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20-second songwriting genius, a 200,000-second monster RAW novel - Chapter 88
20초 작곡천재, 200,000초 괴물 되다 88화
거대하고 웅장한 미러전(8)
아이돌이 성공하는 데에는 여러 요소가 필요하다.
외모, 가창력, 춤, 개개인의 매력, 능력, 멤버 간 케미, 곡, 그리고 운… 등등.
모든 게 과락 없이 일정한 수평선을 넘어야 빛을 보기 시작한다.
돈을 벌고,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처음이 제일 힘들지.’
일정한 수의 팬을 확보하는 것이 가장 중요.
다만, 그다음부터는?
더 위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전통적인 방법은 이랬다.
국내에서 굳건히 인지도를 다지고, 실시간 가요 채널 1위도 먹고, 그러다 보면 해외 팬들도 생기고, 해외에서 공연도 하고.
가장 안정적이면서도 확실한 루트.
대표를 뽑자면 역시 칼미아가 아닐까.
다만,
‘…우리는 달라.’
퍼플 밤의 입지는, 국내보다는 해외의 비중이 매우 높았다.
데뷔 전부터 세워진 공격적 확장전략 때문이었다.
국내에서 활동을 하되, 회사의 자본력을 바탕으로 빠른 해외 진출을 도모한다.
거점으로 삼는 곳은 우리나라보다 시장이 큰 일본.
그리고 그 전략은, 막힘없이 실행되었다.
일본 내의 KPOP 아이돌 중 최상위권을 차지해 버린 것이다.
하지만….
별 그리 크게 차이 나지 않는 경력의 칼미아는 이길 수가 없었다.
‘…국내에선 밀리고… 해외에서도!’
지금 성적도 충분히 만족할 만한 수준이긴 하지만, 원래 인간의 욕심이란 끝이 없는 법.
그녀들은 1위를 노리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 철저한 준비에 들어갔고,
표절 논란이라는 자그마한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뻔하기는 했지만,
합동 콘서트에서 신곡에 힘을 크게 싣는다면, 칼미아를 제칠 수 있으리라는 예측 결과가 나왔다.
오후 2시.
결국 공연은 시작되었고, 린은 심하게 박동 뛰는 가슴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무대를 앞둔 긴장감 때문이었다.
마치 데뷔 초로 돌아가 버린 듯한 느낌이랄까.
물론,
‘이건 질 수가 없어.’
비장의 수를 숨기는 척하며, 괜히 폼을 잡던 칼미아의 얼굴을 떠올리면 긴장감이 조금 수그러들기는 했다.
‘뭔 곡을 만들어 온지는 모르겠지만.’
작곡가 김도일이 꼬리를 만 줄 알았다.
ST와 척을 진다는 것은 그냥 업계 생활을 포기한다는 것이니까.
다만, 그는 칼미아에게 새로운 곡을 만들어준 듯했다.
일단 덤비지는 않되, 뒤통수를 한 대 때려 자존심을 세운다는 작전은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
무모했다.
한 달 반 동안 업계 최고의 전문가 70명이 붙어 만들어낸 곡과 단 한 명이 작업한 곡.
따로 설명이 필요한가?
알량한 자존심을 세우려다, 전부 말아먹게 될 거라는 걸 그는 과연 알고 있을까?
뭘 들고 왔는지는 상관없었다.
그러므로….
-자, 다음 순서는…! 한국 차트에서 왕좌의 자리를 찬탈한-! 퍼플 밤입니다!
자신들이 해야 할 것은,
그저 최고의 무대를 만들어, 감히 기어오를 생각을 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뿐!
와아아아아아아아-!
압도적인 인파였다.
3만석을 수용할 수 있는 거대한 무대에, 빽빽이 들어찬 사람들.
무대 곳곳에서 발광하는, 퍼플 밤의 시그널 컬러인 보라색 팬라이트.
쥬웅-!
깔려지는 일렉트로한 음악과 함께, 퍼플 밤의 멤버들은 노래를 부르고, 안무를 춘다.
네온사인.
그 이름에 걸맞은 형형색색의 조명을 받으며, 쨍한 색깔이 떠오르는 멜로디와 함께.
반응은 당연하게도
“[곡 진짜 좋다…!]”
대단하기 그지없었다.
“[무대 조형도 완벽해.]”
“[딱 한 곡을 위해 이런 걸 준비한 거야?]”
“[우와아….]”
‘아직 한국 콘서트에서도 선보인 적 없지.’
회사에서 돈을 좀 썼단다.
도시 뒷골목 느낌을 낼 수 있는 고퀄리티 조형물 제작을 의뢰했다고.
이건 아직 국내 팬들에게는 보여준 적 없는 퍼포먼스다.
반대로 말하면 일본 팬들에게 ‘특별함’을 부여할 수 있다는 것.
모든 것에는 노림수가 있었다.
-퍼플 밤! 퍼플 밤!
저 녹아내리는 듯한 눈빛을 보아라.
우리에게 빠진, 수많은 군중들의 얼굴을 보아라.
이 분위기를 뒤집을 수 있을 곡 따위, 이 세상에 있을 것 같은가?
단언컨대, 없다!
-와아아아아아아아!
단 두 곡.
합동 콘서트인 만큼 그룹들에게 할당된 곡은 적었지만, 그럼에도 확신할 수 있었다.
자신들이, 이곳의 주인공이라고.
뒤에 나올 칼미아가 아닌, 자신들이!
“퍼플 밤이었습니다아-!”
아쉬운 듯한 함성이 다시금 울려 퍼졌다.
각기 다른 그룹의 추종자들이 3만이라는 머릿수를 채웠지만, 상관없었다.
스테이지의 문이 닫히고, 집에 들어가 잉스타니 트짹이니 자신들만의 소통창구를 여는 순간, ‘퍼플 밤’의 이야기를 꺼낼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런, 운명이기 때문에.
…그럴 터인데.
“…어?”
모두가 보라색 팬라이트를 머리 위로 들어 올리는 가운데, 가장 앞쪽,
단 한 사람의 빛만이 색깔이 달랐다.
단 한 사람 것만이 색깔이 컸다.
아니, 그 전에….
저건.
응원봉이 맞나…?
“어…?!”
“[어어어어! 저거, 저거 잡아!]”
“[빨리!]”
무대가 끝나자마자, 한 인형(人形)이 무대 위로 뛰었다.
입고 있던 큼지막한 티셔츠를 북북, 찢어발기며.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마치 안방 돌아온 듯이 바지를 벗어 던지며.
드러난 것은 우주적 악당의 복장.
그리고….
“살이 잘 찌워졌군.”
믿을 수 없이 낮은 목소리로,
마치 먹잇감을 보는 듯한 맹수의 눈빛으로,
그는 그리 읊조렸다.
* * *
현재 EL은 ST보다 체급이 낮다.
회사 매출액만 봐도 두 배 정도 차이가 나고, 사옥부터 ST가 크고, 직원들도 ST가 많고. 소속된 연예인도 두 배 정도고.
‘연봉은 비슷하던데.’
뭐, 직원들의 처우 같은 건 지금은 살짝 옆으로 치워두더라도.
지금 중요한 건 과연 그들과 붙어서 승산이 있냐 없느냐였다.
여기가 뭐 종목이 비슷한 제조업이었으면 아무래도 카운터 맞아서 찌그러질 확률이 매우 높겠지만.
‘엔터는 달라.’
분야가 다르다.
들이받지 못할 정도의 체급이냐면 딱히 그런 것도 아니란 소리다.
내려진 답은, ‘충분히 들이받아 볼 만하다’는 것이었다.
‘지금 들이박아야 이득이 크다.’
EL에서 더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고 싶었다.
딱히 회사 차원에서 논란을 일으킨 것도 없고. 내가 발굴해낸 뮤지션들이 소속돼 있기도 하고.
오너보다는 경영인의 입김이 훨씬 세고.
‘하고 싶은 것을 다 해야 하니까.’
뭐 저작권이니 앨범판매니 정신이 팔려 있다가는 그만큼 시간을 빼앗기게 되는 셈이 아닌가.
그러므로,
앞으로의 전 세계에 길을 개척하기 위한 기반 다지기를 위해, 이번 공연은 매우 중요했다.
쿠작-!
그렇다.
내가 지금 무대에 올라,
퍼플 밤의 일회용 조형물들을 파괴하고 있는 이 행위 또한.
절대로 그냥 ‘광선검으로 뭔가를 베어보고 싶어서’가 아니라는 소리다!
쿠좌아아아아악-!
“어…?”
덜떨어진 탄성과, 조형물이 일도양단되는 굉음이 무대 위에 울려 퍼진다.
3만에 달하는 인원이 마주치는 환호성과 손뼉 또한 멎었다.
내려꽂히는 것은 시선뿐.
대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것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듯한, 얼떨떨한 웅성거림뿐.
다만,
“[더스베이더가… 광선검을 휘두르고 있어!]”
“[…저게 실존하는 거였어?]”
“[저, 저게 왜 잘리는 거야?]”
“[퍼포먼스인가?]”
원래 그렇잖아.
‘무대 위’라면, 갑작스러운 돌발 행동을 하더라도 사람들이 좀 온순하게 넘기는 기조 같은 게 있잖아.
나는 그런 특성들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물론,
“[…스태프들은 뭐 하는 거야?!]”
“[언니들 다치잖아!]”
“[저 새끼 빨리 안 끌어내! 무능한 새끼들!]”
자신들의 우상의 무대를 해체하는 나에게 핏대를 세우는 사람이 그보다는 많았지만.
“[말려!]”
“야메로!”
경비들이 드디어 나에게 당돌했고, 내 몸을 부여잡았다.
나는 옷을 잡아당기는 압박감에도 개의치 않고, 터벅터벅.
바닥에 굴러다니는 마이크 하나를 잡아 입에 가져다 댔다.
“[팬들은 죄가 없다.]”
진중하게 내뱉은, 단 한 문장.
“[다만, 본심을 부정하지는 말라.]”
이어지는, 뜬구름 잡는 소리처럼 들리는 두 번째 문장.
나는 그 말을 끝으로 백스테이지에서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직원들을에게 OK 사인을 보냈다.
비록 퍼플 밤의 무대가 치워지지는 않았지만, 춤을 선보일 동선 자체는 충분히 확보되어 있다.
소매 옷감 안쪽에 숨겨둔 ㄱ자 고정 경첩 덕에 진짜 칼로 벤 것처럼 절단면도 깔끔하고.
부스러기도 별로 없고.
1회용으로 쓰고 버리려던 것 같고.
“Keep going.”
나는 마이크와 피아노를 옮기려 준비하는 스태프들에게 그리 말했다.
눈을 부릅뜨며, 아주 조금 강압적으로 들릴 수 있도록.
“…Yes.”
그리고 마침내 무대의 한가운데로 옮겨놓진 피아노 앞에 앉아, 연주를 시작했다.
파괴된 무대 위 도시 숲에 있는, 단 한 명의 피아니스트를 연기하며.
두우웅-!
검은 건반이 만들어내는 멜로디는, 근미래의 디스토피아를 그리고 있었다.
그리고….
“[어…?]”
“[이거… 방금 전에 퍼플 밤이 부른 거랑 너무 똑같….]”
시끌시끌한 혼란이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카, 칼미아다!]”
역시나, ‘정상’의 지위에 걸맞을 정도로 눈치 하나는 기가 막히다고나 할까.
박살 난 모형 도심 속에, 칼미아 또한 모습을 드러내었다.
미리 언질을 해주긴 했지만, 돌발 행동에 멘탈이 나갔을 텐데.
그녀들은 이 파괴된 무대가 ‘당연’하다는 듯이, 진중한 표정으로 정해진 선을 따라 몸을 움직일 분이었다.
이윽고 다른 MR이 들어오고,
머릿속에는, 조금 전 퍼플 밤이 손보였던 무대보다도 훨씬 더 진한,
사이버펑크 풍의 근미래의 거리가, 머릿속에 침입했다.
* * *
한 나라에서 음악 장르가 발생하여, 그게 전 세계에 영향을 뻗치는 경우는 왕왕 있어 왔다.
클래식, 디스코, 하드락 등등.
딱히 말로 설명할 필요도 없는, 이제는 와서 ‘당연하게’ 느껴지는 음악들 또한 원래는 한 국가에서만 유행하던 장르였다.
바다 너머의 우상들을 바라보고, 그들과 같은 음악을 해야겠다는 꿈을 품고.
원조의 나라에서 뻗어 나가 뿌리내린 음악이, 또 다른 열매를 맺고.
미라이나즈케라는 일본인으로만 이루어진 5인조 걸그룹 또한, 그런 일련의 과정을 거쳐서 탄생했다.
타카무라 유카는 그녀들의 리더였다.
‘그들과 같은 시대에 있고 싶어.’
원래 케이팝을 좋아했고, 아이돌을 좋아했다.
그렇기에 연습생이 되었다.
물론 그 모든 과정이 필사적인 것은 아니었다.
그저 막연한 꿈의 연장선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퍼플 밤이, 데뷔하여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기 전까지는.
‘너무 멋지잖아….’
완벽하게 절도 있는 춤 선, 단 한 명도 부족한 기색 없는 가창력.
그야말로, 신께서 ‘좋아하라’라고 지상에 내려보낸 듯한 다섯 명.
이제껏 좋아했던 아이돌들과는 뭐랄까, 궤가 다르다고 해야 할까.
기포 하나 없는 완벽한 도자기를 보는 듯한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그것은, 매료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닮고 싶어질 수밖에 없었다.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고.
다섯 여신들의 곁에, 더욱더 가까이 가고 싶다고!
갈망은 필사적인 노력을 불렀고, 결국 일본인으로 이루어진 케이팝 그룹에 자원하여, 6개월 전, 데뷔를 거머쥐었다.
다만 그럼에도,
같은 아이돌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아아….”
팬심이 없어지지는 않았다.
대기실에서 몰래 빠져나온 유카는 무대 위를 올려다보며 오늘도 전율했다.
네온사인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멜로디 곳곳이 마치 형형색색으로 빛나는 듯한 느낌.
무대의 조형물과 맞물려 미래의 도시 뒷골목에 있는 듯한 이색적 감각.
완벽했다.
한국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이유를 뼈저리게 이해할 정도로 말이다.
‘더 멀어지겠네….’
이것은 일본에서 먹힐 수밖에 없다.
원래라도 저 높이 존재하던 퍼플 밤은, 이제는 구름 위로 올라가 버리는 것이다.
‘….’
그녀들에게 가까이 가고 싶은 마음과,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 원하는 머릿속에서 충돌했다.
다만, 그 어느 쪽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좋아하니까.
세상에서 제일,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아하니까.
콰작!
근데….
….
근데.
저건 대체 뭘까.
저 새끼는.
저 미친놈은.
왜 완벽한 언니들의 예술을 망치고 있는 걸까?
“[빨리끌어내애애애애액!]”
군중들과 완전히 섞인 유카는, 목청껏 소리를 질렀다.
머릿속은 이미 분노가 한계까지 끓어올라 마비가 될 지경.
손이 발발 떨리고, 목을 지나가는 혈관에는 피가 지나가는 쿵쿵거리는 느낌이 들고.
이성은 진작에 날아갔다.
10대의 소녀가 한 마리의 짐승으로 변하는 데에는 단 1분조차 걸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팬들은 죄가 없다.]”
“[다만, 본심을 부정하지는 말라.]”
거대한 남자는, 발광하는 인파들이 눈에도 보이지 않는다는 듯이, 그저 백스테이지에서 피아노를 끌고 와, 연주를 시작할 뿐이었다.
방금 전 퍼플 밤의 네온사인과 너무나도 닮은 노래의 연주를.
‘포기한 게… 아니었어?’
벙벙한 어안.
상황을 제대로 따라갈 수 없는 인지능력.
여전히 온몸을 지배하고 있는 분노와 당황감.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게… 뭔.”
머릿속에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우글거리는 먹구름과 분홍색, 하늘색, 보라색 빛의 선으로 장식된 건물,
신체를 기계로 개조한 양아치들이 담배를 꼬나물고 뒷골목에서 시시콜콜한 농담 따먹기를 하고 있는,
‘디스토피아’의 풍경이 그려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어?”
퍼플 밤의 것보다 훨씬 더, 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