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ch the ghost munchkin! RAW novel - Chapter 136
136화
촬영은 중단되었다. 조연 배우가 교체되었으니 상부에 보고하고 다시 촬영해야 할 것이다. 새로 투입되는 배우에게도 캐릭터를 분석할 시간이 필요하니 겸사겸사 시간을 갖게 된 것이었다.
촬영이 중단되면서 시간이 생긴 덕팔이 늦은 오후, 사령탐정사무소에서 법과목과 전투를 벌이고 있을 때 구혜성이 덕팔 곁에 앉아 덕팔을 괴롭히고 있었다. 상대역이 되었다는 이유였다.
“선배, 선배!”
“선배.. 님! 이겠지.”
“그게 뭐가 중요해요. 선배, 이거 봐봐요. 여기 이 부분 대사를 어떻게 치실 생각이세요?”
덕팔이 구혜성이 내민 대본을 보며 대사를 쳐주자 구혜성이 자신이 생각한 대로 대사를 받았다.
“어색해요?”
“아니, 괜찮은데? 그래요? 하하하 역시!! 나는 연기에 재능이 있었던 거야. 하아.. 그럼 어떻게 하지? 댄스도 해야 하고, 발라드도 하고 싶은데?”
“다 하셔. 그럼 되지. 이제 연습 끝났으면 내려갈래? 여기는 엔터 사무실이 아니야. 저기 눈에 쌍심지를 켜고 널 노려보고 있는 교수님 보이지?”
덕팔이 손가락으로 은혜를 가리키자 구혜성이 움찔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막히는 거 있으면 또 올라오겠습니다. 하하하”
구혜성이 은혜의 눈치를 보며 덕팔에게 손을 흔들곤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아이고.. 요즘 애들은 참…”
덕팔이 선수를 치자 은혜가 피식 웃고 말았다.
“딴 맘 있는 거 아니죠?”
“쟤, 20살이에요. 범죄라구요.”
“어머? 진짜? 생긴 건…”
구혜성이 감독의 마음에 들었던 비사 중 하나! 20살밖에 되지 않은 구혜성이 20대 중후반의 마스크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오히려 24살인 강민지는 아직 앳된 얼굴이어서 구혜성의 동생 역할로 출연하게 되었다. 비록 단역이었지만 강민지의 빠른 판단으로 자신도 기회를 얻게 된 셈이었다.
“비밀입니다. 상처받을 거예요.”
“… 호호호, 네!”
은혜가 뭐가 그리 좋은지 손거울을 들어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
A팀 촬영이 상당 부분 진행된 상태에서 덕팔이 포함된 B팀 촬영이 시작되었다. 덕팔은 그간 A팀에서 간간히 촬영해 왔었는데 오늘부터는 본격적으로 B팀에서 촬영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혜성아, 근데 이건 너무 심하지 않니?”
“왜요? 코메디잖아요. 감독님도 좋아하시고! 하하하”
1960년대 이후로 자취를 감춘 거적대기를 두 배우가 뒤집어쓴 채 남의 집 담벼락 밑에 쪼그리고 앉아 청승을 떨고 있었다.
“아.. 이거.. 어디서 구했지?”
“소품실에 있었대요. 근대 사극 할 때 쓰려고 만들어 놓은 거.. 흐흐흐”
두 배우가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는 사이 감독의 사인이 들어왔다.
“스탠바이… 큐!”
“오빵, 나 추워!”
“월세는 어디다 쓴 거야?”
“…친구랑 밥 먹었어.”
“40만 원을 전부다?”
“맨날 친구들에게 얻어먹기만 하니까 미안해서 내가 한번 샀어.”
“어휴…”
“그렇다고 이렇게 추운 날 집에서 쫓아내는 건 반칙 아니야?”
“미령아, 너 도대체 왜 그래?”
“내가 뭘?”
“나 있잖아, 한 달 내내 아르바이트해도 100만 원밖에 못 벌어. 월세 내고 공과금 내고 나면 50만 원도 안남아. 근데 네가 한 끼에 40만 원을 써버리면…”
“겨우 한 번이잖아. 그것도 이해 못 해줘? 날 사랑한다면서!!”
“미령아, 사랑하는 거하고 돈 쓰는 거하고 무슨 상관이 있니?”
“오빵, 너무행. 그렇게 힘들면 우리 집으로 들어가. 엄마가 그랬는데 집에 들어오면 생활비 준데..”
“하아…”
덕팔이 머리를 잡고 흔들자 감독의 입에서 컷 소리가 나왔다.
“오케이, 컷!! 좋네요. 다음 가죠.”
이번 씬은 덕팔이 처가살이를 하게 되는 계기가 되는 씬이었다. 이어지는 씬은 으리으리한 처갓집 대문 앞에서 덕팔이 고민하는 씬.
“오빠, 빨리 들어가자. 나 추워..”
“으…응..”
덕팔이 망설이며 주춤거렸다.
“처가와 화장실은 멀수록 좋다고 아버지께서 그러셨는데…”
덕팔이 한숨을 내쉬며 다시 중얼거렸다.
“뭐, 괜찮아. 요즘은 화장실이 집 안에 있으니까 처가도 집 안에 있는 게 좋겠지.”
덕팔이 활짝 웃으며 구혜성의 손을 잡고 대문 안으로 들어갔다.
“컷!”
B팀 감독이 오케이를 외치지 않고 덕팔을 불렀다.
“더 파르씨?”
“네!”
“잠깐 보죠.”
B팀 감독이 방금 촬영한 부분을 보여주었다.
“흐음…”
“어색하죠?”
“네, 좀 어색하네요.”
“처가살이에 대한 거부감이 있나 봐요? 아니면 처가가 부자인 것에 대한 본능적인 공포? 뭐 이런 거?”
덕팔이 잠시 은혜를 생각하더니 쓴 웃음을 지었다.
**`
덕팔의 미지근한 연기가 나온 이유는 모두 은혜 때문이었다.
“덕팔씨, 우리 나이가 31살이죠?”
“네.”
덕팔이 오늘도 책을 보며 하루를 마감하고 있을 때, 신력 수련을 하던 은혜가 책을 덮곤 덕팔 옆에 앉으며 물었다.
“남자도 그렇지만 여자 나이 31살이면 노처녀인 건 알죠?”
“그런가요?”
덕팔이 대수롭지 않게 대답을 하자 은혜의 이마에 분노의 혈관이 튀어나왔지만, 은혜는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흥분을 가라앉히고 어머니 황예리의 핑계를 댔다.
“저는 뭐, 괜찮은데 엄마가 자꾸 언제 결혼할 거냐고…”
“아하… 어머니 입장에선 걱정이 되시겠네요. 제가 그 생각을 못 했어요.”
덕팔이 생각지 못했다는 듯, 뭔가를 바로 잡아야겠다는 듯 대답을 하자 은혜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럼 날짜를 언제로?”
“제가 어머니를 만나 뵙고 양해를 구할께요. 오랜만에 아버님도 함께 뵈어야겠네요. 제 학업도 한참 남았고 또, 우리가 아직 사랑하는 사이도 아니…”
“… 그 입!! 쳐 다물라!”
은혜의 분노어린 목소리에 덕팔이 움찔거렸다. 은혜가 화가 났는지 사무실 문을 쾅 닫으며 나가버리자 덕팔이 빙그레 웃으며 얼마 전 황예리로부터 걸려온 전화 통화를 상기해 보았다.
**
“안녕하십니까? 어머니?”
[어머니라고 하지 말라고 그랬죠?]“아.. 네, 사모님.”
[그 소리도 듣기 싫네요.]“그럼… 아줌마?”
[이봐요. 오덕팔씨!!]“죄송합니다. 요즘 촬영하는 게 코메디물이라 시도 때도 없이, 저도 모르게…”
[어머니 소리 하고 싶으면 제대로 해요. 은혜랑 결혼해서! 은혜 나이가 몇인 줄 알아요? 벌써 서른 하나에요. 친구 애들은 다들 시집가서 손주들이 학교를 가네 마네 하고 있는데 이건 뭐, 아직 결혼 얘기도 없으니…]황예리의 폭풍 잔소리는 이후에도 10여 분간 계속되었다.
[그리고, 아무래도 은혜가 학교에서 강의하니까 애들은 내가 봐야 할 것 같고.. 뭐, 그래서 집에 들어와 살도록 해요. 은혜 방을 다시 꾸미면 충분히 살 수 있을 거예요.]“저기… 어머니…”
[조만간 집으로 부를 테니까 그때까지 언제 어떻게 결혼할 건지 구체적으로 계획안을 만들어서 들고 오도록 해요. 그리고.. 그때, 그 백숙! 한 마리 해와도 누가 뭐라고 하지 않으니까.. 나이를 먹으니 약효가 금방 떨어져서… 어휴!]전화가 끊어졌다. 결국 피부미용에 좋은 닭백숙과 결혼 일정을 잡아가지고 오라는 통첩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최진학으로부터 전화가 들어왔다.
덕팔이 한숨을 내쉬며 최은혜 결혼 강요극 2부를 들어야 했다.
***
“결혼이라…”
덕팔이 은혜가 없는 자리를 멍한 눈으로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아직은 이르지…”
덕팔이 흔들리는 마음을 새롭게 다졌는지 눈에 힘을 주며 휴대폰을 바라보았다.
“그나저나 깨어날 때가 훨씬 지났는데 왜 연락이 없는 거지?”
덕팔이 연락처에서 왕성기라는 이름을 검색하곤 통화버튼을 누를지 망설였다. 그때, 전화벨이 울리며 ‘왕성기’ 세 글자가 떴다.
“양반은 못 되는 군, 아닌가? 호랑이인 건가?”
덕팔이 피식 웃으며 왕성기의 전화를 받았다.
“여보…”
왕성기의 목소리에서 조급함이 느껴졌다.
“어디십니까? 만날 수 있습니까?”
[여기는…]왕성기가 자신의 위치를 알려주곤 전화를 급히 끊었다. 덕팔이 불이나게 사무실 밖으로 뛰쳐나가자 놀이터에서 영훈이 스르륵 모습을 보였다.
[뭐지? 뭐가 그렇게 바쁜 거지? 왜 나만 한가한 것 같지? 뭔가가 밀려난 느낌이야.. 왠지 불길해. 왠지!]**
종로의 허름한 술집.
덕팔이 문을 열고 들어오자 한여름에 옷깃을 잔뜩 세운 채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는 왕성기가 손을 들었다.
“여..여깁니다.”
덕팔이 왕성기를 알아보고 맞은편에 앉았다.
“무슨 일이 있습니까?”
“일단 주문부터..”
왕성기 앞에는 커다란 맥주잔이 반쯤 비워진 채 놓여 있었다.
“맥주 주세요.”
덕팔이 종업원을 불러 맥주를 주문하자 왕성기는 종업원이 맥주를 가져다가 덕팔 앞에 놔 줄 때까지 조용히 기다린 후, 주위를 한번 살펴보더니 그제야 입을 열었다.
“더 파르씨가 병원에 다녀간 후 이상한 일이 생겼습니다.”
“이상한 일요?”
“네, 갑자기 제 보직이 변경되더니 차준민 환자의 병실도 바뀌었습니다.”
“네? 혹시 제가 병문안 간 것 때문에?”
“우리 병원은 기관 요원들이 치료를 받는 곳입니다. 일반인의 출입이 제한되는 것은 맞지만 면회마저 금지시키진 않습니다. 가족들은 면회가 가능하니까요.”
“그럼 왜?”
“저도 이유를 몰라, 과장님께 따졌습니다. 그랬더니.. 과장님께서 조용히 입을 다물라고 하시더군요.”
“그럼 주민이 형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걸 모르겠습니다. 병실을 다 뒤져 보았는데 흔적도 없이 사라졌어요. 그리고…”
왕성기가 다시금 주위를 둘러보더니 아주 작은 소리로 읊조렸다.
“저에게 감시가 붙었어요. 저 같은 말단 의사에게 말이죠. 아마 덕팔씨에게도 미행이 붙을 겁니다. 도청이 될지도 모르고요. 그러니까.. 조심하세요.”
“그 말씀을 해주시려고 여기까지 나오신 겁니까?”
“사인값은 해야죠. 후후”
왕성기가 선한 미소를 지었다. 덕팔이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였다.
“고맙습니다.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그러시다면 다음에.. 편하게 만날 수 있을 때 굳즈! 아시죠?”
“그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