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229
제 229화
77장. 8클래스 – 3화
한편 렌투스 제국군의 공세에 요새를 방어선으로 어떻게든 버텨 내려 애쓰던 신데르스 왕국군은 이내 ‘박살’이 나 버렸다.
오랜 기간 전쟁을 치르지 않았던 탓에 신데르스 왕국군의 실전 능력은 한참 떨어졌다.
물론 실전을 대비한 훈련은 꾸준히 해 왔지만, 수많은 전장에서 잔뼈가 굵은 렌투스 제국군에게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더더욱 위협적인 것은 수적으로 압도적인 우세를 점하고 있는 렌투스 기사단과 마법사단이었다.
요새의 규모가 크지 않다 보니 그간 딱히 공성 병기가 필요 없었고, 그저 마법사들의 견제만으로도 충분했던 것이다.
한편 상공에서 벌어진 오스카와 레피니티의 일전에서 레피니티가 크게 부상을 입으면서, 균형의 추가 완전히 한쪽으로 기울어져 버렸다.
계속되는 패퇴.
시작부터 확실하게 승기를 잡을 생각이었던 렌투스 제국군은 추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여기저기서 사망자가 속출했다.
제대로 다듬어지지 않은 신데르스 왕국군은 너무나 무력했고, 요새는 그저 ‘담장’ 같은 역할밖에 하지 못했다.
5km 가까이 뒤로 밀린 신데르스 왕국군의 계속된 패퇴를 막아 준 것은 크리비아 제국의 지원군이었다.
라키스, 엘라, 나오미를 위시한 고급 전력으로 편성된 150명의 지원군이 도착한 것이다.
1만 5천의 일반 군인보다 훨씬 더 강력하고 가치 있는 인원들로 구성된 지원군이었다.
레피니티를 압살하며 기세가 크게 올랐던 오스카는 나오미를 만나자, 그 기세가 바로 꺾였다.
나오미는 레피니티와 달리, 자레드의 밑에서 끊임없이 수련하고 훈련하며 강해진 상태였다.
무엇보다 지난번 수련의 방을 다녀온 뒤, 개인적으로 얻은 성취의 깊이가 상당히 깊었다.
라키스와 엘라, 레나는 유려한 검기를 펼치며 렌투스 제국군을 유린했다.
갈라딘은 특히 상대적으로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인물인 레나의 실력에 크게 놀랐다.
스물도 채 되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아이가 펼치는 검술은 수준급이었다.
게다가 10명이 넘는 기사들이 한데 집중해서 그녀의 목숨을 노렸음에도 공격이 전혀 먹히지 않았다.
마치 방어를 위해 태어난 존재처럼, 신들린 기술로 공격을 모조리 막아 냈다.
상상을 초월하는 기술이었다.
단지 검기를 끌어올려 방어 역장을 펼치는 것 따위가 아니라, 본인 고유의 특수한 기술이 있는 듯했다.
방어 역장이 3중, 4중으로 겹쳐지며, 도저히 뚫을 수 없는 난공불락의 ‘철벽’이 만들어진 것이다.
지옥이었다.
일 대 십의 전투가 펼쳐졌음에도 손도 못 쓰는 것은 렌투스 기사단 쪽이었다.
그렇게 레나가 만들어 낸 무력화의 와중에 적의 빈틈을 노린 것은 라키스와 엘라였다.
두 사람 역시 수준의 차이는 있지만, 둘 다 수준급의 오러 블레이드를 선보이며 적들을 베어 나갔다.
갈라딘과 같은 소드 마스터는 아니더라도, 검기를 능수능란하게 다룰 수 있는 검사가 셋이나 있다는 것은 충격이었다.
‘내가 크리비아를 너무 얕본 건가.’
단지 얕봤다는 총평으로 끝내기에는 숨겨진 크리비아의 인재들이 너무 많았다.
그간 크리비아 제국의 정복 전쟁이 자레드의 마법에 지나치게 초점이 맞춰져 있던 탓에 상대적으로 다른 이들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던 것도 크게 한몫을 했다.
“적의 동쪽 진형이 무너진다! 총공격! 더욱 공세를 높여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렌투스 제국군의 우세에는 변함이 없었다.
수적 우위를 바탕으로 우직하게 밀어붙이는 인해전술에는 적들도 당해 낼 재간이 없었다.
크리비아 제국의 지원군들은 열심히 싸웠지만, 문제는 전의를 빠르게 잃어 가고 있는 신데르스 왕국군이었다.
‘속전속결. 내가 있고 자랑스러운 우리 제국의 기사와 마법사들이 있으니 승산은 확실하다.’
갈라딘은 살짝이나마 불안했던 마음을 다잡으며, 본격적으로 전투에 돌입할 준비를 마쳤다.
적에게 노려질까 싶어 적극적인 개입을 미뤄 왔으나, 이제는 확실하게 합류하는 것이 좋을 듯싶었다.
한데 바로 그때.
“각하! 각하……!”
피투성이의 마궁수 하나가 황급히 달려와서는 그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아니, 반쯤 쓰러져서 거의 땅에 고개를 처박다시피 했다.
이 마궁수는 원스넬을 지원하기 위해 남쪽으로 보냈던 마궁수이기에 느낌이 좋지 않았다.
“무슨 일이냐?”
“……원스넬 님이 위험합니다.”
“뭐라고? 다른 녀석들은 뭘 하고 있는데, 원스넬이 위험하단 말이냐?”
“전멸했습니다. 렌-세븐의 도련님들도, 저희 마궁수 부대도……. 끄르륵.”
이내 마궁수가 앞으로 고꾸라졌다. 그사이에 잔뜩 피를 토한 마궁수는 절명해 버렸다.
“…….”
망치로 머리를 세게 두드려 맞은 느낌에 갈라딘은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다.
렌-세븐은 자신의 심복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실력을 키워 온 녀석들로, 렌투스 제국에서 자신 다음으로 강력한 존재들이었다.
황제 루틀러 4세가 자신의 친우(親友)였어도, 종종 자신의 권력을 제한하려 했던 적이 있었다.
황제로서 신하의 발언권과 영향력을 억제하려는 것은 당연한 일.
그때마다 황제에게 보이지 않는 ‘위협’을 가하며, 압박감을 안겨 준 것은 렌-세븐의 존재였다.
그런 이유로 세간에서는 우스갯소리로 ‘갈라딘은 죽더라도 귀신이 되어 렌-세븐을 통해 나라를 다스릴 것’이라는 얘기까지 돌 정도였다.
한데 그 핵심 전력 일곱 중에 여섯이 죽은 것이다. 부상이나 이탈이 아닌, ‘죽음’이었다.
원스넬까지 무너지면 후방은 말 그대로 뻥 뚫리게 된다.
고속 진공을 위해 전선이 길어진 탓에 보급을 위한 수송대 행렬도 한참은 뒤에 있다.
자레드가 아예 후방을 초토화시키면, 이곳 전투에서 이긴다고 하더라도 상처뿐인 승리가 된다.
“망할! 빌어먹을 자레드 XX!”
갈라딘은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단 한 놈 때문에 계획이 완전히 어그러지고 있었다.
렌-세븐의 죽음은 애초부터 전혀 고려되지 않은 변수였다.
설마 마법사 하나에 휘둘릴까 싶었지만……! 그 설마가 현실이 되어 버렸다.
“내가 끝내야 한다.”
갈라딘은 검을 고쳐 쥐었다.
예전부터 자레드의 실력은 익히 들어왔고, 언젠가 맞붙게 되리라고 예상했다.
그날이 바로 오늘이었다.
자레드를 넘지 못한다면, 어차피 이 전쟁은 승리하지 못한다.
바꿔 말하면, 자레드만 제거하면 모든 것이 끝난다.
비록 라키스나 엘라, 레나가 강하기는 하지만 기사단과 마법사단 전체를 압도할 수준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스카!”
“예!”
“지금부터 지휘는 네가 맡는다. 난 후방의 자레드를 상대하겠다.”
“각하, 괜찮으시겠습니까?”
“대마법사라 불리는 베르하드도 감히 나를 어쩌지 못했다. 자레드 같은 놈 따위가 다를 게 있겠느냐?”
갈라딘의 대답은 거침이 없었다. 오스카는 고개를 숙였다.
“역시 각하이십니다. 마법사단의 지원을 붙일까요?”
“필요 없다. 전방의 모든 적들을 궤멸시켜라. 투항하든, 항복하든, 모조리 죽여라.”
“예, 각하!”
“곧 돌아오겠다.”
파앗!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갈라딘은 남쪽으로 향했다.
필승(必勝)!
그의 머릿속에 있는 단어는 그것만이 유일했다.
* * *
“쿨럭, 쿨럭…….”
“마지막 공격은 꽤 인상적이었어. 고육지계인 것을 알면서도 희생하는 공격을 펼칠 줄은…….”
나는 무릎을 꿇은 채, 가쁜 숨을 거칠게 몰아쉬는 원스넬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원스넬의 죽음은 확정적이었다.
뻥, 하고 구멍이 뚫린 복부 한가운데의 구멍을 따라 흘러나오고 있는 오장육부가 그 증거였다.
수세에 몰린 원스넬은 초월 마법의 집중 공세를 온몸으로 받아 내며, 기어이 접근에 성공했고.
내 두 다리에 상처를 냈다.
그것도 제법 깊은 상처였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뼈가 부러지거나, 근육이 크게 상하는 일격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간 착실히 올려온 ‘물리 방어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내가 죽는다고 이 전쟁이 쉽게 끝날 것 같으냐?”
원스넬이 독기 가득한 말을 내게 건넸다.
그러고는 주변을 둘러본 후 원망에 찬 표정으로 나를 노려봤다.
사방은 온통 렌투스 제국군의 시체들로 가득했다.
형체를 알 수 없게 망가진 렌-세븐의 시체가 여섯이었고, 마궁수 부대도 전멸이었다.
마법사의 클래스로 환산하면, 3클래스로 치기도 힘든 마궁수 부대는 애초에 내 상대가 안 됐다.
오히려 마법사로 판정을 받아서 ‘위저드 슬레이어’ 칭호로 향하는 지름길만 열어 줬을 뿐이다.
“전쟁은 계속되겠지. 많은 피가 세상에 흩뿌려지겠지. 하지만 그 피의 대부분은 우리가 아닌 적들이 흘리게 될 거다.”
“공작님이 널 가만두지 않으실 것이다…….”
“걱정 마. 늦지 않게 네 곁으로 보내 줄 테니.”
내가 한 말은 허장성세가 아닌 진심이었다.
물론 갈라딘이 쉽지 않은 상대라는 것은 잘 알고 있다.
그는 대륙에 몇 되지 않는 소드 마스터 중 한 명이니까.
그렇기에 내가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기도 했다.
“저승에서 만나자, 자레드…….”
“그래. 네가 저승에서 벽에 똥칠할 때쯤에는 가겠지. 지금은 아냐.”
“내가 저승에서도 널……!”
화르르륵!
죽어가는 녀석의 구차한 뒷말을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기에, 나는 트랜센던스 파이어볼로 원스넬의 머리를 날려 버렸다.
다음 순간.
[특수 퀘스트 ‘냉철한 단죄’가 완료되었습니다!] [렌-세븐의 일곱 구성원을 모두 제거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진정한 힘의 봉인이 풀려, 8클래스의 단계로 진입합니다!]“드디어!”
나도 모르게 두 주먹이 불끈 쥐어졌다.
8클래스.
7클래스와는 또 다른!
진정한 ‘대마법사’의 반열에 오르기 위한, 내 앞을 가로막는 장벽을 힘껏 뛰어넘는 순간이었다.
슈아아아아! 슈아아아!
그뿐만 아니라, 시기적절하게 사비오가 보낸 다수의 타넥스들이 도착하는 것도 보였다.
화아아아!
내가 섬광탄 역할을 할 파이어볼 하나를 쏘아 올리자, 나를 인지한 타넥스들이 급강하했다.
나는 클래스가 오르면서 선택할 수 있게 된 선택지를 늘 그랬듯이 사제지간의 ‘슬롯’을 늘리는 데 썼다.
지금도 시간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제자들의 성취로 인한 보너스 스탯이 계속 들어오고 있었다.
티끌 모아 태산이 아니던가?
아슈르나 모이즐, 아세로 같은 인물들에게도 사제지간 시스템을 걸어 줄 생각이었다.
비전투 요원이라 하더라도 당연히 성취는 존재하고, 그들의 성장은 고스란히 스승인 나의 불로소득(不勞所得)이 되기 때문이다.
“…….”
나는 두 눈을 감았다.
그리고 1클래스부터 8클래스까지, 내가 가진 마법에 대한 모든 기억을 다시금 머리와 가슴에 새기기 시작했다.
모든 기억이 새롭게 떠오른다.
언제든 내 손끝을 따라 다양한 형태로 펼쳐 낼 수 있는 마법들이 오롯이 느껴졌다.
보인다.
머지않은 미래에 어둠을 품고 태어난 ‘악의 근원’과 마주하고 있는 내 모습이.
‘설령 내가 쓰러지고 패한다 하더라도 지금은 아니야. 내 무덤은 이곳이 아닌 마왕의 시체 앞이 되어야 옳겠지.’
그렇게 생각했다.
난생처음 소드 마스터를 상대하게 되었다는 사실에 살짝 긴장도 됐지만.
기분 좋은 떨림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리고 내 실력에 대한 확신도 충분했다.
터업.
바로 그때.
“…….”
나는 느낄 수 있었다.
묵직한 발소리와 함께 나를 향해 걸어오는 한 남자의 기척을.
“자레드, 네 목숨을 취하러 왔다. 영광스러운 우리 렌투스 제국의 피와 살의 제물이 되어라.”
갈라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