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ue Wind Pyo Country Strongest Eater RAW novel - Chapter 55
청풍표국 최강식객 055화
55화. 의려지망 (3)
“에이, 썅! 뭐가 이렇게 말이 많아! 그냥 고객이 원하는 대로 해주는 게 맞는 거 아냐?”
소주 외곽에 있는 작은 하천 옆에 작은 기루가 있었다.
기루의 이름은 의망루(倚望樓).
한번은 어떤 객이 왜 기루 이름이 의망루냐고 물었을 때 기루의 주인은 그냥 웃기만 할 뿐이었다.
변두리 작은 기루라 객의 질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물론 큰 악도들이 찾지는 않지만 그 반면 잔챙이들이 패악을 부리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다행히 소주 바닥에서 꽤 오랫동안 붙어 있던 탓에 나름 루주를 인간적으로 좋아하는 이들이 많아 패악을 놓은 이들을 찾아가 혼찌검을 내주는 경우가 몇 번 있은 이후로는 크게 패악을 부리는 자들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술 먹고 주정을 부리는 이들이 사라진 건 아니었다.
그리고 그 정도는 병가지상사가 아니라 기루지상사, 기루에선 늘상 있는 일이기도 했다.
지금도 술을 먹고 비틀거리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사내를 기루의 점소이들이 달래는 중이었다.
보통은 그렇게 달래다 보면 구시렁대기는 해도 그냥 못 이기는 척 나가곤 했다.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챵!
“이런 썅! 다 죽고 싶어! 내가 이런 작은 기루에 왔다고 무시하는 거야!”
식탁에 세워져 있던 박도를 빼든 그가 게슴츠레한 눈으로 소리치자 식탁에서 시중을 들고 있던 기녀들이 소리를 지르며 흩어졌다.
기실 고수들보다도 이런 술에 취해 칼을 휘두르는 진상들이 기녀들에게는 더 위협적이었다.
고수들은 자신의 상대만 해할 뿐이지만 이런 자들의 눈먼 칼에는 여자고 뭐고 그냥 휘두를 뿐이기 때문이다.
“내가 씨발! 어? 돈이 없어서 그래? 그냥 좀 이뻐서 쓰다듬는 건데 왜 앙탈이냐고!”
의망루는 일 층에서는 기녀들을 끼고 술을 간단하게 마시며 분위기를 낼 수 있었고, 마음에 들면 위층으로 올라가 운우지락을 나눌 수 있었다.
아예 돈이 많은 고객들은 위층에서 방을 하나 잡아서 질펀하게 놀았으나 지금 사내는 적은 돈으로 그 모든 걸 하고자 하는 것이 눈에 뻔히 보였다.
기루를 담당하는 총관이 미소를 머금은 채 다가섰다.
“손님, 이곳은 그냥 간단하게 대화를 나누며 술을 즐기는 곳입니다. 정 깊은 대화를 원하시면 위층으로… 큭!”
“이 새끼가 너도 나 무시하냐!”
소리를 지르며 휘두른 박도에 총관의 가슴이 살짝 패였다.
피를 흘리며 뒤로 나자빠지는 총관을 점소이들이 부축하며 빠졌고, 기루를 보호하는 보표가 거칠게 그의 어깨를 밀쳤다.
“어? 와! 보표가 사람 치네?”
보통 시비가 벌어져도 어지간해선 보표는 고객을 상대로 무력을 행사하진 않는다.
어차피 그 고객이 다음에도 또 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사내는 좀 달랐다. 얼굴도 낯설었고, 행동도 다소 거칠었다.
변두리 작은 기루에는 보통 단골들이 많이 오기 때문에 낯선 이들이 오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래서 보표는 좀 강하게 나가기로 한 것이다.
다짜고짜 총관을 베어 버리는 것도 느낌이 좋지 않았고.
아니나 다를까 사내는 눈빛이 험해지더니 박도를 위험하게 휘둘렀다.
시비가 붙어 휘두르는 위협용이 아니라 실제 사람을 상하게 할 의도가 포함된 손속이었다.
“크윽!”
따로 무기를 가지고 있지 않은 보표가 아슬아슬하게 사내의 박도를 피하며 일단 기루 밖으로 이끌려 했으나 사내는 몇 번 휘두르고는 씨익 웃었다.
“루주 나오라고 해! 썅! 손님 대접을 이따위로 해서 되겠어!”
그제야 구석에서 응급처치를 하고 있는 총관도, 문 앞쪽에서 긴장한 눈으로 그를 쳐다보는 보표도 이 사내가 다른 의도가 있어서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 계단 위에서 사람이 내려오는 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위로 향했다.
계단 하나하나를 천천히 지르밟으며 내려서는 여인은 이미 나이가 꽤 들어 중년 부인의 티가 확연히 드러나는 얼굴이었으나, 젊은 시절 나름 남자깨나 설레게 했을 듯 보였다.
계단을 다 내려선 미부가 고개를 들어 박도를 들고 있는 사내를 미소로 맞이했다.
느껴지는 분위기도 여느 기녀들과는 달리 기품이 느껴졌다.
“처음 뵙는 분인데, 왜 저를 찾으시는지요? 그리고 저희 총관을 상하게 하셨으니 따로 추가금이 발생할 것 같습니다만.”
차분히 말하는 여인을 넋 놓고 있던 사내가 문득 정신을 차리고는 얼굴을 구겼다.
“크음! 어디 기루 주인 주제에 하늘 같은 고객한테 이래라 저래라야! 내가 누군지 알아?”
“대협의 존성대명을 제가 알 기회를 주시겠는지요?”
사뿐히 계단에서 내려온 루주가 편안한 미소를 지으며 어르고 달래는 품이 싸구려 기루에 있을 분위기가 아니었다.
하지만 기호지세라, 사내는 더 뻗대었다.
“흥! 난 저 절강에서 이름을 날린 능천마라도 위천수다!”
능천마라도? 아직 시간이 일러 기루에는 점원들밖에 없었는데 모두들 고개를 갸웃했다.
아무리 외곽에 있는 기루라고는 하나 강호의 기루다. 어지간한 별호는 들어 알고 있었다.
그런데 하늘마저 범할 정도인 악마의 칼이라는 뜻을 품고 있는 능천마라도(凌天摩羅刀)라는 엄청난 별호는 들어 본 적이 없다.
거의 흑도 대종사나 새외 변황의 악명높은 마두들이나 쓸법한 별호였는데도 말이다.
그때 곰곰이 생각하던 총관이 손가락을 튀기며 말했다.
“아! 마라견!”
악마의 한 갈래인 마라(摩羅)가 아니라, 향신료로 쓰는 그 마라(麻辣)였다.
그리고 뒤에는 개 견(犬)자가 붙었고. 딱 봐도 알만한 별호였다.
그 말에 옆에서 벼락같은 노성이 터졌다.
“이, 개새끼가!”
자신이 제일 싫어하는 마라견을 입 밖에 꺼내자 능천마라, 아니 마라맛 마라견이 눈이 뒤집혔다.
별거 아닌 일로도 정말 어이없게 죽을 수도 있는 게 강호다.
아차 싶은 루주가 다급히 말려보려 했지만 이미 눈이 돌아간 위천수의 박도가 총관의 정수리를 쪼갤 듯이 쏘아져 나갔다.
위천수는 절강 흑도에 몸담고 있는 자였다.
흑도는 대개 양지의 무림문파나 세가들을 피해 음지에서 도박장이나 무투장 등을 운영하거나 인신매매, 춘약 유통 등을 행하는 족속들이었다.
과거에는 따로 세력을 이루어 백도 무림과 중원을 양분한 적도 있다고 하나 지금은 백도에서 기피하는 온갖 더럽고 불법적인 일을 도맡아 행하는 신세로 전락했다.
하지만 워낙 방대하고 그 뿌리가 깊었기에 백도 무림으로 통칭되는 이들 역시 딱히 자신들에게 직접적으로 피해를 주지 않는 다음에는 그들을 건드리지 않는 게 이득이었다.
위천수도 절강의 흑도 무림에서 나름 이름을 날렸는데, 이번에는 재수 없게 도박장에서 팔을 날려버린 멍청한 도련님이 하필 그 지역 현령의 아들이었던 것이다.
아무도 자신을 숨겨주거나 편을 들어 주지 않자, 더 이상 그 지역이 있을 수 없게 되어 밤을 도와 옆 도시인 강소로 넘어온 위천수는 오늘따라 울분이 도져 괜히 시비를 건 것이다.
딴에는 이런 외곽의 작은 기루를 접수하여 기루를 관리하며 때를 도모하리라는 생각도 있었다.
술을 마시며 보니 딱히 관리하는 흑도가 있는 것도 아니요, 자신이 충분히 요리할 만한 보표 하나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마라견이라는 말에 눈이 돌아버린 것이다.
옆에 있던 루주가 말려보려 했으나 이미 손 떠난 화살이었다.
눈 앞에 펼쳐질 참극에 루주와 다른 점원들이 질끈 눈을 감는데, 웬걸 깡! 하는 청아한 소리가 귓가에 들렸다.
“크윽! 뭐, 뭐야!”
저릿저릿하는 손목을 만지며 박도를 보니 중간 움푹하고 패인 것이 뭔가에 맞은 듯했다.
어디 돌멩이나 암기도 아니었다.
‘서, 설마 지풍?!’
내기를 실은 물건도 아니요, 지풍만으로 강철로 된 박도를 우그러뜨릴 정도면 보통 공력이 아니었다.
“누, 누구냐!”
가슴이 철렁해진 위천수가 두리번거리다가 창밖을 통해 천천히 걸어오는 일단의 무리들과 눈이 마주쳤다.
감았던 눈을 천천히 뜨며 기루의 루주와 점원들도 위천수의 시선과 같은 곳을 향했다.
기루의 문을 통해 보이는 일단의 무리 앞에는 날카롭게 생긴 남자 한 명과 묘한 색기를 풍기는 여자 무인이 있었고, 그 뒤로 선남선녀가 걸어오고 있었다.
남자답게 생긴 얼굴에 훤칠한 키에 다소 말랐지만 다부진 몸의 사내와 그의 옆에 그야말로 달의 여신인 항아가 현신한 듯한 미모의 여인이 함께했다.
가장 앞의 사내가 기루에 들어서며 차가운 눈으로 좌중을 훑자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듯한 느낌에 모두 바짝 긴장해야 했다.
하지만 제일 놀란 것은 위천수였다.
“너, 너희들은 누구냐!”
뒤따라 들어와서는 아무 말 없이 바라보는 사내, 임요성의 얼굴에 심장이 철렁한 위천수가 마른침을 삼켰다.
호랑이 앞의 쥐처럼 아무런 행동도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에이 거참 성질도 급하기는.”
임요성 일행의 중간을 밀치며 나온 이는 바로 풍림개였다.
기루 근처 앞까지는 같이 왔는데 기루 안에서 일어나는 일에 갑자기 임요성의 발이 빨라지기 시작했고, 모두 그의 뒤를 따라 속도를 높인 것이다.
급기야 갑작스럽게 날린 지풍에 모두 깜짝 놀랐다.
하지만 점점 가까이 오며 그들도 어찌 된 상항인지 알 수 있었다.
그야말로 엄청난 안력과 청력이었다.
옆에서 임요성을 힐끔 쳐다본 풍림개가 고래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 녀석은 도대체 앞으로 얼마나 더 자신을 놀래야 속이 시원할지.
“이분이 맞습니까?”
임요성이 옆에 선 풍림개를 보며 물었다.
“흠흠. 그런 것 같은데?”
루주를 한 번 훑은 풍림개가 고개를 끄덕였다.
루주는 이제 지금 무슨 상황인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으나 오랜 연륜으로 금세 안정을 찾았다.
“어디서 찾아오신 분들이신지요?”
단순히 술을 먹기 위해 온 이들이 아니란 걸 딱 봐도 알았다.
남자들은 한눈에 봐도 상당 수준의 무공을 익혔고, 여자들은 절로 품격이 드러나 여느 집안 자제들은 아니란 게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가장 앞에 있는 여인의 생김이 눈에 익어 고개를 갸웃하던 차에 임요성의 서늘한 목소리가 들렸다.
임요성의 차가운 눈빛이 위천수에게 닿았다.
“괜히 분란 일으키지 말고 그냥 가도록. 오늘은 좋은 날이니 피를 보고 싶지 않다.”
위천수는 당장 꼬리를 말았다. 이건 뭐 허세와 만용으로 비벼볼 상대가 아니었다.
지풍으로 자신의 강철 박도를 튕겨버린 자다. 괜히 뻗대다가 소중한 목을 보전하기 힘들다는 생각에 부리나케 나가려던 차,
“돈은 내고 가야지.”
명계의 염라대왕 같은 임요성의 서슬 퍼런 음성에 위천수가 품 안에서 손에 잡히는 대로 탁자에 던지고는 고개를 굽신거리다가 문밖으로 뛰쳐나갔다.
가슴에 칼빵을 맞은 총관이 가장 먼저 다가가 주머니를 뒤져보고는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 모습을 보던 루주가 고개를 저었다.
“총관, 내 평소 조심하라 이르지 않았어요. 흑도 무리들은 별호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입을 조심하라고.”
“흐흐. 예, 예. 아무튼 제 상처를 치료하고도 많이 남겠는데요?”
“휴우. 총관 쓰세요. 많이 놀랐을 테니.”
총관이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꾸벅 고개를 숙이고는 대뜸 임요성 앞에 섰다.
“소협은 뉘십니까? 아, 그 전에 감사하다는 말씀 먼저 올립니다.”
허리를 꾸벅 숙여 인사를 올린 총관이 허리를 폈을 땐, 호기심과 의아함, 그리고 의심과 기대 등등 복잡미묘한 표정으로 임요성을 쳐다봤다.
“혹시 곽구란 이를 아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