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y singer is one RAW novel - Chapter 28
23. 친구
23. 친구
교장실을 나서고 나자 예성은 큰 숨을 몰아쉬었다.
“됐어!”
예성은 주먹을 꽉 쥐었다.
자신이 걱정했던 만큼 어렵게 일이 흘러가지 않아 다행이다.
예성은 잘 되지 않으면 무릎을 꿇으며 애원할 생각까지 했다.
예성의 생각엔 방과 후 동아리 활동이 없는 입시학교에서 음악방송을 하겠다는 것은 학교에 반기를 드는 것과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예성은 기분 좋은 걸음으로 교실로 향했다.
그런 예성의 귀에 상우의 목소리가 교실 밖으로 흘러 나왔다.
“바로 그 때 예성이 선생님 앞에 무릎을 꿇으며 말했지. 선생님 노래가 하고 싶어요. 하지만 길이 보이지가 않아요. 제자에게 길을 비출 수 있는 빛을 내려주세요. 이러자······.”
“정말 예성이 무릎을 꿇었다고?”
“야. 그건 놀랍지는 않잖아. 쉬는 시간에 허구헌 날 무릎 꿇으며 에어 여친에게 용서해달라고 비는 녀석인데.”
“그건 맞다 정말 값싼 무릎이지. 그래서 선생님이 허락한 거야?”
친구들의 말에 상우가 목소리를 가다듬고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예성아, 너에게 길이 보이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음악은 사람에게 감정을 전하는 학문이다. 말에는 그 힘이 있다. 하지만 너의 한 없이 가벼운 행동으로는 어둠을 밝힐 수 없다. 음악은 소꿉장난이 아니야”
상우의 말이 끝나자 여기 저기 탄성이 들려왔다.
“음악 선생님 완전 촌철살인일세.”
“하긴 학교에선 음악선생님 만큼 진지한 사람은 본적이 없지”
“예성이 완전히 제대로 걸렸네.”
‘전혀 아니거든.’
예성은 뛰쳐나가 저 사실을 날조하는 기레기들을 난도질 해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참아야 했다. 자신은 달라지기로 마음먹는지 하루밖에 되지 않았다.
여기서 무너질 수는 없었다.
“야, 김상우!”
“와, 왔어?”
상우는 예성의 등장에 움찔했다.
‘아직 대사가 남았는데······.’
“뭘 놀라? 네가 완전히 틀린 말을 한 것도 아닌데? 그건 그렇고 너희 아버지가 나 주라는 것 없었어?”
“아! 잊고 있었다. 잠깐만”
상우가 허둥지둥 자기 자리로 향했다.
“야! 김상우, 하던 이야기는 마저 끝내야지.”
“끝내기는 뭘 끝내? 내가 무릎 꿇고 음악선생님이 도움을 주기로 했다. 됐지?”
“이야기의 흐름상 그건 우리도 알거든? 우린 그냥 상우의 뻥을 듣고 싶은 것뿐이야.”
“그래. 상우의 침소봉대 기술은 누구도 따라갈 수 없어.”
“야. 뒷담화는 사람 없는데서 하는 것도 문제지만 사람 앞에서도 문제거든”
예성은 말하고 상우에게로 갔다.
상우의 손에는 하얀 봉투가 들려 있었다.
“이거야?”
“그래?”
예성은 손을 뻗어 봉투를 잡아 당겼지만 상우는 손에서 놓지 않았다.
“왜?”
“이걸 구입한 돈 어디서 난 거야?”
예성은 상우가 이렇게 물어볼 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리고 해결책도 이미 생각해 뒀다.
“예린이가 적금 깼다.”
“뭐? 예린이가?”
“그래. 예린이가 얼마나 똑 소리 나는지 알지?”
“그렇지. 공부도 잘하잖아. 히야. 네 동생 대단하다. 이 비싼걸.”
“동생이 효녀지. 나는 그냥 네 아버지를 알아서 심부름 해주는 것뿐이야.”
내 말에 또 상우는 감격한 표정을 지었다.
“네 동생이 널 막 대하는 걸 보고 참 못된 애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효녀네. 이 비싼걸, 네 동생은 혹시 심청이의 환생이 아닐까?”
이 되도 않는 말에 예성은 이놈이 동생의 실체를 자세히 모르는 게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보다 상우야?”
“응?”
“너 나 좀 도와라.”
“뭘 도와?”
예성은 상우에게 점심시간을 통한 교내 방송을 할 거라는 이야기를 했다.
“재미는 있겠는데, 학교에서 허락해줄까?”
상우도 기본적으로 뒤에서 노는 아이라 예성과 마찬가지로 심심했다.
“일단 학교 최고 권력자에게 건의하고 왔어.”
“정말?”
“응.”
“너 대단하다. 어떻게 거길 찾아갈 생각을 했어?”
“처음에는 아래에서 치고 올라갈까 했는데, 담탱이조차 통과할 자신이 없어서.”
예성의 말에 상우는 격하게 동의를 했다.
담임선생님은 현실주의자다. 항상 하는 말이 ‘너희들 세상이 만만해 보이냐?’ 라는 말이다.
그런 선생님의 눈에는 자신과 예성이 인생을 가지고 도박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 같았다.
누구나 걷는 길을 놔두고 왜 힘든 길을 가느냐고 말을 하지는 않지만 언제나 못마땅하신 분이다.
“그래. 담임선생님은 강적이야.”
“일단 교장선생님께서 교무회의를 거치고 내일 담임선생님 편으로 결과를 알려주신다고 했다.”
“잘됐으면 좋겠다. 학교 오는 재미가 늘 테니까.”
“야! 학교를 재미로 다니냐?”
“우린 그렇지.”
상우의 말에 할 말이 없다.
“그런데 예성아, 어떻게 할 건데? 그냥 노래만 주구장창 할 수는 없잖아?”
“야! 내가 왜 너를 섭외하겠냐? 난 노래, 넌 멘트”
“아, 나 갑자기 자신이 없어지는데.”
”
“자신은 개뿔, 연기하려면 말을 잘해야지.”
“연기와 토크는 전혀 다르거든? 주어지는 대사로 연기를 하는 거랑 대사를 만들면서 연기하는 거랑 같아?”
상우의 말에 예성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다른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홍수와 규석이 보였다.
“홍수, 규석아, 이리로 와 봐. 할 이야기가 있다.
“잠깐만.”
‘아 이렇게 동생의 말대로 쌍맷돌이 가동하게 되는 건가?’
예성은 홍수와 규석에게 방송이야기를 하며 도움을 청했다.
‘이놈이 드디어 정신을 차렸구나. 진작 이랬어야지.’
홍수의 입장에서는 불감청 고소원이었다. 누구보다 예성의 성공을 바라고 있었다.
자신의 야망을 이루기 위해서는 예성의 성공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그래. 우리가 뭘 해주면 되냐?”
규석은 예성의 도움요청에 거리낌 없이 응했다.
장규석.
규석은 목동 시장횟집 삼 대째로 내정되어 있는 소년이다. 그러다 보니 예성들과 마찬가지로 공부에 취미가 없었다.
“그러게 너희들이 뭘 할 수 있을까?”
예성도 불러 놓고 보니 할 말이 없었다. 이 친구들은 특이하지만 상우만큼 인지도가 없었다.
“뭘 할 수 있긴? 방송은 출연자만으로 완성 되는 게 아니야. 작가와 스텝이 있어야지. 일단 라디오라고 생각하고 방송을 짜자.”
“라디오?”
“그래. 라디오 들으면 노래 틀고, 말 조금 하고, 사연 읽어주면 끝이잖아.”
“그렇게 들으니 정말 간단하네. 노래는 나, 말은 상우, 사연은 어쩔 건데? 상우 핸드폰 번호라도 깔까?”
“왜 내건데?”
상우의 말에 우리는 입을 모아 말했다.
“잘 생겼으니까.”
“제길.”
“그럴 필요 없어. 학교 게시판을 쓰면 되지.”
“그럼 규석이가 학교게시판앞에 서있어야 되는 건가?”
상우의 말에 홍수는 기가 찼다.
“이 또라이 같은 놈아? 내가 지금 그 게시판 말하는 거냐? 인터넷 게시판 말하는 거지.”
“학교에 그런 것도 있어?”
예성도 모르고 있긴 마찬가지다.
“도대체 학교 일정에 관심이 있어야 알지. 다른 학생들은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을 인터넷 게시판에서 알거든?”
“나도 그건 알아. 내가 말하는 건 우리가 쓸 수 있는 게시판이 있냐는 이야기야.”
“있어. 열린 마당이라고 학생들이 글을 쓸 수 있게 되어 있지. 아무도 안 쓰긴 하지만.”
“그런데 우리가 방송한다고 누가 쓸까?”
“당연히 쓰지. 우리가 있잖아?”
홍수의 당당한 말에 예성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니까 네가 쓴다고?”
“어차피 방송이야. 장사 원 투데이 해? 짜고 치는 게 당연하잖아.”
홍수의 당당한 말에 기가 찼다. 아직 18살의 창창한 나이에 이렇게 세파에 찌들어 있다니.
우리는 할 말을 잃었다.
“시팔, 네가 짱 먹어라.”
“그럼 그렇게 하는 걸로 알고 내가 계획을 짠다.”
“그래. 부탁한다.”
그렇게 우리의 작당모의는 끝을 맺었다.
*****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예성은 엄마의 방에 들어갔다. 너무 오랜 만에 들어선 방이라 모르는 사람의 방에 들어선 낯선 느낌마저 든다.
‘내가 마지막으로 엄마 방에 들어온 게 언제였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엄마는 항상 우리보다 늦게 들어오니 엄마 방에 들어올 일이 없다.
건강검진권을 엄마의 화장대에 올려놓으며 놓여있는 화장품을 보니 엄마의 인생이 보였다.
죄다 견본품, 견본품, 견본품.
커다란 병으로 된 화장품이 보이지가 않는다. 엄마에게 왜 이리 사냐고 화를 내어봤자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아는 내가 싫다.
‘화장품을 하나 살까? 여자 것은 비싸다고 하던데, 10만원으로 되려나?’
동생과 이야기를 나눠 봐야겠다.
예성은 엄마의 방을 나와 가방만 내려놓고 기타를 울러 매었다. 준비물은 기타와 물 한 병이면 충분하다.
‘가자.’
파리공원.
목동에서 아마 제일 큰 공원일 것이다. 예린이는 친구들과 자주 와 봤을 것 같다. 옆에 양천 도서관이 있으니까.
길을 확실히 알기 위해 인터넷을 뒤져보니 이곳은 꽤 유명한 장소인 듯 했다.
1986년 프랑스 수교 100주년 기념으로 조성된 공원이라고 나와 있었다. 프랑스 파리에는 서울공원을, 서울 목동에는 파리광장을 세웠다. 이게 파리공원이다.
‘후와, 정말 크긴 크구나. 아파트 놀이터랑 비교가 안 돼. 사람도 많아.’
6월의 끝 무렵이라 본격적인 여름의 더위가 시작되고 있는 시점이다. 6시가 넘은 시간인데도 날도 밝고 땅에서는 열기가 솟아오른다.
예성은 자전거를 잠그고 공원을 여기 저기 돌아 다녔다. 자신이 노래할 공간을 찾기 위해서였다. 인터넷에서는 야외 공연 무대 공간도 있었다. 일단 그곳을 찾아가 보기로 했다.
‘히야, 정말 잘 만들어 놓았네.’
지나가는 길에 마치 숲을 도시 속으로 옮겨 놓은 공간이 있었다. 원두막을 지어놓고 나무의 밑에는 긴 의자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사람이 엄청 많았다.
‘이곳에서 할까? 아니야. 일단 야외공연장을 가보자.’
예성은 걸음을 옮겨 야외 공연장을 찾았다. 하지만 실망스러웠다.
넓디넓은 공간이었지만 사람이 없었다.
돌로 된 공간이라 더워서 그런 것 같았다.
‘아까 그곳으로 가자. 아, 시발 긴장된다.’
예성은 오기 전 선생님의 충고를 되새겼다.
‘예성아, 노래는 자신감이다. 그리고 고개를 숙이고 노래하지 마. 목에 힘이 들어가 성대가 확실히 열리지 않는다. 그리고 노래 전에 하품하는 거 잊지 말고.’
하품.
선생님은 참 간단하면서도 실용적인 것을 많이 알고 계신다. 하품을 잘해야 노래를 잘하게 된다니, 웃기는 말이지만 효과는 확실했다. 목을 열어야 좋은 소리가 난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다. 그런데 그게 하품이라니.
알고 나니 어이가 없어 한참을 웃었다.
걸음을 옮겨 다시 숲이 조성된 곳으로 돌아왔다.
‘와, 내가 정말 이곳에서 노래를 하는 건가?’
마음을 굳게 먹었지만 쉽지가 않다. 아는 사람들 앞에서 쑥스러워 하며 노래 하는 거랑 마음의 떨림이 차원이 달랐다.
예성은 일단 기타와 물병을 꺼냈다. 선생님의 두 번째 가르침이 머리를 스쳤다.
‘예성아, 노래를 하던 안하든 물을 계속 마셔라. 그리고 노래를 한곡 끝날 때마다 물을 마셔. 목소리는 성대의 성대점막을 진동시켜 입으로 소리를 낸단다. 이 성대 점막은 말을 많이 할수록 건조해져. 그러다 점막에 상처가 나고 가수에게 치명적인 성대 결절이 오는 거야. 그러니 점막이 마르지 않게 끊임없이 물을 마셔.’
예성은 물병을 따서 물을 마시며 앞으로 자신이 어떻게 행동할지 생각을 정리했다. 어제 이곳을 떠올리며 많은 생각을 했다.
사람은 얼마나 있을까? 나이의 분포는 어떻게 될까? 어느 곳에서 어떤 노래를 해야 할까?
예성이 가방을 열고 기타를 꺼내들자 벌써 시선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곳은 더위를 식히러 온 사람이 대부분이다.
할 일없이 멍하니 있던 사람들에게는 예성의 행동이 눈에 띄는 행동이 아닐 수 없었다.
예성은 기타를 고쳐 매었다. 그러고는 자신의 두근거리는 심장을 다독이며 기타 현 6개를 훑어 내렸다. 미, 라, 레, 솔, 시, 미 6개현의 소리가 울리며 사람들의 귀로 파고 들었다.
예성은 시선이 모이자 하품을 하듯 목구멍을 열고 뱃속에서부터 소리를 끌어 올려 입으로 내보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