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incarnated genius RAW novel - Chapter 199
199. 쉼표 뒤에 있는
온종일 화사한 햇살이 내리쬐서일까.
다행히 날씨는 그리 춥지 않았다.
게다가 난로가 일정 간격으로 놓이고,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이니 오히려 열기가 후끈해졌다.
“서호!”
“주인공 오셨구만~.”
그 사이를 걷자 많은 사람들이 나를 반겼다. 무슨 팬미팅이라도 되는 것처럼 민망한 환대였······.
“한서호! 한서호! 한서호!”
저긴 더 하네.
나와 앨범 작업을 하며 세간엔 ‘한서호 사단’이라 불렸던, 이제는 대부분이 SJ 엔터 산하 에이전시 ‘더 클래식’에 소속된 연주자들이 다 같이 날 호명하고 있었다.
다가가 인사하고 수다에 동참했다. 다행히도 다들 이 파티가 즐거워 보였다.
“이런 담장 너머엔 어떤 집이 있을까 했는데······.”
“뭔가 여기 안은 공기도 다른 것 같고.”
“재벌 집 너무 좋···.”
말실수라도 했나 홱홱 주변을 돌아보며 걱정하는 눈치인 연주자에게 피식 웃으며 동조했다.
“맞잖아요. 재벌 집.”
그리고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다가 바로 옆 테이블로 옮겼다. 반가운 얼굴들 중에서도 유난히 반가운 이들이 그곳에 앉아 있었다.
“여기 진짜 대박이다.”
“이야 식기 번쩍거리는 거 봐. 이 누추한 손으로 만져도 되는 걸까?”
“마당이 우리 집 앞 공원보다 더 넓은 듯.”
신수아를 포함한 4인방.
이번엔 그들의 수다에 동참했다.
“안에 중정 하나 더 있어요.”
“중정이 뭐야?”
“집 안에 있는 프라이빗한 정원.”
“그런 게 원래··· 집에 있고 그러나?”
김영태가 눈을 껌뻑이며 혀를 내두르자 키득거리는 강준서와 이소현.
그러던 중 누군가 나를 덥석 잡아 돌아보니 신수아 무릎에 앉아 있던 그녀의 막내 동생이 날 올려다본다.
“안녕. 오랜만이다, 잘 지냈어?”
투어가 시작되면서 먼저 한국으로 돌아갔던 녀석이었다. 누나랑 같이 가고 싶다고 얼마나 울었는지.
그게 벌써 두 달 전이었다.
“우리 투어 도는 사이에 호찬이가 너도 계속 보고 싶다고 했었대.”
“정말?”
신수아의 말을 듣고 물어보자 끄덕이는 녀석.
그 귀여운 모습에 한참 동안 머릴 쓰다듬다가 다음 테이블로 걸음을 옮겼다.
뒤쪽엔 거구의 남자 한 명이 의자 다리가 부러질까 조심조심 앉고 있었다.
호르니스트 윤태환이었다.
“축하해.”
“감사해요.”
날 발견한 윤태환이 끄덕이며 웃는다.
“멋지다 여기.”
“뭔가 제 집도 아닌데 좀 이상하지만. 와주신 것도 감사해요.”
그러자 함께 앉아 있던 연주자 중 한 명이 웃으며 말했다.
“네 3관왕 축하 파티라고 들었는데? 여기 다들 너 보려고 모인 거잖아.”
“그렇다기엔 아까 재벌 집 가본다고 엄청 들떠있던데?”
“아니, 뭐··· 겸사겸사···.”
그들의 대화를 듣다가 피식 웃으며 다시 윤태환을 보았다.
“아 맞다. 소식 들었어요. 소속사 생기셨다는 거. 축하드려요.”
“어, 맞아. 하하. 그··· 미안해.”
손수건으로 콧잔등에 맺힌 땀을 닦는 그.
내가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뭐가요?”
“‘더 클래식’에 함께하지 못해서.”
“에이, ‘더 클래식’이 만들어질 줄 모르셨잖아요. 좋은 기회가 먼저 오면 잡으시는 게 맞죠. 가신 곳은 어때요?”
“좋은 것 같아. 괜찮아.”
“다행이네요.”
그러자 옆에 우릴 지켜보던 연주자들이 다시 이야기에 끼어들었다.
“태환이 형 요즘 엄청 바빠~.”
“우리도 오늘 몇 달 만에 본 것 같은데?”
“그러네. 시간이 벌써 그렇게 됐네.”
“시간 진짜 빠르다··· 아참 그리고 오늘 기사 봤는데, 당분간 음악은 안 한다고?”
“네. 당분간 좀 쉬려고요.”
끄덕이자 아쉬운 눈빛들이 줄줄 흘렀다. 하지만 그런 눈빛과는 달리 다들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하긴, 그럴만하지. 그렇게 바쁘게 일만 했으니.”
“누가 정리해놓은 거 봤는데, 서호가 근 몇 년간 사운드클라우디에 올린 습작까지 포함하면 수백 곡이라더라고.”
“진짜 열심히 달려오긴 했네.”
“그래도 한서호 사단은 계속되는 거지?”
계속···되어오긴 했던 건가?
그 이름으로 뭘 한 기억은 없는데 말이지.
“왜 부담을 주고 그래.”
“이렇게 잠깐 쉰다고 했다가 아예 쉬는 경우도 있다구. 확답을 받아놔야 해.”
“에이, 서호가? 그러면··· 그러면 안 되는데? 안 된다? 우리 이름까지 후보 뽑아놨단 말이야.”
홱 고개를 돌린 연주자가 결사적인 얼굴로 말한다.
내가 눈썹을 치켜올렸다.
“이름이요?”
“응. 저번에 태환 씨가 지었는데 다들 너무 마음에 들어 해서 서호 오면 말해봐야겠다 했었거든.”
그 말까지 듣고 윤태환을 돌아보자 그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냥 말해봤는데, 어쩌다 보니 다들 마음에 들어 해서.”
“뭔데요?”
“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대답이 들려오자마자 옆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렇게만 말하면 한서호의 ‘한’ 같잖아.”
맞다. 나도 방금 그 생각하고 있었어.
“물론 그 의미도 포함되긴 하지만, 태환 씨 그때 뭐라고 했었지? 여러 의미가 있었는데?”
“단 하나의 오케스트라라는 뜻도 있고, 한민족의 한(韓)이랑, 한스럽다 할 때 그 한(恨)의 의미까지······아, 이건 안 좋은 뜻이라 좀 그런가.”
말하다가 슬쩍 내 눈치를 보길래 얼른 손을 저었다.
“아뇨, 아뇨. 전 좋은데요?”
“거 봐, 서호도 좋아할 거라니까? 우리 다들 음악에 한이 맺힌 사람이잖아!”
그제야 안도하며 웃는 윤태환과 옆에서 덩달아 신나하는 연주자들.
‘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속으로 작게 읊조리며 입 끝을 올렸다.
어렴풋이만 느껴졌던 내 다음 걸음이 그들로 인해 조금 더 명확하게 그려지는 듯했다.
동시에 손끝이 저릿해지는 건.
건반을 누를 때보다 팽팽하고, 바이올린 현을 잡았을 때보다 묵직한 그 감각이 손에서 돋아나는 건.
“······.”
이곳에 모인 연주자들을 하나의 거대한 악기로 묶었을 때의 강렬한 쾌감.
그게 떠올라, 심장을 끊임없이 두드리고 있기 때문이겠지.
#
-설마 잠정 은퇴는 아니겠지?
-당분간 쉴 예정이라잖아요. 그냥 휴식기겠죠. 본인이 직접 은퇴하겠다고 한 것도 아니고.
-너무 걱정들 마세요. ‘더 클래식’ 홈페이지에 들어가 봤는데, 아직 소속 명단에 한서호 있네요!
-몇 년 동안 개인 앨범에 영화 음악에 콩쿠르까지 쉴 새 없이 활동했는데, 쉴 만하지.
-사운드 클라우디에도 곡 안 올라오네요···.
-퇴근 후에 맥주 한 캔 마시면서 신곡 듣는 게 내 삶의 낙이었는데···.
-그동안 올라온 곡들 복습하면서 들어야겠네요.
-한서호 근황 올라왔어요! 지금 영화 ‘광대’ 팀하고 포상 휴가차 하와이로 출발했다네요!
#
“서호야, 서호야··· 서호···.”
날 부르는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오다가 선명해지고.
천천히 눈을 떴다. 깜깜하다. 밤인가?
‘그럴 리가······.’
안대를 슥 내렸다. 귀가 웅웅 거린다. 불편한 먹먹함이 머릴 울려서 침부터 삼켰다. 그제야 귀가 뚫린다.
그리고 보이는 아이보리색 등받이와 영화를 보거나 위치를 알려주는 작은 LCD 모니터.
자다 깨서 주변을 관찰 중인 내가 꽤나 어리바리해 보였는지, 옆에 앉아 있던 여자 아이가 픽 하고 웃는다. 그쪽으로 고갤 돌렸다.
“밥 먹을 시간이야.”
채이연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그 너머에선 스튜어디스들이 승객들에게 치킨이냐 소고기냐를 물어보고 있었다.
곧 우리 차례가 되고, 난 소고기 기내식을 받고서 창밖을 보았다.
붉은색부터 자주색까지 촘촘한 스펙트럼으로 번지는 지평선. 그걸 반으로 쪼개며 대지처럼 끝없이 펼쳐진 구름은 빛의 영향인지 화려한 분홍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와, 멋지다.”
“그치? 아까부터 저거 보고 깨우고 싶었는데 너무 곤히 자길래 못 그랬어.”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그냥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니, 영감들이 자연스레 고개를 들 만큼.
구름 위로 악상들이 표류한다. 손 뻗으면 그대로 음악 하나가 솜사탕마냥 뚝 떼어져 나올 것만 같았다. 가만있자···.
“어···.”
갑자기 내가 손을 허우적거리자 채이연이 갸우뚱했다.
“왜?”
“나 오선지를 안 챙겨왔어.”
“응, 너 일부러 오선지 안 챙겨왔어.”
“아······.”
벙쪄서 채이연을 보았다. 그런 나를 보곤 그녀가 쿡쿡대며 큰 웃음을 참는다.
내가 작게 중얼거렸다.
“그랬지···.”
이제 막 잠에서 깨서 제정신이 아니네.
나 쉬러 온 거지.
애증의 관계가 되어버린 음악에서 잠시 벗어나서, 맛있는 것도 먹고 놀기 위해서···.
기내식을 먹는데 괜스레 시선이 자꾸 창밖으로 향한다. 무슨 악상이 넘실대는 바다를 가로지르는 배 같다. 그 위에 앉아 한가로이 고기를 우물거리고 있다니.
으아···.
어색하다···어색해···.
#
“···바덴바덴시에 연락해 그렇게 조치하도록 하겠습니다.”
박 실장의 말에 백한길 회장이 눈을 지그시 감았다가 떴다. 그리곤 입꼬리를 슬그머니 올리며 말했다.
“그나저나, 잘 놀고 있으려나.”
“서호 말씀하시는 거죠?”
“그래. 선화가 아주 호화스러운 여행이 되도록 ‘광대’ 감독 회사···.”
“M&ACT입니다.”
“맞아. 거기다가 보너스 두둑이 챙겨줬다던데. 서호에게도 즐거운 여행이 되었으면 좋겠군.”
하지만 자신의 뱉은 말과는 달리 백한길 회장의 표정이 이내 회의적으로 변했다.
“좀 힘들긴 하겠지만.”
“네?”
“걔가 그렇게 쉬어본 적이 있어야 말이지. 나도 처음에 이 병에 걸렸을 때, 가장 힘들었던 게 그거였거든. 많이 쉬어야 한다는 거.”
하물며 전생 때부터 음악이 간절했고, 그래서 음악에 미쳐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이가 음악을 잠시 내려놓고 쉰다는 게 어디 쉽겠나.
“쉬는 게 어렵다니. 저로선 이해할 수 없네요.”
탄식하는 박 실장을 빤히 바라보자 그가 찔끔하며 얼른 말했다.
“물론 쉬고 싶단 얘긴 아닙니다. 전 제 일이 참 좋습니다. 하하.”
그러자 백한길 회장이 피식 웃었다. 박 실장도 마주 웃으며 화두를 바꾸었다.
“한편으론 좀 궁금하기도 하네요.”
“뭐가?”
“서호가 충분히 쉬고 돌아와서 우리들에게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한 번도 쉼 없이 달려온 ‘작은 거장’이 제대로 쉬고 돌아왔을 때, 대체 어떤 행보를 이어갈지. 어떤 연주와 어떤 음악으로 우릴 다시 놀라게 해줄지.
그 말에 백한길 회장의 눈빛도 달라졌다.
“한 번 더 크게 성장하는 계기가 될 수 있으려나.”
“···여기서 더요?”
헛바람을 뱉으며 놀라는 박 실장.
백한길 회장은 대답 대신 손을 슬며시 움켜쥐었다. 사과 하나 제대로 못 잡을 악력이었지만 그에겐 안간힘이었고, 그만큼 지금 흥분하고 있었다.
정말이지, 참기 힘든 기대감.
그가 빙그레 웃으며 휠체어에 몸을 묻었다. 그리고 창밖을 보며 편지를 쓰듯 속으로 읊조렸다.
‘······어쨌든 지금은 편히 쉬셨으면.’
두 번의 삶, 기적적인 기회, 혹은 누군가의 희생이라는 이름들에 눌려 너무 자신을 몰아붙이진 않으셨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먼저였다.
음악은, 단 한 번도 백작님을 몰아붙인 적이 없으니.
199. 쉼표 뒤에 있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