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first day of my life in living alone, a portal opened RAW novel - Chapter 213
213. 없는 거 빼고 다 있어
아직 멀었다.
휴도는 새끼손톱보다도 작게 보이는 수준.
하지만 변화가 눈에 확 띄었다.
초록빛의 휴도가 진달래처럼 분홍빛으로 변했다.
사실 휴도보다는 구름을 뚫고 높이 솟아 있는 싹나무가 분홍빛 꽃잎으로 잔뜩 치장하고 있어 눈에 확 들어왔다.
“와아아아아아아…….”
입을 크게 벌리고 감탄하던 지율이는 싹나무를 가리키면서 목소리를 높였다.
“빠아! 아까 벚꽃나무보다 더 예쁘다! 그치?”
“그러게.”
“진짜 예뻐!”
“싹이가 선물을 해준 것 같네.”
“그런가?”
“그럼. 싹이가 한 거지.”
“어떻게?”
지율이는 양손 검지로 양쪽 관자놀이 부근에 댄 채 고개를 좌우로 갸웃거렸다.
나는 지율이가 손목에 차고 있는 팔찌를 쳐다봤다.
덩굴 팔찌 같은 모양이지만, 사실은 싹이뱀이다.
싹이는 자신의 분신과 시야와 청각을 공유할 수 있다.
우리가 강척에서 벚꽃을 보고 즐거워하는 걸 보고는 선물을 준비한 듯하다.
싹나무에 핀 이름 모를 분홍빛 꽃잎처럼 지율이 뺨도 분홍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난 진짜 행복한 어린이야!”
갑작스러운 지율이의 외침에 나는 빵 터졌다.
“갑자기 왜?”
“집이 저렇게 예쁘잖아! 맨날 예쁜 거 보고 맛있는 거 먹고, 어떻게 안 행복할 수 있겠어!”
맞는 말이다.
정말 안타깝고 힘든 일을 겪고 있으면 어쩔 수 없다. 부디 일이 잘 해결되고, 다시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길 바랄 뿐.
불가항력으로 어쩔 도리가 없는 불행을 겪는 이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사람은 얼마든지 행복해질 수 있다.
행복의 기준을 어디에 어떻게 두는지에 따라서 달라진다.
당연한 건 없다.
매일 아침 몸 건강하게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 하나만으로도 감사할 일이다.
소소해도 좋은 일 몇 가지가 있다면 실컷 기뻐하는 게 좋다. 웃을 일이 있다면 힘껏 웃는다. 웃음은 웃음을 부르기 마련이다.
극복할 수 있는 안 좋은 일이라면 ‘이만하길 다행이다’ ‘다음에 더 잘하면 되지’ 등의 긍정적인 생각으로 조금 더 행복해질 수 있다.
“그러게.”
나는 분홍빛 휴도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빠도 너무 행복하다.”
* * *
휴도에 가까워지자 분홍빛 눈이 내렸다.
“너무너무 예쁘다. 꼭 꿈속 같애!”
지율이는 떨어지는 꽃잎을 향해 손을 뻗었다.
“잡았다!”
주먹을 꼭 쥐었던 지율이가 손을 펼쳤다.
아무것도 없었다.
보들보들한 손바닥만 드러났다.
“엇?”
“하하, 놓쳤네.”
“다시!”
지율이는 깡충깡충 뛰면서 이리저리 손을 뻗었다. 일부러 피하기라도 하듯 번번이 꽃잎을 놓쳤다. 하지만 머리와 어깨 그리고 조금 볼록한 배에는 꽃잎이 붙어 있었다.
“앗!”
지율이는 배에 붙어 있는 꽃잎을 하나 떼서 들어 보이며 환하게 웃었다.
“배로 잡았어!”
“하하하하! 잘했어!”
휴도의 선착장에는 아이들이 나와서 일렬로 있었다.
무룩이, 곰곰이, 삐삐, 핫도그, 싹이 그리고 저 멀리 뒤쪽에는 꼭꼭이가 있었다.
“뽜아아아아아아앍!”
꼭꼭이는 자신의 존재감만 드러내고는 어디론가 가버렸다.
이상한 녀석이지만, 항상 활기차 보이니 그걸로 됐다 싶다.
무룩이, 곰곰이, 삐삐, 핫도그의 머리 위에는 꽃잎들이 붙어 있었다.
“아하하핫! 다들 꽃이 됐네!”
우리의 시선을 강렬하게 사로잡는 것은 싹나무 그리고 싹이였다.
멀리서 봐도 아름답던 싹나무는 가까이서 보니 경이로울 지경이었다.
싹이도 봄을 맞이해 변했다. 추운 겨울에 잠시 희게 변했고, 다시 따뜻해지니 푸릇해졌다. 그리고 오늘은 분홍빛 꽃잎이 머리에 피어 있었다.
“싹이 되게 예쁘다!”
싹이는 생긋 미소를 지어 보였다.
“고맙다. 꽃잎들이 네게도 잘 어울리는 것 같구나.”
“정말?”
“그렇다.”
배에서 내린 우리는 다 같이 네모집으로 향했다.
“냥! 냥냥!”
무룩이는 길을 가던 중에 몇 번이나 떨어지는 꽃잎을 향해 앞발질을 했다.
꽃잎이 바람에 날리더라도 무룩이의 민첩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무룩이는 숙련된 복서처럼 떨어지는 꽃잎들을 낚아챘다. 그러고는 앞발을 털어서 꽃잎을 바닥에 뿌렸다.
“우와아아아, 무룩이 멋있다! 우와아아아, 최고야!”
지율이가 감탄하자 무룩이는 별거 아니라는 듯이 눈을 번뜩였다.
“냐아앙.”
잠시 앉아서 여유를 부리는 무룩이가 손을 씻는답시고 앞발을 핥으려고 했다.
“잠깐.”
내가 손을 뻗어 무룩이의 앞발을 잡았다.
“뭐냥?”
“핥지 마.”
“왜 그러냥?”
무룩이는 불쾌하다는 듯이 앞발을 뺐다. 그리고 내 손이 더럽다는 듯 앞발을 털었다.
“야, 내 손 깨끗해.”
“모르겠다냥.”
“아무튼 가서 물로 닦아. 바닥 밟았던 발이잖아.”
“내 발이다냥.”
“더럽잖아.”
“안 더럽다냥.”
“그래? 그럼 앞으로 츄르 바닥에 짜도 돼?”
무룩이가 하악질을 할 기세로 송곳니를 드러냈다.
“싫다냥! 흙이랑 먼지가 묻잖냥!”
“그러니까! 너 바닥 핥기 싫지?”
“당연한 거 아니냥!”
“그럼 그 바닥을 짚었던 발바닥은?”
“냐앙?”
잠시 고민에 빠진 무룩이.
생각이 많아 보였다.
“냐아앙.”
무룩이는 갑자기 아무렇지도 않은 척 걸음을 뗐다.
“뭐야, 알아들었어?”
“무슨 소리냥?”
“뭐?”
“빨리 가자냥. 발을 닦고 싶다냥.”
조금 전에 나의 지적은 아예 없던 일로 치려는 모양이었다.
지는 것을 싫어하는 무룩이는 자기가 불리한 건 아예 시치미를 뗀다.
너무 대놓고 뻔뻔하니까 달리 할 말이 없다.
* * *
바로 네모집에 가려고 했다.
처음에는 그랬다.
하지만 분홍빛으로 가득한 싹나무를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너무 예뻐어어어어!”
지율이는 싹나무가 사랑스럽다는 듯이 꼭 안았다.
“고옴!”
곰곰이가 큼지막한 분홍색 꽃잎을 가져왔다.
“삐삐삐삐!”
삐삐는 시범을 보이듯 꽃잎을 오물오물 씹었다.
꽃잎을 먹으라는 열정적인 제스처에 나와 지율이는 시도하기로 했다.
“맛있을까?”
지율이는 조금 기대된다는 듯이 눈을 반짝거렸다.
“꽃 먹는 건 처음인데.”
나는 꽃잎을 코에 가까이 가져다 댔다. 향기로웠다. 다르게 말하면 음식 냄새로 느껴지지는 않았다. 아주아주 잘 만든 화장품을 먹는 기분이 들 것 같았다.
핫도그는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꽃잎을 가지고 놀긴 했지만, 먹을 생각은 없어 보였다.
무룩이야 말할 것도 없었고.
“아빠! 하나, 둘, 셋, 하면 먹는 거다?”
지율이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
우리는 함께 하나둘셋을 외치고 꽃잎을 입에 넣었다.
“음…….”
지율이가 아리송한 얼굴을 했다.
꽃잎을 씹던 나는 인상을 찡그렸다.
예상 그대로였다.
부드러운 향수가 입에 들어간 느낌.
아무래도 삐삐는 원래 온갖 풀을 다 잘 먹고, 곰곰이는 희미하게나마 있는 꽃잎의 꿀 때문에 잘 먹는 게 아닐까.
“미안. 내 스타일은 아니다.”
내가 웃어 보이자 곰곰이와 삐삐는 시무룩해졌다.
“베어어엉…….”
“삐이이이…….”
괜히 미안해서 달래려는데 지율이가 끼어들었다.
“그럴 거 없어!”
곰곰이와 삐삐가 고개를 들었고, 지율이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내가 좋아하는 거를 너희가 싫어할 때도 있고, 곰곰이랑 삐삐가 좋아하는 걸 내가 싫어할 때도 있는 거야. 다 같이 좋아할 때도 있고, 싫어할 때도 있고.”
곰곰이와 삐삐는 귀를 쫑긋거리며 경청했고, 지율이는 양팔을 넓게 벌리며 말했다.
“지금 꽃잎이 이렇게나 많잖아. 너희들만 맛있게 먹고 있으니까, 전부 너희들이 먹을 수 있다는 거잖아! 실컷 먹어도 되니까 얼마나 좋아?”
“고, 고오오옴!”
“삐삐삐삐!”
잠시 시무룩해졌던 곰곰이와 삐삐는 금세 축제 분위기로 바뀌어서 이리저리 폴짝폴짝 뛰었다.
한참 즐겁게 웃으며 얘기를 하던 중에 왠지 모르게 시선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리자 나를 바라보고 있던 싹이가 시선을 확 피했다.
뭐지?
나는 천천히 싹이에게로 다가섰다.
싹이는 나를 힐끗 보고는 다시 시선을 피했다.
이제는 얼굴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보인다.
지금 싹이는 초조해하고 있었다.
뭔가 불안해하는 듯한 모습에 나는 조금 걱정하며 입을 뗐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아니다.”
“아니기는, 보면 딱 아는데.”
“아니라고 하지 않았느냐.”
“솔직하게 말해줘. 우리끼리 그것도 말 못 해?”
“……괜찮다.”
“아, 뭔데. 내가 답답해서 그래.”
그제야 싹이는 잠시 나와 눈을 마주치고는 말했다.
“봄을 맞이하여 너희들이 좋아하는 빛깔로 맞이한 것은 알고 있지 않느냐?”
“그렇지. 엄청 고마워. 우리가 너무 고맙다는 표현을 안 했나? 그러면 오해야, 지금 너무 행복해. 항상 너한테는 고마워하고 있고.”
“그런 뜻이 아니다. 나는 그리 속이 좁지 않다. 그리고 우리는 공생관계 아니겠느냐. 그리고 나 역시 너희들의 얼굴을 보면, 이제는 제법 알 것 같다.”
인간을 아예 이해하지 못하던 싹이가 이제는 표정을 읽는다.
“그래?”
“그렇다. 그리고 내가 신경 쓰여 하는 것은 다른 이유 때문이다.”
“뭔데, 편하게 말해봐.”
잠시 머뭇거리던 싹이는 네모집 쪽을 가리켰고, 시선은 다른 곳에 둔 채 말했다.
“네모집 앞에 다른 선물도 준비하였다. 나도 항상 너희들 덕을 보고 있는데, 마침 내가 줄 수 있는 선물이기에…….”
기껏 선물을 준비해뒀는데 우리가 네모집에는 안 가고 계속 밖에서 놀고 있는 게 마음에 들지 않은 모양이다.
그나저나 싹이는 자신이 우리를 위해 서프라이즈 준비를 했다는 것에 대한 인지가 있을까?
싹이가 인지하고 있느냐 없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이미 싹이는 누구보다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런 거였어? 말을 하지!”
내가 팔을 살짝 치며 크게 웃자 싹이가 눈썹을 찡그렸다.
“저기다. 가자.”
싹이는 먼저 앞장서서 걸음을 옮겼다.
나는 걸음을 떼면서 놀고 있던 지율이를 향해 손짓을 했다.
“지율아, 일단 집에 가자. 짐도 정리하고 해야지.”
“앗! 응! 아까 산 거 기대된다!”
“어떤 거?”
“아까 비누 같은 장난감!”
“아아, 지점토.”
나는 피시 웃었다.
“비누 아니라니까. 아무튼 가자. 벌써 배도 고프다.”
“응!”
그렇게 우리는 다 같이 네모집으로 향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나와 지율이는 다시 한 번 놀라면서 걸음을 멈췄다.
앞마당에는 누가 봐도 싹이가 새로 마련한 선물이 기다리고 있었다.
안마의자였다.
정확히는 나무와 덩굴을 엮어 안마의자와 비슷한 형태로 만들어놓았다.
디테일이 상당했다. 진짜 안마의자보다 훨씬 잘 만들었고 멋지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와아…… 이건 정말…….”
나는 진심으로 감탄하며 나무안마의자와 싹이를 번갈아 쳐다봤다.
“이거 진짜 멋지―”
내가 말을 마치기 전,
“우와아아아아아아! 우주선 조종석이다아아아아!”
지율이가 소리를 지르며 나무안마의자를 향해 달려갔다.
“우와아아아! 조종석이다! 조종석이야! 말도 안 돼! 이거 꿈이지? 나한테 조종석이 생겼어!”
항상 행복해하고, 작은 일에도 기뻐하는 지율이였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좋아하는 일은 드물었다.
안마의자가 어지간히도 갖고 싶었던 모양이다.
문제는 지율이가 안마의자를 안마의자로써 좋아하는 게 아니라는 것.
우주선 조종석이지만, 조종하는 무언가는 달려 있지 않았다.
진짜 안마의자라면 리모컨이라도 있을 텐데.
“우와아아아! 너무 행복해! 싹이 최고야! 이제 우주에 갈 수 있게 됐어!”
나무안마의자 팔걸이에 양손을 얹은 지율이는 원이 없다는 듯이 소리쳤다.
과연 지율이의 만족도를 계속 유지할 수 있을지. 어떻게 할지 고민하는데, 싹이 역시 제법 난감하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피식 웃으며 생각했다.
사람 다 됐네. 사람 다 됐어.
그때 지율이가 싹이를 보며 물었다.
“나 이거 타 봐도 돼?”
“물론이다. 앉아보거라.”
“만세! 고마워어어어어!”
지율이는 싹이의 허리가 끊어져라 꼭 끌어안은 뒤, 나무 안마의자 앞에 섰다.
웃음기를 잔뜩 머금은 얼굴에 기대감도 가득했다.
저 기대가 깨지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음?”
지율이 옆과 뒤로도 기대감이 이어졌다.
무룩이, 곰곰이, 삐삐도 눈을 반짝거리며 대기했다.
귀촌 첫날 차원문이 생겼다 214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