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mythical shepherd slave RAW novel - Chapter 431
그들이 그동안의 고통과 설움을 보상받고자 하는 것도 이해했다.
하지만.
“멈추시오!!!!!!”
-화르르르륵!!
그대로 둘 수는 없었다.
내 외침에, 일순간 시민들의 움직임이 멈췄다.
***
하가나는 아카이아인들이 스키타이(Σκὐθαι)라 퉁쳐 부르는 어느 부족의 일원이었다. 그에게도 부인이 있었고, 여러 자식들이 있었다.
이제는 그 중 아들 하나만 남았다.
···이렇게 되기까지의 과정에는 너무도 긴 이야기가 있었지만, 너무도 서럽고 비참한 이야기였다. 그래서 그는 안탄드로스에서 새로 만난 그 누구에게도 그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놓지 않았다.
아카이아어를 서툴게나마 익힌 지금까지도 그는 침묵을 지켰다. 그 일로 더는 눈물 흘리지도 않았고, 그런 끔찍한 순간들이 마치 그의 인생에서 원래 없었던 것처럼 생활했었다.
원래 그에게는 부인이 없었고, 원래 아들 하나뿐이었던 것처럼.
그러나 오늘은 멈출 수 없었다.
그와 함께 빙원을 넘고 고열에 시달리던 이들 역시 울면서 갑갑한 외투를 벗어던졌다. 그 대오에 합류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다.
그렇기에 그는 울면서 외투를 벗었고.
“멈추시오···. 시민들이여.”
그를 불길 속에 던져 잊으려 하던 그때, 목소리가 들렸다.
···‘그’의 목소리다.
고개를 돌리자 그가 본 중 가장 아름다운 남자가, 소문으로만 듣던 타오르는 망치를 들고서 말한다. 그가 손을 놓아도 망치는 여전히 허공에 떠있었다.
···좋아. 그 말도 안 되는 소문 중 하나는 일단 사실이었군.
그러면, 나머지 소문도 사실일까?
저 남자 혼자서 이 도시를 이렇게 부유하고 강력하게 만들었다는 것도? 강대한 제국들을 쓰러뜨려 그의 발 앞에 엎드리게 했다는 것도?
이 모든 재앙을 미리 예견하고 있었다는 것도?
“모두가 희망에 차 있는 이 순간에, 나는 이런 쓰라린 이야기를 꺼내고 싶지 않았소.
그러나 다들 잊지 마시오.
아직 끝나지 않았소.”
“···.”
“···.”
어쩌면, 몇 마디로 만 단위의 군중들을 진정시키는 것을 보아할 때 다른 소문들도 사실일지 모르겠다.
“이 여름날을 만끽하는 것은 그대들의 자유로운 권리요. 나는 막지 못하겠소. 그러니 오직 동료의 자격으로서 그대들에게 말하겠소.”
“아, 아닙니다!! 왕이시여!! 우리에게 명령하소서!!”
“알렉산드로스여! 말씀을 내리소서!!”
그의 말 몇 마디에, 그 콧대 높아 보이던 아이깁토스인들부터 여러 장로들까지 애원하는 것을 보아하니 그 모든 게 진실일지도 모르겠다.
단순히 황금을 몸에 두르고 잘생긴 미소를 가졌다 하여 모든 사람이 권위를 지니지는 못한다.
특히나 저렇게 젊은 얼굴로, 차분한 목소리로 읊조리듯 말하는 남자라면 더더욱 어려우리라.
그러나 이곳에는 어느새 죽음 같은 침묵이 감돈다.
모두가 귀를 쫑긋 세우고서 저 남자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마치 꿀처럼 간절하게 받아먹으려 한다.
“···그대들이여, 너무 일찍 술잔을 기울이지 마시오. 아직은 축제의 날이 아닌 듯하오.
아직, 우리의 앞에는 넘어야 할 산과 바다가 많이 남았으니.”
“···.”
“···.”
“어쩌면, 이것이 우리의 마지막 여름이 될지도 모르오.
그러니, 대비하시오.”
그 몇 마디를 던진 뒤 이 도시의 왕이라는 남자는 사라졌다.
그러자 놀랍게도 흥분해 있던 사람들 역시, 아무 말 없이 모두 흩어져버렸다.
더 놀라운 것은.
그 다음부터는 어떠한 축제도 벌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저 남자의 한마디에.
‘알렉산드로스’의 한마디에.
마지막 여름 (2)
어느새 우리 생애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여름이 다가왔다.
얼음이 거의 녹아가고, 아직 케브렌 강을 건널 상설 가교가 없어 시민들이 불편을 겪고 있던 때였다.
아노이토스는 이제야 신형 차륜선의 성능을 보여줄 때가 되었다면서 모두를 불러 야심차게 공개했다.
“보십시오! 쇄빙선입니다!!”
“···그걸, 굳이 얼음들 다 녹아갈 때 보여주는 저의가 뭔가?”
“그야 이번에 실험하기가 딱 적당하지 않습니까? 무턱대고 한겨울 날씨에 작동시켰다가 부서지면 끝장이지만 지금처럼 얼음의 강도가 약할 때부터 작동시키면서 개선하면 딱 좋겠지요.”
놀랍게도 아노이토스의 말은 논리적이었다. 심지어 심오한 진실을 암시하고 있기까지 했다.
아노이토스는 ‘지금처럼 얼음의 강도가 약할 때부터’ 시험 운행을 진행하면서 개선할 수 있겠다고 말했다.
즉, 앞으로 다시 얼음의 강도가 서서히 강해지리라는 의미다.
겨울이 되돌아올 테니.
그 전까지··· 준비해야 했다.
“아노이토스?”
“어, 왜 부르십니까?”
“카산드라에게 서신은 전달되었을까?”
“아, 물론입니다. 곧 안탄드로스로 오실 겁니다! 보고가 끝났으면 일단 저는 잠시··· 쇄빙선을 관리해보러 가겠습니다!”
다시 케브렌 강의 얼음이 녹아내리자 쇄빙 기능을 단 정기선이 운행을 시작했고, 각지의 공장들은 다시 이전의 생산성을 빠르게 되찾았다.
“어서! 어서 움직여라!!”
“지금부터 최대한 빠르게 움직이지 않으면 당장 채찍질부터 할 테니까 알아서들 서둘러!!”
특히 이 짧은 시간 안에 카라보스를 무한정으로 뽑아내게 된 항해학교는 특히 바쁘게 움직였다.
어쩔 수 없었다. 그들은 지금 에게 해 전역의 가장 큰 ‘희망’을 짊어지고 있는 이들이었으니까.
카라보스가 해상전에서는 충갑을 못 쓰고 노 저어서 움직일 수도 없으니 공격력은 영 나쁘다. 화포만 있었더라도 상황이 달랐겠지만··· 씁, 젠장. 아픈 기억을 들추지 말자. 아무튼.
그래도 해상에서 공격을 당할 일 역시 많지 않았다.
일단 이 시대의 선박들 중 절대다수가 연안선이다 보니 아라비아 해를 가로질러 움직여버리면 누구도 쫓아올 수가 없고.
게다가 연안에서 공격받는다 하더라도 일단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잡힐 일이 적었고, 어떻게든 따라잡혀도 높은 층고와 내부 구조 때문에 방어에 용이했다.
그리고 아이아스와 테우크로스가 탄 배를 공격하면 지들이 어쩔 건데.
···결국 아카이아의 영웅들을 태운 카라보스는 무적이나 다름없다. 그 영웅들이 아이아스와 테우크로스를 빼면 다들 철쇄대로 제압 가능한 2선, 3선급 영웅들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인도에서 아카이아에 이르기까지 대륙과 대양을 뛰어넘어 가장 빠르게 항해할 수 있는 배, 가장 확실하게 안전을 확보할 수 있는 배, 가장 많은 화물을 실어담을 수 있는 배.
결국 카라보스뿐이다.
안탄드로스는 에게 해에서 가장 위대한 도시가 되었고, 그렇기에 가장 많은 걸 짊어지는 것 역시 당연했다.
수많은 도시의 시민들이 안탄드로스에서 나오는 농산물, 자재, 직물에 의지해 먹고, 자고, 입으며 생활을 겨우 유지한다.
내가 안탄드로스를 지키고 있음으로써 구할 수 있는 생명은 이제 10만 명 단위로 셀 수 있으리라.
그리고.
그 무게감을 공유하는 것은 아닐지 몰라도 안탄드로스의 시민들은 여느 때보다도 더 빠르게 손발을 놀리며 움직이고 있었다.
그건··· 그들이 나를 믿어준 덕분이었다.
내가 말한 ‘마지막 여름’이라는 말을 뇌리에 새겨준 덕이었다.
지금 짓는 한 필의 천이 누군가가 하룻밤 사이에 얼어죽지 않도록 지켜줄 것이다.
지금 캐내어 말리는 언 감자가 누군가가 일주일 동안 굶주린 입을 먹일 식량이 되어줄 것이다.
지금 톱날에 갈려나가는 각재가 누군가가 1년 동안 의지할 집을 지을 자재가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