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ch the ghost munchkin! RAW novel - Chapter 279
279화
‘젠장…’
“돌아가는 판을 이해한 듯한데 구속영장을 칠 생각이 아니라면 수갑은 푸시죠. 김신욱씨의 진술만으로는 저를 체포할 근거가 되지 못해요.”
황 형사가 반장의 눈치를 보더니 향숙의 수갑을 풀어주었다.
“김향숙 변호사님, 저희는 검찰의 지휘에 따라…”
“알고 있어요. 하지만 모두 다 황 경사님과 같은 분만 있는 것은 아니겠죠.”
향숙의 시선이 오래전부터 향숙의 눈치를 보고 있던 반장에게로 향했다.
“참고인들 조사부터 마치시고 오늘 압수한 기록! 꼼꼼히 살핀 후에 체포영장을 다시 발부받아 찾아오세요.”
향숙이 몸을 일으키며 다시 입을 열었다.
“제가 어디에 있는지는 아시죠? 다시 보도록 하죠.”
향숙이 제 발로 형사과를 나갔지만 아무도 그녀를 잡지 못했다.
**
강남경찰서 조사실.
“그래서.. 허위 진단서를 발급한 사실이 없다는 말인가요?”
“네, 저는 당연히…”
“크음.. 허위 진단서를 발급받았다는 사실은 어떻게 확인한 것이오?”
진철의 말을 자르고 들어온 인신이 경찰에게 되물었다.
“수사상 그것은 밝힐 수 없습니다.”
“그럼 저 사람과 나를 체포한 근거는 무엇이오?”
“그것도 수사상…”
“자네 이름이…..”
그때, 사무실 문이 벌컥 열리고 서장이 들어왔다.
“아이고, 선생님.”
“늦었구만.”
“죄송합니다. 제가 청에서 회의를 하고 있어서 연락을 늦게 받았습니다. 제 사무실로 가시죠. 뭐하나 수갑 풀어드리지 않고.”
형사가 진철의 수갑을 풀어주었다.
“선생님, 정말 죄송합니다. 저희 관내에 계셨는대도 제가 미처 몰라서 인사도 드리러 가지 못했습니다.”
서장이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자 형사의 눈이 왕방울만큼 커졌다.
“차는 되었고, 부탁 하나 해도 되겠나?”
“그럼요. 말씀만 하십시오. 선생님.”
“여기.. 덕팔이 아범의 지난 2년간 MRI 자료일세. 이것으로 저 친구의 혐의는 풀릴 것이니 이 일을 사주한 자들을 철저히 밝혀주게.”
인신이 USB를 건네자 서장이 공손히 받아 들었다.
“철저히 밝히겠습니다. 선생님.”
인신이 조사실 밖으로 나가자 서장이 형사에게 호통을 쳤다.
“뭐하고 있나? 댁까지 모셔다드리지 않고..”
“네? 아, 네!”
혼이 반쯤 빠져나간 형사가 얼른 인신과 진철의 뒤를 따랐다.
***
감찰부 조사실.
“그래서 제가.. 병역 비리를 저질렀다는 말씀이시군요.”
덕팔이 차분하게 진술을 하고 있었다.
“기록상 명백하더군요. 오덕팔 검사의 부친이신 오진철씨는 오덕팔 검사가 병역 신체검사 당시 정상인이셨어요.”
“허어.. 그렇습니까? 자료를 볼 수 있을까요?”
감찰부 검사가 내민 MRI 자료들을 살펴본 덕팔이 피식 웃었다.
“검사님! 이거 원본입니까?”
덕팔이 피식 웃었다.
“검사님께서는 제가 의대 출신이라는 걸 모르셨던 모양입니다. 원본부터 확보하시죠.”
“이 기록 사본인 것이 무슨 문제죠?”
“이거야 원, 증거가 훼손되지 않았습니까!”
검사가 도통 이해를 하지 못하는 듯하자 덕팔이 친절히 설명을 시작했다.
“MRI에는 환자등록번호가 기재되게 되어 있습니다. 여기 보시죠. 이것과 이것의 차이가 뭔지 알겠습니까?”
덕팔이 MRI 두 장을 꺼내 형광등에 비춰주었다. 여전히 이해를 못 하는 표정이었다.
“오른쪽 필름은 요추부 3-4번 추간판 탈출증 환자의 MRI 필름입니다. 반면 오른쪽 필름은 비슷하지만 다른 증상, 즉 요추부 3-4번 수액 탈출증 환자의 MRI 필름입니다. 서로 다른 병증을 가진 환자의 일련번호가 같네요. 웃기는 일이죠. 아마도 제 아버지가 MRI를 촬영한 일자를 맞추다 보니 이런 상황이 된 것 같군요.”
“증상이 변할 수도 있는 거죠.”
“그렇죠. 변할 수도 있죠. 하지만 수액 탈출증 환자의 수액이 3개월 만에 멀쩡히 회복될 수는 없는 일이죠. 제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시겠다면 정형외과 전문의의 자문을 받으세요. 그럼 저는 이만 돌아가도 되겠습니까?”
“이 MRI 필름이 위조되었다는 것은 아직 단정할 수 없어요. 그러니 앉으세요.”
덕팔이 몸을 일으키려다 말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제가 할아버지라고 부르는 분이 한의사시죠. 한의사신데 양방, 한방에 모두 조예가 깊습니다. 아마도 제 아버지의 MRI 필름 사본을 가지고 계실 겁니다. 뭐, 거기까지 가지 않아도 한국대학교 부속병원에 제 아버지 의무기록이 남아 있을 테니 살펴보시죠. 설마 원본이 분실되었다거나 폐기되었다는 말도 안 되는 말씀을 하시진 않으시겠죠?”
감찰부 검사가 제대로 말을 하지 못하자 덕팔이 말을 이었다.
“의료법에 따르면 진료기록부, 수술기록은 10년, 방사선사진, 검사내용 및 검사소견, 간호기록, 조산기록은 5년, 진단서 부본은 3년, 처방전은 2년간 의무적으로 보관하게 되어 있습니다. 제 아버지께서 한국대병원에서 치료를 받기 시작한 것이 채 4년이 되지 않았으니 방사선 사진인 이 MRI 필름은 응당 병원에 보관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렇죠? 검사님?”
“돌아가세요. 하지만 이 혐의에 대해서 의문이 다 풀린 건 아니에요.”
“물론 그러시겠죠. 그런데 말입니다. 검사님. 제가 초짜이긴 해도 저도 검사랍니다. 이번에는 제가 수사를 해보죠. 누가 이런 엉뚱한 짓을 한 것인지! 입장이 바뀐 상태로 다시 만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특수부에서 말이죠.”
덕팔이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감찰부 조사실을 나섰다.
**
대한그룹 회장실.
“은혜야. 네가 한 일이니?”
“네.”
“너.. 이 아빠가 한 이야기를 들었잖니? 이 아빠의 말로도 덕팔군에 대한 오해가 폴리지 않은 것이니?”
“그는 자신의 안전을 위해 절 그렇게 만들었어요. 용서가 될 리 없어요.”
“시작은 네 엄마였다. 건설사 문 사장이었고! 덕팔군이 얼마나 막막했을지 생각이나 해봤니? 심지어 납치되어 죽을 뻔했다. 그런 상황에도 너는 덕팔군 곁에 있으려 했다. 그의 감정을 무시하면서까지. 네가 덕팔군 입장이라면 어떻게 했을 것 같니? 그래도 덕팔군은 네 엄마의 치부를 덮어주었다. 네게 그걸로 상처받기를 원하지 않았어. 그런데 어떻게 네가 그럴 수 있어?”
“제 일이니 제가 알아서 할게요.”
“나는 네가 많이 성장해서 돌아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4년 전에 한국을 떠날 때와 전혀 다르지 않구나. 아빠는 처음으로 너에게 실망했다.”
“실망시켜드려 죄송해요. 하지만 이 일만큼은 절대 그냥 물러날 수 없어요.”
“허어.. 너는 아직도 어린아이구나. 아직도 모르겠니? 덕팔군은 이런 일로 무너지지 않아. 오히려 역풍이 불어올 거다. 우리 대한은 너로 인해서.. 큰 위기에 처했어.”
최진학이 답답하였는지 생수를 벌컥거렸다.
“대한이 왜 이 일로 위기에 처하죠? 그는 그런 힘이…”
“더 알아보거라. 덕팔군이 가지고 있는 힘을… 쯧”
최진학이 혀를 찼다. 차마 딸에게 덕팔이 한 경고까지 말해줄 순 없었다.
[회장님, 딱 두 번만 봐 드리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이번이 세 번째군요. 좋은 일로 연락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일방적으로 끊어진 전화. 그리고 밀려오는 막연한 두려움. 대한은 대한민국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대기업이다. 대통령조차도 쉽게 어쩌질 못하는 초거대기업이다. 그런데 전화를 끊은 최진학의 손끝이 떨려왔다.
덕팔은 상대로 하여금 그런 위압감을 주는 힘이 있었다. 급히 은혜를 불러 덕팔에게 사과를 하게끔 하려고 했다. 그러나 은혜는 요지부동.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미로에 갇힌 기분이었다.
은혜가 나가고 회장실에는 한동안 침묵이 감돌았다.
“날세, 대한 미디어의 계열사 분리 작업을 해주게. 그래, 대한으로부터 완전한 분리!”
최진학의 길고 낮은 한숨이 회장실의 공기를 더욱 무겁게 해주었다.
**
퇴근 직전이 되어서야 나갔던 준민이 돌아왔다.
“일이 있었다며? 이 실무관이 전화를 했더라. 괜찮냐?”
“네, 적이 누군지 알았으니 적절히 대응하면 되겠죠. 가셨던 일은 어떻게 되었어요?”
“뭐, 뻔하지. 공무원들이 장난질을 친 모양이던데..”
준민이 머리를 긁었다.
“풀 방법이 없었나요?”
“좀 있어 봐. 몇 군데에 부탁해 놓았으니까..”
준민이 덕팔을 끌고 밖으로 나갔다. 검찰과 법원은 한 곳에 붙어 있다. 같은 진입로로 들어와 좌, 우로 갈라지는데 좌측에는 검찰이 우측에는 법원이 있다.
법원은 늘 북적거린다. 민원이도 많고 재판을 받는 이들도 많았다. 반면 검찰청은 그에 비해 한가하다. 알고 보면 구석구석 산책하기 좋은 장소도 있다. 덕팔과 준민이 검찰청 뒤편에 있는 작은 산책로를 걸었다.
“누구냐? 그때 말했던 그 여자냐?”
“그런 듯한데요?”
덕팔이 어색하게 웃었다.
“어쩌다 그렇게 된 거야?”
“제가 마음을 많이 다치게 했나 봐요.”
“어휴.. 널 처음 봤을 때 얼굴값 할 줄 알았다. 지금도 봐라 검찰청 정문 앞에 저게 뭐냐?”
보통 검찰이나 법원 앞에는 1인 시위를 하는 이들이 줄을 서 있는데 덕팔이 출근을 한 이후로 중앙지검 앞에는 젊은 여성들이 덕팔의 퇴근시간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좋은 사람들이잖아요. 스스로 만든 룰을 몇 년째 지켜주고 있어요.”
“너는 그게 문제야. 같은 자리에서 서서 같은 행동을 한다고 해서 감정까지 같을 거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야. 저들은 인간이라고 감정이 모두 같을 수는 없어.”
“알죠. 그래서 고민을 하고 있어요. 어떻게 해야 할지.”
“집은 무사하데? 네가 이 지경이면 집도 편치 않을 것 같은데?”
“난리가 났데요. 오늘 저녁은 특식으로 준비해야 할 것 같아요. 하하하”
준민이 덕팔의 어깨를 주물러 주었다.
“나도.. 너희 집에 가서 저녁 얻어먹어도 될까?”
“허얼..”
덕팔이 웃고 말았다.
**
인신의 집.
오랜만에 인신의 집에 손님들로 북적였다.
“호호호 압수수색도 당할만 한데?”
향숙이 뼈를 때리는 농담을 하며 웃었다. 덕팔이 잡채를 만들다 말고 어색하게 웃자 민수가 거들었다.
“형, 경찰들이 새벽부터 출동을 해서 나 잠도 제대로 못잤어.”
“…써글! 야, 김민수! 너 학교는 잘 다니는 거지?”
“당연하지. 한국대 의대에 형에 대한 전설이 한두 가지가 아니더라고? 내가 형을 잘 안다고 하니까 동기들이 물어보던데? 의신똘이 진짜 형이냐고!”
“의새똘이 뭐야?”
“의과대의 새로운 또라이. 의쌍똘을 넘어섰다고 하던데? 레벨이 다르다고?”
“끄응..”
애꿎은 민수를 잡으려다가 원펀치에 다운이 되고만 덕팔이었다. 하루종일 웹툰의 세계에 빠져 있던 다미가 다크서클을 턱 끝까지 내린 채 계단을 내려서고 있었다.
“와… 밥이다.”
비몽사몽간이었는지 손님들은 눈에 보이지 않은 모양이다.
“누나, 잘 지냈어요?”
민수가 인사를 하자 다미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 거실에 모여있는 사람들을 돌아보았다.
“안녕.. 하세요?”
다미가 후다닥 2층으로 뛰어 올라갔다.
“어머, 다미씨는 아직도 저 모양이네.”
“재능이 있는 모양입니다. 주간 웹툰 랭킹이 3등 아래도 떨어지지 않지 뭡니까? 하하”
진철이 다미가 자랑스러운지 자랑을 늘어놓았다.
“좋으시겠어요. 골방에서 밤새워 재능을 펼치는 딸도 생겼고, 너무 잘생기다 못해 바람기가 충만한 아들도 두셔서..”
진향이 다시금 뼈를 때리는 농담을 하자 진철이 어색하게 웃었다. 오늘의 분기탱천한 기분이 가라앉지 않는 모양이었다.
“다들 고생 많으셨어요. 이제 식사하시죠.”
인신이 요구했던 제육볶음도 있었고, 진향이 좋아하는 갈치조림도 있었다. 봄이 되니 시장에 갖가지 나물도 많이 나와 오랜만에 쑥국을 끓였다.
“쑥 향기가 좋구나.”
식사하던 인신이 덕팔을 칭찬하였다.
“많이 드세요. 할아버지. 그리고… 죄송해요. 제가 일 처리를 잘 못해서..”
“쓸데없는 소리. 어디 그게 너의 잘못이더냐? 이것이 다 쓸데없이 잘생긴 네 쌍판때기 때문이지!”
“태평양보다도 넓은 오지랖도 한몫했습니다. 어르신!”
끼어들 눈치를 보고 있던 준민이 첨언을 하다가 덕팔의 눈총을 받았다.
“그런데, 어르신! 어쨌거나 일은 터졌고 해결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준민이 오늘 인신의 집을 찾은 이유를 꺼내 놓았다.
“해결하게 뭬 있누? 저놈이 그 처자 앞에 가서 무릎 한번 꿇고 넙죽 엎드리면 되는 것을?”
“할아버지, 그래도 그건..”
“그 처자가 그랬다면서? 무릎으로 기어서 자신에게 오게 만들겠다고? 그럼 해주면 그만 아니겠느냐?”
“… 아놔!”
“대신, 그 처자도 하나를 얻었으니 하나를 잃는 게 있어야 공평하겠지?”
인신이 웃었다. 그 웃음이 날카로운 면도날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