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ue Wind Pyo Country Strongest Eater RAW novel - Chapter 58
청풍표국 최강식객 058화
58화. 무투장의 투견들 (1)
그들은 피가 튀고, 뼈가 부러지며, 살점이 파여나가는 모습을 보기 위해 거금의 입장료를 내고 왔다.
몸을 추스르도록 주어지는 휴가 기간을 제외한 무려 2년 동안 한 사람이 이기면, 다시 한 사람이 이기는 막상막하의 경기를 보여주고 있는 이 두 투견들의 모습을 보기 위해.
“예예, 알겠습니다. 빨리 시작하라는 말이죠? 그럼 이 사회자의 뻘소리는 여기까지 하고, 모두 응원하는 투견에게 돈을 거셨겠죠? 자! 그럼 이달의 결승전을 시작합니다!”
사회자가 물러나고 다시 두 사람을 응원하는 이들이 양 패로 갈라져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 광기의 현장에서 오직 두 사람의 주변은 묘한 적막이 흐르고 있었다.
“어이, 나찰. 이번엔 나한테 양보 좀 해주지 그래. 이제 볼 날도 오늘이 마지막인데.”
광견이라 불리던 청년이 말했다.
칠 척의 거구였으나 나이는 겨우 열여덟이었다. 그래서 소년이라기는 나이가 애매했고, 청년이라 봐야 할 것이다.
“흥. 미친개가 또 미친 소리를 지껄이네. 똑같이 돌려줄게. 이왕 나가는 거 나한테 영광을 좀 몰아줄 생각은 못 하냐?”
육 척의 늘씬한 몸을 가진 그의 이름은 곽현.
그는 그렇게 잘생긴 얼굴은 아니었지만, 짙은 피부색에 뚜렷한 이목구비가 남자다움을 더했다.
하지만 히죽 웃는 그의 앞니는 작년에 앞에 있는 놈에게 맞아 빠져 있었고, 역시 자세히 살펴보면 어금니 쪽도 몇 개 없었다. 이곳 무투장에서 그 정도 상처는 오히려 적은 편.
앞의 사내만 봐도 역시 험상궂은 인상이었으나 웃음을 지으니 휑한 앞니가 보였다. 눈가는 찢어졌다가 다시 살이 차오르길 몇 번을 했는지 흉하게 피부가 일그러지고, 콧대도 어딘가 이상했다.
투견들은 스물이 되면 이곳 무투장을 ‘졸업’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지고, 자유의 삶이 주어진다.
많은 이들이 그렇게 이곳을 떠나갔고, 한번 놀러 오겠다는 이들은 자유가 좋아서인지 한 번도 들른 적은 없다.
그런 모습을 벌써 몇 해째 보고 있는 곽현도 이제 이 미친 동생을 볼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다.
뭐 저 녀석도 2년 후 이곳을 졸업하겠지. 그때가 되면 한 번 만나 술이나 기울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싸우면서 정이 든다더니 딱 그 꼴이었다.
“마지막으로 애송이의 실력을 좀 살펴봐 주지. 어디 힘껏 놀아봐.”
곽현이 손가락을 까딱하며 도발하자, 넓은 가슴팍을 팡팡 치며 거구의 사내, 엄충식이 포효했다.
“크하하하! 사양 않지!”
무투대를 박차며 넣는 기합과 함께 소년, 아니 청년이 튀어 나갔다.
곽현이 달려드는 것과 동시에 무릎치기가 엄충식의 가슴을 찍으려 했으나 거구답지 않은 재빠른 몸놀림으로 옆으로 피한 그가 곽현의 어깨를 잡고 옆구리를 찍어 올렸다.
퍼억!
하지만 가까스로 팔뚝으로 그의 무릎치기를 막아냈고, 허공을 가르며 곽현의 우장이 엄충식의 귀를 치려 했으나 허무하리만치 쉽게 막혔다.
“흐아아압!”
그사이 곽현의 허리를 잡은 엄충식이 비무대 위로 곽현을 메다꽂았고,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 떨어진 곽현의 얼굴과 엄충식의 발등이 보였다.
퍼억!
“큭!”
하지만 두 손으로 막아낸 곽현이 방어와 동시에 두 발을 솟구치며 엄충식의 겨드랑이를 향했다.
어차피 키 차이로 턱에는 미치지 못할 터, 겨드랑이라도 공격하려 했으나 오히려 팔꿈치를 들이밀어 강력한 고통이 발바닥을 엄습했다.
다시 곽현의 멱살을 잡아 번쩍 들어 올린 엄충식이 바닥으로 내리치려는 찰나 곽현이 엄충식의 두 팔을 다리로 통째로 감으며 몸을 옆으로 팽그르 돌았다.
“크윽!”
팔이 뒤틀리는 고통에 잠시 힘이 빠진 순간 곽현이 공중에서 발을 들어 엄충식의 정수리를 가격했다.
뻐억!
“윽!”
엄충식이 휘청거리며 뒤로 쿵쿵 하며 밀려났고, 그의 손에서 벗어난 곽현이 타닥하는 경쾌한 발 구름 소리와 함께 뛰어올라 엄충식의 얼굴에 그대로 팔꿈치를 내리꽂았다.
빠각 하는 찰진 타격음이 들리고 엄충식의 거구가 휘청하는 순간 곽현의 발차기가 엄충식의 발목 복사뼈를 그대로 걷어찼다.
쿠웅!
복사뼈를 차인 엄충식이 순간 균형을 잃으며 바닥으로 쓰러졌고, 순간적으로 뒤로 돌아간 곽현이 그대로 엄충식의 등 뒤에 바짝 붙어서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크윽!”
목이 졸린 느낌에 엄충식이 온갖 지랄을 하며 벗어나려 했지만 더욱 파고드는 곽현의 팔뚝을 뿌리칠 수가 없었다.
체중이 많이 차이 날 경우 자신보다 많은 체중이 나가는 이를 이길 수 있는 경우는 조르기가 가장 효율적이다.
그들이 살고 있는 곳은 강호였지만, 이곳 무투장의 투견들은 내공이니 뭐니 그런 고급기술을 사용하지 못했다.
그러니 엄충식보다 작은 몸집의 곽현이 이길 수단으로 조르기를 선택한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
“씨발! 조금만 더!”
“제대로 들어갔어! 그대로 버텨 나찰견!”
“아 씨발, 뭐 하냐! 빨리 빠져나와! 너한테 전 재산 다 걸었단 말이다!”
곳곳에서 욕설과 환호가 튀어나왔다.
그리고 곧 툭툭 치는 소리와 함께 항복을 알리는 신호가 곽현의 팔뚝에 울리는 순간 곽현이 후우 하는 소리와 함께 벌러덩 누웠다.
채 일각도 지나지 않아 승패가 갈리며 돈을 잃은 자와 딴 자의 희비가 엇갈렸으나, 이제 이 두 대적자들의 결투를 보지 못할 것을 아는 관객들은 너무 빨리 끝나버린 결투를 아쉬워했다.
“씨발, 졌지만 잘 싸웠다, 광견!”
“이제 못 봐서 어쩌냐 나찰견! 나가서 잘살라구! 나중에 공씨철방에 들르면 좋은 무기 하나 싸게 해주께!”
그들을 향한 응원 속에서 두 사람의 친구이자 대적자가 수다를 떨었다.
“헉헉, 씨발, 독한 새끼. 결국 끝까지 이 동생한테 똥을 퍼먹여야겠냐?”
“야, 똥이 원래 거름인 거 모르냐?”
“그 똥이 워낙 독해야지 말야.”
“뭐? 이 씨발아?
나란히 드러누운 채 서로에게 욕설을 내뱉었다.
“이제 형님이라 불러. 싸가지없는 새끼야. 어디 콩알만 한게. 2년 차이면 너랑 나 사이에 밥그릇으로만 여기 무투장 몇 바퀴는 돈다고!”
“크큭. 미친.”
“…풉!”
둘은 동시에 웃음이 터졌고, 다행히 마지막 결투에선 부상이 없었다는 걸 그나마 위안으로 삼으며 서로를 의지하며 일어섰다.
* * *
경기가 끝난 후 무투장에서의 열기가 꿈이었던 것처럼 개집 안은 평화로웠다.
투견들이 생활하는 이 목책 안의 공간을 사람들은 개집이라고 불렀다.
한 달에 한 번씩 열리는 지하투견대회는 이곳에 있는 백 명 남짓한 이들이 벌이는 격투대회였다.
승자전 방식으로 올라가는 이들의 가장 양쪽 끝에는 언제부턴가 곽현과 엄충식의 차지였고, 늘 가장 꼭대기에서 만나는 건 둘이었다.
사실 이렇게 한 달에 몇 번씩 싸우는 격투를 어릴 때부터 벌여오면 온몸이 골병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의원과 하급기공사를 붙여주어 적절한 치료를 해주기도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그래서 이 투견장을 운영하는 이들은 투견들에게 스무 살까지만 버티면 자유를 주겠다고 약속했고, 그들은 철석같이 약속을 믿으며 소년 시절을 격투로 보내야 했다.
여기 들어온 이들은 모두 돈이 필요해서 들어온 이들이라 그들은 이를 악물고 버텼다.
스무 살 이후의 자유와 풍족한 삶을 꿈꾸며 이 지옥 같은 투견장에서 견딜 수 있었고, 스무 살이 되어 자유를 얻은 이들이 많은 돈을 들고 멋쩍게 웃으며 손을 흔들며 떠나는 모습은 이 투견들이 가장 바라는 모습이었다.
털썩.
“뭐, 후유증은 없지?”
작은 병을 흔들며 엄충식이 기거하는 움집 앞에 앉은 곽현.
엄충식은 고아라서 이곳 무투장 내에 지내고 있었다.
안에서 팔을 베고 드러누워 천장을 보고 있던 엄충식이 고개를 들어 본 건 곽현이 흔들고 있는 병이었다.
“너 이 새끼…?”
“쯧. 형이라 부르라니까.”
벌떡 일어서서 곽현이 들고 있는 술병을 빼앗듯 낚아채서 목으로 가져갔다.
꿀꺽꿀꺽.
“크으. 너 이거 어디서 구했냐.”
싸구려 백주였지만, 자신들에게는 천하에 둘도 없는 명주였다.
“흐흐. 형이 이제 나가니깐 한잔하고 싶다고 말했더니 우리 이모가 구해주셨어. 좋은 술을 줄 수도 있지만 싸구려 술을 먹어 봐야 나중에 좋은 술의 가치를 안다나 어쨌다나.”
곽현은 늘 자신만 보면 걱정스러운 눈으로 쳐다보는 이모가 부담스러울 때도 있었으나, 어머니를 제외하면 유일한 피붙이였기에 어려울 땐 가장 먼저 찾아지는 사람이었다.
늘 죽은 형만 생각하는 어미보다는 더 살가운 가족이었다.
그렇다고 어머니를 원망하진 않았다.
자기라도 그런 일이 생겼다면 똑같이 했을 테니까.
단지 이제는 죽었을 게 확실한 형은 잊고 자기 몸이나 좀 돌봤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미친놈. 이모한테 이런 부탁하는 거 보면 나보다 네가 더 광견이다.”
엄충식에게서 받은 술로 목을 축인 곽현이 다시 병을 내밀었다.
“크으. 네 녀석이 좋아하니 같이 마셔주긴 한다만 이런 걸 왜 마시는지 몰라.”
술을 즐기지 않는 곽현이 투덜거리자 엄충식이 피식 웃었다.
“술을 못 마시는 자 인생을 논하지 말라.”
다시 술을 먹으며 엄충식이 입을 쓱 닦았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봤다.
“좋겠다. 이제 이 지긋지긋한 곳도 마지막이겠네.”
“미친놈. 당사자는 가만히 있는데 도리어 네놈이 감상에 젖었냐?”
“쳇!”
엄충식의 눈이 아련해졌다.
처음엔 지옥이라 생각했으나 점점 익숙해지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고, 하나둘씩 친해지는 이들이 생겼다.
맞은편에서 이죽거리는 곽현도 마찬가지였다.
이제는 막상 떠난다고 생각하니 살짝 섭섭하기도 했다.
“그런데….”
엄충식이 뭔가 말하려다 머뭇거리자 곽현이 턱짓을 하며 물었다.
“뭔데 머뭇거려?”
사실 엄충식은 이상한 소문을 하나 들었다.
거액의 퇴직금을 받고 나간 이들이 모두 연락이 안 된다는 것이었다.
모두 더 큰 돈을 벌러 타지로 나갔다는 말도 있었으나, 한 사람도 제대로 소식을 몰랐다.
가족이 있는 이들한테는 편지가 날아오기도 했는데, 까막눈이라 다른 이에게 부탁해서 쓴다고 적혀 있었기에 필체로 확인하기도 힘들었다.
그냥 그렇게 알고 있을 뿐.
하지만 굳이 좋은 날 초를 칠 필요는 없기에 엄충식이 말을 돌렸다.
“할 거는 있고?”
“무투장에서 저기 항주로 가면 더 큰 무투판이 있다고 소개를 해주긴 하던데, 난 그냥 여기서 어머니 모시고 작은 포목점이나 열려고.”
“으음.”
엄충식이 고개를 끄덕였다.
‘항주라.’
역시 이곳에서 투견장을 졸업하는 이들에게 무투장을 소개해주는 모양이었다.
“좀 있다 장주 집무실로 오래. 퇴직금 정산해준다고.”
“알겠어. 아무튼 종종 연락하라고, 형….”
엄충식의 끝말에 곽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니가 웬일이냐. 형이라고 다하고.”
“에이 씨. 싫으면 말고.”
“크큭! 간다!”
근 2년 가까이를 정상의 자리에서 붙어왔던 둘은 이제 누구보다 마음을 터놓는 사이가 되었다.
둘은 주거니 받거니 술을 마시며, 한 사람은 새로운 출발을 축하했고, 한 사람은 다른 거 없고 다치지만 말라고 빌어주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집무실에 들러 돈을 정산받고 좋아라 달려가는 곽현의 등을 향해 손을 흔든 엄충식이 움집에 들어와 몸을 눕혔다.
싸우면서 정이 든다고 하던다.
처음에 죽어라 싸우던 이가 이제는 제일 친한 사람이 되었다.
괜히 마음이 싱숭생숭해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하던 순간이었다.
무투장을 청소하던 청소부들이 나가며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또 한 사람 죽어 나가게 생겼구만.”
“그게 무슨 말인가?”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입 청소부가 물었다.
“저렇게 돈을 받고 나간 이들이 다 연락이 안 된대 글쎄. 아마도 이곳 무투장에서 몰래 저들을 죽이고 돈을 다시 뺏는다는 소문이 있어. 그리고 이건 거의 확실해. 내가 여기 무투장 사무실에서 일하는 여사환이랑 좀 친하거든.”
벌떡 일어난 엄충식이 그들을 향해 가려다 멈칫했다.
추궁해봐야 모른다고 잡아떼면 그뿐이다.
“젠장!”
그리고 그 덩치 큰 몸이 비호처럼 쏘아져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