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Return RAW novel - Chapter (268)
사도맹을 잘 다스려야지 하는 각오와 야망이 있었지만, 구체적으로 말할 수 있는 통치 이념은 아직 없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비사인은 아직 젊었으니까. “그 대답을 찾으면 이번 결정이 쉬워질지도 모르겠소.” 오늘은 검무극이 먼저 자리를 떠났다. 비사인은 밤이 늦도록 한참을 더 서 있었다. * * * 다음날 절벽에 비사인이 먼저 와 있었다. 그리고 검무극을 보자마자 차갑게 말했다. “당신이 무슨 짓을 저지르려는지 알고는 있소?” 나직했지만 미처 어제 내지 못한 분노가 담긴 말이었다. “그를 죽이는 것이 어떤 일인지 알고나 하는 말이오? 그게 쉬운 일이었다면, 언젠가 나를 죽일 것을 뻔히 알면서도 내가 이렇게 참고 있었겠소?” “어렵다는 것 알고 있소.” “아니, 당신은 모르오. 내가 왜 모르는지 알려주겠소. 예전에 맹주님에게 들은 말이 있소. 야율한은 절대고수들을 거느리고 있으니 쉽게 생각하면 안 된다고요. 그중에 한 사람의 이름을 말해주겠소.” “그게 누구요?” “오뢰신검(五雷神劍) 백행(伯杏).” 검무극은 깜짝 놀랐다. “그자가 아직도 살아있었소?” 사파 출신의 전대인으로 당시 사도무림을 씹어먹던 그야말로 날고 기던 고수였다. “그러니 좋게 보내줄 때 떠나시오. 그 두 다리 멀쩡할 때 돌아가라고.” 그러자 검무극이 뜻밖의 말을 꺼냈다. “본교도 한 사람을 파악하고 있소.” “당신들이 알고 있는 사람은 누구요?” “혈륜겁(血輪劫) 다말(多末).” 이번에는 비사인이 놀랐다. 그는 한자리에서 수백 명의 정파 무인들을 죽이며 혈겁을 일으킨 그야말로 악인 중의 악인이었다. 무공실력은 오뢰신검에 비할 수는 없었지만, 그 악함이 이루 말할 수 없는 자였다. “이들 두 사람이 끝이 아닐 수도 있소. 그래도 하겠다는 거요?” 비사인이 물음에 검무극이 고개를 끄덕였다. “할거요.”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대답에 비사인은 고개를 내저었다. “당신은 정말 이상하게 미친 것 맞소.” “내가 실패하더라도 당신은 손해 볼 것 없소. 그런데 왜 망설이는 거요? 혹시 날 걱정하는 거요? 그래서 오뢰신검을 말해준 거요?” 비사인이 살짝 당황했다. “무슨 소리요? 내가 당신을 왜 걱정해?” “왜 화를 내시오? 그냥 물어본 건데.” “말도 안 되는 소릴 하니까 그렇지.” 검무극은 부드러운 어조로 설득을 이어나갔다. “이 결정이 쉬운 결정 아니란 것 알고 있소.” “그런데도 당신은 나를 밀어붙이고 있지.” “당신도 경험해 봐서 알지 않소? 이런 큰 결정일수록 처음에 딱 떠오른 그 결정이 맞을 때가 많다는 것 말이오. 그 원초적인 감을 무시하면 결국 장고 끝에 악수 두는 거고. 처음에 떠오른 결정이 뭐였소?” 잠시 사이를 두고 비사인이 대답했다. “하자는 쪽이었소.” “그럼 합시다.” 비사인은 알았다. 이 일의 고민은 끝이 없다는 것을. 한 달이 지나도, 일 년이 지나도 여전히 고민이 될 거라는 것을. 그냥 확 질러버려야 한다. 그리고 비사인은 질러버리고 말았다. “좋소. 합시다.” 쉽게 생각하기로 했다. 검무극이 아니었다면 어차피 지금의 자신은 없었으니까. 목숨 빚 내놓으라고 왔으니, 그 큰 빚 이렇게 갚자고. “합시다!” 적어도 자신을 나쁜 쪽으로 끌고 가지는 않을 것 같은 사람, 검무극은 그에게 그런 사람이었으니까. 검무극은 기뻐했다. 그리고 자신의 제안을 받아준 비사인이 고마웠다. “고맙소. 정말 잘 생각하셨소. 나도 당신이 없었다면 애초에 이 일을 진행할 생각을 못 했을 거요.” “나중에 이 순간을 돌아봤을 때, 왜 그런 한심한 결정을 내렸지, 라고 자책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오.”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얽혔다. 검무극이 고마움을 가득 담은 눈빛으로 그에게 말했다. “지금은 돌아보지 맙시다. 나중에 우리가 천마가 되고 사도맹주가 된 후에, 돌아보는 건 그때 합시다.” 제231회 잘못된 인생보다 더 나쁜 건. “야율한을 죽일 계획은 있소?” 비사인의 물음에 검무극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직은 없소.” 어이없어하는 비사인을 보며 검무극이 말했다. “당신 허락이 떨어져야 본격적인 계획을 세울 수 있지 않겠소?” “내 허락이 떨어지면 없던 계획이 생기기라도 한단 말이오?” “생길 거요.” “정말 당신은 대책 없는 사람이오.” 말은 그렇게 해도 비사인의 기분은 나빠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결정을 내리고 나니 속이 시원했다. “이것만은 지켜주시오.” 비사인이 한 가지 조건을 내세웠다. 이미 허락을 하고 말하는 것이니 조건보다는 부탁에 가까웠다. “오뢰신검이나 혈륜겁은 죽여도 되지만, 극도병단은 건들면 안 되오. 그들은 야율한의 개인 수족이 아니오. 본맹의 최정예들이지.” 천마신교로 따지면 마군들은 그냥 두고 마군주만 죽여달라는 말이다. 야율한을 잃는 것만으로도 큰 손실이지만, 그래도 손실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이었다. “알겠소.” 검무극은 흔쾌히 받아들였다. 비사인이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무슨 짓을 하는지 모르겠소. 이번 일이 잘못되면 야율한에게 죽는 건 둘째치고, 당장 후계자 자리에서 쫓겨날 수도 있소.” “쫓겨나면 내게 오시오. 내가 받아주겠소.” “죽으면 죽었지, 거기로는 안 갈 거요.” 비사인의 흉측한 얼굴이 일그러졌다. 검무극은 알 수 있었다. 그가 기분 좋게 웃었다는 것을. 그를 정말 유심히 보지 않는다면, 결코 알 수 없는 그의 감정이었다. “내가 도울 일 있으면 연락하시오. 당분간은 그 객잔에서 점심을 먹을 테니까.” “고맙소.” 그렇게 비사인이 먼저 그곳을 떠났다. 검무극은 그곳에 머무르며 사도맹의 밤 전경과 밤하늘을 한참 동안 올려다본 후에야 그곳을 떠났다. * * * 안가로 돌아온 나는 곧장 고월과 극악소마, 풍천교주를 한자리에 모았다. “사도맹 후계자 비사인이 뒷마무리를 책임져 주기로 약속했습니다. 이제 우린 야율한을 죽이기만 하면 됩니다.” 내 말에 모두 깜짝 놀랐다. “대체 어떻게 그 사람의 마음을 바꾼 건가?” 질문을 던진 풍천교주는 물론이고 극악소마와 고월마저 놀란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설득하더라도 시간이 걸릴 거로 생각했는데, 너무 빨리 설득에 성공한 것이다. “젊은 후계자들끼리 통하는 것이 있지 않겠습니까?” “정말 자네는…….” 뭐라 말을 해야 할지 몰라 풍천교주는 고개를 가로젓고 말았다. “비사인이 부탁을 들어준 것은 희소식이지만, 나쁜 소식도 있습니다. 야율한의 수하를 추가로 알게 되었습니다.” 혈륜겁이 야율한의 수하란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새로 알게 된 사람은 바로 오뢰신검입니다.” 오뢰신검이란 말에 모두 깜짝 놀랐다. 새외의 풍천교주도 그에 대해 기억하고 있었다. “한때 무림에 피바람을 일으켰던 자 아닌가? 무림공적으로까지 몰렸고.” “맞습니다. 바로 그자입니다.” “죽은 줄 알았는데, 야율한의 그늘에 숨어 있었군.” 혈륜겁도 상대하기 쉽지 않은 자인데, 오뢰신검은 그보다 한 수 위의 실력을 지닌 자였다. 그때 풍천교주가 불쑥 생각났다는 듯 물었다. “그럼 그들은 두고 야율한이 오직 혼자 있을 때 죽이면 되지 않나? 그들도 사람인데 언제나 붙어 다니지는 않을 테니까.” 모두의 시선이 내게 모였다. 세 사람 모두 같은 마음이었는데, 그럴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 “말씀드렸다시피 야율한이 죽고 나면 그를 죽인 것은 비사인이 될 겁니다.” 가장 먼저 고월이 내 의도를 알아차렸다. “그들이 비사인에게 복수할 것을 걱정하시는군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어떤 사이인지는 알 수 없어. 복수해줄 관계인지, 그냥 떠나버릴 관계인지도. 다만 만에 하나라도 복수를 마음먹는다면, 비사인은 반드시 죽고 말 거네.” “비사인이 공자님을 돕겠다고 나선 이유를 확실히 알겠습니다.” 그를 생각해주는 마음을 비사인도 알아차렸을 거란 말이었다. 다시 풍천교주가 나섰다. “이번 일 나도 돕겠네.” 그가 이번 일을 돕겠다고 나설지는 나도 예상하지 못했다. “정말이십니까?” “부끄러워서라도 도와줘야겠네.” 비사인이 복수 당할 수도 있다는 점을 생각지 못하고 야율한만 죽이면 되지 않느냐고 물었던 것이 부끄럽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그건 핑계고 나를 돕기 위해 나섰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둘이서 상대하기에 너무 벅찬 상대 아닌가? 왜? 내 실력이 못 미덥나?” “교주님의 실력을 못 믿으면 누굴 믿겠습니까? 다만 교주께서는 더 중요한 일을 해주셔야 해서요.” “무슨 일?” “지금까지처럼 고 군사를 지켜주십시오.” 내 시선이 고월을 향했다. “만에 하나라도 우리 쪽이 노출되면 고 군사가 위험해질 수도 있습니다. 그때는 교주님이 지켜주셔야지요. 지금까지 교주님이 계셔서 고 군사에 대해서는 한 번도 걱정한 적이 없습니다.” “자네는 괜찮겠나?” “저는 소마님이 계시니까요.” 내 시선이 지금껏 조용히 듣고만 있던 극악소마를 향했다. 이 부담스러운 상황에서 극악소마가 웃으며 말했다. “저만 믿으십시오.” “네. 소마님만 믿겠습니다.” 이 순간 진짜 내 마음은 이것이었다. 소마야, 나만 믿어라. 어떤 상황에서도 널 죽이는 일은 없을 거다. 이것이 그가 내게 베푼 호의에 대한 나의 응답이다. * * * 총군사 사마명은 작전지휘실에 있었다. 천마전보다 더 안전하다고 알려진 이곳에서 검무극과 관련한 극비 작전이 진행 중이었다. 사마명은 검무극이 출교한 후 내내 긴장하고 있었다. 만에 하나 사건이 터지면 재빨리 검무극을 지원해야 했고, 사도맹과의 관계가 전쟁으로 치닫지 않게 조종해야 했다. 그리고 이런 움직임을 사도맹 측에 들키지 않아야 했다. 지금까지 검무극은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임무를 잘 수행하고 있었다. 지생을 없애고 애차를 없애고 여불개까지 이쪽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없앴을 때, 통천각의 수석 군사는 이렇게 말했다. “제가 야율한의 군사였다면…… 저도 꼼짝없이 당했을 겁니다.” 사마명은 아닐 거라고 말해주지 못했다. 자신이라도 장담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고월의 능력이 보통이 아닙니다. 중원에 구축한 정보망도 우리 통천각과 겹치지 않고 상호보완할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이공자가 천마가 된 후까지 생각하고 있는 거지.” “그는 정말 큰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검무극이 새로운 마도를 밀어붙이듯, 고월이 자신의 자리에 앉으면 통천각 역시 새로운 통천각이 될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오늘 새로운 보고가 날아들었다. 수석 군사가 심각한 얼굴로 사마명의 집무실로 들어왔다. “이공자 쪽에서 한 사람에 관한 정보를 요청해왔습니다.” “누구인가?” 수석 군사가 심호흡을 크게 한 후에 보고했다. 자신이 얼마나 놀랐는지를 미리 표현한 것이다. “오뢰신검입니다.” 사마명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야율한이 오뢰신검까지 데리고 있답니다.” 혈륜겁이 야율한의 수하로 있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정보였다. 한데 오뢰신검까지 있었다고? “야율한에 혈륜겁에, 오뢰신검까지. 두 사람이 그들 전부를 상대할 수 있을까?” “쉽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작전의 성공 확률이 어떻게 되나?” “오뢰신검의 존재를 몰랐을 때 사 할로 예상했습니다.” 통천각에서 분석한 확률이었다. 정확한 검무극의 무공수위는 알지 못했지만, 지금껏 그가 해낸 여러 일을 바탕으로 분석한 결과였다. “한데 오뢰신검이 야율한을 돕는다고 가정하면 이 할대로 떨어질 거로 예상합니다. 자세한 분석은 마치는 대로 보고드리겠습니다.” “이 할이라.” 통천각의 작전 성공률 분석은 거의 정확했다. 이 할이라는 수치는 실패로 봐야 한다. “만에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