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20-second songwriting genius, a 200,000-second monster RAW novel - Chapter 75
20초 작곡천재, 200,000초 괴물 되다 75화
국제 대회의 핵폭탄(5)
뉴스에 나오는 거대한 산불의 원인은 담배인 경우가 많다.
그냥 신발로 밟아서 꺼질 정도로 작은 불덩어리가, 중장비로 한 달 꼬박 갈아엎어야 하는 삼림을 통째로 날려 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그건, 비단 자연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었다.
사람 사이.
수많은 사람들이 모인, 인터넷 공간에서도 마찬가지.
처음에는 잉스타 뒷계정에 올릴 글을 앞계정에 올려 버렸다는, 단순하기 그지없는 해프닝이었다.
해결방법은 죄송합니다, 한마디면 됐다.
아니 솔직히 사과하지 않아도 됐을 수도 있다.
그냥 광속삭제만 갈겼으면 조용히 넘어가지 않았을까?
근데 이케다는 그렇게 하지 않았고, 자신의 집념을 끝까지 고수했다.
한국에서 열리는 대회에 참가하는 주제에, 한국과 한국인을 비하하는 듯한 게시글을 내버려 두고, 키보드 배틀로 응수한 것이다.
내가 불씨에 부채질하는 것은 올바른 수순.
순식간에 구경꾼들과 싸움꾼들이 몰려드는 것은 당연지사.
그걸 여기저기 퍼다 나르는 건?
인터넷 국룰이었다.
-김치 냄새난다며 무대 위에서 코 막는 갓본인.jpg-
(사진)
-표정 X발 존나 잘찍었네ㅋㅋㅋㅋㅋ
└아웃포커싱 구도 지대로임
└너무 정성스러워서 입안에 옥수수 다 튀겨버리고싶네요.
-왜 저러는거임?
└뒷계정 올리려던거 실수라함
└어쨌든 올리려던 건 맞았네 ㅋㅋ
-이번에 김도일이랑 한판 붙으려는 모양임https://www.ingtagram.com/dasvhrqkfdlek/
└우튜브에 잉스타 아이디좀 만들어달라고 그렇게 부탁했는데 드디어 만드네
└김도일이 누구임?
└아직도 김도일을 모름?
└그니까 누군데 ㅡㅡ
└충격실화 : 김도일은 베토벤이 죽기직전 ‘곡이 좋다’고 평가했다. 그에 베토벤은 ‘감사합니다’라고 대답했다.
└이건또 뭐야 X발 ㅋㅋㅋㅋㅋㅋㅋ
└얼탱이가 없네 ㅋㅋ
└청각장애 언제 나음?
가장 먼저 보인 반응은 바로 ‘분노’.
뭐 자기 나라 욕하는 사람 보고 두 팔 벌려 환영하는 인간은 없겠지.
중요한 건 두 번째 반응이다.
사람들이, 주목을 하고 있다.
이미 탑 싱어에 출연하며 이름이 엄청나게 퍼지고 있는 상태.
다만, 퍼지는 범위가 프로그램에 흥미가 있는 사람들에 한정될 수밖에 없었는데….
‘이번에는 좀 다를 거 같네.’
왜, 클래식은 다들 원래 관심이 없잖아.
뭔 일이 터지든 누가 표절했든 그들만의 리그일 뿐.
다만, 지금은 다르다.
어그로가 끌렸다.
클래식, 아니, 음악 자체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까지.
전부 ‘한일전’ 구도로 스노우볼이 굴러간 탓이었다.
그리고 그 효과는….
“우와우와….”
“저, 저 사람 맞지?! 김도일!”
“화이티이이이잉!”
본선이 열리는, 세종대학당에 오자마자 절절히 실감할 수 있었다.
“…살다 살다 클래식 콩쿠르가 이 정도 열기를 띠다니.”
이곳까지 차를 태워준 임재철은 놀랍다는 듯이 연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교수 자리에 있는 사람이 보기에도 이질적인 풍경이긴 한가 보다.
“평소에는 정원이 다 안 차는데… 오늘은 거의 근접했다더라고요?”
“대단한 거지. 솔로 리사이틀 도전하는 사람 중에 100명은커녕 50도 못 채우는 경우가 태반이거든. 작년 정원이 7,800 언저리였으니….”
…그 뜻은 곧, 나의 영향력으로만 500이 넘는 사람을 동원했다는 건가?
실감이 잘 안 됐다.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건 전부 했어.”
“옙.”
“기대하마.”
다만, 괴인 임재철의 굳은 목소리를 뒤로하고,
“왔다.”
“드디어 왔어!”
“여, 여기 앉아!”
대기실에 들어오니 알겠더라.
뭐랄까.
엄청나게 환대받는 분위기라고나 할까.
전에는 서로서로 눈치를 살피고, 잔뜩 날이 서 있었다고 한다면 지금은 전혀 아니다.
뭉쳐 있다.
그리고 그 구심점은… 누가 뭐래도 ‘나’ 같아 보였다.
“…김도일!”
인파가 갈라지고, 피부가 약간 검은 녀석이 두 팔을 벌리며 다가왔다.
저번 콩크루의 피아노부 3위, 김강현이었다.
나는 곧바로 그를 맞이하며 척, 손을 내밀었다.
“…고맙다!”
“어… 어 에이 뭘.”
쑥스러운 듯 고개를 돌리는 김강현.
잉스타를 계속 들여다보고 있었기 때문에 상황이 어떻게 흘러갔는지는 거의 다 파악하고 있는 상태.
불씨를 떨군 것이 이케다 신페이, 옆에서 부채질한 게 나, 좀 타오르는 불씨를 발로 차며 마구 퍼뜨린 건 김강현이라고 할까.
“네 덕에 판이 잘 깔렸더라.”
“…흐흐 한국 비하하는데, 참을 수가 있어야지.”
“그럼그럼!”
“그렇지!”
대기실에 있는 모두가 같이 목소리를 높였다.
한껏 달아오른 분위기.
다만,
“…진짜 이길 수 있겠어?”
역시나 터져 나올 수밖에 없는 불안 섞인 목소리.
“우우우우우.”
“초 치지 마라!”
“분위기 개 못 읽네.”
분위기를 망친 이에 대한 비난의 봇물이 터져 나왔다.
다만 뚝심 하나만큼은 대단한지, 녀석은 의견 표출을 멈추지 않았다.
“이케다 소이치로라는 사람 일본에서 속주 일인자거든… 걔 아들도 0.7, 0.8소이치로 정도는 되지 않을까 싶어. 나도 네 잉스타 영상 봤는데, 솔직히 너무 빨라서 잘 모르겠어. 속주가 무조건 빨리 친다고 다 좋은 건 아니잖아?”
쏟아지는 걱정거리.
다만, 명백하게 기가 죽은 눈.
뭐랄까, 내 연주를 듣기 전의 임재철과 같은 눈빛이랄까.
‘그러고 보니 이유를 못 물어봤었네.’
임재철과 소이치로.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오늘 1등을 먹으면 물어볼 자격 정돈 생기지 않을까?
뭐 어찌 됐든 간에.
“그거 알아?”
“응?”
“마티즈도 쥰내 밟으면 150㎞ 나와.”
“….”
“근데 여유가 없지. 딱 거기까지거든.”
그가 가지고 있는 걱정은 말로 해결할 수 없는 종류다.
그저 실력을 보여줄 뿐.
압도적이기 그지없는 나의 속도를, 만천하에 드러낼 뿐!
* * *
서울대 음대의 피아노 전공 교수, 한상훈은 원래 오늘 세종대극장에 올 생각이 있기는 했다.
심사위원은 아니고, ‘관객’으로서.
불과 3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서울 국제 콩쿠르의 심사위원 직을 맡고 있었지만 뭐.
나이 든 사람이 자리를 꿰차고 있으면, 뒷말이 안 나올 수가 없지 않겠는가?
몇몇 대회의 심사 역을 후배에게 양보했고, 이 대회 또한 마찬가지였다.
다만 괜히 나왔소, 하며 거드럭대다가 후배에게 괜히 부담을 끼치는 꼴이 될 것 같아서 조용히 구석에 있다가 갈 생각이었는데….
결국 눈에 띄고, VIP석으로 안내받아 버렸다.
독일 유학 시절의 지인, 야닉 게프하르트가 함께한 탓이었다.
-[사실입니까…?]
한창 자고 있던 도중, 갑작스레 걸려온 전화.
그가 ‘예절’이라는 것을 무시하면서까지 할 수밖에 없었던 단 한 가지의 질문.
-[예?]
-[김도일 군이 국제 대회에 나간다는 소식 말입니다.]
-[사실입니다만….]
그뿐이었다.
아무리 기억을 되짚어보아도 대화의 왕복이 다섯 번 이상은 아니었다는 소리다.
야닉은 그것만으로 한국에 날아왔다.
오로지 단 한 사람, ‘김도일’을 보기 위해서
‘국내에 이제 막 이름이 퍼지기 시작하던데…. 어쩌면 해외 쪽이 더 빠를 수도 있겠군.’
세계적으로 명망을 떨치는 뮌헨 음대의 교수.
일생을 ‘열정적인 연주’에 바친 또 한 명의 거장의 관심을 끌었다.
선구자가 나타났으니, 그 아랫사람이 이끌리는 것은 예정된 미래라고나 할까.
“[규모가 예상보다 크네요. 장소뿐만 아니라 관객까지 천 명이 넘어 보이니…]”
“[일본 쪽 참가자와 크게 마찰이 있었다는군요. 늘어난 관객 수는 그 때문이죠.]”
“[호오… 누구랑요?]”
“[이케다 소이치로의 아들입니다.]”
물론, 그들만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머쥐었을 때의 얘기지만.
‘일이 생각보다 많이 커졌어.’
나이가 나이다 보니 SNS는 그다지 선호하지 않았다.
다만, 그럼에도 눈치채는 것은 빨랐다.
이케다 아들이 예의 사진을 올리고 하루 뒤,
수업을 듣는 학생들 입에서 한시도 빠지지 않고 두 이름이 오르내렸으니까.
흡사 월드컵 한일전 같은 분위기 같았다고나 할까.
-자 지금부터 서울 국제 음악 콩쿠르의 본선을 시작하겠….
-와아아아아아아아!
이러나저러나, 한껏 달아오른 분위기와 함께 본선은 시작되었고, 참가자들의 연주가 이어졌다.
한 번의 비대면 예선과 두 번의 대면 예선을 거친, 수준 높은 학생들이다.
프로 연주자에 비해서는 부족할지언정, 충분히 ‘감상’이 가능한 영역의 무대들.
…순번이 바뀔 때마다 박수가 터져 나왔다.
다만, 불쌍하게도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박수는 아닌 듯싶었다.
에피타이저.
기대감에 의한 반사 반응.
뭐랄까,
중세 시절 군대와 군대가 맞붙이 치기 전, 장수들이 앞으로 나와 최후와 최후의 통첩을 하는 것 같달까.
두우우웅-!
…한일 학생들은 그렇게 서로의 실력을 과시했고,
마침내 이케다 소이치로의 아들, 이케다 신페이가 먼저 모습을 드러내자 무대는 또 다른 국면을 맞이했다.
-참가번호 16번, 이케다 신페이입니다. 박수로 맞아주시기 바랍니다.
사회자의 호응 유도.
들려오는 박수 소리는 바로 전 순번 학생과 비교될 만큼 작았다.
…메인디쉬를 대하는 또 다른 환영의식인 것이다.
다만,
“[다들 곡 감상이 끝날 때를 대비해 힘을 아껴두시는 것이군요.]”
능숙한 영어를 사용하며, 이케다 신페이는 일말의 기죽은 기색조차 내비치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껏 단 한 명도 건드리지 않던, 라벨의 ‘밤의 가스파르3, 스카르보’를 읊어 나가기 시작했다.
두우우웅-!
익숙한 곡이었다.
아니, 피아니스트라면 익숙할 수밖에 없는 곡이었다.
40년도 지난 과거.
이 곡을 소화해 내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였는가.
괴로운 나날들이었다.
마치 삶은 달걀을 씹지 않고 삼키는 수련을 수백일 반복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 고통의 끝을 지나 사람들 앞에서 부끄럼 없이 연주하게 되었을 때가 스물셋이었던가.
근데….
“[…완벽하군요.]”
믿을 수 없었다.
귀에 들려오는 이 감각.
이 쫄깃하면서도 음 하나하나에 낭비가 없이 꽉 들어차는 듯한 느낌.
단순히 속도만 빠른 것이 아니었다. 압축된 정보를 뭉그러뜨리지 않고 형태를 잘 유지했다.
‘속주’라는 행위가 가져다주는 이점이, 부족함 없이 저 어린 손가락에서 표현되고 있다는 것이다.
“[…예.]”
그렇기에 한상훈은 야닉에게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저건 분명히, 열여덟 살의 육체와 정신이 끌어낼 수 있는 인간의 ‘한계점’이었으니까.
완벽이라는 말이 전혀 거창하지 않으니까.
다만,
“….”
왜일까.
기분이 좀 이상했다.
대단한 연주가 맞는데.
나이를 초월한, 신이 내린 재능이 펼치는 연주가 분명한데.
이질감이 스멀스멀, 가슴속을 잠식해 나가고 있었다.
두우우웅-!
연주가 이어지고, 곡은 결국 절정에 달했다.
단 한 템포도 숨돌리기를 허락하지 않는 구간.
…역시나 이케다 신페이는 곡과의 기 싸움에서 밀리지 않았다.
사투 끝에, ‘이겼다.’
그리고….
그제서야 드는 한 가지 감각.
‘…조금 갑갑하다.’
한계까지 정신력을 소모할 수밖에 없는 연주다.
곡이 요구하는 능력이 100이라면, 이케다 신페이는 그 100을 모든 수단을 동원해 다 끌어내고 있다는 소리다.
…그게 문제였다.
한상훈은 방금 떠오른 생각을, 곧바로 입에 담았다.
“[여유가 없군요.]”
아마 다른 사람들이라면 미쳤냐고 되물을 수도 있는 감상.
원래 속주 곡이 그렇지 않냐는 말이 돌아올 게 뻔한 감상.
다만,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야닉은, 자신의 말에 동의했다.
“[두 달 전, 함께 간 화선의 오케스트라에서 처음으로 김도일 군의 곡을 접했습니다. 어디 하나 흠잡을 곳이 없었죠.]”
“….”
“[뮌헨에 돌아가 김도일 군의 다른 곡과 연주를 들었을 때도 비슷한 감상이었습니다. 완벽. 그리고 노골적. 대단한 인물이란 확신이 들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김도일도 완벽하고,
이케다 신페이도 완벽하다.
그럼 두 사람의 실력은 같은가?
…한상훈은 조금 전,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참이었다.
“[지금까지 그의 연주는, 곡과 사투를 벌인다는 느낌이 아니었죠. 그저….]”
“[품 안에서 놀게 하는 느낌이었어요.]”
그렇다.
여태껏 그는, 곡과 자신을 나란히 하지 않았다.
싸우려고 하지 않고, 싸울 대상으로 보지도 않았다.
애초에 곡을 대하는 자세 자체가 일반적인 ‘전공자’와는 달랐다.
마치,
“[우리 같이 말이죠.]”
수십 년 동안 곡과 싸워, 이제는 품어버린 사람들 같았다.
‘…알겠군.’
이질감의 기원이 뚜렷해졌다.
그것은, 기대감으로 인한 이질감이었다.
열여덟 살 소년에게 바라기에는 도저히 말이 안 되는 기대감 말이다.
“[김도일 군의 연주곡은 무엇이죠?]”
“[겨울바람… 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도 속주 난곡을 골랐군요.]”
“[예. 정면으로 부딪칠 생각일 겁니다.]”
만약,
만약에 말이다.
현업자들조차 혀를 내두르는 그 곡을, 저 나이에 ‘싸우지’ 않고 표현해낸다면?
곡과 같은 위치에 서는 것이 아닌, 위에 서서 품는다면?
인터넷에 올리던 빠르기만 한 속주가,
간접적으로 그게 ’가능하다’고 드러낸 거라면?
알 수 없었다.
다만 진짜 그렇다면,
클래식계가 맞닥뜨릴 것은 작은 지각변동 따위가 아닌, 대진재(大震災)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