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190)
아마 다들 아직 반도 못 왔을 것이다.
돌아가는 길도 벽태산과 함께 하면 여기서 더 얼마나 달라질지 기대되기까지 했다.
정말로 기연을 얻었다.
얻은 기연에 대한 보답은 자신이 하는 일을 더 열심히, 더 확실히 하는 것뿐이라 여겼다.
“그런데 왜 아무도 없지?”
적계현의 일을 처리하러 갈 때, 모든 하오문도가 가지는 않았다.
실력이 많이 떨어지는 자들은 이곳에 남았다.
그들도 나름대로 할 일이 있었으니까.
뭔가 변화가 있으면 그걸 파악하고 기록할 사람이 필요했다. 벽태산이 뭘 하는지도 계속 확인해야 하고.
안을 뒤적여 보니 최근 작성한 걸로 보이는 문서 몇 장이 보였다.
별다른 변화는 없는 모양이었다. 새로 구한 정보도 없고, 새로운 지시도 없고 말이다.
“음? 거기서 그냥 지내신 모양이네?”
벽태산은 아무래도 그곳 장원에서 계속 지낸 모양이다. 그렇게 문서에 기록되어 있었다.
장원에 들어갈 때의 분위기가 좀 살벌해서 무슨 일이 있지는 않을까 걱정했는데, 장원에서도 별다른 일이 없었던 모양이다.
문서를 좀 뒤적이던 하오문도는 그걸 내려놓고 밖으로 나섰다.
일단 벽태산을 만나야 한다.
하오문도는 얼른 그저께 갔던 장원으로 달려갔다.
달라진 몸에 완벽하게 적응해서 그냥 가볍게 달리는데도 예전보다 훨씬 빠르게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장원에 도착하니, 문을 두드릴 필요도 없었다. 정문이 활짝 열려 있었으니까.
열린 문을 통해 안으로 슬쩍 들어갔는데,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적막감이 싸하게 흘렀다.
‘이거······ 느낌이 안 좋은데?’
안으로 더 들어갔다. 그런데도 마주치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하오문도의 발걸음이 더 빨라졌다.
내원으로 들어갔는데도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뭐야, 다들 어디 간 거야?”
마음이 더 급해졌다. 안으로 쭉쭉 들어가니, 드디어 사람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늙수그레한 노인이었다.
“노인장, 혹시 그저께 이 장원에 오신 공자님 어디 계신지 아십니까?”
하오문도의 물음에 노인이 천천히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봤다.
“다 떠났소이다.”
“예?”
“이 장원은 팔려고 내놨소. 내가 팔릴 때까지 관리하기로 했고.”
하오문도가 멍하니 노인을 바라봤다.
두뇌회전이 순간적으로 멈췄다가 맹렬히 돌아갔다.
자신이 없던 하루 동안 무슨 일이 생긴 게 분명하다. 그게 아니고서야 어떻게 여기까지 안내한 자신을 버리고 그냥 갈 수 있단 말인가.
“에이, 설마.”
하오문도는 웃으며 노인에게 물었다.
“어디로 가신다는 말씀은 없으셨습니까?”
노인이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건 모르겠소. 난 그냥 관리나 하면 된다고 들었을 뿐이니까.”
하오문도는 돌아서서 최대한의 힘을 쏟아 경공을 펼쳤다.
일단 이 근방을 샅샅이 뒤져봐야 한다.
‘그래도 없으면 어쩌지?’
어쩌긴 뭘 어쩌겠는가. 장사로 돌아갔을 가능성이 가장 높으니 그쪽으로 냅다 달려야지.
하오문도가 정덕현을 떠난 것은 정확히 반 시진 후였다.
끝
“우욱!”
제위룡은 헛구역질을 했다.
사실 먹었던 걸 게워내야 하는데, 하도 토해서 이제 더 나올 게 없었다.
그는 두려운 눈으로 저 멀리 서 있는 벽태산을 바라봤다.
‘이렇게 장사까지 간다고?’
너무나도 심한 강행군이다. 게다가 여기에는 제위룡만 있는 게 아니었다.
제위룡은 주위를 천천히 둘러봤다.
다들 자신과 똑같은 표정으로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자신과 함께 여기까지 온 사람들이었다. 제위룡이 십 년이 넘는 세월을 바쳐서 길러낸 책사들이었다.
얼마나 세심한 과정을 거쳐서 뽑아낸 인재들인지 모른다.
그런 인재를 어릴 때부터 확보해서 여기까지 키워낸 것이다.
그 소중한 인재들이 괴로움에 허덕이고 있었다.
책사라는 존재가 얼마나 예민하고 섬세한데 이렇게 험하게 다룰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제위룡은 감히 벽태산에게 원망스러운 시선을 보낼 수도 없었다.
그는 벽태산을 만난 첫 날, 이미 굴복했다.
또한 벽태산의 정체에 대한 호기심에 먹혀 버렸다.
‘그 호기심을 채우고 나면······ 어쩌면 더 벗어나지 못하게 될지도 모르지만.’
왠지 그런 예감이 들었다. 하지만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할 일이고 지금은 그저 이 힘들고 괴로운 상황을 어떻게든 벗어나고 싶을 뿐이었다.
“다 쉬었으면 가자.”
벽태산의 말이 떨어지자, 숨을 고르던 모든 사람들의 얼굴에 절망이 떠올랐다.
하지만 아무도 벽태산의 지시에 토를 달거나 뭉그적거리지 않았다.
다들 억지로 팔다리와 허리에 힘을 줘서 일어났다.
그리고 달릴 준비를 했다.
떠나기 전, 벽태산은 책사들을 비롯해 제위룡까지 모아놓고 경공 하나를 가르쳤다.
사실 책사들은 제위룡 휘하에 들어온 순간부터 간단한 심법 하나를 배워야 했고, 아침마다 그걸 수련했다.
내공을 쌓는 것보다는 머리를 맑게 하고 몸 상태를 최적으로 유지하는 것에 더 중점을 둔 심법이었다.
안정성이 높은 심법이기에 주화입마의 걱정도 거의 없다시피 하는 심법이었다.
그걸 십 년 넘게 익혔으니 다들 건강하기도 하고 내공도 약간이나마 있었다.
그러니 경공 하나쯤 배우고 펼치는 건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더구나 다들 머리로는 어디 가서 꿀리지 않는 수재들 아닌가.
벽태산이 가르쳐준 경공을 이해하는 속도가 굉장히 빨랐다.
더구나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토론해서 답을 찾아가는 방식이 습관처럼 몸에 새겨져 있기에 무공을 익히는 과정도 그렇게 했다.
다만 경공을 이해하는 것과 몸으로 직접 펼치는 것은 많이 다른 일이었기에 몸에 체득하는 과정이 좀 어려웠을 뿐이다.
하지만 벽태산이 누구인가.
책사들은 강제로 경공이 몸에 새겨진다는 것이 무엇인지 자신의 몸을 통해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익힌 경공으로 지금까지 달려왔다.
내공이 바닥났는데도 벽태산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게으름을 피울 수도 없었다.
이러다 피를 토할 것 같았지만, 끝까지 달려야 했다.
물론 피를 토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대부분 아침에 먹었던 음식을 토해냈을 뿐이다.
다들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가장 앞에서 달리는 건 정덕현에 남아 있던 하오문도들이었다.
제위룡은 그들의 정체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최소한 정덕현 내에서 일어나는 일은 자신의 눈을 피할 수 없었으니까.
‘정덕현을 버리고 가기가 정말 아깝구나.’
여길 완벽하게 자신의 손아귀에서 통제할 수 있도록 만드는데 얼마나 많은 돈과 시간, 노력이 들어갔는지 모른다.
한데 그걸 버리고 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속이 쓰렸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벽태산이 가자면 가야지.
그리고 장사 같은 큰 도시를 자신의 손아귀에 넣어 마음껏 주무를 수 있게 될 테니, 차라리 그게 더 나을 수도 있고 말이다.
아무튼 하오문도들이 달리고 그 뒤를 책사들이 따랐다.
그리고 가장 뒤에서 벽태산이 여유롭게 걸었다.
그저 걷는 것뿐인데 벽태산은 항상 책사들의 뒤에 바짝 붙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아무도 게으름을 피우지 못하고 더 열심히 달리게 만드는 원동력이었다.
조금만 방심하면 무시무시한 살기가 등을 찔러 왔으니까.
제위룡은 오만상을 쓰며 힘겹게 발을 놀렸다.
그가 힘들어 하는 것은 벽태산이 언제나 자신과 나란히 있었기 때문이다.
즉, 제위룡도 가장 뒤에서 가야 했다.
“사마진한테 배울 건 다 배웠느냐?”
진짜 제위룡을 미치게 만드는 것 이런 벽태산의 질문이었다.
달리는 것만 해도 힘들어 죽을 것 같은데, 가면서 끊임없이 이런 식으로 말을 거니 호흡이 편안하지가 않았다.
제위룡은 이 질문에 어떻게 답을 해야 할지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고민은 길지 않았다.
“애초에 배울 것도 별로 없었습니다.”
“사마진 얘기는 좀 다르던데? 배우기 싫어서 도망쳤다던데, 그게 아니었느냐?”
“그딴 말을 했습니까?”
“네놈이 도망갔을 때 관심도 주지 않더구나. 쓸모없는 놈이라고.”
제위룡의 표정이 확 일그러졌다.
“뭐야, 그럼 제가 천마신교에서 나갔을 때, 아무 추적도 하지 않은 겁니까?”
벽태산이 피식 웃었다.
“추적하고자 했으면 너 따위 못 잡았을 것 같으냐?”
제위룡은 입을 다물었다.
솔직히 지금까지 그렇게 여기고 살아왔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자신이 천마신교를 너무 가볍게 여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아닙니다. 제가 사마진 그 인간보다는 훨씬 낫습니다. 저기 앞에 달려가는 놈들 보시면 아시잖습니까. 솔직히 사마진 그 양반이 만든 천뇌랑 비교해도 꿀릴 게 없다고 봅니다.”
“넌 사람 보는 눈을 좀 더 키워야겠구나.”
그렇게 말하고는 고개를 몇 번 끄덕였다.
“아직 남은 반항심도 몇 번 꺾어줘야 될 것 같고.”
제위룡은 가슴이 싸늘하게 식는 기분이었다. 심장이 덜컥 멈추면 이런 기분일까?
“바, 반항심이라니요. 전 절대 그런 어설픈 감정은 키우지 않습니다. 전 일단 마음을 정하면 절대복종하는 사람입니다. 암요.”
벽태산이 담담히 말했다.
“그럼 아직 마음을 안 정했다는 거로구나.”
“아, 아닙니다! 전 이미 마음을 정했습니다!”
“배신하고 도망치기로?”
제위룡이 식은땀을 흘렸다. 무슨 말을 해도 안 통하니 이걸 어쩐단 말인가.
솔직히 찔리긴 했다. 정말로 아직 마음을 정한 건 아니었으니까.
기회가 생기면 도망칠 것이다. 다만 어설프게 도망갈 생각은 없었다.
아주 완벽한 기회가 와서 확실하게 벽태산을 벗어날 수 있다는 확신이 들기 전에는 결코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한데 그 부분을 벽태산이 귀신 같이 찌른 것이다.
‘우연이겠지. 아니면 그냥 날 놀리고 싶어서 그러는 것이거나.’
제위룡은 애써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등이 섬뜩해졌다. 딴 생각을 하느라 경공에 집중하지 못한 것이다.
“으헉!”
제위룡은 기겁하며 얼른 속도를 높였다.
그렇게 그들은 쉬지 않고 계속 달렸다.
제위룡이나 책사들도 힘들었지만, 가장 앞에서 달리는 하오문도들은 그야 말로 죽을 맛이었다.
벽태산은 가장 뒤에서 달리며 앞서 달리는 사람들을 은밀히 도와주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을 동등하게 도와주지는 않았다.
책사들에게 훨씬 더 큰 비중을 두었다.
그래서 하오문도들은 책사들보다 훨씬 더 큰 압박을 받아야 했다.
처음에는 아무 생각도 못할 정도로 달리기에만 집중했다.
하지만 좀 익숙해지고 나니 힘든 와중에도 딴 생각이 불쑥불쑥 솟아났다.
‘그러고 보니 공자님이 정덕현에 예상보다 일찍 도착하셨었지?’
벽태산을 정덕현으로 안내한 하오문도가 떠올랐다.
당시에는 예상보다 빨리 와서 좀 당황한 것이 전부였는데, 막상 이러 일을 겪고 나니, 그가 왜 빨리 온 건지 알 수 있었다.
지금 그들이 장사를 향해 달려가는 속도는 벽태산이 정덕현으로 갈 때보다 훨씬 느렸다.
새삼 그때 벽태산을 모시고 온 하오문도가 얼마나 고생했을지 생각하니 안쓰럽기 그지없었다.
그나마 그 하오문도는 적계현에서의 임무 때문에 여기 합류하지 못했다.
아마 조금 쉬엄쉬엄 장사로 가면 벽태산과 만나지 않을 수 있으리라.
‘부럽기도 하고, 다행스럽기도 하고······.’
하오문도들의 심사가 복잡해졌다. 그래도 이 고생을 하면서 장사부터 정덕현까지 달렸다면, 복귀는 편하게 하는 것이 맞지 않겠는가.
적어도 여기 있는 하오문도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이러다 온몸이 부서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무렵, 저 뒤쪽에서 누군가 맹렬히 쫓아오는 것을 발견했다.
가장 먼저 발견한 사람은 제위룡이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하오문도들도 그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의 정체를 확인한 하오문도들은 다들 깜짝 놀랐다.
그리고 벽태산이 신호를 보내 다들 천천히 속도를 줄이다가 멈췄다.
“공자님!”
땀과 먼지로 뒤덮인 하오문도가 벽태산 앞으로 달려와 넙죽 엎드렸다.
사실 벽태산을 만나면 어떻게 자신만 남겨두고 먼저 갈 수 있느냐고 따지고 싶었다.
하지만 벽태산을 만난 순간, 그런 생각은 저 멀리 날아가 버렸다.
따지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리고 아무에게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먼저 출발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최대한 빠르게 따라왔습니다.”
하오문도는 그렇게 보고하고는 슬그머니 고개를 들어 벽태산을 바라봤다.
“이제부터 제가 저 녀석들을 이끌까요?”
하오문도가 일행의 앞쪽에 포진한 동료들을 힐끗 보며 물었다.
지위로 보나 실력으로 보나, 자신이 이끄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겼다.
벽태산이 하오문도를 빤히 쳐다봤다.
하오문도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왠지 느낌이 좋지 않았다.
“넌 그냥 장사로 곧장 가라.”
“예?”
벽태산이 품에서 서찰 하나를 꺼냈다.
저건 또 언제 썼단 말인가.
‘뭐야, 설마 내가 여기로 쫓아올 걸 예상한 건가?’
하오문도는 등줄기가 차갑게 식는 느낌을 받으며 벽태산에게 서찰을 공손히 받았다.
“그걸 화옥에게 전해라.”
“예. 알겠습니다.”
시키면 하면 된다. 그리고 이들이 움직이는 속도를 보면,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임무를 완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몸에 뭔가가 쑤욱 들어오는 느낌이 들었다.
“어으윽!”
하오문도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그는 굉장히 거북한 표정으로 벽태산을 바라봤다.
벽태산은 그걸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되는군.”
하오문도의 표정이 살짝 무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