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ue Wind Pyo Country Strongest Eater RAW novel - Chapter 57
청풍표국 최강식객 057화
57화. 의려지망 (5)
문밖에 있던 일행 역시 임요성과 홍연의 대화를 통해 모든 사정을 듣고 있었고, 절절한 사연에 모두 숙연해졌다.
작디작은 초옥이라 그들의 말소리는 밖으로 모두 들릴 수밖에 없었고, 임요성도 굳이 기막을 친다든가 하지 않았다.
이들은 어차피 자신과 같이 갈 이들이라 생각했기에 숨기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사정이 있었군….”
풍림개가 눈시울을 붉히며 말하다가 이게 웬 추태인가 싶어 눈을 문지른 후 옆을 보자 여인들 역시 하염없이 소매로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그런데 여산홍이 눈물을 참느라고 입술을 깨물고 있는 모습이 웃겨 풍림개가 피식 웃고 말았다.
“흠흠. 왜, 왜 그러십니까?”
멋쩍은 마음에 여산홍이 발끈하자 풍림개가 손가락으로 눈을 가리켰다.
“흐흐. 평소 무게는 엄청 잡더니만 자네도 별수 없군그래? 아주 그냥 눈물이 줄줄 흐르는구나?”
“주, 줄줄 흐르기는 누가 그랬다고! 커험!”
여산홍이 고개를 돌리다 매영옥과 눈이 마주쳤다.
“흠흠.”
“우리 공자님 가여워서 어떡해요….”
매영옥의 말에 두혜련도 고개를 끄덕였다.
두혜련이 한숨을 쉬며 고개를 돌려 임요성이 있는 방을 쳐다봤다.
‘내가 공자님에 대해 너무 몰랐어.’
사실 이제 만난 지 몇 달 되지도 않았기에 서로에 대한 깊은 부분은 모르는 게 당연했으나, 그녀는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자책했다.
태산 같은 듬직함과 태호 같은 넓은 마음을 보여주었기에 더욱 이런 비극과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그런 그녀의 마음이 전해졌음인지 풍림개가 장탄식을 했다.
“하아. 저 친구도 많은 사연을 가지고 있었군.”
“저 나이에 그 정도 무위를 가지고 있는 분의 과거가 평범할 리가 있겠습니까?”
풍림개가 여산홍을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오늘 뭐 잘못 먹었어? 평소답지 않게 말이 되게 많네?”
“크흠흠흠.”
그의 말대로 여산홍은 요즘 말이 늘고 있었다.
사천에서 나와 아들 하나 데리고 정처 없이 떠돌다가 마음에 드는 주군을 만나 제대로 정착을 하니 조금씩 응어리가 풀리고 있는 것이다.
아무튼 임요성과 홍연의 대화를 들으며 그동안 그에게서 약간의 거리감을 느끼고 있던 그들은 더욱 그에 대한 마음이 열리고 있었다.
그때 밖으로 둘이 실랑이하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저랑 같이 가시죠.”
“응? 아니 그러지 않아도 된다. 여기도 살만해.”
한참을 울고 난 후, 홍연은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
그동안의 마음의 응어리가 어떻게 다 풀렸겠냐 만은 그래도 생사도 모르던 아들의 소식을 들고 온 친구를 보게 되자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
임요성의 말 한마디에 눈물을 흘리다가도, 수련을 받다가 교관한테 같이 벌을 받는 대목에선 밝게 웃기도 했다.
그리고 그의 존재가 현 황제의 황위 등극에 큰 도움이 되었다는 말에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그렇게 말을 나누던 임요성은 자신의 거처로, 청풍표국으로 가자는 말을 꺼냈다.
하지만 어찌 그럴 수 있겠냐며 홍연이 완곡하게 거절했다.
그때였다.
“어머님! 저희랑 같이 가요!”
두혜련이 흘리던 눈물을 어느새 훔치고는 밝게 웃으며 방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그리고,
“언니!”
초련 역시 방으로 뛰어 들어왔다.
작은 방 안에 사람들이 들어서자 발 디딜 틈도 없이 꽉 찼다. 풍림개만 빼고.
그 방에 들어왔다가는 냄새 때문에 모두 튀어 나가야 했기에 풍림개는 문밖에 걸터앉았다.
임요성과 홍연의 대화에 여인들의 눈은 퉁퉁 불어 있었고, 남자들 역시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다.
“임 공자는 저희 표국에서 없어선 안 될 소중한 분입니다. 그런 분이 어머님이라 부르는 분을 모시는 건 당연한 도리라고 생각됩니다. 저희 청을 거절하지 말아 주세요.”
두혜련이 싱긋 미소를 지으며 홍연에게 말하자 밖에서 풍림개도 거들었다.
“거두절미하고 우리랑 같이 갑시다! 들어 보니 아드님도 무공을 배우고 싶어 하는 것 같던데, 임 공자랑 있으면 자연스럽게 무공도 배울 수 있고, 아드님의 장래에도 도움이 될 겁니다.”
홍연의 말에 따르면 현재 그녀의 아들 곽현은 곽구가 불량인으로 팔려 갈 무렵 배 속에 있던 동생이다.
당시 곽구가 팔린 사실을 안 홍연이 거의 실성을 하다시피 하다가 겨우 정신을 차린 것이 곽현의 임신 사실 때문이었다.
곽구를 팔아버리고 그 돈으로 다시 노름을 하다 돈을 날린 곽구의 아비는 술을 먹고 골목길을 걷다가, 흑도 패거리들과 시비가 붙어 맞아 죽었다고 한다.
그야말로 참담한 인생이었던 것이다.
“그래도 어찌 그러나…. 우린 아무것도 해줄 게 없는데….”
홍연이 계속 망설이자 초련이 툭 내뱉었다.
“언니! 그러지 말고, 이번 참에 복귀하시구랴.”
초련의 말에 홍연이 미간을 찌푸렸다.
“얘는 지금 무슨 말을…. 아들도 있는 여편네한테…!”
“뭐 어때? 남편도 아니고….”
“맹모삼천지교라지 않니…. 걔가 기녀 어미를 보고 뭘 배우겠니….”
“그럼 객잔은 어떠우?”
“뭐? 객잔?”
“의망루를 객잔으로 바꾸면 되지. 이번 참에 이름도 바꿉시다. 칙칙한 의망루 말고 좀 산뜻한 걸로다. 아, 기다리던 아들 소식도 봄과 함께 왔겠다, 좋은 봄소식이라면… 호춘소식! 그러니까 호춘객잔 어떠우?”
사실 아들이 죽었다는 소식이 좋은 소식이 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근 20년을 가슴앓이하던 언니가 이제는 훌훌 털고 일어서길 바랐다.
그래서 초련은 자신이 나서서 설레발을 떨고 있는 것이다.
“호춘객잔 괜찮네요! 맨날 우리가 가서 팔아주면 되겠다!”
두혜련이 손뼉을 짝 치며 좋아했다.
다들 초련과 두혜련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홍연을 꼬시려고 하는 차에 갑자기 싸리문으로 누가 튀어 들어왔다.
“곽현! 여기가 곽현이 사는 곳입니까?”
열린 방문으로 건장한 체구의 청년이 보였다.
“무슨 일이더냐?”
풍림개가 물었고, 청년이 우물쭈물했다.
“저기… 곽현이 좀 많이 다쳐서….”
후다닥!
그 누구보다 빠르게 홍연이 뛰쳐나갔고, 창백한 얼굴로 물었다.
“내가 현이 애미다. 그게 무슨 말이니?”
청년은 고개를 숙인 채 죄송한 표정을 지었으나 그런 건 눈에 들어오지도 않은 홍연이 소리쳤다.
“무슨 일이냐고!”
“그, 그게 현이가 좀 많이 다쳤습니다. 그래서 의방에 데려다주고 물어물어 오는 길입니다.”
그의 말에 홍연이 털썩 주저앉으며 정신을 잃었다.
사실 곽구의 소식만으로도 이미 홍연의 정신은 까무러치기 일보 직전이었을 만큼 정신력을 소진한 상태였다.
그런데 이제 하나밖에 남지 않은 곽현마저 많이 다쳤다는 말을 듣자 그대로 혼절한 것이다.
“어머님!”
임요성이 달려가 그녀를 껴안았고, 급히 맥문을 통해 기운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다행히 막혔던 기혈이 뚫리며 얼굴에 혈색이 돌아왔으나 아직 정신을 차릴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급히 안으로 들여 두혜련이 눈치껏 펴놓은 이부자리 위에 눕혔다.
그리고 서늘한 눈으로 청년을 쳐다봤다.
“어찌 된 일이냐?”
청년은 자신의 잘못도 아니었지만 임요성의 서늘한 눈빛과 옆에 선 이들의 숨 막힐 듯한 기파에 고개를 움츠렸다.
“제, 제가 그런 게 아니라….”
그의 말에 따르면 곽현은 사실 투견장이라고 부르는 지하무투장의 투견이었다.
처음 어미에게는 그냥 흑도가 운영하는 유흥업소의 점소이를 하고 있다고만 얘기했다.
홍연이 흑도라는 말에 놀라 당장 그만두라고 했지만, 곽현이 절대 위험한 일이 아니라고 몇 번의 간곡한 설득 끝에 절대 손님들 사이의 시비에 나서지 말라는 다짐을 몇 번이나 하고서야 겨우 일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거짓말이었다.
곽현은 어머니를 지킬 수 있는 사람은 자신뿐이고, 자신들이 업신여김을 당하지 않으려면 힘과 돈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근처 무관의 문을 두드려봤지만, 교습비가 없으면 받아 주지 않았다.
그나마 지하무투장에서는 한 경기마다 꽤 큰돈을 주었고, 잡기술이나마 박투술을 배울 수 있었다.
곽현은 자신의 몸을 혹사시키며 돈을 모았고, 그 돈으로 제법 집다운 집을 얻은 다음 자신도 제대로 무관에서 무공을 배우려고 했다.
한번 얼굴이 크게 다쳐서 들어갔을 때에는 점소이로 번 돈으로 동네 작은 무관에 등록을 해서 그렇다고 둘러댔다.
평소 무공을 배우고 싶어 했던 그의 마음을 아는 터라 별 말은 하지 않았으나 홍연은 늘 마음이 좋질 않았다.
이후 찝찝한 마음에 홍연이 동생인 초련에게 부탁해 그의 뒤를 밟았고, 투견장에서 싸움을 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혼절할 정도로 놀랐다.
그날 처음으로 모자간에 고성이 오갔으나, 부모가 자식을 이길 수가 없었다.
투견장에서 무술을 가르쳐주기 때문에 제발 다니게 해달라고, 스무 살까지만 돈도 벌고, 무술도 배운 다음 다 그만두고 작은 포목점이나 하자는 아들의 간곡한 부탁에 어쩔 수 없이 마음을 돌린 홍연이었다.
그리고 올해가 곽현이 스무 살이 되는 해였다.
곽현을 둘러업고 온 청년은 곽현의 무투장 호적수이자 친구인 엄충식이었다.
“젠장! 악독한 개새끼들! 사람을 어찌 이렇게!”
“그게 무슨 말이더냐.”
임요성의 목소리에 엄충식이 마른침을 삼켰다.
“그, 그게 어떻게 된 거냐면….”
엄충식이 말하려 하자 임요성이 막았다.
“됐다. 아무튼 그 무투장과 관련된 내용이겠지?”
임요성의 서슬 퍼런 눈빛에 엄충식이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앞서거라. 자세한 얘기는 가면서 듣자.”
혹시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 두혜련과 매영옥은 남기로 했고, 다시 그들을 지키기 위해 풍림개가 남기로 했다.
엄충식을 앞세운 임요성이 나가고, 그 뒤를 여산홍이 바싹 뒤따랐다.
곽구의 어머니와 동생이라면 자신에게도 어머니며 동생이었다.
만약 이 일에 조금이라도 암수가 개입되었다면….
임요성의 눈이 시리도록 빛났다.
그리고 엄충식의 설명에 시간은 네 시진 전으로 돌아간다.
* * *
“나찰견! 나찰견! 나찰견!”
“죽여라! 목을 뜯어버려!”
“네가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화끈하게 조져버려라!”
“광견! 저 비쩍 마른 나찰새끼를 물어 죽여라! 체급의 차이가 뭔지를 보여줘라!”
귀가 먹먹해지고, 사람들이 내뿜는 열기와 광기가 경기장 내부를 현실인지 꿈인지 모를 정도로 뿌옇게 잠식해갔다.
경기장 위 굵은 철창 안에서 서로를 노려보며 나찰견과 광견으로 불리고 있는 이들은 바로 이 지하투견장의 투견들.
투견은 이 지하무투장에서 결투를 벌이는 이들을 일컫는 은어였다. 투견장도 마찬가지.
지금 운영되고 있는 이 지하투견장도 하오문 소주 지부장인 호상희가 실질적인 운영자였다.
하지만 바지사장을 앉혀두었기에 그가 이곳의 실운영자라는 걸 아는 이는 드물었다.
어느 시대, 어느 상황이든 밑바닥 인생은 존재했다.
기득권으로부터 착취를 당해 모든 걸 잃는 이도 있고, 아니면 급변하는 사회에 적응하지 못해 패배자가 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역시 이런 이들의 등에 빨대를 꽂아 고혈을 빨아먹는 이들 또한 있기 마련.
지금 서로를 바라보며 생사의 대적을 맞이한 듯 눈을 부라리고 있는 두 사내, 아니 덩치는 어른에 근접했으나 아직 솜털이 남아있는 이 청년들 또한 자신들은 몰랐으나 그렇게 피가 빨리고 있는 지하 투견장의 무투 노예나 마찬가지였다.
이 무투장의 규칙은 무기를 쓸 수 없다는 것과 상대를 죽이지만 않으면 모든 공격이 허용되었다.
물론 광기에 휩싸여 상대를 죽일 가능성이 매우 컸지만 지금도 2층 난간에서 이들을 유심히 살피고 있는 관리자들이 그 가능성을 무(無)로 수렴시켰다.
“자! 모두들 많이 기다리셨습니다. 현재까지의 전적 10승 10패. 정확히 동률을 이루고 있는 이 소주의 지하 투견장의 자랑이자 보물인 두 투견들! 역시 한 달간 이뤄진 무투대회에서 결승을 차지한 이들은 벌써 2년째 상대가 다른 이가 되는 걸 허락하지 않고 있습니다! 아, 이 얼마나 눈물겨운 사랑이란 말인가!”
사회자의 능청스러운 말투에 어떤 이는 웃었고, 어떤 이는 욕설을 퍼부으며 빨리 진행하라고 소리쳤다.
하지만 그들의 눈에는 공통적으로 광기가 넘실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