇다면?] [개인적으로는 오토 포터 주니어가 폭발력을 갖추면 저렇게 되지 않을까 싶군요. 저 정도의 핸들링이 가능하면 보통은 공을 최대한 오랫동안 쥐는 걸 선호할 텐데, 간결한 마무리와 빠른 패스 연결을 선호한다는 것도 특이한 점입니다.]***
후반 10분.
시합의 승패는 이미 오래전에 결정되었고, 이제는 평소 출전 시간이 부족했던 후보 선수들을 내보낼 가비지 타임.
“마지막으로 2점 채우고 와.”
“옙.”
윙에서 공을 쥔 김시온이 1대1 상황에서 드라이브를 시도한다.
이미 수비 의욕이 떨어질 대로 떨어진 상황이지만, 그래도 기록의 희생양이 되기는 싫다는 듯 필사적으로 따라붙는 켄달 마누엘.
[킴! 어깨를 집어넣고 힘으로 밀고 들어갑니다! 마누엘! 따라가 보지만 저지할 방법이 없군요! 그대로 드라이빙 덩크!] [이걸로 30점을 채우고 퇴장하는 킴입니다. 개인 최고 기록이죠?] [이번 시즌 팀내 최다 득점 기록이기도 하죠. 이전 기록은 12월 3일 타일러 도르시가 기록한 29점이었습니다.] [와우. 그건 대단하군요.] [공격자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NBA와 달리, 비교적 저득점 게임이 많은 NCAA에서 30득점 경기는 쉽게 나오지 않습니다. 오늘 경기로 킴은 자신이 메인 득점원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한 거나 다름없어요.“휘이이이이익!”
“멋지다!”
“끝까지 뛰어서 40점 채우게 해!”
마지막의 2득점은 초상집에 불 지르는 느낌이긴 했지만.
어쨌건 기록은 기록.
매튜 나이트 아레나의 관중들은 개인 기록을 경신하고 퇴장하는 김시온을 물개 박수로 맞이해 주었다.
1대1 상황에서, 스크린의 도움 없이 정직하게 드라이브를 시도하는 장면.
선수 출신인 해설자, 피터 윌리엄스의 눈이 번뜩였다.
[저 선수, 드라이브의 성향이 조금 바뀌었군요.] [어떤 점 말씀이시죠?] [시즌 초에는 수비를 피해 횡적으로 움직이며 패스를 찔러 줄 기회를 찾는, 영리한 포인트가드 느낌의 드라이브였습니다. 안정적이지만 파괴적인 맛은 조금 부족했죠. 하지만 오늘은 림까지 최단거리를 돌파하는 파워풀한 드리블을 구사하고 있어요.] [가드 시절의 습관이 남아 있었다는 건가요?] [아무래도 그럴 수밖에요. 포워드로 컨버전을 한 지 이제 1년이 좀 넘은 선수니까요. 자신의 피지컬을 100% 활용하는 데 익숙해지면, 킴은 굉장히 위협적인 드라이버가 될 수 있을 겁니다. 그러기 위한 툴은 전부 갖추고 있어요.]피터 윌리엄스의 생각엔, 그동안 킴의 플레이는 포인트가드 중에서도 나이가 들어 운동능력이 쇠퇴한 선수들의 움직임에 가까웠다.
‘이런 표현이 어떤지 모르겠지만, 베테랑 선수가 회춘한다면 저런 느낌이 되지 않을까.’
윌리엄스 본인도 그랬지만, 노장들은 매년 무언가를 포기하는 데 익숙해져야 한다.
작년에는 잘만 되던 움직임이 올해는 갑자기 되지 않는다.
매년 눈에 띄게 하락하는 신체능력에 맞춰 슈팅의 영점을 다시 맞추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안타까운 일이지.’
손에 쥔 패 중 아직 써먹을 수 있는 무기와 유통기한이 다 된 무기를 구분하고.
극도로 절제된 플레이를 하는데 익숙해져야 한다.
그가 보기에 킴의 플레이 성향은 백전노장의 그것에 가까웠다.
어린 선수들은 욕심이 많다.
효율이 떨어지더라도 최대한 많은 롤을 소화하고자 한다.
그렇게 이것저것 시도하고 좌절하는 과정을 거쳐, 자신이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을 하나씩 몸으로 깨닫게 되는 것이다.
킴의 경우는 그 반대였다.
효율이 낮은 옵션은 거의 시도하질 않고, 주어진 역할 안에서 최대한의 효율을 추구한다.
‘보통 저런 유형은 잘하는 것만 하려고 한다는 평을 받기 마련이지.’
본래 NBA 스카우터들은 저런 성향의 선수들을 높게 평가하지 않는다.
수준이 낮은 무대에서도 롤 플레이어로 머무를 정도로 소극적이고 향상심이 부족한 선수가 NBA 레벨에서 살아남을 가능성은 거의 없으니까.
하지만 킴의 경우는 조금 달랐다.
마치 단단한 알 껍질 속에 몸을 웅크리고 있던 아기 새가 조금씩 껍질을 깨부수며 운신의 폭을 넓혀 가는 것처럼.
자신의 한계를 미리 단정 짓고 있던 선수가 ‘어라? 이것도 되네?’ ‘저것도 되네?’ 하며 하나씩 역할을 늘려 가는 느낌이랄까.
그렇다면.
모든 알 껍질을 깨고 날아올랐을 때, 킴은 과연 어떤 모습을 보여 주게 될까.
‘참 신기한 선수란 말이지.’
윌리엄스는 미지의 생명체를 관찰하는 심정으로 김시온의 활약을 지켜보았다.
◎ 경기결과
[Oregon Ducks 89 : 43 Oregon State Beavers] [Sion Kim: 26min 33sec] [30PTS / 4REB / 3AST / 5STL / 2BLK] [10/16 FG, 6/8 3PT, 4/5 F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