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mythical shepherd slave RAW novel - Chapter 479
“가, 갑자기··· 무슨 말씀을 하시려 하시는지···”
그렇게 카산드라의 얼굴이 좌절로 물들고 스클레오스의 얼굴이 당혹감에 젖어가는 동안···
“재상이시여, 잠시 물러나주소서.”
“오소르콘? 무슨 일인가?”
오소르콘이 나섰다.
디오니소스교도들의 지도자는 스클레오스의 곁으로 걸어오더니 카산드라에게 절을 올린다.
“···제 주인께서 당신을 도우라 하셨습니다. 그분도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당신은 특별한 인간이라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마차를···!”
“마차는 산길을 오가는 데 좋을 것 같지 않군요. 썰매를 빌려드리지요.”
“고맙네!”
카산드라는 예법 따위 깡그리 무시한 뒤 무작정 트로이아의 성문 안쪽으로 내달렸다. 늙은 오소르콘과 스클레오스, 젊은 아노이토스까지 영문도 모르고 그녀를 따라 달렸다.
그녀는 오소르콘의 안내를 받아 개가 끄는 썰매를 얻었고 곧장 이다 산의 줄기를 향해 질주했다. 삭풍에 그녀의 손이 할퀴어지고 양 뺨에 감각이 사라졌지만 카산드라는 멈추지 않았다.
“차, 찾아야 해···. 이다 산 깊은 곳의 바위를.”
한 번도 본 적 없는 바위를 찾아, 그녀는 달리고 걸었다.
그러나 카산드라는 이다 산에 들어오고 나서부터, 안탄드로스의 영역에 들어온 뒤부터 단 한 번도 길을 놓친 적이 없었다.
그녀의 걸음걸이는 눈보라에 방해받아 느릴지언정 망설임은 없었다.
[왼쪽으로. 10보 걸어간 다음 오른쪽으로.]어떤 목소리가 그녀를 인도했기에.
카산드라는 거센 눈발을 헤치며 나아간다. 추위에 반쯤 얼어붙어 잔뜩 움츠린 요정들과 사티로스들이 호기심에 그녀 주위에서 기웃거린다.
그렇게 카산드라는··· 반나절이 지나 어느 바위 앞에 자리잡는다.
이다 산 깊은 동굴 속에 굳게 박힌 거대한 바위 틈바구니에.
케브렌의 딸이자 안탄드로스의 여왕이 깃들어있을 바위에.
그 앞에서 그녀는 무릎 꿇고서 차가운 바위에 이마를 기댄다. 냉기가, 그리고 그보다 더 짙고 깊은 어떤 기운이 그녀와 접촉한다.
거기서 그녀는 속삭이기 시작한다.
***
몽롱하다. 온 세상이 흔들거렸다가 다시 고요해지고, 밝았다가 다시 어두워진다.
수많은 사람들이 내 곁을 스쳐가는데, 그게 현실인지 꿈인지 분간할 수가 없다. 어느 순간에 나는 다시 9살이 되어 이노와 함께 밀밭을 내달린다. 그 다음 순간에 나는 숨을 헐떡이며 발가벗겨져 젖은 수건으로 온몸이 닦이고 있다.
무엇이 현실일까. 또, 무엇이 꿈일까. 나는 안탄드로스의 왕인가? 아니면 어느 작은 마을의 양치기인가? 아니면 어느 피곤한 밤 책상에 기대 쪽잠을 자다가 유독 긴 꿈을 꾸게 된 한국의 대학원생일지도 모른다.
···그래.
어쩌면 이 모든 게 꿈일지도···
-촤아아아악!!!!
“으아아악!!”
뜨거운 느낌, 화끈화끈한 느낌이 온몸에 감돈다. 눈을 떠보자 온통 대리석이 가득한 사치스러운 방에 증기가 가득하다.
뜨거운 물이 나를 덮쳤다. 현실감도 마찬가지로. 나는 안탄드로스의 왕이고 트로이아의 왕자다. 나는 양치기고, 대장장이고, 기병이고, 왕이다.
나는 파리스다.
그리고 나는··· 발가벗고 있다. 그리고 주위에는 나와 마찬가지로 발가벗은 남녀들이 눈을 뜬 나를 보고 얼어붙었다.
“···.”
“···.”
“···크흠.”
나는 헛기침을 하고는··· 이들의 얼굴과 헤어스타일, 주위의 건축 양식을 보며 써야 할 언어를 고른다.
흠···.
으음··· 기묘하다.
아이깁토스, 페니키아, 바빌로니아, 크레타, 아카이아 등등 문명세계 각지의 특징적인 부조와 색채와 양식이 눈에 띈다.
게다가 이곳에 있는 남녀의 면면도 마찬가지다. 인종부터 얼굴형, 입고 있는 복식까지 뭐 하나 겹치는 게 없다. 나는 말문이 도로 막혔다.
그렇게 내가 첫 단추부터 막혀있는 사이에, 머리를 길게 땋아올린 흑인 여성이 내게 공손히 절하더니 입을 열었다.
“···제 말이 잘 들리시니이까?”
“어···? 아아··· 그래.”
아카이아어.
루위어와 함께 나의 모어(母語)인 언어.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마음을 놓았다.
다행이다. 말은 통하는구나. 말씨는 조금 이상하지만.
어느 지역의 방언이지? 북방? 아니면 아예 다른 시대의 말씨인가?
아무튼 내 말에 방금의 시종이 다시 고개를 살짝 숙이며 말한다.
“그렇다면 다행이옵니다. 저희는 당신을 씻기고 몸에 향유를 바르는 중이었나이다. 부디 가만히 있어주시기를 바라옵니다.”
···뭐야.
기이할 정도로 극진한 말투에 당황한 나는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그렇다면 뒤돌아주소서.”
일단 저들에게 나쁜 의도는 없어보였다. 내가 뒤돌자 그들은 내 등허리와 다리에서 때를 밀어내고는 향유를 바르고 문질렀다.
그동안 나는 머릿속으로 생각을 굴려보았다.
나는, 이렇게 화려하고 다채로운 방을 지을 정도로 부유한 이를 알지 못한다.
이런 양식의 건축물 역시 알지 못한다. 언어도 조금 낯설다.
즉, 이곳은 높은 확률로 내가 있던 곳과 다른 시대에 속해 있다.
하지만 몇 가지는 알 수 있었다.
시중으로 보이는 이들의 공손한 태도, 이 방 곳곳에 채워진 대리석과 황금과 상아.
···‘대왕’이라는 호칭.
젠장, 아카이아어··· 그러니까 미케네 그리스어 방언이나 그 후계 언어를 쓰는 이들 가운데 ‘대왕’이라 불릴 이는 많지 않은데.
아니, 아니지. 이곳은 내가 온 세계가 아닐 수도 있다.
소비에트 연방과 강철의 대원수 이오시프 스탈린 대신 러시아 천년제국과 정교회의 수호자 이오시프 주가슈빌리가 있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는 말이다.
더 단서가 주어질 때까지, 내 추론은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다.
원래 입고 있던 옷, 그렇지만 깨끗하게 세탁한 옷을 돌려받은 나는 화려하고 노출 많은 옷을 챙겨입은 남녀들을 따라 욕탕을 나와 저택의···
아니, 궁전의 복도를 걸었다.
그래. ‘궁전’이다. 곳곳에 새겨진 헤라와 제우스의 신상이나 왕홀, 독수리 문양이 내게 그런 확신을 더욱 크게 심어주었다.
헤라, 제우스, 왕홀, 독수리··· 모두 유구한 왕권의 상징이 아닌가?
물론 제우스보다도 헤라의 부조와 벽화가 훨씬 많이 눈에 띄는 게 조금 이상하기는 했지만 정치적 의도에 따라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예를 들어 이곳의 주인이 여성이라든가. 사용하는 명사가 남성형인 걸 보아 그럴 가능성이 높지는 않았지만.
-또각. 또각.
꽤 엄격한 예식에 따라 걸으며 벌써 몇 겹이나 되는 대문, 몇 채나 되는 건물을 지나쳤는데 여전히 목적지는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한참이 지나서야.
-또각. 딱.
“···여깁니다.”
기나긴 행군은 마침내 마무리되었다.
대문을 올려다 보니 말도 안 되는 화려함에 나는 그만 질려버렸다.
거대한 문의 돌쩌귀는 당연하다는 듯 도금한 구리로 이루어져 있었고, 목재는 흑단에 마찬가지로 테두리마다 금과 백금이 둘러져 있었다.
게다가 그 사이사이에는 눈알 대신 진주를 박아넣고 갖은 보석으로 만들어낸 부조가 있었는데 모두 어떤 왕이 악적을 물리치는 형상, 그리고 공작과 독수리와 사자 등으로 상징되는 헤라와 제우스가 그 왕을 돕는 형상을 나타내고 있었다.
궁전 전체에서 보이던 것과 마찬가지로, 헤라의 비중이 제우스보다 압도적으로 높았다.
이곳으로 길을 안내해준 시종장이 문을 두드리자 곧 반짝이는 문이 열린다. 그러자 안쪽에 드러난 방에는 대문과 같은 양식과 재료로 더 거대하고 화려한 벽과 천장이 둘러져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는 옥좌가 둘 있었다. 높은 단 위에 올라간 옥좌는 역시나 화려했고, 한 쌍의 남녀가 그 위에 앉아 있었는데 그 주위로 자리잡은 환관들이 남자의 속삭임을 곳곳으로 전달하고 있었다.
남녀의 얼굴은 천창에서 내리쬐는 빛 때문에 잘 보이지 않았다.
그 환관들 중 한 사람이 높다란 단에서 내려와 우리에게 고개를 숙이고 입을 열었다.
“마케도니아의 대왕께서 다른 이들을 모두 물리치고 ‘손님’만을 보고자 하신다.”
마케도니아.
대왕.
···그제야 나는 이곳이 누구의 것인지 깨달았다.
그 한마디에 썰물이 빠지듯 나를 뺀 다른 모든 이들이 대문 밖으로 뒷걸음질쳐 나간다. 육중한 대문이 등 뒤로 닫히자 나도 모르게 몸을 움찔했다.
그리고, 다음에는 내게 그 말을 전한 환관과 이 어전의 다른 이들까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곳곳에 존재하는 다른 작은 문들을 통해 방에서 나간다.
-탁.
그 문들까지 모두 닫히자, 이 방에는 적요뿐이었다.
멀리 단 위에서 ‘대왕’과 여왕이 서로에 귀에다 대고 무언가를 속닥거린다. 그러다 ‘대왕’의 손가락이 나를 가리키더니, 까딱거렸다.
이쪽으로 오라는 듯.’
나는··· 고개 숙인 채 조심스레 걸음을 옮겨 단 앞에 닿았다.
언제든 망치를 불러올 준비를 해놓은 상태였다. 내가 단 가까이 걸어가자, 그제야 대왕의 입술이 움직였다.
“고개를··· 아직 들지 말거라.”
나는 일단 그 말대로 고개 숙인 채 그의 어딘지 익숙한 목소리, 낯선 억양을 주의깊게 들었다.
“내가 누군지 아느냐? 고갯짓으로 답하거라.”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나는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다. 저 머나먼 인도까지 정복하고 아카이아인들과 바빌로니아인들을 무릎 꿇렸다. 아이깁토스의 자칭 ‘파라오’ 역시 내게 자비를 구걸했으며, 로마의 여러 부족들은 영원한 복종을 맹세했다. 이 카르타고 역시 곧 내 것이 되리라.
온 세상의 땅이 내게 무릎 꿇었다.”
슬슬 윤곽이 드러난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인도에서 열병으로 죽지 않은 세계.
인도 정벌을 마친 뒤 마침내 서방으로 나아가 로마와 카르타고 등 미래의 경쟁세력까지 굴복시킨 세계.
“나는 알렉산드로스 대왕(Αλέξανδρος ο Μέγας)이다. 만민이 내 발치 아래 무릎 꿇었다.
너도 그리하라. 와서 허리띠나 끌러보거라.”
···아, 시발.
헤파이스티온이든 바고이스든 이미 있는 애인이나 챙기지 왜 딴 놈을 품으려 하는 거지? 심지어 옆에 부인도 두고서? 부부의 색다른 장난인가?
나는 이제 한 손을 뒤로 숨기며 조용히 망치를 불러냈다. 들키지 않게 불꽃의 크기도 최대한 줄였다. 수 틀리면 곧장 ‘대왕’을 사로잡아 이 궁전을 탈출할 계획까지 짜놓았다.
나는 단을 올라가며 왕과 왕비의 발끝을 바라보는 상태를 유지하며 허리를 숙였다. 단이 얼마나 높았는지 나는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그들과 같은 높이에 설 수 있었다.
“자, 고개를 들라.”
자··· 보자. 수천 년 동안 얼마나 잘생겼는지 학계에서 논란까지 되었던 얼굴이 어떻게 생겼···
“···.”
“···.”
“···어, 어어.”
“왜 그러나?”
“어··· 너.”
나는 순간 힘이 풀려 망치를 놓쳤다. 단 아래로 떨어지는 망치를 잡으려고 뒷걸음질치다 경사 높은 단에서 미끄러져 떨어질 뻔했는데.
-턱.
눈앞의 ‘대왕’이 내 허리를 감싸 겨우 살았다.
‘대왕’이라는··· 아니, 이··· 사람은··· 내 허리를 놓고는···
익숙한 목소리로 말했다.
익숙할 수밖에 없는 목소리로 말이다.
“나는 프리아모스의 아들 알렉산드로스다.
반갑다, 프리아모스의 아들 알렉산드로스.”
“···.”
“까꿍.”
이런, 시발.
***
삶에서, 이렇듯 침울한 순간이 또 있었던가.
트로이아를 버려야 했던 순간? 아니면 처음으로 전우의 죽음을 지켜보았던 순간?
···아니다. 전부 지금 이 순간에는 미치지 못했다.
배 위에는 바다보다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침묵이 과적된 이 카라보스는 당장이라도 저 심해 아래로 가라앉아버릴 듯 휘청거렸다.
“어···아아···아···.”
그들은 케브렌의 딸 오이노네 덕분에 세이렌의 위협에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그녀의 지도 아래 겨우 저 끔찍한 카리브디스의 소용돌이로부터 두 번째로 탈출해냈다.
그러나 그런 위대한 공로를 이뤄낸 오이노네 본인은 영광이나 뿌듯함을 즐길 생각이 없어보였다. 모두가 그랬다. 살아남았다는 안도감보다는 다른 감정이 그들을 지배했다.
세이렌과 카리브디스를 이겨낸 그들은 그보다 더 위협적인 세 번째 괴물을 마주쳤다.
상실감.
“파, 파리스부터 찾아야 해···. 파리스부···터···!!”
“···.”
“···.”
“···.”
반쯤 미쳐버린 듯 머리를 쥐어뜯으며 중얼거리는 오이노네의 말에 누구도 답해주지 않았다.
아니, 답할 수가 없었다. 심지어는 파리스를 위해서라면 하데스의 왕국까지 따라갈 저 독실한 ‘파리스교도’들조차도, 가장 가까운 육친인 헥토르 자신조차도.
왜냐하면 오이노네의 말에 답해주면 그 뒤로 또 다른 질문이 그를 덮쳐올 테니까.
‘어떻게?’
어떻게 이 망망대해에서 사람을··· 아니, 얼어붙은 시체를 찾아 건져올린다는 말인가?
심지어 그들 모두가 마지막으로 목격한 파리스는 카리브디스가 일으킨 소용돌이에 휘말려버렸다. 그가 수면에 떠있을지조차 의문이었다. 어쩌면 저 차가운 심해 어딘가에 잠겨버렸을지도 모른다.
그 모든 가능성이··· 그들을 우울하게 만들었고.
“···어?
카산···드라? 뭐라고?”
갑자기 표정이 변한 오이노네가 뜬금없는 말을 내뱉는 순간에도, 그녀가 슬픔으로 미쳐버렸으리라고만 짐작할 뿐이었다.
그러나, 오이노네의 얼굴에 이유 모를 기쁨이 차오르기 시작했을 때 그들은 다른 가능성을 떠올렸다.
“카, 카르타고가 어디지?”
그녀가 ‘계시’를 받았을 가능성을.
다른 선택 (2)
-“···어? 카산···드라? 뭐라고?”
바위에서 대답이 들려온 그 순간, 카산드라는 비명을 지를 뻔했다.
정말로 이야기가 전해졌다.
요정이 깃든 사물에 무언가 속삭이면, 그 이야기가 멀리까지 전달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물론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눈앞의 이 바위는 오라버니의 부인인 오이노네의 뿌리이자 근원, 그 자체니까. 거기에 이야기를 속삭이면 오이노네 님이 들을 수 있는 게 자연스럽다.
하지만 요정들은 자신의 산, 숲, 냇가, 바다를 좀처럼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 자신들의 존재가 어디서 비롯하는지도 웬만하면 쉬이 꺼내놓으려 하지 않는다. 심장을 밖에 내놓고 다니는 위험을 누가 감수하겠나?
[계속, 속삭여 봐.]그렇지만 머릿속에서 울리는 이 거룩한 목소리는 카산드라에게 말했다.
이곳에 오이노네의 바위가 있으리라고.
이곳에서 속삭여 오라버니의 위치를 전하라고.
이런 일은, 단 한 번도 겪어본 적 없었는데.
그녀는 아폴론의 사랑을 거부한 뒤로 저주받은 몸이었다. 어떤 신에게 예언의 축복을 받은 적도, 받을 수도 없었다.
그렇다면 지금 그녀의 귓가에 속삭이는 신성한 존재는 누구란 말인가?
“카, 카르타고는···”
그녀는 정체 모를 목소리의 말에 따르기를 머뭇거린다. 목소리의 말을 믿지 못해서가 아니라, 그녀 스스로를 믿지 못해서다.
오이노네 님이 내 말을 믿어줄까?
오이노네 님이··· 내 말을 믿을 수 있을까?
또, 그 끔찍한 저주가 내 말을 가로막지는 않을지···
[나를 믿어.]“···.”
[입을 열어.]고민하던 카산드라는 결국 목소리의 말에 따른다. 목을 가다듬은 그녀는 다시 첫 마디를 꺼낸다.
“카르타고는···”
카르타고는 21세기의 튀니지 지역을 중심으로 존재했던 페니키아계 국가이자 도시다. 로마 공화정과 지중해의 패권을 두고 다투었다가 세 차례의 포에니 전쟁에 패해 멸망했다.]
카르타고의 무너진 유적은 197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고 현재는 튀니지의 수도 튀니스가 약 20킬로미터 거리에···
카산드라는 눈을 질끈 감고서 머릿속으로 밀려드는 정보들을 쳐낸다. 그리고 그것들을필요한 바에 따라 생략하고 재배치한다.
다시 눈을 뜬다.
“카, 카르타고는 북아프리카에 있어요. 시칠리아 가까이에···”
-“시칠리아 남쪽?”
“아뇨, 남서쪽.”
-“거, 거기에··· 파리스가 살아있어?”
카산드라는 잠시 눈을 감는다. 그리고 머릿속으로 지중해 유역의 지도를 그려본다. 파리스를 실은 배가 어딨을지는 몰라도, 어디로 향하는지는 알고 있다.
-“그곳으로 가고 있어요.”
[서두르라고 말해. 카랄리(Karaly, 오늘날의 사르데냐 주 칼리아리)에 있는 페니키아인들의 정착지도 언급하고.]-“서둘러야 해요. 카랄리에 들르면 도움받을 수 있을 거예요.
···지금 가면 구할 수 있으니까.”
거기까지 말을 끝내자 바위에서 더 이상의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귓가에 머무르던 신성한 목소리 역시 사그라들었다.
[잘했어.]그 한마디만을 남긴 채.
완전히 기진맥진해진 카산드라는 식은 땀을 흘리며 동굴에 드러누웠다.
그녀는··· 잠시 울었다.
그녀의 말을, 오라버니 말고 다른 누군가가 믿어주었다.
처음으로.
***
오이노네는 기쁨에 차서 외쳤다.
“파, 파리스는 살아있어! 지금 가면 구할 수 있어!!”
처음에, 의구심을 담아 그들의 여왕을 바라보던 철쇄대원들은 그 확신에 찬 외침에 하나둘씩 얼굴이 밝아진다. 나머지 일행들 역시 그녀의 눈에 담긴 환희를 보고 그녀가 미치지 않았음을 확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