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Return RAW novel - Chapter (114)
천화루주에게 말했다. “피곤하시겠지만, 일이 마무리될 때까진 소마님 옆에 딱 붙어 계십시오.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니까요.” 그녀의 안전도 챙기고 극악소마의 기분도 챙겼지만, 극악소마는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이공자의 아부신공은 고금제일인 것 같습니다.” 비웃음과 진심이 반쯤 섞인 감탄 아닌 감탄이었다. “요즘 제가 자주 쓰는 가장 강력한 초식이죠. 대신 평범한 아부는 아닙니다. 끈질기고, 상대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거기에 목숨까지 걸고 하는 아부신공이죠. 그리고 상대가 소마님인데 아부 좀 하면 어떻습니까?” 나의 당당함에 듣고 있던 천화루주가 참지 못하고 웃었다. “웃어서 죄송해요. 이 정도면 신공이라 붙여도 될 것 같아서요.” 나를 향한 천화루주의 눈빛에는 고마움 이상의 호의가 담겨 있었다. 내가 아는 그녀는 은원이 확실한 여인이고, 오늘 그녀를 구해준 이 일은 앞으로의 내 길에 큰 도움이 될 것을 나는 확신했다. 두 사람이 들어가자 마부석에 망부석처럼 앉아 있던 이안이 참았던 한숨을 내쉬었다. “대체 이런 압박감을 어떻게 버티시죠?” 일전에 서대룡이 했던 질문을 이제 그녀가 하고 있다. “안 버티면? 극악소마가 치는 사고는 다 내가 책임지기로 약속하고 나왔잖아?” “화가 머리끝까지 난 극악소마를 설득해야 한다? 저는 뒤도 안 보고 달아났을 거예요.” “너는 나보다 더 잘 설득했을 거다.” “과대평가세요.” “내가 하는 과대평가가 아니야.” “그럼요?” “천화루주가 그러더라. 너 큰일 할 사람 같다고.” “큰일 낼 사람 아니고요? 그냥 도련님 듣기 좋으라고 한 말이겠죠.” “나 듣기 좋으라면 내가 그런 큰일을 할 사람이라고 해야지.” “그렇긴 하네요.” 이안이 마차에서 내렸다. “술 생각나지?” “네.” “들어가서 한 잔 더 하자. 아까 들으려던 노래도 불러 달라고 하고.” “다 갔죠. 그녀들이 아직 기다리고 있겠어요?” “하긴 그렇겠네.” “……저라도 불러드려요?” “사양합니다. 그러잖아도 힘들었는데.” “저 잘 불러요. 제 노래 한 번도 안 들어보셨잖아요?” “상대가 검을 뽑아야 고수인 걸 아는 건 아니니까.” “이거 또 숨은 고수를 몰라주시네. 나중에 듣고 놀라지나 마시라고요.” 이안을 뒤따라 건물로 들어가려다 문득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총총한 별들을 보고 있자니, 문득 본교에 있을 내 사람들이 보고 싶었다. 시공이환술로 해변에 홀로 누워 따스한 햇볕을 쬐고 싶었다. 이안의 노래가 듣고 싶었다. 제105회 쉽지가 않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이 무인 없으니 영 허전하네요.” 서대룡의 아쉬움에 장호가 동감했다. “빈자리가 큽니다.” 그들은 지금 마가촌의 풍류주점으로 가는 중이었다. 장호는 거구였고, 서대룡은 왜소해서 지나가던 사람들이 한번은 시선을 줄 만큼 두 사람은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각주님보다 이 무인이 더 보고 싶을 줄이야.” 만날 이안까지 해서 셋이서 마시다가 지난번에는 둘이서 마셨다. 확실히 셋이서 술 마실 때보다 재미가 없었다. 이안과 서대룡이 온갖 수다로 분위기를 주도했는데, 그녀가 빠지고 말수 적은 장호만 남았으니 아무래도 분위기가 가라앉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좋은 점도 있었다. 재미를 포기한 대신 그 자리에 진지함이 들어오면서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기회가 되었다. 장호의 어릴 적 꿈이 화공이 되는 것이었다는 것을 이번에 처음 알았으니까. “이 무인은 잘 지내고 있겠죠?” 서대룡의 물음에 장호는 확신했다. “당연히 잘 지내고 있을 겁니다. 함께 간 사람이 누굽니까? 걱정 마십시오.” “걱정하는 게 아닙니다. 배 아파서 그러죠. 이 무인 앞에 온갖 생각 하지도 못한 상황들이 펼쳐지고 있을 텐데. 부럽습니다. 나도 그 자리에서 이 무인과 함께 놀라고 싶습니다!” “이 무인 옆에 극악소마도 있다는 걸 잊지 마십시오.” “생각해 보니…… 제 옆에는 장 군주님이 계신 것이 더 나은 것 같기도 합니다.” 장호가 피식 웃었다. 서대룡은 장호의 이 남자다운 웃음만으로도 이 술자리의 가치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웃음만큼은 장호를 닮고 싶었다. 그렇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두 사람은 풍류주점에 도착했다. 그들이 안으로 들어가려 할 때였다. 주인장 조춘배가 나와서 쉿 하는 시늉을 했다. “지금 들어가시면 안 됩니다.” “왜요?” “마존님들이 와 계십니다.” “누가요?” 서대룡이 살짝 고개를 들이밀어 주점 내 이 층을 살폈다. 자신들이 술 마시던 자리에 자기 사부인 혈천도마와 마불이 마주 앉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 놀란 서대룡이 후다닥 물러났다. “저희는 오늘 다른 곳에서 마시겠습니다.” “네, 그러세요.” 두 사람을 보내고 조춘배가 주점 안으로 들어왔다. 그가 이 층을 올려다보았다. 떨어진 곳에서 봐도 혈천도마와 마불 사이에 흐르는 묘한 긴장감을 느낄 수 있었다. “왜 날 보자고 했나?” 혈천도마의 물음에 마불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평소의 마불답지 않았다. 톡톡 쏴붙이는 성질머리 대신 어딘지 모를 피곤함이 느껴졌다. 마불이 혼자 술을 비웠다. “선배와 내가 술 한 잔 못할 사이는 아니잖소?” “선배? 날 배신자라고 그렇게 험담하고 다닌 주제에 선배는 무슨.” “배신자는 배신자니까.” “지금 자네가 배신자 아닌가? 대공자 두고 날 찾아온 걸 보면.” “선배는 옛날부터 뭐든 다 아는 사람처럼 굴었지. 그래서 날 더럽게 무시했고.” 혈천도마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하지만 한마디 쏘아붙이는 대신 술을 비웠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마불을 보면 한심했다. 쥐방울만한 놈이 욕심만 가득차서는. 하지만 이 오만함은 검무극을 만나면서 바뀌었다. “쉽지가 않지?” 혈천도마의 말에 마불이 고개를 들었다. 무슨 의도로 한 말인가 살폈지만, 혈천도마는 술잔에 술을 채울 뿐이었다. 자신을 조롱하려고 던진 말은 아닌 것 같아서 마불은 자신도 모르게 내뱉고 말았다. “……쉽지가 않소.” 말해 놓고서 마불은 후회했다. 혈천도마에게 조롱 섞인 말이 나올 빌미를 줬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혈천도마가 심기를 건드렸다. “지금껏 대공자의 오른팔인 줄 알고 살았는데, 아니지? 그냥 잡아둔 물고기 신세 같고. 황금잉어쯤 되겠네.” “당신은 후배랑 술한잔 기분 좋게 마시는 것도 어렵지? 그 옹졸하고 뒤틀린 마음이 그 정도도 허용이 안 되지?” “평소에 잘했어야지. 그리고 선배면 끝까지 선배라고 하고, 당신이면 처음부터 당신이라고 해.” “끝까지 지랄이지!” 꽝! 마불이 탁자를 내리쳤다. 탁자가 박살 나며 올려진 것들이 모두 바닥에 떨어졌다. “다음에는 부수면 안 돼. 우리 쪽은 탁자를 부수지 않는 마도거든.” “뭐라는 거야? 노망났어?” 마불은 신경질적으로 그곳을 떠났다. ‘젠장!’ 탁자를 부쉈을 때 이미 졌다. 뭐 좋은 꼴 보려고 혈천도마를 찾아왔을까? 자신의 심란한 마음을 그에게 들켰다는 것이 싫었다. 혈천도마는 앞으로 더 자신을 무시할 거란 생각에 화가 났다. ‘그래, 이 말라비틀어진 늙은이야, 네 마음대로 무시해라.’ 주점을 나서는 그의 뒷모습을 보다가 혈천도마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그에게서 마불이 생각했던 무시나 조롱의 기색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앞서 마불이 내뱉었던 한숨 섞인 말이 그에게서도 흘러나왔다. “그래, 쉽지가 않다.” 혈천도마가 주점을 나가면서 조춘배에게 돈을 주었다. 술값에 탁자 부서진 값을 더했다. “괜찮습니다.” 혈천도마가 노려보자 얼른 돈을 받았다. “탁자 부순 이야기는 이공자에게 이르지 말게.” “네? 네! 그럼요, 걱정 마십시오.” 그렇게 혈천도마도 그곳을 떠났다. 조춘배가 그의 뒷모습을 잠시 쳐다보다가 부서진 탁자를 치우러 올라갔다. 이공자가 없어도 사람들은 오고 있었다. 얼마 전에는 일화검존이 혼자 와서 있다가 갔다. 술은 시켰지만 한잔도 마시지 않았다. 조춘배는 안다. 이들이 자신의 풍류주점을 찾는 이유는 술맛이 좋아서도 아니고, 요리가 맛있어서도 아니며, 분위기가 좋아서도 아니라는 것을. 다들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 * * 공터에 세워둔 수레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데, 저 멀리서 비사인과 일곱 명의 사도십삼랑들이 걸어오는 게 보였다. 이번 약속장소도 그들이 잡았다. 사방이 뚫린 공터. 매복을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그를 이해했다. 목숨의 위협을 계속 받다 보면 온통 신경이 곤두서 있을 테니까. 그래, 조심해야 한다. 이렇게 조심했어도 결국 그는 죽었으니까. 내가 혼자 온 것을 보며 비사인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혼자 왔소?” “그렇소.” 극악소마는 전적으로 이번 일을 내게 일임한 것이다. 이안이 따라오겠다는 것을 두고 왔다. 비사인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자존심이 상한 모양이다. 아직 정식 후계자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천마의 혈육인데, 상대는 이렇게 혼자 다니고 있다. 반면 자신은 사도십삼랑을 일곱이나 거느리고 다니니 당연히 겁쟁이가 된 것 같겠지. 그에게 말해주고 싶다. 그깟 자존심 다 쓸데없다고. 자존심 상하는 것이, 자존심 상할 일이라고. 이게 다 젊어서 그렇다. “설마 실마리를 벌써 찾은 거요?” “그렇소.” 예상은 하고 왔겠지만 정말 그렇다는 대답에 비사인은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어떻게 이렇게 빨리 찾은거요?” 그는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 “찾은 게 아니라 그들이 찾아왔소.” 나는 수레를 덮은 거적때기를 열었다. 수레에는 다섯 구의 시체가 실려있었다. “비공자가 경고해준 대로 암습이 있었소.” 나는 그들이 천화루주를 노렸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들이 천화루의 존재를 알든 모르든, 굳이 일부러 말할 내용은 아니라 판단해서다. “이들은 백야곡의 혈수오영이오.” “어떻게 알아내셨소?” “본교의 정보력을 우습게 보지 마시오. 그대들에 대해서는 알만큼은 알고 있소.” 비사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살짝 인상을 찌푸렸을 뿐인데 그는 화를 내는 것처럼 표정이 일그러졌다. 얼굴의 상처가 너무 깊고도 흉하다. “백야곡이 이번 청부를 맡았소. 그들을 찾아가면 배후가 누군지 알 수 있을 거요. 어떤 방법을 써야 백야곡주가 청부자를 말해줄지는 그대가 생각할 일이고. 어떻소? 이 정도면 약속했던 실마리로 충분하지 않소?” 비사인은 잠시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어떻게든 이 정도로 안 된다고 하고 싶겠지만, 내가 그걸 허용할 리 있겠나? “설마 그대가 원한 것이 배후를 찾아서 그 머리통을 가져다 달라는 것이었소?” “그렇게 날 자극할 필요 없소. 이 정도면 충분하니까. 오늘부로 귀주에서 백계상단은 물러나겠소. 지난 이 년간의 손해도 계산해서 보내겠소.” “역시 사도맹의 후계자다우시오! 자, 그럼 다음에 또 봅시다.” 그렇게 돌아서려던 바로 그때 비사인의 전음이 들려왔다. ―이공자. 하지만 전음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마치 잘못 들은 것처럼, 바람에 흘러온 귀신 소리처럼 다음 말은 전해지지 않았다. 비사인은 내게 뭔가 은밀히 말을 하려다 마음을 바꿔먹은 것이다. 나는 비사인의 얼굴을 응시했다. 그의 상처는 보지 않았다. 오직 그의 눈빛만 보았다. 얼굴의 상처 때문에 그가 가진 마음보다 훨씬 독하고 강해 보이는 그였지만, 내 눈에는 보인다.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한 청년의 모습이. 말을 해라, 비사인. 그게 무슨 말이든, 네 운명을 바꾸려면 말을 해라. 하지만 비사인은 끝내 아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