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incarnated genius RAW novel - Chapter 305
305. 외전 – 그 스승에, 그 제자 (2)
-넌 콩쿠르를 간 거니, 여행을 간 거니?
화면 너머로 보이는 황당한 표정과 어이없어하는 목소리에 쿡쿡 웃었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브이자로 만들어 보이며 답했다.
“당연히 둘 다지.”
-심지어 콩쿠르 끝나고 여행하는 것도 아니고, 콩쿠르 전에 여행이라니.
“시차 적응이랄까.”
-무슨 시차 적응을 2주씩이나 먼저 가서 하냐.
“한국에 있으면 더 긴장될 것 같아서. 여기서 현지인처럼 지내다 보면 콩쿠르 때 덜 긴장하지 않겠어?”
-퍽이나.
최겨울이 못 말린다며 고갤 흔들었다. 그리고는 혀를 쯧 차며 덧붙여 물었다.
-그래서, 숙소는?
“예약했지. 지금 가는 중.”
-너, 런던 갔을 때 생각하면 안 된다? 그땐 교수님 회사에서 엄청 좋은 호텔로 잡아줘서 치안 걱정 없었지만, 유럽은 원래 소매치기도 많고 그래서 골목길에 있는 숙소 잡으면······.
“걱정 마. 리뷰 무지 좋은 게스트 하우스로 예약해뒀으니까. 사장님도 엄청 친절하시대.”
내 말에 다시 한번 황당한 표정을 짓는 최겨울이었다.
-게스트 하우스··· 거긴 피아노도 없을 거 아냐. 너 진짜 여행 갔구나?
“진짜 여행가지 뭐, 가짜로 가?”
-넌 늘 새롭게 황당하다···.
“그게 내 매력이지.”
-참 내···.
“나 이제 숙소 도착했어. 나중에 연락할게. 너두 콩쿠르 준비 잘 하구~.”
전화를 끊고서 길모퉁이에 있는 이층집 초인종을 눌렀다. 잠시 후 달깍 문이 열리며 이 게스트 하우스의 사장님으로 보이는 백인 여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안녕하세요.”
“어서 와요. 오늘 예약한 손님 맞죠? 비행기 시간이 일러서 일찍 오신다던.”
“맞아요. 짐만 맡아주시면 여행하다가 와서 그때 체크인 할게요.”
“체크인 시간 눈치 볼 필요 없어요. 편한 대로 쉬고 싶으면 쉬고, 여행하고 싶으면 여행하고 그러면 된답니다. 유···채···.”
핸드폰을 확인하며 버벅거리는 그녀에게 내가 얼른 말했다.
“유채봄이요.”
그러자 발음이 서툴러 미안하다며 작게 ‘유채봄, 유채봄···’ 읊조린 그녀가 덧붙인다.
“전 블랑쉬라고해요. 블랑쉬 슐레.”
사장님의 소개에 나 또한 몇 차례 그녀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그 사이, 그녀가 문을 활짝 열며 안쪽으로 손짓했다.
“우선 방으로 안내할게요. 얼른 들어와요.”
“네! 흣짜!”
“어우, 짐이 되게 무거워 보이는데. 여보! 나와봐요. 짐이 꽤 많으신데?”
“아뇨, 아뇨! 제가 들어도 돼요.”
괜찮다며 손사래를 쳤지만, 안쪽에서 나온 그녀의 남편이 짐을 번쩍 들어 계단을 올라가버렸다.
결국, 작은 가방만 메고서 사장님과 함께 계단을 올랐다.
“그러면, 만하임엔 얼마나 머물러요?”
“아직 잘 모르겠어요.”
그건 전적으로 콩쿠르의 결과에 따라 바뀌게 된다. 계속 다음 라운드로 진출하면 꽤 오래 있게 될 거고, 광탈하면 바로 짐 싸야겠지. 그건 좀 슬픈데······.
“편도로 온 거구나?”
“네, 맞아요.”
“완벽한 자유 여행이네요. 우리 딸은 언제 채봄 씨처럼 혼자 여행 다니고 그러려나.”
“어, 유럽 학생들은 막 방학 때 유럽 횡단한다고 들었는데 아닌가요?”
“그것도 사람마다 달라요. 저희 딸은 원체 내성적이어서. 게다가 사춘기까지 오면서 부쩍 쌀쌀 맞아져서 저희랑도 얘기 잘 안 했거든요. 그래도 요즘엔 좋아하는 일이 생겨서 그거 얘기할 땐 수다스러워 다행이네요. 덕분에 제가 요즘 안 하던 공부를 해요.”
“좋아하는 주제로 대화하려고 공부하는 부모님이라니. 너무 멋져요.”
“그래요? 호호.”
진심으로 감탄하자 기분 좋게 웃음 짓는 사장님. 그녀가 나를 복도 끝 방으로 안내했다.
“이 방을 사용하면 돼요. 여기가 전망도, 햇볕도 가장 좋은 방이랍니다.”
그녀의 말대로였다. 작지만 도미토리가 아니라 혼자 쓰기엔 부족함 없는 방. 그곳에 난 아치형 창문 너머로 만하임의 고즈넉한 골목길이 내려다보였다.
“와, 뷰가 너무 좋아요. 감사합니다.”
꾸벅 인사하고서 남자 사장님이 건네는 캐리어를 받아들었다. 홀린 듯 창가로 다가가는데, 뒤쪽에서 사장님이 물어왔다.
“혹시 밥 먹었어요?”
“아뇨, 아직···.”
“우리도 지금 점심 먹으려고 하는데, 같이 먹어요.”
“그래도 돼요?”
“그럼요. 얼른 정리하고 내려와요?”
사장님이 문을 닫고 나간 뒤, 기분 좋게 웃으며 캐리어를 적당한 곳에 눕혀놓았다.
곧장 오선지와 필통부터 꺼내어 가방으로 옮겼다. 반대로, 비행기에서 가득 채워버린 오선지는 캐리어에 보관했다.
“예전엔 오선지 한 장 채우는 것도 낑낑댔었는데, 점점 속도가 붙네. 교수님이 보시면 깜짝 놀라겠다.”
뿌듯함이 섞인 눈빛으로 캐리어를 바라보다가 가방을 크로스로 멨다.
언제든 곡을 쓸 준비가 끝났으니······.
“독일 가정식이라니···! 후룹. 아우 침 고여.”
일단 배를 채울 차례였다.
······.
“음식이 입에 맞을지 모르겠네.”
“너~무 맛있는데요?”
이름 모를 음식을 한입 물고 헤벌쭉 웃었다.
지켜보던 남자 사장님이 독어로 뭐라 뭐라 한다. 사장님을 바라보자 그녀가 피식 웃으며 통역을 해주었다.
“대화에 끼고 싶은데 영어를 못 해서 속상하대요.”
“아이구···제가 독어 좀 공부할 걸 그랬어요. 다음에 올 땐 꼭 배워서 올게요.”
“그래요. 꼭, 다시 와요.”
빙긋이 웃은 사장님이 포크로 음식을 찝으며 물었다.
“그러면 지금 대학생이에요?”
“네. 방학이기도 하고, 만하임에 볼일도 있어서 왔어요.”
“그렇구나~. 실례가 안 된다면, 전공이 뭔지 물어봐도 돼요?”
“그럼요. 지금 음악을 전공하고 있어요.”
내가 대답하기 무섭게 사장님이 크게 놀란다. 안 그래도 큰 눈이 더욱 커져 뭔가 잘 못 말했나 싶어 나까지 덩달아 놀랐다.
그녀가 입으로 향하던 포크까지 도로 내려놓고 자신이 놀란 이유를 설명해주었다.
“우리 딸도 음악하고 싶어 해요. 클래식.”
“어, 저도 클래식 전공이에요!”
“정말요? 이런 우연이! 우리 딸이 알면 엄청 좋아하겠는데?”
“공부하신다던 게 그럼···.”
“맞아요. 클래식 공부였어요. 보통 우리처럼 사는 게 바쁜 사람들은 클래식이 뭔지도 잘 모르잖아요. 그래서 딸이 그쪽으로 진로를 잡으면서부터 조금씩 공부하고 있죠. 그나저나, 너무 좋네요. 음악가가 우리 집에 머물다니!”
“에이, 음악가라고 하기엔 민망하구요. 아직 학생인데.”
머릴 긁적이며 쑥스러워하자 사장님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음악을 하면 모두 음악가죠. 달리 음악가가 있나요.”
“방금 되게 저희 교수님 같으셨어요.”
“호호, 그런가요?”
따뜻한 인심에 즐거운 이야기까지 곁들인 식사를 마치고 가방을 다시 멨다.
사장님이 카달로그 형태로 된 만하임 지도를 건네며 가볼 만 한 곳들을 이곳저곳 추천해 주었다.
“아, 그리고 여기 레스토랑에도 꼭 가봐요. 음식도 괜찮지만 커피랑 케이크가 정말 맛있거든요. 그러고 보니 여기도 엄청 유명했던 피아니스트가 하는 레스토랑이라던데.”
그녀가 가리킨 곳을 내려다보며 내가 끄덕였다.
안 그래도 꼭 가보고 싶은 곳이었다.
전설적인 피아니스트, 알렉스의 레스토랑!
교수님을 알기 전엔 그의 연주를 보며 공부를 했었지.
빙그레 웃으며 사장님에게 인사했다.
“다녀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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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일찍 오지. 손님 방금 나갔는데.”
블랑쉬의 말에 그녀의 딸인 레아가 이상하다는 듯 물었다.
“손님이 나간 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
“오늘 오신 손님, 한국에서 왔대.”
그제야 말없이 늦은 점심을 먹던 그녀가 관심을 보였다.
“한국?”
“그래, 한국. 게다가 클래식 전공이래.”
이제는 아예 포크를 내려놓으며 고개를 든다.
“어느 대학 다닌다는데? 혹시 HAU(-한국예술대학)인 거 아냐?”
“어? 대학이 어딘지는 안 물어봤는데.”
그러자 부엌에서 빵을 오븐에 넣고 돌아온 남편이 대화에 참여했다.
“HAU, 거기가 유명한데야?”
“응. 요즘 클래식 하는 사람들 사이에선 엄청 유명해.”
“한국이 클래식으로 그렇게 유명하단 말이지?”
주억거리는 남편에게 블랑쉬가 말했다.
“왜 아니겠어요. 한국에 그 사람도 있잖아. 호프만 쇼에 나왔던······.”
블랑쉬가 미간을 오므리며 고민하자, 레아가 얼른 답했다.
“한서호 지휘자님.”
“맞아. 미스터 한. 그 사람이 지금 가장 유명하다던데.”
“당연하지. 얼마나 대단한 분인데. 그분이 내가 아까 말한 HAU에서 교수로 계셔. 그래서 요즘엔 우리나라에서도 한국으로 유학 생각을 많이 한다니까?”
독일은 클래식의 본고장 격인 나라 중 하나였다. 게다가 그에 대한 자부심 또한 대단했기에 유학을 고려하는 학생들이 적을 수밖에 없었다.
기껏해야 프랑스나 영국 정도.
그런데 거기에 클래식이란 장르를 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나라가 급부상한 것이다.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 이례를 한 사람이 만들어냈고.
그러니 레아의 기대감 어린 표정은 부모에겐 생소하지만, 본인에겐 당연한 것이었다.
“그래서, 그 손님 언제 오시는데?”
#
······가장 먼저 시내의 작은 미술관부터 찾았다.
모차르트가 어린 시절 머물렀던 도시라서인지, 마침 전시의 내용도 모차르트의 생애에 대해서 조명하고 있었다.
‘그러니 지나칠 수 있을 리가.’
음악도 모차르트의 곡이 흘러나온다. 그가 남긴 명곡들이 끊임없이 들려오며 그의 삶을 읽으니 자연스레 몰입하게 된다.
심지어 내가 밟고 있는 이 땅이 모차르트가 뛰어놀던 만하임이잖나.
그렇게 집중해서 관람하고 있는데, 작은 멜로디가 들려왔다.
단순하면서도 선율적인. 아마 한국 사람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곡이었다.
우리에겐 반짝반짝 작은 별로 더 친숙한, 모차르트의 작은 별 변주곡.
모차르트가 프랑스의 민요 ‘아, 어머니께 말씀드릴게요’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곡이었다. 가사도 본래는 반짝이는 작은 별에 대한 내용이 아닌, 좋아하는 남자 때문에 힘들다며 엄마에게 투정부리는 내용이었다고.
“묘하다······.”
모차르트가 어렸을 적 왔던 곳에서, 그의 곡을 듣는다.
누군가는 집에서 사진이나 음원으로 충분히 들을 수 있는 것 아니냐고 하겠지만, 느낌이 전혀 다르다.
이 순간.
200년의 시간이 찰나처럼 느껴지게 되니까.
달그락—달그락—!
그러면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은 조금 전에 모차르트가 지나간 길이 된다.
달려가서 붙잡으면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천재 중 한 명을 만날 수 있을 것만 같아지니까.
같은 공간에 공존(共存)하는 느낌.
살며시 눈을 떴다.
상상은 흩어졌지만, 영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역시 일찍 오길 잘했어.”
만족스레 웃었다. 역시 만하임이라고 생각하며.
‘걸음마다 영감이 열리는 도시.’
누군가 만하임에 대해 표현했던 그 말이, 이제는 이해가 간다.
나의 걸음이 바빠졌다.
미술관을 나와 거리로 향했다.
하이든이 거닐었을, 모차르트가 누볐을.
그밖에도 수많은 음악가들이 걸었을.
바로 그 거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