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ating Captain RAW novel - chapter (162)
162화 검은 재앙-7
완전히 전의를 상실한 드로칸들을 끌고 가는 역할은 네브라가 맡았다. 촉수와 팔을 축 늘어뜨린 채로 줄줄이 끌려가는 게 흡사 노예상인에게 잡힌 것처럼 보였다.
“아, 악마의 물질을 얹고 다니다니.”
“모두다 검은색이야. 저 사악한 물질하고 똑같은 질감이라니. 검은 악마야. 재앙을 불러올 악마가 틀림없어.”
악마의 물질인 슬라임을 어깨에 얹고 다니는 네브라를 포로들은 무슨 대악마가 강림한 것처럼 무서워했다.
“……은근히 기분이 나쁜데.”
“문어들이 보는 눈이 있네. 얘 성격 진짜 악마 맞, 악! 농담이야 농담 때리지 마 악!”
“엄살은. 라임이 갑옷 때문에 아프지도 않으면서.”
적진 한가운데고 지상에는 모든 유기체를 잡아먹는 괴물이 있는데도 우리 팀은 참 여유가 넘쳤다.
앤젤라가 보여주는 지도를 따라 착실히 방어병력을 제압해 가면서 지하 시설의 끝까지 다다랐다.
쿵!
문을 절단하여 쓰러드리자 널찍한 공간이 나왔다.
그곳에는 다양한 복장과 외모의 드로칸들이 가득 모인 채로 무기를 겨눈 채 거창하게 환영해 주었다.
그러나 그들의 안광과 촉수는 덜덜 떨리고 있고 총구는 전방이 아닌 밑을 향해 있었다.
굳이 정보창을 띄우지 않더라도 이런 분위기는 몰라볼 수가 없다.
‘대부분이 연구원 아니면 민간인이네.’
직업을 보아하니, 우리에게 제압되어 줄줄이 끌려온 십여 명이 이 지하시설에 있던 군인의 전부인 모양이다.
“만나서 반갑다. 이런 거창한 환영인사라니. 드로칸에 대해 오해를 하고 있었어. 이리 친절한 종족일 줄이야.”
한 드로칸이 촉수를 덜덜 떨며 음성 합성 장치를 작동했다.
“어떻게, 어떻게 그럴 수 있지?”
“뭘?”
“그거, 그 사악한 물질 말이다!”
드로칸의 손은 이나시스의 옆에 선 네브라의 어깨 위를 향하고 있었다.
-안녕!
으아아아!
슬라임이 꼼지락거리며 인사를 하자마자 드로칸들은 무슨 뱀이나 독충을 본 사람처럼 우르르 뒷걸음질 치면서 난리를 쳤다. 몇몇은 중심을 잃고 바닥을 뒹굴기도 했다.
대체 얼마나 나노머신이 끔찍했으면 경계에 그치는 게 아니고 이렇게 난리인 걸까.
“당신들은 이걸 인간한테서 가져왔다는 것도 몰랐나? 당연히 다룰 수 있는 수법이 있지. 너희도 이 꼴 되기 전에는 이걸 나름 가뒀을 거 아냐?”
“저게, 인간의 거였다고?”
“우린 분명 첩보원에서 신물질이라고……”
대부분은 전혀 몰랐단 눈치였다.
“너. 뭔가 알고 있지?”
나는 드로칸들의 안광이 은연중에 향하는 인물을 가리켰다.
‘제 4 연구소 수석 연구원이자 첩보원 소속 정보원이라?’
정보창의 직업란에 있는 글씨가 심상치 않았다.
“……”
비네락스라는 이름을 가진 그 드로칸은 촉수를 꿈틀거렸지만 입을 열진 않았다.
“어쨌건 내가 제안 하나 하지.”
정당한 포로 대우를 해주고 이 지옥 같은 행성에서 꺼내주겠다. 대신 은하 실드 관통 엔진에 대한 자료를 넘기고 우리에게 협력해라.
“어때, 아주 후하지 않나? 거절한다면…… 워어.”
-우익?
몸을 빙글 돌려 슬라임을 잡고는 동전 적선하듯 앞으로 슬쩍 던졌다. 드로칸들이 기겁하며 광선을 뿅뿅 쏴댔지만 슬라임은 샤워라도 하는 것처럼 팔짝팔짝 뛰며 재밌어했다.
-따끔따끔! 맥주 맛!
물질 분해 광선이 입히는 피해가, 나노머신에게 해롭지만 자체 수복력으로 충분히 버틸 수 있는 맥주 정도밖에 안 된단 의미였다.
“라임이 이리와. 우쭈쭈.”
-나 강아지 아니다!
네브라의 부름에 슬라임은 바닥을 슬슬 기어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 역시 악마라며 수군거리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봤지? 맘만 먹으면 저 밖의 검은 걸 여기로 쏟아 부을 수도 있어. 우리가 들어오는 걸 봤으면 알겠지만 여기까지 구멍 다 뚫어놨다?”
물론 빈말이다.
한때 사람이었던 나노머신을 무기로 쓸 생각은 꿈도 꾸지 않고 있다. 몸을 지키는 용도로 쓰는 거랑은 경우가 달라.
“앤젤라. 앞으로 나와.”
[네.]무력시위로 내 블랙 파워 아머와 똑같은 외형을 한 나노머신을 껴입은 갑옷들을 앞으로 내세웠다. 손에선 하나같이 페이즈블레이드가 빛나고 있었다.
“저, 저거, 우리 무기잖아? 생산하던 중에 파기절차를 안 넣었나?”
“아니야. 색이 좀 다른데. 설마 우리 기술을 복제한 건가?”
“은빛 성국은 이제 끝이구나.”
“여기까지 온 것만 봐도 전망은 비관적이야. 안 그래도 여기저기서 밀리고 있다는데……”
연구원들은 기술력 차이가 좁혀졌다는 것에 더 큰 동요를 보였다.
수석 연구원 비네락스 역시 안광을 떨어댔다.
—–
독심 : 이럴 수가. 이들도 지금껏 기술력을 축적하고 있었구나. 이렇게 되면, 그 계획을 실행해 점령지를 모두 못쓰게 만든다 한들 그저 시간끌기밖에 못되겠어. 오히려 저들의 적의만 더 키우는 꼴이 될 거야! 살 수 있을 동족조차도 모조리 죽여 버릴 거라고!
—–
속내를 읽은 내 눈살이 찌푸려졌다.
‘그 계획?’
첩보원 소속이라 했지?
넌 좀 이따 보자.
나는 모두에게 다시 한 번 제안했다.
“모두 무기를 내려놓고 항복해라. 못 믿겠다면 할 수 없지만, 우리 제국은 최소한 협력자에게 박하게 대하진 않는다. 그게 더 이득이니까.”
그 말에 드로칸들이 서로의 눈치를 보았다.
손에 든 무기들의 총구가 더욱 바닥과 가까워져갈 때.
“은빛 촉수의 의지를 떠받드는 영광스런 종족이 그릇된 것에게 목숨을 구걸하려 들다니 부끄럽지도 않느냐!”
뒤편에서 거친 음성이 들려왔다.
***
“사, 사제님.”
직위를 상징하는 은색 관들을 치렁치렁 늘어뜨린 드로칸 사제는 인파를 헤치고 나와 인간들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여긴 위험합니다. 몸을 피하시는 게……”
“출구는 사악한 물질로 모두 막혔는데 숨는다 한들 무슨 소용이겠느냐?”
그는 세 쌍의 녹색 안광을 빛내며 드로칸들을 꾸짖었다.
도저히 용납하기 힘들구나. 어찌 다른 종족도 아니고 한 우주 안에서 양립할 수 없는 야만스러운 저 따위 원시 종족들에게 항복을 하려 든단 말이더냐!”
단어 선택을 참 예쁘게도 하고 있었다.
“저놈이 말대로 우리를 곱게 살려주겠다고 생각하느냐? 놈은 사악한 물질을 다루는 악마다! 보나마나 우리를 쓰고 내버릴 게 뻔해. 그럴 바에야 사후에 선조들과 은빛 촉수께 떳떳하기 위해서라도 놈에게 굴복하지 말아야 할 것이야!”
사제의 말은 죽음의 공포에 잠시 묻혔던 광신을 도로 파냈다.
“맞아. 저놈의 뭘 믿고.”
“자료를 손에 넣으면 바로 다 죽일 걸?”
“내가 멍청했어. 은빛 촉수 앞에서 촉수를 빳빳하게 세울 수는 있어야지!”
아무리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영역을 탐구하는 이들이라지만 광신적인 사회에서 나고 자란 이상, 생활이나 다름없는 종교적인 설교에 자극당할 수밖에 없었다.
곱게 끝나려니 싶은 분위기에 사제가 나서서 잿가루를 뿌려버리자 말 대신 폭력을 쓸까 하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기 시작한 진에게 에나가 슬쩍 다가왔다.
“죽일까요?”
진에게 악마 운운한 거에 화가 났는지 목소리에 은은하게 분노가 어려 있었다.
자신의 삶을 구해준 구세주에게 악마라니. 에나에겐 신성모독이 따로 없었다.
“몸을 기계로 바꿀 용기조차 없는 나약하기 짝이 없는 종족에게 머리를 숙이려 하다니 부끄러운 줄 알거라.”
“용기는 무슨!”
사제의 말을 듣던 에나가 갑자기 발끈했다.
“듣자하니까 너희들은 멀쩡한 곳도 기계로 바꾼다며? 그거야말로 너희가 한낱 금속의 힘에만 의존하는 의지박약이란 얘기 아니야?”
“뭣이라!!”
에나는 아픈 과거로 인해 비자발적인 신체 개조에 대해 혐오감을 가지고 있다. 에나의 눈에는 관습으로서의 개조 역시 같은 종류의 폭력으로 보였다.
“감히 그릇된 종족 주제에 은빛 촉수를 따르고자 하는 성스런 의지를 모욕하다니!”
“불만이면 쏘든가? 죽이지도 못하면서 떠들긴.”
에나의 말대로 드로칸들은 광선 한 발 쏘지 않고 있었다. 왜냐면 통로에서 보았듯, 그들의 무기는 전혀 통하지 않으니까.
“크으으…..!”
그 사실을 외면할 정도로 뻔뻔하진 못한지 사제는 에나의 조롱에도 촉수를 배배 꼬면서 제자리에서 부들부들 떠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아무리 기계로 대체한다고 해도 정교한 감각체계를 완벽히 대체할 수는 없어. 그건 너희들도 알고 있을 걸? 그놈의 교리인지 뭔지 때문에 무시나 하겠지만.”
에나의 말은 정곡을 찔렀다. 사제는 그 말을 부정하는 대신 얼버무렸다.
“하찮은 소리를 하는구나. 네가 어디 은빛 촉수의 의지를 따라 신체를 바꿔보기라도 했느냐? 어딜 아무것도 모르는 그릇된 종족 주제에……”
“고쳤으니까 이전이랑 비교해서 그런 말을 하지 이 촉수를 뜯어서 구워 먹어버릴 문어대가리야!”
그놈의 기계화!
생각하기도 싫은 기억을 계속 꺼내게 만들어 신경이 날카로워진 에나의 급발진에 모든 드로칸이 헛숨을 삼켰다.
드로칸에게 촉수의 외양은 대단히 민감한 문제다. 팔다리가 멀쩡해도 촉수에 문제가 있으면 장애인으로 지정될 정도다.
따라서 에나는 인간으로 치면 부모 욕 이상의 심한 욕설을 내갈긴 셈이었다.
“……저번에 항복한 드로칸들하고 얘기하더니만 저런 욕이나 배워왔구나.”
“조용한 사람이 화나면 역시 무서워. 그죠 이나시스 누님?”
“저는 화를 내지 않아요 니베아. 그런 고로 오늘 저녁에는 남을 넌지시 돌려서 놀리는 습관을 고칠 겸 복음서를 밤새도록 공부해볼까요?”
“죄송합니다 용서해주세요.”
뒤에서 소곤거리는 팀원들의 자그마한 목소리를 빼고, 널찍한 공간은 경악이라는 뚜껑에 막혀 강제로 침묵에 잠겨들었다.
“이, 이, 경박한 것이…..!!”
상상도 못한 욕설에 정신이 잠시 달아났던 사제가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는 분노에 몸을 떨었다. 몸에 두른 금속 관들이 서로 부딪히며 잘그랑거렸다.
사제는 지지 않겠다는 듯이 촉수를 밧줄처럼 꼬며 마주 모욕을 해댔다.
“네놈들이 우리처럼 몸을 무기물로 바꾸되, 과감하지 못하여 나약한 몸뚱아리에 문제가 생겼을 때만 그런다는 겁쟁이 같은 정신머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 또한 잘 안다.”
드로칸 쪽에도 인간에 대한 정보는 대충 돌아다니고 있어서 관심이 있다면 그 정도는 알 수 있다.
“그래. 육신을 무기물로 교체하면 그 감각이 떨어지는 것은 인정한다. 허나 희생이 없으면 발전도 없는 법이로다. 늙고 병들고 약해빠진 육신을 버리고 강인하고 불변하는 몸을 얻는다. 그리하여 은빛 촉수의 의지를 따른다. 감각이 조금 상실되는 것 정도야 뭐 그리 문제가 있겠느냐?”
“흥, 제대로 신경 구현을 못하니까 변명하는 꼴하곤.”
신체개조에 진심인 드로칸의 자존심을 긁다 못해 칼로 그어버리는 에나의 말에 사제는 왈칵 성을 냈다.
“그럼 네놈들의 신체개조 수준은 어떤지 한번 보여 봐라! 그렇게 육신의 감각을 중요시한다면 인공신체로 교체하기 전후의 감각이 별반 차이가 없으렷다?”
드로칸이 도전장을 내밀자 에나가 진을 돌아보았다. 일단 화가 나서 지르긴 했는데 그 다음은 어떡하지? 받아줘야 하나?
‘거참.’
갑자기 자존심 싸움으로 변질되어버린 상황에 진도 잠시 당황하긴 했지만, 잘 생각해 보니 도리어 잘 됐다 싶었다.
이런 종교로 단단히 무장한 것들은 단순히 폭력으로 굴종시키는 것보다는 마음 속 깃대를 꺾는 것이 더 효과적일 때도 있다.
진이 사제에게 말했다.
“그럼 우리가 너희들보다 신체개조 수법에서 우위라는 사실이 증명되면 어떻게 할 건데?”
“항복은 물론이고 네 요구대로 적극 협력하겠다!”
사제가 촉수를 파르르 떨었다.
“우리는 신체개조에 오랜 세월을 투자해왔다. 우리보다 우월하다면 응당 은빛 촉수의 의지를 따르고자 한 우리의 성취를 뛰어넘었단 것. 따르지 않을 이유가 없지!”
‘어차피 우리가 이길 테지만 말이다!’하고 생각하며 사제가 일갈했다.
저 악마에게 이긴다면 십중팔구는 죽음을 당할 것이다. 하지만 최소한 악마에게 굴복하지 않은 자랑스러운 드로칸이라는 자부심을 거머쥐고 은빛 촉수를 대면할 수 있으리라.
“그래? 좋아. 그 말 똑똑히 들었다.”
팀에게 있어서도 하등 나쁠 것 없는 제시안이었다.
“분명히 들었다. 너희는 너희의 신앙을 걸었다는 걸.”
“그렇다! 어디 마음대로 해 보거라!”
이로써 한 멸망한 행성의 지하에서 아무도 모르는 종족 간의 자존심 대결이 펼쳐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