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first day of my life in living alone, a portal opened RAW novel - Chapter 117
117. 일상화
나는 다시 한번 정신을 집중하고 주변을 감지했다. 하지만 조여진을 찾을 수는 없었다. 마력 감지뿐만 아니라, 특유의 감각을 사용해 집중해도 불가능했다.
대체 지율이는 어디에 있는 누구까지 감지할 수 있는 건지.
“언니는 어디 있는데?”
내가 웃음기를 띤 목소리로 묻자 지율이는 망설임 없이 주차돼 있는 차 한 대를 가리켰다.
“저기!”
마력 자체는 읽은 쪽이었다. 단지 마력의 주인까지 구분은 하지 못했다.
“지율이하고는 숨바꼭질 절대 못 하겠네.”
“맞아! 곰곰이랑 삐삐가 아무리 숨어도 내가 다 찾아!”
이미 해본 적이 있는 모양이다.
배를 정박하고 먼저 지율이와 내렸다.
“오셨어요?”
조여진이 다가와 우리를 반겼다.
“지율아 안녕?”
“언니 안녕!”
“보니까 너무 좋다. 잘 지냈어?”
“본 지 얼마 안 됐어요!”
“아, 그런가?”
지율이가 아는 사람 중에서 현백이 다음으로 어려서 그런지 빠르게 친해진 느낌이 있다. 나이야 숫자에 불과하다지만, 거기서 오는 느낌을 무시할 수도 없는 법.
“선물 줄까?”
조여진의 물음에 지율이가 눈을 반짝였다.
“진짜?”
“앗, 그렇게 기대하면 좀 그런데. 너무 별거 아니라서.”
“뭔데요? 뭔데요?”
은근히 반말과 존대가 섞인 말투에서 지율이가 품은 친근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이거.”
줄곧 뒤로 왼손을 숨기고 있던 조여진이 무언가를 휙 내밀었다.
작은 치즈 고양이 인형. 볼이 통통하고 둥근 게 귀여웠다.
“지난번에 현백이? 걔는 아기 고양이 데려갔잖아. 그게 생각나서.”
“우와아아! 너무 예뻐! 감사합니다!”
“그래? 마음에 들어?”
“네!”
“그렇다니 다행이다!”
어린아이에게 인형을 선물하는 것도 긴장했는지 조여진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마수를 상대할 때는 꽤 프로페셔널한 모습을 보였는데, 이런 모습을 보니 또 기껏해야 대학생 느낌이다.
“그럼 작업 시작할까요?”
조여진이 손바닥만 한 검은색의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텐트 원단처럼 보였다.
“그게 뭡니까?”
나의 물음에 조여진이 씩 웃었다.
“모르시는구나. 최근에 나왔어요.”
일종의 포장지 겸 보호재였다. 최대 가로세로 3.3미터까지 늘어나서 물건을 뒤덮었다. 특수원단이어서 방수는 물론, 어느 정도 방화와 찢어짐에도 강했다.
제조사에서는 이사용품으로 출시했는데, 내 입장에서는 이렇게 가리는 용도로 사용할 수 있었다.
“이런 게 다 나왔네요.”
현장을 떠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이런 신제품이 나왔는지.
절대적인 시간으로 따지면 그리 오래 안 됐지만, 이러한 변화가 한참 된 것처럼 느껴지게 했다.
하긴, 현장을 떠난 나의 삶은 너무도 많이 달라졌다.
벌써 과거의 삶이 부분적으로 희미해진 느낌마저 들었다.
“그럼 올라가시죠.”
우리는 다시 요트로 올랐다.
내가 휴도에서 무엇을 가져오는지 아는 것은 조민택과 조여진뿐.
다른 직원들은 그냥 시키는 대로 무엇인지 모를 물건을 나르기로 돼 있었다.
JMT 글로벌 소속의 직원들이라면 어느 정도 신뢰를 해도 되겠지만, 만약의 만약까지 대비했다.
내가 원한 것은 아니었고, 조민택의 배려였다.
일 하나는 확실한 사람이다.
“어……?”
커다란 페어넛 바나나를 본 조여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게……?”
지율이가 활짝 웃으며 나 대신 대답했다.
“페어넛바나나예요!”
“페어넛바나나……?”
내가 간략히 설명하자 조여진을 큰 호기심을 보였다.
“살면서 이런 바나나는 처음 봐요. 그럼 신품종인 거네요?”
“그렇죠. 하나 먹어봐요.”
“진짜요? 그래도 돼요?”
“그럼요.”
“그럼 크니까 같이……?”
“그래요.”
우리는 페어넛바나나 하나를 삼등분하여 나눠 먹었다.
아삭.
페어넛바나나를 한 입 베어 문 조여진은 손으로 입을 가렸다. 그리고 흔들리는 동공으로 나와 지율이를 쳐다봤다.
“맛없어……?”
지율이가 걱정스레 묻자 조여진은 손으로 입을 틀어막은 채 고개를 크게 가로저었다.
“아니! 너무 맛있어!”
조여진은 순식간에 페어넛바나나를 다 먹어치웠다.
“조금 더 먹을래요? 입 안 댔어요.”
내가 손에 들고 있던 페어넛바나나를 내밀자 조여진은 고개를 크게 끄덕거렸다.
“사양 안 할게요!”
영양성분이나 효능은 앞으로 더 알아봐야겠지만, 맛에 대해서는 검증이 필요하지 않았다. 처음 가격책정을 어떻게 할지가 고민이었다.
* * *
밀크본 열매, 페어넛바나나, 허니포켓 등은 JMT 글로벌 직원들이 창고로 옮겼다.
나와 지율이는 조여진이 모는 차를 몰고 JMT 글로벌 사무실로 향했다.
“진짜요? 저걸 구워도 먹어요?”
조여진이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네. 이따 가서 하나 익혀서 드세요. 약간 군밤 같은데 엄청 맛있습니다.”
페어넛바나나 한 무더기는 따로 트렁크에 빼놓은 상태.
조민택과 조여진에게 따로 챙기는 것은 물론이고, JMT 글로벌의 VIP 고객들에게 먼저 돌릴 예정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JMT 글로벌에 도착.
정문으로 조민택이 나와 있었다.
“어서 오세요!”
조민택은 자세를 낮춰 지율이와 눈을 맞췄다.
“지율이 안녕?”
“안녕하세요!”
“올라갈까? 아저씨가 간식 준비해 뒀어.”
“고맙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사무실로 향했다.
* * *
JMT 글로벌의 조민택 개인 사무실.
다른 말로 회장실 혹은 대표실.
타닥, 타닥.
세련된 사무실과 어울리지 않는 향이 퍼졌다.
페어넛바나나를 구웠다.
“향이 굉장히 고소하네요.”
조민택이 놀란 듯 눈을 살짝 크게 떴다.
“냄새 좋다.”
조여진은 입가에 옅은 미소를 머금은 채 눈을 지그시 감고 있었다.
아득.
지율이는 조민택이 준비한 수제쿠키와 우유를 먹었다.
잘 구워진 페어넛바나나를 먹은 조민택이 고개를 크게 끄덕거렸다.
“으흐음, 굉장히 신기합니다. 단맛이 많이 사라진 대신 깊은 풍미가 생겼어요. 어떻게 이렇게 되는 거지? 상식을 깨버리네요.”
조여진은 구운 페어넛바나나 하나를 혼자 거의 다 먹어가고 있었다.
“와, 이거 겨울에 밖에서 팔면 대박이겠다.”
조민택이 피식 웃었다.
“이 귀한 걸 무슨 군고구마나 군밤처럼 팔겠냐? 정신 차려.”
얘기를 듣던 내가 말했다.
“그렇게 되면 좋겠네요.”
“예?”
“당장 그럴 수는 없겠지만, 언젠가 그렇게 되면 좋겠어요. 누구나 맛있게 즐기고, 건강에도 좋은 식품을 팔 수 있으면요.”
조민택이 양쪽 입꼬리를 길게 올렸다.
“언젠가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노력해보죠……! 대표님이시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습니다!”
* * *
후룩.
빈 뚝배기 두 그릇.
고성우와 구정석의 눈이 마주쳤다.
두 사람은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속으로는 비슷한 생각을 했다.
‘괜히 같이 먹었다.’
‘내가 왜 같이 먹자고 했지?’
어색한 기류가 흘렀고, 고성우가 의자를 살짝 뒤로 빼면서 말했다.
“그럼…… 일어날까요?”
구정석이 기다렸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예. 일어나시죠.”
그렇게 두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나 가게에서 나왔는데, 사람들이 소란스레 움직였다.
“저쪽이래!”
“얼른 벗어나야 돼! 이럴 때 조심해야 되는 거야!”
“이쪽으로 빠져서 나가자.”
경찰들도 교통통제에 나서고 있었다.
“실제상황입니다! 다들 차원문 현장에서 물러나 주십시오!”
상황을 지켜보던 고성우가 젊은 경찰에게 다가가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저쪽에서 흰색 차원문이 발생했습니다. 얼른 이곳에서…….”
고성우를 알아본 경찰이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엇……! 아이스맨……!”
“예, 맞아요. 접니다.”
고성우는 내심 기뻐하며 입가에 옅은 미소를 머금어 보였다.
“걱정 마세요. 제가 처리할 테니까.”
그러고는 젊은 경찰의 어깨를 가볍게 툭 치고 몸을 틀었다.
고성우가 걸음을 옮기는데 옆으로 구정석이 따라왔다.
“가서 볼일 보시지. 저 혼자 가도 됩니다.”
“아이스맨만큼 유명하지는 않아도, 저도 이쪽 바닥에서 나름대로 힘 좀 쓰거든요.”
“그렇습니까?”
“예. 각자 분야가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고성우와 구정석은 그렇게 흰색 차원문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 * *
JMT 글로벌의 물류창고 규모는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었다.
최근에는 휴도 전용 창고도 지정했다.
아예 부지를 따로 설정하고, 보안에도 특별히 더 신경 썼다.
휴도 특산물의 특성상 식재료가 많았기에 거대한 냉장고를 지은 셈이었다.
그런데 휴도 전용 창고 바로 앞에 흰색 차원문이 발생한 상황.
흰색 차원문이 열리면서 이미 마수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아, 이거 참…….”
조민택이 탄식을 내뱉었다.
“하필이면 여기에…….”
일반적인 차원문이었다면 장기적으로 봤을 때 금전적으로 이득을 볼 수도 있었다. 붉은색 혹은 푸른색 차원문은 휴식기인 잿빛을 오가며 활동기마다 새로운 마수 및 다른 차원의 무언가를 옮겨왔으니까.
하지만 지금까지 밝혀진 흰색 차원문의 패턴은 흉포한 마수를 옮기고는 사라지는 게 전부.
당연히 창고가 있는 곳에서 전투가 벌어지면 그 피해가 어떨지는 뻔한 일이었다.
심지어 현재 흰색 차원문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거대 물도마뱀.
이름 그대로 신체의 대부분이 물로 구성돼 있었고, 방대한 마력을 사용해 홍수를 일으켰다.
“이러면 이거 완전…….”
조민택은 입 밖으로 내뱉지는 않았지만, ‘망했다’고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흰색 차원문이 발생하면 해당 지역의 일반인들은 모조리 대피해야 한다.
휴도의 물건들은 이미 창고에 있는 상태이고, 직원들은 전부 도망친 상태.
조민택 아래에도 각성자들이 있긴 하지만, 거대 물도마뱀을 감당할 수는 없었다.
곧 거대 물도마뱀을 상대할 수 있는 헌터들이 파견될 예정이었지만, 재산상 피해를 막을 수는 없을 게 분명했다.
조여진은 지율이와 함께 다른 곳으로 피한 상태였다.
“흐음.”
나는 가만히 자리에 서서 흰색 차원문 사이로 빠져나오는 거대 물도마뱀을 바라봤다.
죽으면 물처럼 흩어져서 증발해 버리니 어느 하나 도움이 안 되는 곤란한 마수였다.
자원적으로는 가치가 없으면서 강력하고 인명피해를 일으키기도 쉬웠고.
“엇!”
초조하게 지원을 기다리던 조민택의 표정이 확 밝아졌다.
“대표님! 됐습니다! 됐어요!”
“네? 뭐가요?”
“지금 이쪽으로 성우 씨가 오고 있답니다! 냉기 능력자이니 거대 물도마뱀은 그냥 잡겠죠! 어쩌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겠습니다!”
그때 흰색 차원문에서 거대 물도마뱀이 나왔다.
차원문부터 이어져 거대 물도마뱀을 감싸고 있는 특유의 에너지.
흰색 차원문 에너지가 걷히고, 완전히 분리되어 사라지면, 마수가 이 땅에서 활동을 시작하는 순간이다.
거대 물도마뱀에게서 특유의 에너지가 걷혀가고 있었다.
주변에 일반인은 없기에 당장 사상자가 발생할 가능성은 없다고 봐도 됐다.
고성우도 오고 있었고.
하지만 창고들이 날아가게 생겼다.
오늘 가지고 온 페어넛바나나들도 포함돼 있었다.
“엇…….”
조민택의 당황 섞인 목소리.
“대, 대표님. 일단 벗어나시죠.”
그는 나의 팔을 잡고 이끌었다.
“제가 해보죠.”
내가 조민택의 등을 가볍게 밀었다.
“예?”
조민택이 당황하며 나를 쳐다봤다.
나는 보이지 않는 공을 들고 있듯이 양손을 모은 채 나지막이 말했다.
“제가 상대해 볼게요.”
“예? 하지만……! 위험합니다. 일단 가시죠. 대표님께서도 숨은 강자이신 건 알고 있습니다만……!”
“걱정 마시고 먼저 가세요. 위험할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대표님이 여기 계시면 제가 아무것도 못 합니다.”
흰색 차원문과 거대 물도마뱀이 분리되고 있었다.
“얼른요!”
나의 재촉에 조민택이 몸을 돌렸다.
“무리하시면 안 됩니다! 제가 성우 씨한테 얼른 연락하겠습니다!”
그렇게 조민택의 발걸음 소리가 뒤로 멀어졌고, 앞에서는 흰색 차원문이 소멸하며 거대 물도마뱀이 기다란 혓바닥을 날름거렸다. 물 그 자체나 다름없는 혓바닥이 움직이자 물소리가 났고, 금세 바닥이 푹 젖었다.
최소 10톤 이상의 대형 마수라…….
몇 달 전만 해도 눈썹이 휘날리게 도망쳐야 되는 상황이었는데, 이제는 당연하다는 듯이 맞서고 있었다.
마음속으로는 ‘얼른 끝내고 지율이한테 가야지’하고 생각했다.
귀촌 첫날 차원문이 생겼다 118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