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mythical shepherd slave RAW novel - Chapter 244
상인은 상대가 자기보다 힘이 없어 보이면 도적이 되었다.
도적은 상대를 약탈할 역량이 안 되면 거지가 되었고.
거지는 필연적으로 떠돌이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떠돌이가 운좋게 돈과 힘을 얻으면 상인이 될 수 있었다.
고로 상인 아노이토스는···
“···저기, 전방에 아카이아인의 선박이 보입니다!”
“드디어!! 전부 죽여버리자고!!!!”
“우와아아아아아!!!! 안탄드로스 만세!!!!”
“적들에게 죽음을!!!!”
“좋아!! 아주 다들 사기가 충만하군그래!!!! 이번에 아군 피해 없이 이기면 우리 상단에서 자네들에게 특별 봉급을 지불하겠다!!!!”
“우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
···해적, 아니 안탄드로스 해군 제독 아노이토스로 손쉽게 전직할 수 있었다.
안탄드로스에서 가장 큰 규모의 상단과 선단을 조직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인 데다가, 파리스를 향한 충성심도 증명된 인사로서, 심지어 신형 전선(戰船) 트리에레스의 개발에도 관여했으니.
“당장 배를 우측으로 돌려라!! 지금 당장!!”
“알겠습니다!!!!”
-쿵! 쿵! 쿵! 쿵! 쿵!
그만한 인재가 없었다.
영웅을 향한 동경심을 졸업했다(고 주장하)는 아노이토스일지라도, 지금 이 순간에는 흥분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내가, 이 위대한 전쟁에서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위대한 제국을 만든다는 전쟁에서!!!!
안탄드로스에서 너무 오랫동안 행정 업무와 아카이아와의 전쟁 준비 등등에 짓눌려 있었다.
아무리 한 번 도망쳤었다 해도 그는 역시 상인의 핏줄이다. 제대로 된 항해 한번 못 해보다 이제야 해방감을 느끼며 천직을 되찾았으니 기쁠 수밖에.
바로 저 앞에, 크고 작은 아카이아인들의 배가 구름처럼 떼지어 트로이아 쪽으로 향하고 있다. 최근에 해협 쪽을 노리는 아카이아 함대가 늘어났다는 정보가 꼭 사실대로였다.
“북풍이 분다!!”
“전부 돛을 접어라!! 돛을 접어!!”
-부우우우우우우!
남쪽에서 적들의 꽁무니는 쫓는 그들에게 북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더 이상 필요 없었다. 순전한 사람의 팔과 다리에서 나온 힘이 물살을 가르고 이 석양이 지는 바다 위를 가르고 있었다.
아노이토스가 선수에서 잠시 바다 밑바닥을 내려다보니, 점차 검푸른빛이 올라온다. 죽음처럼 차가운 빛이다.
저 빛이, 아군의 죽음이 아니라 적들의 죽음을 의미하길.
그는 트로이아 시민들이 들으면 살짝 흠칫할 이름을 외치며 지휘봉을 휘둘렀다.
“가라! 헤라클레스의 몽둥이 호!! 전부 부숴버려!!!!”
트로이아의 성문을 부쉈다는 무기를, 트로이아를 지키는 선박의 이름으로 붙인다는 부조리 따위 영웅을 향한 신심으로 극복했다.
최근에 헤라클레스의 아드님도 주군의 동맹이 되지 않았던가? 좋은 게 좋은 거다.
-쏴아아아아아악!!!!
170여 명의 노잡이가 일사불란하게 물살을 갈라낸다. 하얀 포말이 배 양쪽으로 흰 날개처럼 펼쳐진다.
압도적인 속도.
압도적인 질량.
이미 놀란 적 선원들이 혼비백산하여 급히 노를 젓고 있다. 저들 역시 해적질로 도가 트기는 하여 빠르게 배의 방향을 돌리고 있지만···
“헤라클레스시여!! 내가 갑니다!!!!”
이쪽이 더 빠르다.
왜냐? 노잡이가 더 많아서? 설계가 구조적으로 더 뛰어나서? 전부 아니다.
헤라클레스께서 가호하시기에.
이 아노이토스가 이끄는 함선을.
-콰콰콰콰콰쾅!!!!!!
온몸을 뒤흔드는 충격.
50명 정도가 타버린 작은 함선 따위 곧바로 반으로 쪼개어버리는 위력에 아노이토스는 쾌감으로 바들바들 떨었다.
“그분께서··· 그분께서 내게 임하신다···.”
“좌현에 적선이 다가옵니다!!”
“저··· 저··· 불경한 것들!! 화살을, 준비하라!!!!”
***
“너희는 누구냐!!!!”
“위대한 크레타의 시민들!!!!”
“이 바다의 승리자는 누구인가!!!!”
“크레타인들!!!!!!”
벌써 한참 동안이나 반복해온 주문이다.
반복은 티몬에게 최면과도 같은 효과를 낳았다. 마치 반복되며 울리는 북이 단순한 반복이 아니고 어떤 음악과 박동을 만들어내듯. 반복되어 저어지는 노가 배를 힘차게 전진시키듯.
그의 가슴은 어느새 고양감으로 가득 찼고, 자긍심으로 가득 찼다.
이길 수 있다.
크레타는 위대한 창궁의 지배자이신 제우스께서 나고 자라신 땅이라 하였다. 한때 저 아카이아 땅의 사람들이 짐승처럼 땅굴을 파고 살았을 때부터 거대한 궁전을 지었던 땅이라 들었다.
크레타는 위대한 섬이고, 그 섬의 사람들 역시 위대한 사람들이다. 트로이아의 알량한 선박들 따위 짓부숴버리고 금방이라도 나아갈 수··· 있···
-콰직.
티몬은 노를 젓다 말고 눈을 꿈뻑거렸다.
바로 앞에서 나아가던 배에는 그의 고향 친구들이 있었다. 그 외에도 수십의 용맹한 전사들이 있었다.
“사, 살려··· 살려줘!!”
“저기 배가 있다! 아군의 배가 있어!!”
그러나 그 전사들의 용맹함 따위, 육중한 몸을 이끌고 돌진하는 바다괴물의 전진에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청동과 강철로 된 갑옷을 입으며 뽐내던 귀족들은 헤엄칠 새도 없이 바다 밑으로 가라앉아버렸다.
가장 비천하던 이들, 헐벗은 이들만이 투구와 창을 던져버리고 벌거벗은 채 아군들의 배 난간에 매달려 목숨을 구걸하고 있었다.
“끄, 끌어올려!!”
당황한 지휘관이 명령하기도 전에 티몬과 동료 노잡이들은 벌써 서넛의 병사들을 끌어올렸다.
그러나 주위를 둘러봤을 때 물 위에 떠오른 검붉은빛은, 생존자가 많지 않음을 말 없이도 알려주었다.
“너희는 누구냐!!!!”
“···.”
그리고 반복의 마법이 풀렸다.
최면도, 고양감도, 자긍심도 없었다.
“노를 저어라!! 그대들의 왕과 그대들의 도시를 위하여!!”
인간으로서의 가장 원초적인 본능, 생존의 욕구만이 남았다.
지휘관의 말소리와 북소리는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저 바다로 뛰어들어 저 육지로 헤엄쳐 가는 게 생존을 향한 유일한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써걱.
“노를 저으라고!!!! 지금 이대로면 다 죽는다!!!!!!”
지휘관은 고육지책을 썼다. 그가 헤엄쳐 올라온 아군 한 사람의 목을 베자 모두들 퍼뜩 정신을 차린 듯 온힘을 다해 노를 저어댔다. 마치 노를 젓기 위해 태어난 것처럼.
저 괴물 같은 배가 어느새 옆에 다다른다. 노잡이 몇몇이 노질을 멈추고 갈고리를 던지지만 적선의 높은 누벽에 제대로 걸리지 못하고 대부분 떨어진다.
티몬 역시 노를 놓고서, 흔들리는 배의 바닥을 딛고 일어나 덜덜 떨리는 팔로 갈고리를 던진다.
-턱.
걸리지 않았다. 다시.
-터덕.
또 떨어져내렸다. 다시.
-틱.
제발. 제발···. 다시.
다시. 다시. 다시.
그리고.
-타칵.
“됐다!!!!”
드디어 갈고리를 거는 데 성공했을 때 티몬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선원 절반이 화살에 맞아 죽은 광경은, 차라리 보지 않는 게 나을 뻔했다.
순간 멍해져서 갈고리에 묶인 밧줄을 쥐고만 있는데, 어느새 티몬은 그 밧줄에서 팽팽함이 사라지고 있음을 깨달았다.
앞을 보니 ‘그것’이 다가오고 있었다.
전설 속 무시무시한 짐승처럼, 청동으로 된 뿔을 달고서.
충돌한다.
***
-콰콰콰콰콰콰쾅!
이번에 맞은 적선은 쪼개지진 않았지만 옆구리에 크게 구멍이 뚫렸다. 아노이토스의 명령에 따라 급하게 후진하니 순식간에 바닷물이 구멍으로 차올라 가라앉기 시작한다.
갈고리를 걸고, 난간을 뛰어넘어오는 병사들에게 직접 화살을 날리며 아노이토스는 외친다.
“철쇄대!!!!”
그렇게, 함선에 타고 있던 철쇄대원 열댓 명이 나타나 갈고리들을 걷어내고, 배에 이미 올라탄 적들을 수장시켰다.
한순간처럼 짧게 느껴지던 시간이 지나고 주위를 돌아보자 어느새 산산이 조각난 나무쪼가리들만이 보일 뿐이다.
트리에레스 단 1척으로, 적의 배 7척을 한 사람의 손실도 없이 쓰러뜨리니 이 어찌 대단한 성과가 아닐 수···
“···크아아아악!!!!”
···누군가가, 물에 쫄딱 젖은 재 몸을 분노와 추위로 바들바들 떨고 있다.
칼을 뽑아 들고서.
“나는 테스토르의 아들 알크마온이다!! 내가 이 괴물배를 정복했으니, 누구도 내게 대적할 수 없을···”
-피쉬시시시시쉿!!!!
그의 말이 가느다란 파공성에 끊긴다.
“컥, 커컥···.”
영원히.
테스토르의 아들 알크마온은, 그렇게 아노이토스에게 이름 한 마디만 남긴 채 말을 잃었다. 그는 가슴팍에 박힌 심정을 덜덜 떨며 지켜보다 털썩 무릎을 꿇었다.
그게 끝이었다. 그의 몸이 앞으로 거꾸러지자 곧 훈계의 말소리가 들린다.
“주의해라, 아노이토스. 적에게 백병전을 허용하면 우리는 가장 큰 이점을 잃는다. 특히 영웅들이 좁은 배 안에서 난리를 친다면··· 어떻게 될지는 알겠지?”
아노이토스는 선실에서 걸어나오며 적의 심장을 꿰뚫은 화살을 뽑는 주군을 지켜보았다.
“뭐, 원체 배의 높낮이 차이가 크고 해서 쉽지는 않겠지만. 그래서 철쇄대원들을 붙여둔 거기도 하고.”
“주, 주의하겠습니다, 주군.”
“그래서 결과는?”
아노이토스는, 어느새 자신이 동경하던 영웅들처럼 행동하는 주군을 보며 환하게 웃었다.
“···완승입니다, 파리스 님!”
***
“완승. 완승입니다, 형님. 일단 적들의 배를 벌써 몇 척은 털어내버렸고 죽은 적의 수효도 수백은 될 겁니다.”
트로이아만으로 돌아와 하선한 뒤, 우리는 곧장 연안에서 기다리고 있던 헥토르를 만나 보고했다.
···다시 생각해도 어처구니가 없네. 진짜로 딱 급할 때 저쪽에서 해전을 걸어와주네? 혹시 부탁하면 보증도 서주는 거 아닐까?
“파리스! 파리스! 파리스! 파리스!”
“···뭐, 여기가 대화를 나누기 좋은 장소는 아니군요. 일단은 형님, 궁전에 가서 이야기합시다.”
나는 떠나기 전에 항만에 모여든 시민들을 향해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들이 환호와 함께 내 이름을 연호하는 것을 손짓으로 가라앉히고는 말했다.
“···여러분, 여기 이 아노이토스가 나의 함대를 지휘한 주역이오!! 내게 줄 함성을 이이에게 대신 주도록 하시오!!”
“우와아아아아!!!!!! 아노이토스!! 아노이토스!!”
“하, 하하하하!! 주군, 모두가 제 이름을 연호합니다!!”
“그래. 그래. 나는 먼저 왕궁에 가 있을 테니 자네는 좀 시민들의 환호를 즐기고 있게.”
그제야 나는 헥토르와 함께 트로이아의 왕궁으로 피신할 수 있었다. 그러자 시민들의 함성 소리도 좀 줄어들었고, 우리 둘이서 조용히 대화를 나눌 수도 있었다.
“일단은 저희의 승리를 시민들에게 보여주는 데는 성공했습니다.”
그것도 아주 화려하게 말이지.
내 말에 헥토르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한다.
“그렇지. 해안에서 벌어진 승리다 보니 아마 효과는 더 클 거야.”
50명씩 태우는 전선과 200명 가까이 태우는 전선.
누가 봐도 압도적인 체급으로 적의 선박들을 찍어누르는 광경에 트로이아 시민들이 기뻐했을 것은 물론이다.
듣자 하니 아예 해안으로 겨우 떠밀려온 아카이아 병사들을 집단으로 구타한 다음에 도시로 끌고 왔다는데··· 나중에 그들도 만나봐야겠군.
아무튼 당분간 트로이아 시민들의 여론은 어떻게든 환기가 될 것이다. 군공이 있으니 트로이아의 여러 씨족장들도 당분간은 이런저런 말을 꺼내지 못할 테고.
“그렇지만, 포로들 중에는 지휘관급 인사가 없었습니다. 몇몇 이름 있는 장수들이 있기야 했다만··· 예, 핵심 인사는 아니었죠.”
“그리고 지난 전투와 같이 전부 출신이 비슷했다?”
“예. 크레타 출신이 가장 많았고, 그 다음에는 에키나이 군도 출신들도 있었습니다.”
“···.”
아카이아 연합군 중에서 유독 몇몇 족속들만 눈에 띈다. 이상하지 않나?
“제가 볼 때, 이들은 본대가 아닙니다. 생각하고 있는 가능성은 두 가지입니다.”
“한번 말해봐.”
헥토르의 표정이 진지해지니, 나 역시 얼굴을 그에게 가까이 가져간다.
“첫째, 기만전술일 가능성입니다. 일단 이렇게 조금조금씩 전투를 시도하면서 트로이아 쪽을 긴장케 만든 다음 다른 곳을 치는 거죠.”
“···그럴 가능성은 많지 않아 보이는데?”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어차피 대병력을 데리고 렘노스 섬을 경유해 테네도스 섬까지 점령했다는데 그럼 트로이아 근해 어디든 위협할 수 있잖습니까?
테네도스 곳곳을 장악하고 그 대군을 섬으로 옮긴 뒤, 물자를 모으는 게 더 급할 겁니다.”
테네도스.
아무래도 트로이아의 패권을 가장 반기지 않던 섬이다 보니 초반부터 이탈해 나갔다.
저들을 정벌하기에는 미시아가 급했고, 또 그게 아니더라도 장기적인 정복전을 벌이기에는 아카이아인들이 부담스러워 그대로 놓칠 수밖에 없었으니.
테네도스 섬에서 육지까지 거리가 짧은 곳은 5킬로미터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육안으로도 보이는 거리에서 저들이 기만전술을 수행할 가능성은 크지 않았다.
“그리고 둘째로는···”
“둘째로는?”
“파벌 싸움입니다. 굳이 해전으로 승리를 거둬야만 하는 계파가 있는 거고···”
“거기서 크레타인들이 주축일 거란 뜻인가?”
“정확합니다.”
“하기사··· 크레타인들이 주축이 될 만하지.”
헥토르는 손가락을 튕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카이아에서 손에 꼽히게 부유한 데다 섬이라 숙련된 뱃사람도 많을 테니. 특히 아가멤논의 치세 중에 아주 크게 벌어들였다 하니 이번 전쟁에 100척은 넘게 동원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소규모 전투로 몇 번씩 저희 전력을 알아보면서 간을 보는 거겠죠. 다른 계파를 설득하려면 보여줄 성과가 있어야 하니까요.”
그렇다면.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저들에게 허울뿐인 승리라도 쥐여줘야 합니다.”
해상전 (3)
“이, 이, 이···.”
주체할 수 없이 바들바들 떨리는 주먹, 누구 하나 고개를 들지 못하는 초라한 패장들, 들려오는 기분 더러워지는 소식들.
그 모든 게 이도메네우스의 열을 뻗치게 했다.
“다, 단 한 번만··· 이기면 되었다.”
이도메네우스의 계획은 간단했다.
첫째, 소규모 전투로 적들의 약점을 알아보며 성과를 차근차근 쌓는다.
둘째, 그 성과를 토대로 다른 도시의 병사들을 이끌고 커다란 전투를 준비한다.
셋째, 이긴다.
“아, 아니면, 적어도 한 번이라도 적들의 맹점을 파악해내면 되었다.”
그래서 간단하게 성공할 줄 알았지, 간단하게 망하리라고는 생각조차 못했다.
왜냐?
“그런데 위대한 크레타의 장수들이 그것 하나를 못 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그는 크레타의 왕이니까.
아카이아에서 가장 부유한 군주니까.
“···.”
“···.”
물론 그의 분노에 누구 한 명 변명하는 사람이 없었다. 사실 반박하고 싶은 말이야 많았다만(고전적인 자아성찰 유도법인 ‘그럼 니가 해보든가’라든가.) 일단 이도메네우스의 말에 틀린 거야 없으니.
이도메네우스가 대꾸할 말이야 뻔했다.
그래서 적들한테 이겼냐?
졌다.
적들의 약점이라도 캐냈냐?
못 캐냈다.
이 상황에서 제일 먼저 말 꺼내는 인간이 제일 먼저 깨지리라는 사실은 무엇보다도 자명했기에, 마치 ‘이 (좆 같은) 발표 준비한 조, 조장이 누구예요?’라는 질문을 받은 대학생들처럼 장수들은 잠자코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용감하게 총대 매고 나서야 할 이는 보통···
“삼촌, 너무 그러지 마십시오.”
“···.”
역시 교수님··· 아니, 왕과 친분 있는 인간이 최고다.
이도메네우스의 배다른 형제의 아들이자, 총애하는 부관인 메리오네스가 다른 모든 장수들을 대신해 말을 꺼내자 이도메네우스는 씩씩거리던 호흡을 진정시키며 그를 매섭게 노려본다.
“저들 모두 최선을 다했습니다. 조건이 나빴을 뿐이지요.”
“최선은, 누구든 자기가 최선을 다했다고 하지. 그리고 누구든 뭐가 잘못되면 조건이 나빴다고 하고.”
“그런 말씀 드리는 게 아니란 걸 아시잖습니까?”
“···.”
메리오네스는 섬세하게 이도메네우스의 화를 풀어내며 말을 꺼낸다.
“삼촌, 아니 왕이시여, 적들이 너무도 강대했습니다. 그런 적들을 상대로 저희가 너무 소극적이었습니다.”
“···소극적이었다라, 이미 죽은 병사가 1,000명을 넘겼는데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