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Haired U.S. Army Marshal RAW novel - Chapter (135)
135_거인의 몰락 (5)
“편지 왔습니다. 일본에서 왔는데요?”
“어이쿠 감사합니다.”
후우, 이놈의 인기란.
아시아의 대영웅 유진 킴을 찾는 이 끊이지 않는 메아리가 아직도 워싱턴 D.C 전쟁부에 울려 퍼질 정도라니.
일본에서 보냈으면 안 봐도 뻔하다. 연하장의 민족 같으니. 추석 연하장이란 것도 있던가?
하지만 발신인을 보는 순간 나는 내 눈을 닦고 잠깐 지난 삶에 대한 반성의 시간을 가졌다.
― 안녕하십니까, 킨 장군님.
지난 만남으로 귀중한 깨달음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장군님께서 황국을 위해 크나큰 은혜를 베풀어주신 덕택에, 이제 황국은 모리배, 소인배들의 음험한 야합에서 벗어나 전 국민이 일치단결하여 미래를 향해 힘찬 도약을 준비 중입니다….
앞으로 신민들을 선도하여 바른길로 이끄는 데 황국 육군이 앞장설 것이며, 저 또한 육군의 일원으로서 멸사봉공할 것입니다. 부디 보중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도조 히데키 드림.
어머나 씨발 이게 뭐야. 차라리 행운의 편지 7통 정도 받는 게 훨씬 더 나았을 것 같아. 호환 마마도 병무청 굳건이도 이거보단 기쁘게 받아봤겠다.
도대체 일본에선 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진짜 이 새끼들 쿠데타라도 일으킨 건가?
나는 신문을 적당히 뒤적이면서 일본에서 큰 변화가 있었는지 찾아봤지만, 딱히 무언가 대대적인 보도나 움직임이 있었단 이야기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줄곧 찝찝한 느낌을 완전히 떨쳐내지 못했다.
하루의 시작치곤 더럽게 재수 없었다.
* * *
1925년 9월 2일.
해군 소속의 비행선, USS 셰넌도어(Shenandoah)가 악천후에 휘말려 추락해 14명의 승무원들이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이 사건으로 해군은 발칵 뒤집혔다.
― 출항 거부했던 셰넌도어, 어째서 이륙했는가?
― 상층부의 강요로 인한 참사! ‘해군 항공의 위엄 보여줘야’
― 홍보를 위해 안전을 도외시한 결말은 대참사!
내가 봤을 땐 물개들이 저리된 이유도 알 법했다.
이 서슬 퍼런 군축 시즌. 어떻게 해서든 ‘우린 돈값을 하고 있습니다! 예산 깎지 말아 주세요!’ 하며 대국민 쇼를 좀 하고 싶었겠지. 당장 우리도 비슷한걸?
전국 각지에서 곡예비행이 줄을 잇고 무착륙 비행이네 대서양 횡단이네 하는 이야기가 끊임없이 화두에 오르는 지금, 이 흐름을 타고 노 좀 젓고 싶지 않으면 세금 타먹는 놈이라고 할 자격이 없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악천후에 비행선을 띄우겠다는 선택이 딱히 제정신으로 할 법한 발상이란 이야긴 아니지만… ‘이해’ 정도는 해줄 수 있단 말이지.
하지만 이 사고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관광객!
― 비행선 조각 하나, 유품 하나 못 가져가서 안달난 하이에나들!!
― 미합중국의 시민의식은 과연 어디로?
미합‘중국’.
정말 가슴이 웅장해진다.
구경거리에 미쳐버린 건지, 추락한 곳에 연방정부의 수사관들이 오기도 전에 전국 각지에서 구경꾼들이 모여들어 이 참사 현장에서 루팅을 하고 계셨다. 심지어 셰넌도어가 추락한 곳의 땅주인은 입장료까지 받아 챙기셨다.
이 사건이 물질만능주의와 쾌락주의로 가득 찬 현 세태에 대한 개탄으로 끝났는가?
그랬으면 이야기가 나오지도 않았다.
불씨는 해군장관의 논평이었다.
“몇몇 사람들은 항공에 대해 너무나 많은 기대를 합니다. 물론 놀라운 성취가 있긴 했지요. 하지만 태평양과 대서양이 있는 이상, 미합중국은 그 어떠한 하늘에서의 침공으로부터 안전하다는 확신이 듭니다.”
사람이 죽었는데, 그것도 정작 무리한 비행을 강요한 해군의 최고 책임자가 이 사건을 빌미로 항공을 깎아내렸다.
그리고 공군의 투사이자 뼛속까지 항공에 대한 자부심으로 가득 찬 남자, 빌리 미첼은 더 이상 참지 않았다.
지난 3월로 임기가 만료되기가 무섭게 그는 샌 안토니오에 있는 8군단 항공장교로 임명되었다. 사실상의 좌천.
지금의 미군은 영구적으로 계급을 늘려주기보다는, 특정 직책을 맡으면 그 직책의 직급에 해당하는 ‘임시’ 계급을 받는 경우가 잦았다.
물론 이건 법률적인 문제고, 이미 임시 준장으로서 임무를 수행하던 사람에게 대령급 자리를 던져줘 도로 대령 계급장을 달게 하는 일이 썩 자주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미첼은 그 그리 많지 않은 케이스 중 하나였고 원래 계급인 대령으로 복귀당했다.
모이기만 하면 모두가 미첼의 이야기를 수군덕거렸다.
보복성 인사, 사실상 강등과 유배 이야기가 온 사방을 떠돌아다녔다. 실제로 항공 친구들은 항상 미첼을 ‘제너럴 미첼’이라고 칭했을 정도니. 거기다 미첼의 대중적 인기가 상당했던 탓에 이 일은 단순한 군 내부 사정이 아닌 하나의 가십거리로도 소모되었다.
그리고 미첼은 질 수 없다는 듯, 셰넌도어 사건이 일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직접 언론사에 전화를 걸어 무려 6천 단어로 된 기나긴 성명문을 발표했다.
그 자신이 그토록 바라마지 않던 전략폭격의 첫 목표는, 워싱턴 D.C가 된 셈이다.
“이번에 벌어진 끔찍한 참사에 대해 제 의견을 묻는 분들이 많았기에, 저는 충분한 숙고를 거쳐 이 사건에 대한 의견을 밝히고자 합니다.”
밝히지 마. 제발. 제발 하지 마.
님 군인이잖아요. 왜 군바리가 멋대로 마이크 잡고 있어. 언론플레이 좋아, 나도 좋아해. 근데 이건 너무 빠꾸 없잖아.
“이 사고는 전쟁부와 해군부의 무능함, 직무유기, 그리고 반역 수준의 처참한 국방 행정으로 인해 벌어진 직접적 결과물입니다.”
저질렀다.
미친놈이 저질러버렸다!
나는 버섯구름이 피어오르는 모습을 관람하는 나가사키 거주민의 마음가짐으로 신문이란 신문이 죄다 실어버린 미첼의 성명문을 읽어 내려갔다.
“모든 항공 관련 정책과 시스템은 비행에 대해 거의 아는 게 없는 자들의 지시에 따라 운영되고 있습니다.
공군은 단지 그들의 졸개에 불과하며, 전쟁부와 해군부에서 의회로 파견한 장교들은 언제나 불완전하거나, 오해의 소지가 있거나, 틀린 정보만을 제출하였습니다. 진실을 말하거나, 항공에 무지한 상관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은 장교들은 옷을 벗거나 진급 심사에서 밀려나야 했습니다.”
나는 빌리 미첼을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
맥아더에게 무어라 쏘아붙였던 말이 불현듯 생각났다.
나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내가 할 법한 생각을 미첼 대령 또한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건 나나 맥아더가 언론을 써먹듯 이해득실을 고려해 벌이는 정치적 행위가 아니었다.
그냥 한판 뜨자는 선전포고문이지.
“―전쟁부와 해군부는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면서, 공공 복지와는 무관하게 그들 조직의 유지를 위해 일종의 카르텔을 형성하였습니다. … 항공에 관한 한, 지난 몇 년간 이 두 부서의 업무 수행은 실로 역겨운 수준이어서 자긍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이 입은 옷이 수치스럽게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굳이 D.C에 돌아가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지금쯤 이 성명문을 읽은 사람이라면 하나같이 손을 덜덜 떨면서 종이를 구기고 있겠지.
“―우리 모두는 실수를 할 수 있지만, 항공학을 다룰 때마다 육군과 해군이 저지른 범죄적 실수는 그들의 무능함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우리가 이러한 사실을 계속 숨긴다면, 죽은 전우들과의 신뢰를 유지하지도 못할 것입니다.”
6천 단어.
6천 단어 하나하나마다 육해군에 대한 원색적 비난이 하도 올올이 들어차 있어서 무어라 할 말이 없었다.
항공 문제가 이 정도였나?
내가 항공에 대해 딱히 잘 안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들이 어떤 대우를 받았는지, 얼마나 윗선의 몰이해와 관료주의에 부닥치며 얼마나 고통받았을지 감히 내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미첼의 이 발언 이후, 여론은 완전히 뒤집혔다.
사람들은 이제 무능과 부패로 얼룩진 군부를 욕하기에 여념이 없었고, 미첼은 거악과 싸우는 투사로 우러름받았다.
하지만 이 성명문으로… 바꿀 수 있을까?
이 세상에 군부만큼 보수적이며, 권위를 중요시하고, 상명하복이 의무로 규정된 조직은 없다.
하급자가 이렇게 면상에 대고 침을 뱉은 이상, 그 성명이 아무리 구구절절 옳은 말만 담은 대의명분 가득한 글이라 하더라도 군부는 무조건 반대할 수밖에 없을 터.
상층부의 반응은 무척이나 격렬하면서도 단호했다.
“미첼 대령이 군법회의에 부쳐진다더군.”
“참나. 지금 같은 군축 시즌에 어디 다른 곳이라고 별도리 있었나? 아주 자기들만 귀하고 남들은 흙 파먹는 땅개들이지.”
“하지만 비전문가가 운운하는 것도 좀―”
“그러면 본인은 행정 전문가라서 저렇게 말했나?”
내가 돌아오자마자 느낀 전쟁부의 분위기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미첼의 말에 부분적이나마 동의하거나 그럴 만했다고 느끼는 사람들조차 감히 그런 말을 입 밖으로 꺼내기엔 부담을 느꼈다.
얼마나 이 분위기가 무겁나 한다면,
“…대체 어쩌자고 이런… 무모한 행위를 했는지 모르겠군.”
마이페이스로는 그 누구에게도 뒤떨어지지 않는 맥아더가 곤혹스러워할 정도라고 말하겠노라.
그리고 미첼의 실로 파멸적인 이 도전에 응한 사람은 모두의 예상하는 초월하는 인물이었다.
“그를 군법재판에 회부하십시오.”
“각하?”
“전쟁부 장관은 지시를 이행하시기 바랍니다.”
주지사 시절, 경찰 파업을 진압함으로써 전국적 명성을 떨치고 백악관으로 가는 첫 단계를 통과한 남자.
캘빈 쿨리지 대통령은 결코 미첼을 좌시할 생각이 없었다.
* * *
“문민정부를 제멋대로 움직이기 위해 대중의 가슴을 불태우고, 여론을 움직이려는 군인이 있습니다.”
대통령이 참전 용사 격려차 미합중국 재향군인회와 US MILK를 방문해 축사를 남기는 아주 흔한 일.
이 흔해빠진 일에 영혼 없이 참석한 기자들의 눈이 번쩍 뜨이기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예산도, 보직 임명도, 군의 규칙도. 모두 국민이 선출한 당국이 결정할 일입니다. 군이 민정 당국에 지시를 내리는 순간이야말로 이 나라의 자유가 종말을 맞이하는 날입니다.”
결코 주어는 없었지만, 쿨리지가 하는 말이 누구를 지칭하고 있는지 모르는 사람은 이 자리에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몇몇 사람들은, 대통령이 미첼의 행동을 어떻게 정의 내렸는지도 아주 잘 알 수 있었고.
참모총장 부관 역할로 이 자리에 끌려나온 나 역시 혼이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어쩐지 자꾸 시선이 마주치는 것 같은데 기분 탓인가.
행사가 끝난 후, 하인즈 장군 역시 무언가를 느낀 듯 빠른 걸음으로 쿨리지에게 다가가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통령 각하. 오늘 말씀은 혹시―”
“특정인을 겨냥한 이야긴 아닙니다.”
입을 꽉 다문 채 더 이상 거론하기 싫다는 티를 팍팍 내자, 감히 대통령에게 캐물을 용기까진 없던 장군은 이내 입맛을 다시며 뒤로 물러났다.
“잠시.”
“예, 각하.”
“거기 부관이 혹시 그―”
“유진 킴 소령입니다.”
“……그렇군요.”
도무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종잡을 수가 없는 양반이다.
다시 한번 장군이 무어라 입을 떼기 직전, 쿨리지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5분만 이 장교를 빌려도 되겠습니까?”
“그러시지요.”
여기서? 갑자기?
날 팔아넘긴 하인즈 장군은 순식간에 ‘차에서 기다리고 있겠네!’라는 말만을 남기고 부리나케 사라졌고, 나는 이 곤혹스러운 양반과 덩그러니 한자리에 남아버렸다.
내 황당한 심경을 아는지 모르는지 쿨리지는 또 한참을 뜸 들이다가 말했다.
“……많은 업적을 남겼다고 들었습니다.”
“아닙니다, 본연의 임무에 충실했을 뿐입니다.”
“일본의 내각은 그들 나라의 군을 통제하기 버거워한단 이야기가 들리더군요.”
뭐지? 정치인 맞아?
무슨 스파이더맨 널뛰기하듯 대화 화제가 펄쩍펄쩍 뛰어다니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일본의 군인들에게 일종의… 영감을 불어넣어 줬다고 들었습니다.”
“오해입니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굳이 따지자면, 당시 급박한 사정상 그들이 듣고 싶어 하는 바를 말했을 뿐입니다.”
잡아떼야 한다.
뭔진 모르겠지만 일단 부정하고 봐야 한다.
“정치인의 가장 큰 덕목이지요, 그건. 전차 문제와 관련한 의회에서의 증언 때도 느꼈지만 귀관은 참 정치를 잘 이해하고 있는 듯하더군요. 상원의장으로서도 인상 깊었습니다.”
부통령은 원래 상원의장을 겸직한다. 그때, 전차 증언 때도 마찬가지였고.
그가 말하려는 게 무엇인지는 몰라도, 이제 두려움이라는 게 차오르고 있었다.
씨발. 아까 꺼낸 말, 그거 빌리 미첼 이야기가 아니었어?
혹시… 나도 포함이야?
“These accidents are the direct result of the incompetency, criminal negligence, and almost treasonable administration of the national defense by the Navy and War Departments.” ― 빌리 미첼
“Any organization of men in the military service bent on inflaming the public mind for the purpose of forcing government action through the pressure of public opinion is an exceedingly dangerous undertaking and precedent.
Whenever the military power starts dictating to the civil authority by whatever means adopted, the liberties of the country are beginning to end.” ―캘빈 쿨리지
늘 그렇듯, 고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