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first day of my life in living alone, a portal opened RAW novel - Chapter 140
140. 청첩장
삶이 재미있는 이유는 예상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내 삶은 예상이 쉬웠다.
현장에서 얻게 되는 물건도 예상을 벗어난 적이 거의 없었다.
휴도로 오고 나서야 내 삶은 예측불허가 됐다. 그리고 재미있어졌다.
지율이도 항상 내 예상을 뛰어넘는다.
이번에도 그랬다.
의외의 대답이었고, 가장 정답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하. 맞는 말이네.”
하지만 아직 우리에게는 문제가 남아 있었다.
우리 앞에는 잘 튀겨진 탕수육과 뜨끈한 소스가 따로 담겨 있는 상태.
보통 탕수육의 정석은 소스와 함께 볶아서 내는 것이라고 한다.
달착지근한 소스에 적셔진 튀김옷은 바삭함을 유지하고, 속은 육즙으로 촉촉하고 부드러워야 제대로 된 탕수육이라 할 수 있다나.
그렇다고 내 앞에 있는 탕수육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마도 배려이리라. 취향에 맞게 찍어서 먹을지, 부어서 먹을지 정하라고.
아니면 부먹이니 찍먹이니 유난을 떠는 사람들이 많아서, 귀찮은 일을 방지하고자 본래 가지고 있던 탕수육 철학을 바꿨는지도 모르고.
더 이상 라드(돼지기름)를 쓰는 중국집을 찾기 어려워진 것처럼.
때때로 원래 나오는 소스 대신 군만두에 잘 어울리는 고춧가루와 식초를 넣은 간장에 찍어서 먹어도 괜찮다.
“어떻게 할까?”
일반적으로 탕수육은 소스를 붓거나, 소스에 찍어서 먹는다는 얘기를 들은 지율이는 제법 흥미롭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반씩?”
“응?”
지율이는 소스 그릇과 탕수육을 차례로 가리키며 말했다.
“반은 붓고, 반은 찍어서 먹으면 되지 않아?”
또다시 예상을 뛰어넘는 대답.
“그러게. 그러면 되는 거네.”
“응! 그러면 찍어서 먹는 사람도, 부어서 먹는 사람도 좋아!”
우리 얘기를 들었는지 아주머니가 슬쩍 다가와 빈 접시 하나를 놓고 갔다.
나는 웃으며 탕수육을 절반 정도 빈 접시에 옮겼다.
부먹과 찍먹을 동시에 할 수 있는 평화적인 방법도 있었다.
맛있겠다.
탕수육을 앞에 두고도 탕수육을 생각하며 상상되는 맛에 군침이 넘어갔다.
원래 식탐이 있는 편은 아니었다. 전에는 배고픔을 느낄 때도 많았다. 끼니때가 돼도 그냥 거르기 일쑤였다.
휴도에 온 이후로도 배고픔을 느낀 적이야 많지만, 그 시간이 길지는 않았다.
어느새 나는 먹는 즐거움을 알았고, 그 행복을 소중히 하며 마음껏 만끽했다.
바삭.
부어서 먹든 찍어서 먹든 맛있었다. 입에 쩍쩍 달라붙는 게 술을 떠올리게 했다. 평소에 먹지도 않는 술이 생각날 정도였다.
아마 나중에 다시 먹으면 아주 특별한 맛은 아닐 것이다.
맛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동네에 있으면 단골을 할 정도는 되지만, 줄을 설 정도의 맛집은 아니라는 뜻이다.
대부분 사람들에게 익숙할 맛있는 탕수육의 맛이었다.
“맛있어?”
지율이는 탕수육을 집은 채 먹지도 않고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엄청 맛있어. 지율이도 얼른 먹어봐.”
“응!”
지율이는 장난스럽게 입을 크게 벌리고는 탕수육을 먹었다. 입에 넣고 몇 번 씹자마자 눈을 동그랗게 뜨는 걸 보니 마음에 든 듯했다.
“우왕.”
지율이는 양손을 뺨에 가져다 댄 채 음미하며 꼭꼭 씹어 먹었다.
“너무 맛있어! 오늘은 적당히 맛있는 거 먹으려고 했는데.”
“그러게. 엄청 맛있네.”
싹이가 텔레파시로 눈치를 줬다.
―나에게도 입이 있다.
나는 탕수육을 작게 잘라서 화분에 넣어줬다. 잎사귀 스치는 소리가 작게 울렸다. 대체 어떻게 먹고 있는 걸까.
생각보다 더 즐거운 저녁식사를 하던 중이었다.
그러고 보니 곰보빵 때도 그랬는데, 짜장면에 탕수육도 천 씨 아저씨랑 먹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어차피 밥은 먹어야 되고, 돈 조금씩만 더 보태서 탕수육 세트로 오는 거 먹으면 좋지 않냐면서 권했던 게 눈에 선했다.
“지율아. 아빠 잠깐 전화 좀?”
“응! 편하게 해!”
나는 피식 웃으며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고마워.”
“천만에!”
“하하하하.”
지율이는 무언가를 배우면 꼭 써먹으려고 한다. 그 표현들이 실생활에서는 잘 안 쓰거나 어린아이가 쓰기에는 애매한 말이라 웃기다.
나는 떠오른 김에 천 씨 아저씨에게 연락을 하기로 했다. 고성우에게 부탁해서 연락처도 알아뒀는데, 더 미룰 이유가 없다고 여겼다.
괜히 쇠뿔도 단김에 빼라는 게 아니다. 조금씩 미루면 끝도 없다. 그래서 바로 전화를 걸었다.
건조한 신호음이 울렸다. 천 씨 아저씨와 전화통화는 처음이라 괜히 어색했다.
아마 내 연락처도 모를 텐데. 뭐라고 해야 할지. 반가워하면 좋겠는데.
이미 전화는 걸었으니 물릴 수는 없다. 물릴 이유도 없고. 무슨 일이든 시작만 하면 된다. 7초만 실행하면 앞으로 나아가게 된다. 7초가 지나면, 다시 7초를 시작하면 되고.
―여보세요?
“네, 여보세요.”
―예에, 어디시죠?
“혹시 저 기억하실지 모르겠는데…….”
고성우에게 연락처를 받으면서 이름도 안 물어봤다. 이름을 알았어도 그냥 천 씨 아저씨라도 불렀을 것 같긴 하지만.
―누구신데요?
“전에 현장에서 자주 뵀던 사람입니다. 혹시 기억하실지 모르겠는데…….”
나름대로 스스로에 대해 설명을 늘어놨다. 뭔가 확 튀는 특징이 없어서 힘들었다. 같이 공유했던 사연도 없었고.
그렇다고 곰보빵을 받았던 이야기나 짜장면을 먹었던 얘기를 하기도 애매했고.
―허허, 그렇게 말해서는 잘…….
“그 한 번은 같이…….”
결국 짜장면 얘기를 하려다가 떠오른 사실.
“저 왜, 있잖아요. 안 쉬고 일하던 사람이요. 은퇴하고 나면 쉴 거라고 했던.”
―아아아아아!
천 씨 아저씨가 웃음 섞인 목소리를 높였다.
―토일이! 맞지!?
“어? 기억하시네요?”
―아, 그럼! 당연하지! 당연히 기억하지! 자네 같은 사람이 어디 또 있는가?
내 생각보다는 특징이 강했는지도 모르겠다.
―허허허, 이거 참 반갑네 그래. 어떻게 내 번호는 다 알고 연락했대?
“아, 그건…….”
―아, 뭐 어떻게 알았는지 그게 중요하겠어? 연락을 한 게 중요하지. 고마워.
고맙다는 말 한마디에 속에 막혀 있던 무언가가 탁 뚫린 느낌이었다.
“제가 감사하죠.”
―하하하하! 고마울 게 뭐가 있어? 연락한 건 자네인데. 잘 지내지?
“예.”
―안 보이는 거 보니까 진짜로 은퇴한 거야? 요즘은 좀 쉬면서 살아?
“네. 지방 내려와서 지내고 있어요.”
―현장 일은 안 하고?
“네.”
―잘됐네.
일순 편안하게 웃는 천 씨 아저씨의 얼굴이 보이는 듯했다.
“……안부도 여쭈고 싶고 해서 연락드렸습니다. 여러 가지로 많이 감사했어요.”
―나한테 감사할 게 뭐가 있어?
“감사하죠.”
―자네도 뭔가 많이 변한 거 같구만.
“그냥, 조금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나저나 지방 멀리서 지내나?
“아주 멀지는 않아요. 차 몰고 가면 또 몇 시간 안 걸리니까요.”
―그래? 그럼 머네.
“예?”
―내일이 딸 결혼식이거든. 시간 되면 밥이나 먹고 가라고 할라 했지.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말이 튀어 나갔다.
“갈게요.”
―응?
“불러주신다면 가겠습니다.”
―아니야, 무리할 거 없어.
“아니요, 갈게요. 지금 번호로 청첩장 하나 부탁드립니다.”
―그래? 알았어, 그럼 그럴게. 무리하지는 말고. 아, 그리고 부조는 하지 마. 이게 이렇게 말하면 꼭 하라는 줄 아는 사람들 있는데, 절대 하지 마. 멀리서 오는 사람은 하는 거 아니야. 혹시나 해서 말하는 거야. 알았지?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알겠어요.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응, 연락 줘서 고마워. 못 오면 나중에 문자나 하나 남겨둬.
그렇게 전화를 끊었다.
“빠아, 우리 내일 어디 가?”
지율이가 기다렸다는 듯이 물었고, 나는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어디 가네?”
“어디?”
“서울.”
나의 말에 지율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서울!?”
“응.”
“우와아, 서울은 처음이야.”
“그러게. 맨날 휴도랑 강척만 오갔는데.”
“나도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는 거네!”
“하하. 그러게.”
휴도에 있는 게 제일 행복하지만, 지율이와 여기저기 많이 다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갑자기 서울은 왜 가?”
지율이가 물었는데, 얘기를 듣고 있던 싹이가 텔레파시로 질문을 던졌다.
―소울……? 영혼은 장소 같은 것이 아니다.
싹이에게는 서울에 대해서 나중에 설명하기로 했다.
“서울에 아빠 아는 사람이 있는데, 그분 딸이 결혼한대.”
지율이가 눈을 반짝이며 깍지 낀 양손을 얼굴 옆으로 가져갔다.
“결호오오온?”
왠지 모르게 지율이의 두 눈이 유난히 반짝거렸다.
* * *
다음 날 아침.
호텔 앞에는 진회색 세단 한 대가 기다리고 있었다.
나와 지율이가 다가서자 호텔 직원이 뒷문을 열어줬다.
차에 오르자 운전석에 앉은 조민택이 씩 웃으면서 고개를 돌렸다.
“안녕하십니까?”
“아휴, 이렇게 직접 나오실 필요는 없는데.”
나의 말에 조민택이 웃어 보였다.
“가는 길이라서요. 저쪽까지만 제가 모시겠습니다.”
지율이가 힘차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응, 지율이 안녕? 잘 잤어?”
“네에에에!”
“그 화분은 뭐야? 예쁜 꽃이네?”
조민택이 눈을 반짝이며 큰 관심을 보였다.
“겨울에도 그렇게 예쁘게 피는 꽃이라니, 귀해 보이는데? 모양이나 색깔도 범상치가 않고.”
내가 하하 웃으며 말했다.
“제가 봐도 상품성이 있어 보여서 어떻게 씨나 종자를 얻어보려고 노력 중입니다.”
싹이꽃을 내줄 수는 없었다.
“그렇군요. 역시 우리 김 대표님께서는 언제나 노력 중이시네요. 하하핫.”
조민택은 차를 빌려주면서 얼굴도장을 찍고는 진짜로 볼일을 보러 갔다.
나는 운전석으로, 지율이는 조수석에 자리했다.
“그럼 복식을 갖추러 가볼까?”
지율이는 초승달을 누인 것처럼 눈을 휘며 기대감 가득한 목소리를 냈다.
“응! 얼른!”
* * *
천 씨 아저씨네 딸의 결혼식은 오후 5시.
아직 시간의 여유가 있었지만, 쇼핑을 하고 식사를 한 다음 서울에 가면 딱일 것 같았다.
지율이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잔뜩 묻어났다.
기대하고 있는 것은 바로 결혼식에 입고 갈 예쁜 옷이었다.
지율이는 결혼식에서 신랑과 신부가 입는 턱시도와 웨딩드레스가 예뻐 보인 모양이다.
“지율이도 웨딩드레스 입을 거야?”
“난 결혼하는 거 아니니까 웨딩드레스는 안 돼.”
“그래?”
“응! 그날은 신부가 주인공이거든.”
맞는 말이다.
“그럼 뭐 입을 거야?”
“그냥 결혼식에 어울리는 예쁜 드레스!”
일단 아동복이 있는 5층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띵, 하고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문이 열리는 찰나였다.
“열려라 참깨!”
지율이가 손바닥을 힘 있게 내질렀다.
엘리베이터 문이 양옆으로 열렸다.
“우와, 열렸다. 대단한데?”
내가 리액션을 하자 지율이는 배시시 웃으며 앞장섰다.
“그럼! 내가 누군데.”
장난기가 발동한 내가 물었다.
“누군데?”
지율이는 나를 돌아보며 생긋 웃어 보였다.
“아빠 딸.”
저 당연한 말이 내 가슴을 두드린다.
“그치. 아빠 딸이지.”
“아빠는 누구 아빠?”
나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지율이 아빠.”
지율이는 몸을 홱 틀더니 손을 내밀었다.
“그러니까 손 꼭 잡고 다녀야 돼.”
나는 왼손에 화분을 들고 오른손을 뻗어 지율이의 손을 잡았다.
“아빠가 손 놓았던 거 아닌데.”
지율이는 얼굴 앞으로 검지를 세워 보였다.
“쉿. 그건 비밀.”
그렇게 생애 첫 결혼식 참석을 위해 옷을 사러 갔다.
지율이도, 나도.
귀촌 첫날 차원문이 생겼다 141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