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te Dragon Teacher RAW novel - Chapter 1
작품 소개
하나뿐인 소중한 제자를 마도의 손에 잃고 좌절한 삼류 점쟁이 만복자.
우연히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작은 부작용이 있는 힘을 손에 넣는다.
처음엔 그저 원수를 성가시게 할 수만 있어도 좋겠다고 마음먹었을 뿐인데.
“……이게 뭔가? 짱돌?”
왜인지 제법 세진 것 같다.
“점쟁이요. 내가 이제껏 봐 온 중에 가장 용한 점쟁이.”
어째 엉터리였던 점괘도 잘 맞는 것 같다.
이 정도면 진짜 복수를 해 볼 만도……?
“가시가 되어 손톱 끝에 박혀주마!”
이제 만복자의 소소한 복수행이 강호를 뒤흔든다!
『수라전설 독룡』 『일보신권』의 작가 시니어의 신작 무협
『백룡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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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가 용하다는 점술가를 불러 점을 치다가 문득 궁금증이 생겼다.
“그대는 사주가 같은 사람도 본 적이 있는가?”
“보았습니다.”
“사주가 같은 사람들의 운명은 어찌 되는가? 만일 짐과 같은 사주를 가진 자가 있다면 그 또한 왕이 되는가?”
점술가가 대답했다.
“꼭 그렇게 되지는 않습니다.”
“어째서 그러한가?”
“한날한시에 태어나 같은 사주를 갖게 되더라도 짐승인지 사람인지, 남자인지 여자인지, 심성은 어떠한지, 또 조상의 은덕을 얼마나 입었는지, 어떤 가정환경에서 태어나 자랐는지에 따라서도 운명이 달라집니다.”
황제가 곰곰이 생각하다 말했다.
“만일 사주가 똑같은 두 사람의 사주를 섞어 놓는다면 어찌 되는가. 구별할 수가 없게 되겠지?”
“보통의 점술사라면 그러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 용한 점술사라면 그 또한 능히 구분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천지 만물의 이치를 깨달은 점술사들은 사람의 운명을 꿰뚫어 볼 수가 있기 때문에, 겉으로는 같은 사주라도 이미 다르게 보인다고 합니다. 저희는 그러한 경지에 오른 이들을 신산(神算)이라 부릅니다.”
“신산이라. 당금에도 신산이라 불릴 만한 자가 있는가?”
“있사옵니다.”
황제가 호기심을 가졌다.
“누구인가?”
점술가는 차마 제 입으로 거론하는 것조차 송구하다는 듯 무릎을 꿇고 고했다.
“무림의 인사이온데, 백룡선생(白龍先生)이라 하옵니다.”
1화
第一章 스승과 제자
신산(神算) 천기누설(天機漏泄)!
만사무불통지(萬事無不通知)!
희끗희끗한 흰 머리의 중년 도사가 거창한 글귀가 쓰인 두 개의 깃발을 등에 짊어지고 객잔을 나섰다.
구부정한 검은 관을 쓰고 긴 도포를 입었으며 허리에는 누런 띠를 걸쳤다. 손에는 거북의 껍질로 만든 부채를 들고 휘휘 부채질을 했다.
도사는 다음 마을까지 꽤 먼 길을 가야 하는지라 아침 일찍부터 걸음을 재촉하던 중이었다.
여름이라 이른 아침인데도 날이 더웠다. 겨우 반 시진 정도를 걸었을 뿐이거늘 이마에는 연신 땀이 흘러내렸다.
“휴. 마을을 벗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참으로 무덥구나.”
잠시 걸음을 멈추고 땀을 훔치던 도사는 앞쪽에 거지 아이 한 명이 쪼그리고 앉아 있는 걸 보았다.
네댓 살쯤 되었을까 싶은 거지 아이는 바닥에 뭔가를 그리고 있었다.
호기심이 생긴 도사가 거지 아이의 앞으로 걸어갔다. 그러자 거지 아이가 고개를 들어 도사를 멀뚱히 올려다보았다.
행색이 초라한 거지 아이를 보고 도사는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하여 품에서 기름 먹인 한지 꾸러미를 열어 당과(糖菓) 하나를 꺼냈다.
“먹을 테냐?”
도사가 좋아해서 아껴 먹는 귀한 간식이었다.
거지 아이는 고맙다는 말도 없이 당과를 받아 냉큼 입에 넣었다.
“인석아. 어른이 먹을 걸 주면 감사합니다, 하고 인사를 해야…….”
그러자 거지 아이가 도사를 빤히 보며 말했다.
“먹을 걸 줬으니까 나도 아저씨한테 좋은 거 줄게.”
“좋은 거?”
“응.”
거지 아이가 사람 머리보다 더 큰 연잎을 도사에게 건넸다. 도사는 거지 아이가 소꿉장난이라도 하자는 줄 알고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허허, 나는 바빠서 너랑 같이 놀 틈이 없단다.”
“놀자는 거 아냐. 비 오면 쓰라고 주는 거야.”
도사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구름 한 점 없이 해가 쨍쨍 내리쬐고 있었다.
도사가 하늘을 가리키며 물었다.
“어디 비가 온단 말이냐?”
거지 아이는 엉덩이를 털고 나무 그늘로 들어갔다.
“올 거야. 사흘 동안.”
도사는 조금 귀찮아졌다.
“너는 이 할아비가 뭐 하는 사람인 줄 아느냐?”
“몰라.”
“나는 일찍이 삼라만상의 이치를 깨달아 작게는 사람의 길흉화복(吉凶禍福)을 알고 크게는 나라의 명운(命運)을 알아 강호를 두루 살피며 다니는 사람이란다. 내가 천기를 헤아려 보니 당분간은 비가 올 것 같지 않…….”
툭.
갑자기 물방울이 도사의 콧잔등 위로 떨어졌다.
“……어?”
하늘이 어두워지고 삽시간에 몰려든 구름이 잔뜩 찌푸려졌다.
툭툭.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그야말로 느닷없는 빗방울이었다.
“이런!”
빗방울의 굵기가 점점 굵어졌다. 몰려든 먹구름의 모양새를 보니 아무리 봐도 쉬이 그칠 것 같지 않아 보인다.
“대체 이게 무슨……!”
도사는 황망하여 거지 아이를 쳐다보았다.
거지 아이는 당과를 빨아먹으며 연잎을 내밀었다.
“거봐. 비 오잖아.”
그제야 도사는 정신을 차리고 거지 아이가 땅바닥에 그리고 있던 것이 무엇인지 확인했다.
빗물에 젖어 흐려지고 있었지만, 그건 단순한 그림이 아니었다.
무려 천지만물의 생성 원리인 태극(太極)과 음양오행(陰陽五行)의 기호들이었다!
* * *
“그게 나야.”
아침 이슬이 맺힌 허름한 공자묘(孔子廟)의 안쪽.
염소수염을 한 만복자(萬卜子)가 거적때기를 깔고 앉은 채로 차게 식은 만두를 집어 먹었다.
만복자의 제자인 도진이 반문했다.
“네?”
만복자가 입을 우물거리며 대답했다.
“그 거지 아이가 나라고. 도사는 네 사조이자 내 사부인 운학 거사시고.”
나이 오십이 좀 넘어 보이는 만복자는 다소 마른 편에 깐깐하고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전형적인 점술가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앞에 앉은 도진은 만복자의 제자로 열아홉의 나이인데, 누가 봐도 학사 풍의 성실한 얼굴이었다.
도진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물었다.
“스승님이 다섯 살 때 음양오행의 원리를 깨치셨다고요?”
“응.”
도진은 감탄을 지르며 엄지를 마구 치켜들었다.
“역시 스승님이십니다!”
만복자가 만두를 씹으며 대답했다.
“다 옛날이야기야. 나이가 드니 예전 같지 않아서 기억도 가물거리고, 점괘도 잘 보이지가 않아.”
“걱정하지 마세요, 스승님. 제가 있잖아요. 더 열심히 해서 스승님 부족함 없이 잘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아이구, 누가 너더러 나 먹여 살리랬느냐? 됐으니까 배울 거 다 배우면 돈 벌어서 좋은 색싯감이나 찾아가셔.”
“싫습니다. 저는 계속 스승님과 같이 있고 싶습니다.”
“그건 내가 싫어요, 이 사람아. 철딱서니 없는 소리 하지 말고 적당한 때 되면 독립해라. 혼인하고 애도 낳고 그렇게 남들처럼 살아야지.”
“에이, 저한테 시집올 여자가 어디 있겠어요. 저번에 제가 제 사주를 봤는데 혼인 운이 없더라고요.”
“사주가 문제냐? 돈만 많이 벌어 봐라. 처자들이 마을 어귀까지 줄을 서지.”
“근데요, 스승님. 다른 사람은 몰라도 어제 다섯 명이나 손님들이 사주팔자를 보시고 갔는데 스승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면 좀.”
“응? 흠흠. 좀 그런가?”
“아무래도 좀 그렇죠.”
도진이 키득거렸다.
“아 참. 그런데요, 스승님. 우리 같은 사람들은 세속의 재화를 비워야 저승의 곳간이 채워진다던데요. 진짜 그런가요?”
“누가 그래?”
“어제 만난 동업자 어르신이요.”
“난 못 들었는데. 언제 그런 얘길 했대?”
“스승님 볼일 보러 가신 새에요.”
만복자가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눈썹을 찡그렸다.
“상도덕도 없이 우리 옆자리에 자리 깔고 장사한 양심 없는 가짜 점쟁이 말을 뭐 하러 듣느냐. 세속의 재화를 비워야 한다면서 자기는 왜 남의 손님을 채 갔대? 아주 대놓고 호객 행위까지 하고 말이야.”
도진이 머쓱하게 웃으면서 머리를 긁적이자 만복자가 하나 남은 만두를 반 쪼개어 도진에게 건네주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저승의 곳간이고 뭐고 다 부질없다. 저승에서 떵떵거리면 뭐하냐. 살아서 만두 하나 더 먹는 게 최고지.”
“스승님 말씀이 맞습니다. 헤헤.”
만복자와 도진은 사이좋게 만두를 나눠 먹었다.
“난 저 갯골 아래 객잔에 좀 다녀오마. 거기 약초꾼들이 머물고 있다더라. 장날에 팔 고약이 몇 개 안 남았으니까 약초 좀 사다 만들 거다.”
“약재상으로 안 가시고요?”
“약초꾼한테 바로 사야 더 싸게 사지. 한 다리 거치면 다 돈이야, 돈.”
깍, 깍.
나무 위에 까치가 앉아 울었다. 그 소리에 만복자가 밖을 내다보았다.
“잘됐다. 까치가 고개를 들고 우는 걸 보니 오늘은 날씨도 아주 맑겠구나. 약초를 달여야 하니까…….”
“네! 솥 닦아 놓고 장작 주워다 놓겠습니다.”
“흐흐흐. 역시 내 제자로구나. 내 올 때 너 좋아하는 거 사 오마.”
그런데 도진은 바로 움직일 생각을 안 하고 몸을 괜히 꼬면서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우물쭈물했다.
“그런데요, 스승님.”
“왜 그러냐?”
“스승니임. 장작을 다 주워다 놓고 나면요오오.”
만복자는 도진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았다. 만복자가 약을 달이면 시간이 오래 걸리니 그동안 저잣거리에 나가 돗자리를 펴고 싶은 것이다.
“눈치만 봐도 알겠구나. 자리 깔고 싶다 이거지?”
“헤헤, 제자가 말씀드리기도 전에 아시다니 역시 스승님이십니다. 스승님께서 일을 못 나가시니 제자라도 대신 다녀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장날까지 자리도 좀 맡아 두고요. 겸사겸사.”
“흠. 너무 어릴 때부터 자꾸 돗자리를 깔기 시작하면 버릇이 나빠지는데.”
“아니, 아닙니다요. 제가 얼마나 버릇이 좋은데요. 공부도 열심히 하구요, 저번에 알려 주신 괘사와 효사도 다 외웠습니다.”
“그래?”
잠깐 고민하는 척하던 만복자가 물었다.
“네 사조가 육십 년 동안 점복(占卜) 생활을 하며 깨달으신 진리가 뭐라고 했지?”
“적당적당히 하라고 하셨어요!”
“그래. 구십구 번 잘해도 한 번 실수하면 칼 맞고 죽는 게 점쟁이의 운명이야. 젊어서 혈기가 왕성할 때는 그걸 모르고 자기가 세상에서 제일 잘난 점쟁인 줄 알아요. 그러다 험한 꼴 당하고 경을 치는 경우가 수두룩하다.”
도진은 만복자가 허락하기 전에 잔소리하는 거라는 걸 알고 신나서 대답했다.
“네! 알고 있습니다!”
“내 누누이 얘기하지만, 내가 살아 보니까 점 잘 본다고 잘 사는 게 아니다. 사람들이 정말 미래를 알고 싶어 우리에게 오느냐? 아니야. 자기가 듣고 싶은 말을 듣기 위해 우리에게 돈을 내는 거야.”
“네! 알겠습니다!”
도진의 눈이 반짝거렸다. 딱 봐도 당장에 뛰어가고 싶어 근질근질한 듯했다.
“아무튼, 남의 점복 봐 주는 것도 우리가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이라는 것만 잊지 마라. 그러니까 절대 무리할 필요가 없어요. 알겠지?”
“네! 히히.”
“그럼 불 준비 잘해 놓고 가거라.”
“전 솥부터 씻고 올게요! 다녀오세요!”
도진은 사각 나무 궤(櫃)에서 작은 무쇠솥을 꺼내 들고는 기다렸다는 듯 얼른 개울을 향해 뛰어갔다.
“아이구, 내가 하는 말을 듣기는 들었는지.”
만복자는 도진의 뒷모습을 잠시 보고 있다가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그래도 혼자 나가려고 하니 다행이지. 조 녀석 실력이 너무 늘어 가지고 이젠 녀석 앞에서 점을 치면 손이 다 떨린다니까.”
* * *
만복자는 떠돌이 점술가였다.
대부분의 점술가들이 그러하듯 점을 봐 주고 부적을 써 주고, 약을 지어 팔아 생계를 이었다.
벌이는 부족하지 않은 편이었다.
워낙 말재주가 좋아 남들처럼 비바람에 풍찬노숙(風餐露宿)을 하다가도 술과 고기를 얻어먹고, 거기다 부적까지 팔 수 있을 정도였다.
역점(易占), 추첨(抽籤), 점성(占星), 관상(觀相), 풍수(風水), 해몽(解夢) 등 다방면의 이론도 폭넓게 알아서 말에 막힘이 없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만복자의 점술 실력이 좋으냐 하면 그건 아니었다.
그냥 적당히 듣기 좋은 얘기나 해 주고 돈을 버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물론 만복자도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었다.
젊었을 적에는 점술가로 성공하고 싶은 포부도 있고 정말 열심히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류육종(二流六宗)이니 정통성이니 뭐니 하며 따지는 점술계의 텃세를 이겨 내지 못하고 자신의 한계를 느끼게 되면서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하여 지금의 만복자는 그저 그런 점쟁이로 전락해 있었다.
그저 하루하루 굶지 않고 자기가 살아가는 것이 중요할 뿐이었다.
수십 년을 그냥 그렇게 살았다.
그런데 도진이 함께하기 시작한 몇 년 전부터는 조금 달라졌다.
도진은 만복자를 진심으로 믿고 따랐다. 어디서 사람들이 부자지간이냐고 물을 정도였다.
참으로 예뻤다. 하는 행동도 예뻤지만, 굳이 그러지 않아도 예뻤다. 예뻐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었다.
자기 자신이 평생을 떠돌아다니며 정착도 하지 못하고 혼인도 못 한 외로운 삶이었기에, 더더욱 도진은 만복자에게 소중한 존재가 되었다.
하여 만복자에게 고민이 생겼다.
아는 게 많으니 가르치는 거야 별문제가 없는데, 정작 만복자 본인은 오랫동안 나태하게 살다 보니 신기가 떨어져 제대로 점을 치지 못하는 상태였다.
만일 도진이 스승인 만복자의 점괘가 엉망인 걸 알면 얼마나 실망할까.
그게 늘 두려웠다.
또, 두려움과 더불어 작은 욕심도 생겼다.
도진은 의외로 점술에 굉장한 소질이 있었다. 가끔 도진의 점술 실력이 만복자보다 훨씬 나을 때도 있어서 깜짝깜짝 놀랄 정도였다.
특히 관상을 특출나게 잘 보았다.
많은 공부가 필요한 역점은 아직 좀 들쑥날쑥한데, 그것도 결국은 시간과 경험이 해결해 줄 문제였다.
아마 도진이라면 만복자와 달리 텃세를 이겨 내고 점술로 크게 성공할 수도 있을지도 몰랐다.
그래서 만복자는 자신이 할 수 있을 때 도진에게 뭔가를 해 주고 싶었다.
“다른 건 몰라도 녀석 장가는 꼭 보내 주고 싶은데…… 아니, 아니. 이왕이면 가게도 하나 얻어서 정착하게 해 주고 싶고. 씀씀이를 아끼고 좀 줄여야겠다만, 그 정도는 할 수 있겠지.”
만복자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작은 각오를 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