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ue Wind Pyo Country Strongest Eater RAW novel - Chapter 54
청풍표국 최강식객 054화
54화. 의려지망 (2)
임요성이 안심하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완성된 무형지독은 아니고, 아마 그걸 만들기 위해 만들었던 실험용 독인 것 같군. 무형지독이었다면… 흠. 아무튼 이 근처 의원들로는 고치기 힘들걸세.”
임요성은 무형지독이었다면 아내가 벌써 죽었을 거라는 말은 차마 하지 못했다.
“아… 어떻게….”
나윤천의 얼굴이 꺼멓게 죽어갔다.
가문이 멸문하던 중에도 그녀가 있었기에 견딜 수 있었다.
그런데 무형지독이라니….
“일단 청풍표국으로 옮기도록 하지. 여긴 집안이 너무 습하군. 습한 환경은 환자에게 치명적일세.”
강남, 특히 소주는 더운 날씨에 하천이 많아 늘 습했다.
그리고 그런 습한 공기는 환자에게 결코 좋지 않았다.
“하, 하지만 어떻게….”
“일단 국주님과 그 증세가 비슷하니 치료도 같이하는 것이 좋겠지. 오늘처럼 자네가 출타를 할 경우 보살펴 줄 사람도 있어야 하고. 여기 있는 것보단 훨씬 낫지 않겠나?”
“그, 그래도 어떻게 염치없이….”
“걱정 말게.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으니. 적어도 병을 고칠 때까진 있도록 하게. 아내를 이렇게 방치하다 잘못되면 어쩌려고 그러나?”
임요성이 강한 어투로 다그치자 나윤천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가, 감사합니다… 공자님….”
나윤천이 앉은 자세 그대로 고개를 깊이 숙였다.
사실 그는 임요성에게 아무런 충성심이 없었다.
아내. 오직 아내 때문에 연기를 한 것이다.
자신이 살아야 아내를 돌봐줄 수 있으니까.
그래서 비굴하게 살려달라 빌었던 것이고, 일단 청풍표국에 붙어 있다가 기회를 봐서 도망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나윤천의 그런 마음에 조금씩 균열이 가기 시작한 것이다.
툭툭.
임요성이 그의 어깨를 다독이며 말했다.
“자네는 이대로 돌아가게. 아내가 이리 아픈데 어딜 따라나서겠나. 가서 시비들에게 물어보면 의각을 알려줄 것이네. 만든 지 얼마 되지 않아 좀 썰렁하긴 하네만 아내가 지내기엔 충분할 거야. 내가 말했다고 하고 아내를 그리로 옮기게.”
이번 강연화 일로 새로 만들어진 곳 중 하나가 의각(醫閣)이었다.
이제 제대로 된 무사대도 만들고, 인원도 늘어날 것이다.
그러니 지금부터는 예전처럼 의원을 왕진 오게 하기는 효율이 너무 낮았다.
그래서 일단 안 쓰던 전각을 깨끗이 치워 의각을 만든 것이다. 의원과 의녀는 차차 채우기로 하고.
“공자님….”
나윤천은 붉어진 눈시울로 바닥을 쳐다보는 것 말고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냥 쓰다 버릴 생각으로 들였던 나윤천을 바라보는 임요성의 마음 역시 변화가 일었다.
그렇게 둘 사이에는 두 사람이 새로운 관계로 발전하는 구심점이 된 신수연이 한결 편해진 숨을 쌕쌕거리며 자고 있었다.
* * *
“혼자 왔어요?”
두혜련이 고개를 갸웃했다.
바로 뒤를 따라가기에 같이 간 줄 알았더니?
“일이 좀 생겨서 바로 표국으로 보냈소. 부인이 몸이 많이 안 좋아서 바로 표국으로 보냈소.”
임요성의 말에 두혜련의 얼굴이 걱정스러운 표정이 되었다.
두혜련은 나윤천이 표국을 습격하기 위해 온 사람이라는 것까지는 몰랐다.
굳이 임요성이 말을 꺼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그가 표국을 위해 일을 해주러 온 사람이라고만 알았다.
“아…. 어떡해요? 많이 안 좋던가요?”
“음…. 국주님과 비슷한 증세요.”
“아, 아버지랑요?”
두혜련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임요성에게 전에 설명을 들었다. 사천의 유명한 독문인 사천당가의 무형지독일 가능성이 높다고.
“그, 그렇게 유명한 독이 왜 여긴 흔한 거죠?”
두혜련이 정곡을 짚었다.
임요성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나도 잘 모르겠소. 하지만….”
임요성은 뒷말을 삼켰다. 무형지독이 활발히 사용되고, 뭔가 실험을 한다는 건 보다 악랄한 독을 만드는 게 아닐까 생각은 해봤다.
하지만 아직 확실한 건 아니었기에 괜히 미리 말을 꺼내 걱정을 시킬 필요는 없었다.
“아무튼 너무 걱정 마시오. 그리 심각할 정도는 아니었소. 단지 오래 방치되어 있어 그 부분이 걸리긴 한데….”
임요성은 전에 풍림개에 부탁했던 것을 떠올렸다.
‘어디에 계시는지…. 하긴 그리 쉽게 찾을 분은 아니지.’
그 부분은 풍림개에게 맡겼으니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다. 다만….
눈을 가늘게 뜨며 턱을 문질렀다.
‘사천당문이라….’
무형지독은 꽤나 만들기도 어렵고 귀중한 독이라고 들었다.
그런데 두혜련이 짚은 데로 요즘 그 독이 자주 보이는 것 같다.
소주의 작은 표국에서 벌어지는 암투에 무형지독이 사용되질 않나, 역시 이름도 없는 작은 무관을 멸문시키는 데 사용되질 않나….
사천당문에서 뭔가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게 분명했다.
하지만 임요성이 고개를 털었다.
수천 리 떨어진 사천이다. 아직은 이곳 소주에서 할 일이 더 많다.
“잘 먹고 가요.”
두혜련이 밝게 웃으며 인사하자 고광춘이 깊이 고개를 숙였다.
“언제든 오십시오. 두 분을 위한 자리는 언제나 비워두겠습니다.”
그냥 하는 말일 테지만 두혜련은 괜히 기분이 좋았다.
주인을 보니 처음 임요성을 만났던 때가 떠올랐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청풍객잔을 뒤로하며 두혜련은 왠지 가슴이 고동치는 걸 느꼈다.
하루아침에 아버지가 쓰러지시고, 친어머니처럼 따르던 강연화의 배신으로 쑥대밭이 된 집을 보다 보면 절망감이 온몸을 휘감고는 했다.
그런데 요즘엔 풍림개와 공천식, 팽원호 등 이렇게 좋은 인연들이 하나둘씩 자신의 곁으로 모이자 활력이 샘솟곤 했다.
그리고 이제 그 모든 일을 가능케 해준 임요성을 처음 만나게 해준 객잔의 주인을 또 보게 되자 가슴이 벅차올랐다.
묵묵히 걸어가는 임요성을 옆눈으로 힐끔 쳐다본 두혜련의 볼에 홍조가 떠올랐다.
그렇게 조금씩 그녀의 마음속으로 임요성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 * *
강소성 양주(揚州).
장강을 끼고 있는 데다 운하의 발달로 인한 교통의 편리함으로 예로부터 강남의 경제 중심지였다.
현재는 소주와 항주에 그 번영을 넘겨주었지만, 그래도 미곡이나 소금의 집산지로서 여전히 강소성 최대도시였다.
그 중심에 강소성의 패자인 단목세가가 자리잡고 있었다.
거대한 전각들이 즐비한 가운데, 가장 중심이 되는 전각 안에 위치한 집무실에 날카로운 인상의 중년인이 보고를 받고 있었다.
“…백웅이 실종되었다라….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우내십존 중 한 명이 나서지 않는 한 이렇게 흔적도 없이 사라질 일은 없다고 저도 생각됩니다.”
단목세가주 단목인. 작은 키에 날카로운 눈매가 인상적이다.
키도 작고 몸집도 왜소했으나, 그의 무위는 현 강호에서 가장 강한 열 명의 절대고수인 상천십좌를 차지할 정도였으니, 그를 아는 이들은 결코 그의 외모만으로 평가하지 못했다.
톡. 톡. 톡.
앞에 놓인 다탁을 손가락으로 치는 단목인 앞에 호위대의 대주, 현운탁이 등에 식은땀을 흘리며 서 있었다.
백웅은 어디까지 가주 직속 호위대의 일원. 특별히 단목란의 호위를 위해 내주었는데 실종이 되었단다.
물론 현운탁의 책임은 아니었으나 그의 부하이기도 했기에 혹시나 질책을 받을까 긴장하고 있는 것이다.
“란이는?”
“아는 바가 없다고 합니다. 그날 특별히 보고할 것이 있다고 해서 밤을 도와 이동했는데….”
“그런데?”
“장강을 넘지 못한 듯싶습니다. 그런데 양주로 넘어오는 나루터 쪽에 기이하게도 불이 나서 그 일대 갈대밭이 다 타버렸다고 하더군요.”
“그 말을 하는 이유는?”
“그냥 제 생각입니다. 아무리 살펴봐도 장강을 넘은 흔적은 없습니다. 그리고 소주 분가에서 이쪽으로 다른 의심 가는 흔적은 하나도 없는데, 그 갈대밭만 유독 갑자기 탔다가 꺼진 흔적이….”
“좀 이상하다?”
“그렇습니다.”
“이번에 그 녀석이 소주검문과 청풍표국을 지우려 했다고 했던가?”
단목인이 정갈하게 손질된 수염을 쓱쓱 만지며 물었다.
“예. 소주검문은 예상대로 멸문에 이르렀는데, 청풍표국이란 곳은 이번에 들어온 식객 하나가 제법 칼 좀 쓴다고 하더군요. 이번에 진천성 중 하나인 팽가일성을 꺾었다는 소문도 있습니다.”
“흠….”
“아! 그러고 보니 란 아가씨가 그 식객 얘기를 하던 중에 굉장히 겁을 먹은 표정이었습니다.”
“그래?”
단목인이 눈을 빛냈다.
“직접 봤단 말인가?”
“예. 백 호법이 재빨리 아가씨를 모시고 도망쳤다고 하더군요.”
“백 호법이 도망을?”
“예. 란이 아가씨가 다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후기지수를 상대로 백 호법이 도망을…. 기이하군. 그 청풍표국의 식객이라는 자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게.”
“존명!”
현운탁이 고개를 숙이곤 물러났다.
‘청풍표국의 식객이라….’
단목인의 눈에 이채가 스치고 지나갔다.
지금까지는 단목룡의 경험을 위해 모든 걸 맡겨두었지만, 이제부턴 자신이 개입을 해야 할 것 같다.
백웅이 뭘 알리려고 왔던 것일까. 그리고 그는 왜 갑자기 증발해 버린 것일까.
왠지 이 모든 해답이 그 식객에게 있을 것만 같았다.
* * *
개방 강소분타.
원래는 단목세가가 자리한 양주에 있었으나, 풍림개가 내려오면서 소주로 옮기게 된다.
보통 무림맹의 지단이든 개방의 분타든 그 지역의 패자가 있는 곳에 위치한다.
거대세력을 중심으로 강호가 움직이기 때문에 정보를 얻기도 좋고, 떡고물(?)이 떨어질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정보를 팔아 먹고사는 개방의 경우 그런 거액의 정보료를 주는 곳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풍림개가 양주의 분타로 갔을 땐, 어찌 된 일인지 거지들이 모두 도망가고 없었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전임 강소성 분타주가 손버릇이 나빠 방도들을 마구잡이로 패다 보니 모두 뿔뿔이 흩어진 것이다.
풍림개가 소주로 와서 가장 먼저 한 일이 방도들을 다시 끌어모으는 일이었는데, 아무래도 양주가 아닌 소주로 분타가 이동하다 보니 방도들을 다시 모으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
그래도 소문을 듣고 물어물어 온 거지들이 있어 지금은 제법 사람 온기가 느껴지는 움막이 되었다.
그 거지 움막에서 산발을 한 거지가 뛰쳐나왔다.
“안녕하십니까요!”
그 뒤를 따라 풍림개가 이를 쑤시며 따라 나왔다.
“아이구, 이게 누구신가! 이 누추한 거지소굴에 귀인께서 납시셨군!”
말뿐이 아닌 실제로 누추한 분타를 보며 두혜련이 의연하게 행동했다.
이런 악취는 생전 처음 접해 봤지만, 개방의 분타주 앞에서 그런 표정을 짓는다는 게 실례일 수도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때 말했던 친우의 모친을 뵈러 왔습니다.”
임요성의 말에 풍림개가 눈을 빛냈다.
“딱 좋군. 이제 슬슬 일차로 술을 한잔 걸친 이들이 이차로 기루를 찾을 시간이니 말이야. 가세. 내가 안내하지. 아, 그리고 인사하게.”
풍림개가 옆에 멀뚱히 서 있던 산발의 거지 청년을 소개했다.
“여기 강소 토박이인 삼룡일세. 이전 분타주가 손이 험해 피해 다니다가 내가 온 뒤에 다시 들어온 놈일세. 발이 빠르고 감이 좋은 녀석이야. 앞으로 자주 보게 될걸세.”
아직 개방도로서 별호가 없는 삼룡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안녕하십니까요.”
“자 그럼, 가세!”
풍림개가 휘적휘적 길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