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chef of the constellations RAW novel - Chapter 45
45화. 여신이었던 마녀
“주방 보조 파트의 3라운드 테스트는 김장입니다.”
마철성에게 부탁해 준비한 어마어마한 양의 배추와 무를 비롯한 김장 재료를 쌓아놓고 그렇게 말하자 지원자들이 따가운 시선을 보내왔다.
그런 시선 앞에서 나는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그렇게 보셔도 할 수 없습니다. 이건 진짜 테스트거든요.”
김장이 어떻게 주방 보조를 가려내는 테스트냐고?
그건 김장을 해보지 않은 이들만 할 수 있는 일이다.
김장은 요리 스킬의 완성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
놀랍게도 김장하는 동안 다양한 요리 스킬이 쓰이고 그 능숙함에 따라 김치의 맛이 달라진다.
“첫 번째, 배추를 소금에 절이면서 재료의 변화를 체크하는 눈썰미가 필요합니다.”
너무 절이면 배추가 흐물흐물해지고 너무 안 절이면 김치가 싱거워지면서 금방 상한다.
적절하게 절여지는 상태를 체크할 수 있는지를 볼 생각이었다.
“두 번째, 김장은 칼로 시작해서 칼로 끝납니다.”
배추김치에 들어갈 양념 재료를 만들기 위해 수백, 수천 번의 칼질이 필요했다.
배추를 가를 때도 그렇지만, 특히 무채를 써는 것이 김장에 있어서 가장 손이 많이 가는 부분.
“9명의 지원자가 모두 함께 칼질을 하면 금방 끝날 겁,”
······아, 이게 아니지.
“크흠, 칼질 실력을 알 수 있을 겁니다.”
그 외에도 황태 육수 만들기, 찹쌀풀 쑤기, 양념 배합 비율 맞추기, 배춧속을 얼마나 꼼꼼히 채우느냐 등으로 지원자들의 요리 스킬을 알 수 있을 터였다.
“그럼 지금부터 김장을 시작하세요!”
헤르메스의 권속들이 김장을 어떻게 하는지, 내가 미리 시범을 보인 갓튜브 영상을 지원자들에게 보여주고 종이 메뉴얼도 나누어주었다.
지원자들은 그걸 보고 어설프게나마 김장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고기 요리하러 왔는데, 내가 여기서 무나 썰어야 해?”
“이 땅의 속담에 칼을 뽑았으면 무나 썰라는 말이 있대. 너한테 딱 아냐?”
“언니!”
불평을 늘어놓으면서도 화려한 칼 놀림으로 무채를 썰고 있는 여신은 수메르 신화의 닌사르 여신이었다.
‘도살자’라는 별명을 가진 여신으로 도축과 도축한 고기로 만드는 요리의 여신이라던가?
덕분에 칼질만큼은 화려하기 그지 없었다.
“너는 그래도 칼질이라도 되지. 나는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에휴.”
옆에서 한숨을 쉬는 여신은 마찬가지로 수메르의 여신 닌에이가라.
항상 항아리를 끼고 다니며 버터나 치즈, 요거트를 만드는 유제품의 여신이었다.
요거트를 만들 줄 알면 김치의 유산균 발효에도 활용할 수 있을까?
나는 그녀를 유심히 지켜보기로 했다.
아, 참고로 둘 다 유일급 성좌였다.
“또우! 또르띠야! 난 포기다!”
비명을 지르며 머리를 쥐어뜯는 남신은 온몸이 샛노란 색인 아즈텍의 옥수수 신 센테오틀이었다.
모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노란 피부의 중년 가장처럼 배불뚝이에다가 머리숱도 없었는데 그걸 쥐어뜯고 있네.
“옥수수가 안 들어가는 요리는 난 못해! 하다못해 옥수수 가루로 풀을 쑤게 해줘!”
미안하지만, 내 평생 김치에 옥수수 들어간다는 소리는 못 들어봤습니다.
그렇게 남미의 옥수수의 신, 희귀급 성좌 센테오틀은 처량하게 퇴장했다.
다음 탈락자도 금방 나왔다.
“잠깐만요. 죄송하지만, 그렇게밖에 요리를 못하시나요?”
“그렇사와요. 무슨 일이라도 있으신지?”
치렁치렁한 일본식 기모노를 입은 여신이 고상한 말투로 내게 대답했다.
일본 인형을 그대로 빼닮은 미인 여신이었지만, 나는 방금 그녀의 콧구멍에서 생강이 튀어나온 걸 봤거든.
“본녀의 이름은 오오게츠히메. 히노모토(일본)의 모든 음식을 담당하는 신이랍니다?”
음식의 신인 오오게츠히메는 전신의 구멍으로부터 재료를 꺼내 요리한다는 설화를 가진 신이었다.
그걸 본 일본의 망나니 신 스사노오가 더럽다고 죽였더니 온몸의 구멍에서 각종 곡물의 씨앗이 나와 농경이 시작되었다는 이야기까지 있었고.
“제가 하는 요리법이 곧 히노모토의 정진정명한 요리법이와요.”
그렇게 말하는 와중에도 그녀의 귀와 눈에서 재료가 툭툭 떨어지기 시작했다.
분명 성좌니깐 더럽기보단 신령스러운 것에 가깝겠지만,
“손님들이 보면 좋아하지 않을 것 같네요. 저희 식당의 모토는 ‘손님들을 웃게하는 요리’라서요. 죄송합니다, 탈락이십니다.”
“흥! 치즈 닭갈비와 삼겹살의 나라라고 해서 왔는데 실망이에요!”
내 탈락 선언에 삐친 오오게츠히메가 벌떡 일어나 떠나버렸다.
그녀가 지나간 바닥에 여러 음식 재료가 떨어져 있었지만, 그냥 못 본 척하기로 했다.
아무리 신화라지만, 루왁 커피도 아니고 엉덩이에서 나온 콩을 요리하고 싶진 않거든.
이들 외에도 두 명의 지원자가 고춧가루가 맵다, 김치는 본국의 것이다라고 외치다가 쫓겨났다.
참고로 김치를 자신의 나라 것이라고 주장한 권속은 중국 쪽 권속이었다.
사람이나 권속이나 거기서 거기네.
반면, 열심히 실력을 선보이는 지원자들도 있었다.
“이, 이런, 오오게츠히메께서 떠나셨으니 소인이라도 열심히 해보겠소이다!”
다지마모리라고 불리는 일본의 과자 신은 주특기를 살려 양념을 내가 알려준 배합비대로 정교하게 맞추고 있었다.
원래 제과제빵은 정교한 계량이 생명이니까.
“양념을 바르는 건 내게 맡기거라.”
피부가 푸른 힌두교의 여신, 안나푸르나가 엄청난 속도로 배춧속에 양념을 넣고 있었다.
시바 신의 아내 파르바티의 또 다른 신격인 안나푸르나는 이름대로 ‘가득한 음식’의 여신이었다.
거기다 힌두교 신답게 손이 네 개인 터라 남들보다 배의 속도로 배춧속을 채우는 중이었다.
그렇게 안나푸르나가 양념을 채워 넣으면, 그걸 깔끔하게 정리해서 통에 담는 건 마지막 남은 지원자였다.
“지원자님 성함이 혹시······.”
모자 달린 후드를 깊게 눌러쓰고 일하느라 누군지 확인할 수 없어 나는 공손히 물었다.
그러자 양념 된 배추를 정리하던 지원자가 움직임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나를 보았다.
“······바바 야가.”
주름진 얼굴에 커다란 매부리코, 반이나 빠진 이빨 사이로 새어 나오는 쇠를 긁는 듯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슬라브 신화 속의 마녀, 바바 야가였다.
* * *
바바 야가.
외딴 숲 한가운데, 닭 다리 위에 올려진 통나무집에서 사는 추하고 못된 마녀.
러시아를 비롯한 슬라브 민족의 국가에서는 어린아이에게 못된 짓을 하면 바바 야가가 잡아가거나 벌을 준다며 겁을 주는, 그런 존재였다.
바바 야가가 유럽의 다른 마녀들과 다른 점은 빗자루 대신 절구통을 타고 날아다니고 절굿공이를 노 젓듯 허공에 저어서 하늘을 날아다닌 다거나 가끔은 집 아래 붙은 닭 다리로 껑충껑충 집채로 이동한다는 점.
하지만 흉한 외모에 사악한 심성, 그리고 기괴한 행동들로 인해 꺼려지고 미움받는다는 건 공통적이었다.
보라, 지금 저 인간도 자신의 얼굴과 목소리를 듣자마자 안색이 변하지 않는가.
‘결국, 인간들은 다 똑같아.’
바바 야가는 주름진 얼굴을 보기 흉하게 일그러뜨리며 킬킬 웃어댔다.
공포와 혐오의 대상인 마녀였지만, 그녀가 처음부터 마녀였던 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나는 모든 이에게 사랑받는 여신이었지.’
옛 게르만 땅, 그러니까 서유럽과 북유럽 지역에서는 모두에게 칭송받는 아름다운 여신이 하나 있었다.
프라우 홀레(Frau holle).
홀다 혹은 페르히타라고도 불린 이 여신은 옛날 유럽 땅에 살던 사람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는 위대한 여신이었다.
우물 바닥에 살면서 사람들에게 실 잣는 법과 천 짜는 법을 알려준 위대한 여신.
그래서 겨울을 따뜻하게 보낼 수 있게 해준 겨울 여신.
‘엄마, 눈이 내려요!’
‘프라우 홀레께서 이불을 터시는 모양이구나. 그분이 이불을 털면 이불에서 눈이 퐁퐁 내린단다.’
‘꺄르르, 재밌어요!’
그 시절엔 겨울에 관한 거면 모든 것이 다 프라우 홀레와 연관 지어 생각했다.
가장 큰 명절, 크리스마스조차도 말이다.
‘아들아, 딸아. 올 한해도 착하게 보냈니? 착하게 보냈다면 하얀 여인이 은화를 줄 거고, 나쁜 일을 했다면 재투성이 할머니가 벌을 내릴 거란다.’
‘착하게 지냈어요!’
‘그래야지. 나쁜 어린이였다면, 재투성이 할머니가 배를 가르고 뱃속에 짚과 자갈을 채워 놓은 다음 다시 꿰맬 거란다.’
‘으앙! 무서워!’
하얀 여인과 재투성이 할머니는 프라우 홀레의 두 모습을 나타냈다.
착한 일을 한 아이에게는 선물을 주는 아름다운 하얀 여인.
나쁜 일을 한 아이에게는 아주 끔찍한 벌을 내리는 재투성이 할머니.
‘프라우 홀레 님.’
‘홀다 님.’
‘페르히타 님.’
그녀의 위상이 높고 워낙 유명했기에 게르만족만이 아니라 켈트족, 슬라브족 일부도 그녀를 믿을 정도였다.
그야말로 유럽 전체의 여신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
‘모두가 나를 사랑하고, 나도 모두를 사랑했었지.’
한때 여신 프라우 홀레였던 마녀 바바 야가는 씁쓸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건 모두 과거의 일이었으니까.
기독교가 유럽에 전파되고 기존의 신들을 악마나 마녀로 몰면서 그녀도 여신이 아니라 마녀로 전락해버렸다.
사람들의 믿음과 신앙으로 힘을 얻는 것이 성좌였기에, 사람들이 마녀라고 믿는 순간 그녀도 힘을 잃고 영락해버린 것이었다.
‘모두가 나를 미워하기 시작했다.’
이제 그녀는 사랑받던 여신이 아니었다.
아이를 유괴하고 농사를 망치고 저주를 내리며 악마와 괴상망측한 짓을 저지르는 마녀라고 손가락질을 받았다.
‘억울해. 나는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는데.’
잘못된 이에게 엄벌을 내리던 재투성이 할머니는 흉측한 외모를 지닌 마녀라고 혐오를 받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보상을 내리던 하얀 여인은 남자를 유혹하는 마녀라며 손가락질당했다.
‘아이들마저 나를 따르지 않게 되었어.’
그녀는 누구보다 아이들을 사랑했던 여신이었다.
그래서 어렸을 때 세상을 떠난 아이들의 영혼을 거두어 저승으로 갈 수 있게 보살피는 신이기도 했다.
숲에서 길을 잃은 아이들을 잘 돌봐서 집에 돌려 보내주기도 했었고 말이다.
특히 그녀는 과자를 잘 만들었기에 아이들은 울다가도 그녀가 만든 과자를 먹으면 눈물을 그치고 방긋 웃곤 했다.
하지만 마녀로 전락한 뒤, 그녀는 어느새 아이들을 잡아먹는 괴물로 소문이 나버렸다.
‘귀여운 아이들이구나. 과자 좀 먹으련? 아이들을 위한 과자 집이 있어요. 호호호.’
‘거짓말! 엄마가 그랬어요. 숲속의 마녀는 과자를 미끼로 아이들을 잡아먹는다고!’
‘오빠, 밀어! 화덕 속으로 밀어버려!’
가장 충격적이었던 일은 길을 잃어서 울고 있던 남매를 달래줬더니 자신을 화덕 속에 밀어버리고 도망친 일이었다.
물론 한때 여신이었고 마녀일 때도 힘이 강력한 그녀였기에 화덕 속에 들어간다고 다칠 일은 없었지만.
‘아이들이 나를 죽이려 들다니······.’
누구보다도 아이를 아꼈던 그녀였기에 충격이 보통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녀는 다신 인간들과 접촉하지 않겠다고 마음먹고 그나마 그녀를 잘 모르는 러시아의 숲속에 들어가 홀로 은거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헨젤과 그레텔이라는 이름을 가졌던 남매는 마을로 돌아가 자신들이 마녀를 해치웠다며 자랑스럽게 떠벌렸고 지나가던 동화 작가들이 그 이야기를 글로 남겼다.
그 이야기는 유럽 전역에 퍼졌고 결국 러시아 지역에서도 그녀는 마녀가 되었다.
‘바바 야가’라는 이름으로.
“······.”
자신을 보고 놀란 인간 요리사를 보며 바바 야가는 차디찬 경멸의 웃음을 지었다.
‘너도 똑같구나. 하지만 상관없어. 나는 내 힘만 되찾으면 돼.’
다시는 인간과 관계되지 않겠다고 결심했던 그녀가 인간 요리사가 운영하는 가게의 직원이 되고자 하는 이유는 하나였다.
신화급 성좌들도 찾는 이 식당에서 일하며 명성을 얻고 카트시 왕자였던 톰의 격을 상승시켜 고양이 대왕으로 만들어준 요리의 비밀을 얻어서,
‘다시 여신이던 시절로 돌아갈 거야.’
모두에게 사랑받고 아이들이 따르던 시절의 자신으로 돌아가는 것뿐이었다.
‘비웃으려면 맘껏 비웃어라. 경멸하려면 맘껏 하든지. 이제 그런 건 익숙하니까.’
자신에게 날아들 비난을 예상하며 바바 야가가 마음을 눈처럼 차갑게 굳힐 때였다.
인간 요리사가 놀랐다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솜씨가 엄청 좋으시네요. 처음 하는 김장부터 이렇게 배추를 예쁘게 말아서 정리하는 게 쉽지 않은데. 금손을 타고 나셨나 봐요.”
“······.”
바바 야가는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자신을 보고 겁에 질리거나 혐오를 보이지 않고 칭찬을 한 인간이 얼마 만이더라?
너무나 오래전의 일이라 칭찬을 받았다는 기쁨이 뭔지도 잊어버린 그녀였다.
그런 그녀에게 인간 요리사, 아니 도연성은 멈추지 않고 싱글싱글 웃으며 칭찬을 이어나갔다.
“이야, 이 솜씨 봐. 다른 요리도 잘하시겠네요? 특히 과자나 섬세한 장식 같은 거.”
아이들이 그토록 좋아했던 자신의 과자.
과자로 집을 만들 정도로 섬세한 장식을 잘했던 자신.
정말 오랜만에, 그녀의 가슴 속에 칭찬받아 기쁘다는 감정이 피어올랐다.
그래서 그녀는 마녀처럼 말하는 것도 잊고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리듯 대답했다.
“······과자.”
“네?”
“과자, 잘 만들어요······. 자신, 있어요······.”
울음기를 간신히 억누르며 대답하는 그녀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거기에 담긴 것이 이미 지나간 옛날을 떠올리는 슬픔인지, 아니면 이제라도 누군가가 자신을 인정해줬다는 기쁨인지는 바바 야가 자신도 잘 알 수 없었다.
“다행이네요. 다음 라운드에서 보죠.”
“네, 감사합니다······.”
일부러 내던 할머니 목소리도 사라지고 본래의 아름다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흉측한 외모나 마녀라는 편견이 아닌, 자신의 본모습을 봐준 존재를 만난 건, 실로 오랜만이었다.
손 형, 왜 그러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