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mythical shepherd slave RAW novel - Chapter 430
-“이게 뭔데?”
-“아니, 이렇게 벽돌로 된 관을 이렇게, 연결하면 뿜어져 나오는 연기의 열을 재활용해서 이런 용광로를···”
내가 전혀 알 수 없는 물건을 개발하고 있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대강 대단한 거. 오랫동안 잊고 있었는데 나 문과생이더라.
이제 나는 미래인 밑천을 거의 다 털어냈다. 도가니 제강법도 내가 만든 게 아니고, 히타이트와 제철법에 대한 얄팍한 지식 몇몇을 응용한 게 전부란 말이다.
지금부터는 ‘진짜’ 천재가 나타나 활약할 차례였다. 나는 괜히 비교되거나 할까봐 일찌감치 뒤로 빠져 있었다.
“암만 생각해도 부끄럽네요. 다들 ‘어, 뭐야? 파리스 님이 저것밖에 안 돼?’라고 생각하면 어떻게 해요?”
나는 스클레오스의 제안에 손사래치며 뒤로 물러섰다.
“흠··· 듣고 보니 그렇구나. 네가 망치 두드리는 걸 보고 ‘파리스 님이라면 저렇게 하시는 의미가 있겠지.’ 하면서 잘못된 자세라도 다들 따라 할 수도 있으니.”
···내 위상이 그 정도야? 숙련된 장인들이 스스로 세뇌할 정도라고?
아무튼 그렇게까지 이야기를 하고 나니 뭔가 더 대화를 이어갈 주제가 없어진지라, 우리는 차갑게 식힌 포도주나 홀짝이면서 몸을 지졌다. 잠깐잠깐 나가서 장작을 던져놓고 오니 바닥이 화끈해진다.
침묵이 어색하지는 않았다. 원래 스클레오스 아저씨는 아노이토스처럼 시끄러운 성격도 아니었고, 우리는 평생을 알고 지낸 사이였으니까.
-타닥. 탁.
창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바람소리와 장작 타는 소리가 고요함을 더했다. 나는 잔이 비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잠시 방 바깥으로 나갔다. 슬슬 눈 속에 파묻어둔 포도주를 다시 가져올 때였다.
그리고.
-서벅.
“···어?”
나는 발 밑에서부터 올라오는 낯선 감각에 다시 발바닥을 들어올렸다가 내려놓았다.
-철퍽.
“···.”
질척거리는 감각.
뭔가, 반쯤 녹아내린 슬러시나 진흙을 만지는 듯 질퍽거리는 느낌.
포도주를 묻은 눈더미에서 유리병을 꺼낼 때쯤에는 또 다시 머리에 차가운 기운이 느껴진다.
나는 더 이상 어리버리하게 굴지 않았다. 나는 곧장 하늘을 올려다본다.
여전히 눈이 내린다. 바람은 차갑고 축축하다.
그리고.
눈 사이로 물방울이 함께 떨어진다.
진눈깨비다.
나는 이 사실이 뭘 의미하는지 알았기에 당장 유리병을 든 채 마구 내달려 스클레오스 아저씨가 있는 방 안으로 들어갔다. 당황한 아저씨가 흠뻑 젖은 내 모습을 보고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이때쯤 되었을 때 나는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누, 눈이 녹고 있어요!”
그리고 그 한 문장은 단순한 현재 상황에 대한 진술을 넘어 훨씬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스클레오스 역시 내 말뜻을 깨닫고 불편한 다리로 곧장 몸을 일으킨다.
“···맙소사, 맙소사!!”
스클레오스의 얼굴에 웃음이 번진다.
“드디어!!!!”
진눈깨비가 내리는 날만큼 우중중차고 음울한 날이 없다. 바닥은 질퍽거리지, 하늘은 잿빛이지, 추우면서도 습해서 밖에서 나돌아다니다가는 감기나 폐병에 걸리기 딱 좋다.
“우와아아아아아!! 비다!! 비가 내린다!!”
“파리스 맙소사!! 알렉산드로스 맙소사!!”
“주, 주인님, 보십시오! 겨울이 끝나갑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날이 화창한 봄날이라도 되는 것처럼 기뻐하며 미쳐 날뛰었다.
창밖으로 거리를 내다보자 사람들이 환호하며 서로를 끌어안고 환호하며 거리를 내달린다. 색색의 천을 휘날리니 하늘은 여전히 회색빛인데도 안탄드로스만큼은 색색깔로 화려하게 물든다.
사람들은 고조된 분위기 속에서 서로를 끌어안고 울거나 기뻐했다. 이번에 들어온 말도 안 통하는 피난민들도 그 사이에 끼어서 함께 이국의 노래를 불렀다.
나 역시 웃음이 비실비실 삐져나오는 것을 느낀다. 뭔가, 뜨거운 것이 가슴속에서 움터오르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후우우우웅!!!!
문득 불어온 한풍 한 줄기에 다시 내 입가에서 웃음이 걷힌다.
북쪽에서, 마치 거대한 뱀의 긴 혓바닥처럼 나를 훑고 지나간 바람.
그것이 말하는 듯했다.
나는 돌아온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다.
마지막이다.
***
안탄드로스 시민들의, 아니 온 지중해 사람들의 오랜 토론 주제 하나가 일단 결론이 났다.
‘여름이 다시 되돌아올 것인가?’
돌아왔다.
···여름이라고 하기도 민망한 수준이지만.
원래 에게 해의 겨울은 습하고 여름은 건조하다. 그렇기에 가을에 밀과 보리를 심어 겨우내 비를 맞추며 봄에 수확하고 여름을 견딘다.
그런데 기후가 이 정도로 요동치는데 기존의 우기와 건기가 그대로 지켜질 리는 만무했다. 며칠 동안 눈과 비가 섞여내리던 하늘은 이제야 겨우 쾌청해졌다.
기온은 이전의 가을 날씨 비슷하게 쌀쌀하고, 공기는 건조했다가 습해졌다가를 반복하면서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그리고 얼마 뒤에는 첫 비가 내렸다.
진눈깨비가 아니라, 정말 물로만 이루어진 빗방울들 말이다.
그날, 정말 순식간에 눈과 얼음이 녹아내렸다.
마치 오랫동안 저주에 걸려 있던 도시가 되살아나는 것 같았다. 얼어붙어 있던 상수도가 되돌아오자 사람들은 기뻐하며 깨끗한 물을 퍼마셨고, 구들장에서 장작을 빼냈다.
오랜만에 양을 도축하고, 술을 꺼내며, 갑자기 피어난 꽃들을 따다 그 꽃잎을 사방에 뿌렸다.
모두가 간만에 불어온 훈풍에 기꺼워하고 있었다. 서로 말도 잘 통하지 않는 수만의 시민들이 얼싸안고서 기뻐한다.
양모와 면직물로 이뤄진 두꺼운 외투를 벗어던진다. 한동안 익숙해졌던 옷들이 사실 얼마나 갑갑한 것들이었는지 시민들은 새삼 깨달은 듯했다.
그리고, 도시에서 가장 큰 광장에 불이 지펴졌다.
시민들은 겨울을 따스하게 보내도록 도와준 헤스티아에게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내가 주관하지 않은 제사였다. 간만에 해방감을 느낄 시민들이 알아서 하도록 놔두었다.
그러나 시민들은 당연하다는 듯 나를 초대했고, 결국 나는 이노와 함께 그 축제의 참석해 상석에 앉았다.
광장 한가운데서는 불이 지펴지고, 사람들은 오랜만에 하늘하늘한 옷을 입고 웃고 떠들며 자기들끼리 노래를 부르고 술잔을 내던진다.
그리고는.
누군가가 벌떡 일어나 대오에서 이탈한다. 지금까지 주위의 눈치를 보며 아직도 겨울옷을 입고 있던 사내였다.
그 사내가 불 근처로 다가가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다. 사내는 슬금슬금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다가··· 외투를 집어던진다.
“개좆 같았던 겨울!! 다, 다시는 돌아오지 마라!!”
그리고 남자는 외투를 그 불 속에 던져 태워버렸다.
시민들이 환호성을 내지른다. 그들 역시 외투를 불길 속에 던져넣기 시작한다. 갑자기 축제 현장에 있던 이들이 무아지경에 빠져 그 집단 행동에 동참하기 시작한다.
그들은 외친다.
“다 끝났다!! 끝났어!!”
“이제 눈에 파묻혀 돌아가신 우리 이모님 장례도 치르고··· 죽은 양떼들도 묻어주고···!!!!”
“헤스티아시여! 감사합니다!!”
“파, 파리스?”
상석에 함께 앉아 있던 이노가 갑자기 놀라 내 쪽을 바라본다.
“저래도 되는 거야?”
“···안 되지.”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그러나 흥분한 시민들을 말리기는 쉽지 않아보였다. 제사와 축제가 이렇게 진행될 줄 몰랐던지 몇몇 족장과 조합장들이 이리저리 달려다니며 시민들을 말리지만 술과 분위기에 취한 시민들은 자기 속옷까지 벗어 불에 던지려 한다.
그들은 웃었고··· 반쯤은 울었다.
수년 동안 얼마나 많은 이들이 고통받았는지 나는 잘 알았다.
가족이나 이웃이 얼어죽은 이들도 많지는 않았지만 꽤 되었다. 굶은 이들은 없어도 병에 걸린 이는 있었고, 팔다리를 잃어버린 이들도 있었다.
심지어, 원래 안탄드로스 시민이 아니었던 이들이라면?
저 북방에서 끔찍한 추위와 적들의 습격 때문에 고통받은 이들이라면? 고향을 버리고, 누군가는 목숨 같던 가족과 벗을 버리고 여기까지 왔던 이들이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