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Return RAW novel - Chapter (267)
“!”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음이 복잡할 것이다. 야율한은 맹주가 되기 위해선 반드시 죽여야 하는 적이지만, 동시에 사도맹을 지탱하는 가장 큰 힘이었으니까. “이번에 대야방을 친 것은 당신을 치기에 앞선 전초전에 불과하오.” 비사인은 그 말을 부정하지 못했다. 대야방주의 죽음은 사도맹주나 그에게도 큰 충격이었을 테니까. “기억나시오? 언젠가 내가 천마가 되고, 당신이 사도맹주가 되어 다시 만났을 때, 그때를 추억하며 악수나 한 번 하자고 했던 일.” 나는 갈등에 휩싸인 비사인의 두 눈을 응시했다. 그가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할 일임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 일에 내 성패도 달려 있다. “나는 야율한이 아니라 당신과 악수하고 싶소.” 제230회 처음에 떠오른 결정이 뭐였소? 새로운 운명이 다가왔음을 알리며 한 줄기 바람이 불어왔다. 비사인의 머릿속에 수많은 상념이 스쳤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의심이었다. 만약, 이 모든 게 자신들을 잡아먹기 위한 마교의 술책이라면? 하지만 이내 그 생각은 지웠다. 다른 사람이라면 모를까, 자신이 경험한 검무극은 그런 수작을 부릴 사람은 아니었다. “당신은 직접 개입할 필요 없소. 한 가지만 해주면 되오.” “뭘 해달라는 거요?” “내가 야율한을 없애면, 당신이 없앤 것으로 처리해 주시오.” 비사인은 깜짝 놀랐다. 설마 도와달라는 것이 그런 일인 줄은 몰랐다. “왜 그런 부탁을 하는 거요?” “당연히 본교와 귀맹 사이에 전쟁이 발발하지 않기를 바라서요.” 마교와 사도맹과의 전쟁. 비사인은 무림맹과의 전쟁은 상상해 봤어도, 마교와의 전쟁은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전력으로 따졌을 때, 사도맹은 멸망하게 될 것이다. 물론 마교 역시 크나큰 피해를 보게 될 테고. 무림맹은 그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을 것이다. ‘야율한을 마교의 손에 맡겨서 죽인다?’ 차도살인(借刀殺人)의 기쁨보다 숙적을 내 손으로 처단하지 못하고 남의 손에 맡긴다는 찝찝함이 더 컸다. 자존심이 상했다. 죽이더라도 자신이 죽여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 마음을 감춘 채 비사인이 다른 이유로 곤란함을 표했다. “맹주님은 내가 죽였다는 걸 믿지 않을 거요.” “당신이라면 믿게 할 수 있을 거요. 적어도 이번 일을 잘 무마할 수 있을 거요.”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다. 검무극은 비사인의 능력과 잠재력을 믿었다. 잠시 사이를 두고 비사인이 물었다. “야율한을 없앨 수는 있소?” “그건 내가 알아서 할 일이고.” 검무극의 시선이 사도맹을 향했다. 빈틈없이 밝혀진 횃불들이 사도맹의 밤을 지켜내고 있었다. “당신이나 나나, 우리가 저곳을 차지하는 일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오. 이미 저 자리를 차지한 사람들은 변화를 싫어하고, 우리를 믿지 않소. 아무 노력 없이 차지할 수는 없소. 쉽게 차지하면 쉽게 빼앗길 거요.” 잠시 고민하던 비사인이 단호히 말했다. “거절하겠소. 만약 그를 없애더라도 내가 없앨 거요.” 비사인이 돌아서서 걸어갔다. 검무극이 뒤에서 말했다. “마음이 바뀌면 자정에 이곳으로 오시오. 나는 매일 올 테니까.” 비사인은 말없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 * * “맹주전 반응은 어떤가?” 야율한의 물음에 차환이 대답했다. “조용합니다.” 야율한은 군사를 두지 않았다. 모든 일을 자신이 판단하고 결정했다. 누군가 그에게 왜 군사를 두지 않았느냐고 물었을 때,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군사 없이도 잘해왔는데, 굳이 필요한지 모르겠다고. 오만한 말이었지만, 저 말이 알려지면서 사도맹 내부에서 그를 따르는 이들이 더욱 늘었다. “지생과 애차가 죽으면서 수입에 큰 차질이 생겼습니다. 지생이 하던 신선채는 다른 자가 이어받을 수 있지만, 문제는 애차와 진독거사가 만들어 팔던 광폭입니다. 진독거사가 죽는 바람에 광폭 제작이 중단되었습니다. 왜 진독거사에게서 광폭 제작법을 미리 얻어내지 않으셨습니까?” 차환은 이해할 수 없었다. 애차라면 모르겠지만, 야율한이라면 진작 얻어냈을 것이다. 진독거사는 야율한을 무척이나 두려워했으니까. “만약 그랬다면 자넨 어떤 생각이 들었겠나?” “철두철미하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야율한이 차가운 눈빛으로 차환을 응시했다. 차환은 자신의 대답이 틀렸음을 직감했다. “수하가 가진 것을 뺏는 수장은 결코 최고의 수장이 될 수 없네.” 차환은 감격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자신이 얼마나 감격했는지, 그래서 얼마나 야율한을 존경하는지 표정으로 드러냈지만, 야율한은 그것을 습관적 감격이라 여겼다. 쉽게 감격하고. 쉽게 존경하고. 야율한이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태도다. 하지만 적어도 차환의 이 습관적인 감격에 기만은 들어있지 않았기에 그를 옆에 두는 것이다. 두 사람이 상대를 보는 마음에는 확실한 온도 차가 존재했다. “소탐대실하면 안 돼! 우린 먼 길을 가야 하니까!” “네!” 그때 밖에서 수하가 보고했다. “비 공자가 찾아왔습니다.” 야율한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지어졌다. 왠지 그가 올 것 같았는데, 예상이 맞은 것이다. “모셔라!” 그리고 차환에게 물러가라는 눈짓을 했다. “소인은 물러가겠습니다.” 차환이 나가고 잠시 후 비사인이 안으로 들어섰다. “어서 오시오, 비 공자.” “단주님, 잘 지내셨습니까?”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얽혔다. 두 사람은 모두가 인정하는 숙적이었다. 다들 둘 중 한 사람은 상대에게 죽으리라 생각했다. 그 시기가 언제인지 모를 뿐이다. “바쁘신 분 시간 뺏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바쁘기는 우리 비 공자가 더 바쁘지 않소. 자, 앉으시지요.” 두 사람이 탁자에 마주 앉았다. 시비가 차를 내왔지만 비사인은 찻잔에 손도 대지 않았다. “대야방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저항이 너무 거세서 어쩔 수 없었소.” “너무 거세게 몰아붙이신 것은 아니고요?” 부드러운 질문 속에 질책이 실렸다. “극도병단이 좀 거칠긴 합니다만, 그렇다고 일부러 살생을 즐기는 사람들은 아니지요.” 야율한이 극도병단을 앞세웠다. 이제부터 말을 잘못했다간 극도병단을 모욕하는 것이 되기에, 이 말로 비사인의 입을 막은 것이다. 비사인이 가만히 야율한을 응시했다. 얼굴만 따져서는 비사인이 험악했지만, 아무 감정이 담기지 않은 야율한의 두 눈은 그 험악함을 압도했다. 비사인은 인정해야 했다. 지금까지 야율한을 두려워했다는 것을. 한 번도 감정을 드러내지 않은 저 머릿속에 어떤 생각이 있는지 알 수 없었으니까. 몰랐기에 더 두려웠다. “사람 속은 참 알 수가 없습니다. 평생을 본맹을 위해 헌신해온 대야방주께서 무림맹과 손을 잡다니. 솔직히 두렵습니다. 제가 맹주가 되었을 때, 또 저런 배신자가 나오지 말라는 법이 없지 않겠습니까?” “비공자는 인품이 훌륭해서 본맹을 잘 이끌어 나갈 거요.” “맹주님이 인품이 훌륭하지 못해 배신을 당한 건 아니지요.” 야율한은 비사인에게서 어떤 도발과 자신감을 읽었다. 평소와는 다른 이 모습에서 야율한의 오해가 깊어졌다. ‘사도맹주가 그에게 언질을 준 모양이군.’ 보이지 않는 전쟁이 시작되었다고 그에게 말했으리라. 야율한은 평소와 다른 이 태도가 사도맹주가 아니라 검무극 때문임을 알지 못했다. ‘과연 너 같은 애송이가 사도무림을 이끌어 갈 수 있겠느냐?’ ‘내가 당신 나이가 되었을 때는 당신보다 훨씬 큰 사람이 되어 있을 거요.’ ‘애송이는 자라서도 애송이일 뿐이다. 결코 넌 맹주 자리에 앉을 수 없다.’ 두 사람 눈빛에 담긴 진심은 이런 것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입에서는 마음과는 다른 부드러운 말들이 흘러나왔다. “내가 오해를 일으킬 실언을 했소이다.” “아닙니다. 사안이 사안인지라 제가 예민하게 굴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정중히 사과한 후 비사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 실수하기 전에 일어나야겠군요.” 떠나기 전에 비사인은 한마디 말을 남겼다. “저는 단주님만 믿습니다.” 야율한이 든든하게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비사인이 방을 나왔다. 결정을 내리기 전에 야율한을 한 번은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 야율한을 보면 결정이 쉬워지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여전히 어려웠다. 자신이 사도맹주가 되려면 반드시 그를 죽여야 했다. 하지만 그 시기가 지금일까? 그것도 마교의 칼을 빌려서? 석관추의 손자를 해치우고 후계자가 되었을 때, 앞으로 어떤 일도 잘해나갈 수 있으리라 자신했는데. 여전히 자신은 인생을 바꿀 큰 결정을 내려본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밖으로 나온 비사인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요 며칠 우중충한 날씨가 이어지고 있었다. * * * 다음 날 객잔에서 밥을 먹고 있는데 다시 전음이 날아들었다. -만날 같은 곳에서 밥 먹으면 암살당하기 딱 좋은데. 검무극의 전음이었다. -하루도 못 참고 이렇게 찾아올 거였으면, 그 절벽에서 기다리겠다는 말은 왜 한 거요? -기다리는 것은 기다리는 거고. 지금은 그대를 설득하러 온 거요. 이번 일에 우리 운명이 달려있으니까. 잠시 비사인의 젓가락질이 멈췄다. 그가 반주로 술을 한잔 마셨다. 지켜보던 사도십삼랑의 일랑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무슨 고민이라도 있으십니까?” “일랑.” “네, 공자님.” “제가 사도맹주가 될 것 같습니까?” “무슨 말씀이십니까? 당연히 차기 맹주는 공자님이시지요.” “맹주가 되고 십 년 후에도 내가 맹주 자리에 있겠냐는 말씀입니다.” 순간 일랑은 일찰나 대답을 망설였다. 비사인은 알 수 있었다. 그의 대답을 망설이게 한 존재가 바로 야율한이란 것을. 일랑이 대답했다. “저희가 평생 안전하게 지켜드릴 겁니다.” 비사인이 미소를 지은 후 젓가락질을 시작했다. 다시 검무극의 전음이 날아들었다. -저 사람들도 다 죽을 거요. -날 설득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까지 끌어들일 필요는 없소. -당신만의 문제가 아니란 것을 말하는 거요. 당장 나만 해도 마찬가지요. 그동안 내가 좋아했던 사람, 나와 가까웠던 사람들. 내 실패는 그들의 실패가 될 거요. 내가 원하지 않더라도 말이오. 비사인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검무극은 더는 그를 몰아붙이지 않았다. 대신 한번 더 보기를 청했다. -할 말이 있소. 이따 절벽에서 봅시다. * * * “왜 보자고 한 거요?” 자정이 되었을 때 비사인은 절벽에 나왔다. 먼저 와 있던 검무극은 밤하늘에 총총한 별을 보고 있었다. “며칠 동안 날이 흐려 별을 볼 수 없었는데, 오늘은 너무 잘 보이오.” 비사인이 검무극의 시선을 따라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정말이지 별이 쏟아지고 있었다. 한참이 지난 후 검무극이 먼저 입을 열었다. “내가 사람들에게 하는 말이 있소. 내 마도는 탁자를 부수지 않는다.” 비사인이 고개를 돌려 검무극을 바라보았다. 검무극은 여전히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나는 힘 있는 자들이 약한 사람들을 짓밟는 꼴을 못 보겠소.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게 본교 사람이든, 정파든, 사파든 참을 수가 없소. 알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야율한의 수하들이 신선채란 것을 만들어서 젊은이들을 농락하고 파멸로 이끌고 있었소. 광폭이란 약을 만들어서 죄 없는 사람들까지 죽음으로 이끌었소. 그 지랄을 두고 볼 수가 없는 것이 내 마도요.” 검무극의 시선이 천천히 하늘에서 비사인을 향했다. 눈이 마주쳤을 때 검무극이 물었다. “당신의 사도는 무엇이오?” 비사인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막연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