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92)
그리고 그 사이 등자엽이 아홉 구역장을 향해 아홉 개의 비수를 던졌다.
푸푸푸푸푹!
비수는 놀라울 정도로 빠르고 정확했다.
아홉 구역장은 이마에 비수를 꽂은 채 그대로 절명했다.
육태구는 신경도 쓰지 않고 흑월검을 몰아쳤다.
쩌저저저저정!
흑월검이 정신없이 밀려났다. 퍽퍽 소리와 함께 그의 몸 여기저기에서 피가 튀었다.
실력 차이가 너무 심했다.
등자엽이 육태구를 향해 비수를 던지며 외쳤다.
“먹어!”
쩌저저정!
육태구가 비수를 쳐내는 그 짧은 틈에 흑월검이 증혈단을 먹었다.
고오오오!
육태구는 거칠면서도 거대한 기운을 뿜어내는 흑월검을 보며 씨익 웃었다.
그리고 품에서 작고 새까만 구슬 하나를 꺼냈다.
“너, 이거 뭔지 모르지?”
끝
서도군은 느긋하게 걸었다.
그의 목적지는 무한의 흑도 무리를 통합한 놈이 머무는 객잔이었다.
그 객잔 자체가 그들의 소굴이 되었다고 하니, 그곳에 상당한 수의 흑도 놈들이 있을 것이다.
등자엽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각각의 흑도 무리를 이끌던 우두머리들과, 흑도 중에서 제법 실력이 뛰어난 자들이 그 객잔에 모여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곳만 장악하면 무한의 흑도 전체를 장악하는 거나 다름없지 않겠는가.
서도군은 그렇게 여겼다.
어쨌든 그놈들이 도망치면 안 되니, 혼자서 일을 벌일 생각은 없었다.
서도군은 서른 명의 무사를 데려왔다.
천금련에서 조달한 무사들이었고, 당연히 증혈단으로 잠력을 터트렸다.
고준광의 부하들을 데려올까 했는데, 등자엽이 크게 반대해서 어쩔 수 없이 이들과 함께 왔다.
고준광의 부하들은 지금쯤 무한 곳곳에서 무림맹, 흑련, 남궁세가, 제갈세가의 시선을 돌리기 위한 작업을 진행 중일 것이다.
“뭐, 정확히 뭘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저 멀리 객잔이 보였다. 서도군은 씨익 웃었다.
“어디 한 번 진탕 놀아보자. 흑도 놈들이 증혈단을 처먹고 무한을 한바탕 뒤집어엎으면 정말 볼만하겠구나.”
서도군은 객잔 앞에 도착한 다음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지? 이 꺼림칙한 기분은?”
흑도 무리라기에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막상 와보니 객잔에서 풍기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서도군이 인상을 썼다.
“이거 생각보다 시간 좀 걸릴지도 모르겠는데?”
그렇게 중얼거리며 객잔으로 성큼 들어간 서도군은 객잔 안을 슥 둘러봤다.
제법 많은 탁자가 보였고, 각 탁자마다 우락부락한 사내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척 보기에도 전부 흑도 나부랭이들이었다.
별다른 위협이 느껴지지 않긴 한데, 듣던 것보다 기세가 제법이었다.
“뭐야, 무한 흑도 수준이 이렇게 높았나?”
아무리 우두머리들만 모여 있다고 해도 이 정도면 정말 제대로 된, 강력한 방파 수준이었다.
서도군이 안으로 조금 더 들어가자, 천금련 무사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일 층에 있던 사내들이 천금련 무사들을 보고는 크게 긴장했다.
그리고 그제야 서도군을 다시 봤다.
처음 봤을 때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은 건 수준 차이가 너무 극심해서였다는 걸 이제야 깨달은 것이다.
싸한 긴장감이 객잔을 휩쓸고 지나갔다.
그때, 객잔 이 층에서 한 사람이 천천히 아래로 내려왔다.
동호표국주였다.
그 뒤로 동호표국에서 함께 온 비천단의 무사들이 우르르 따라 내려왔다.
서도군의 눈에 이채가 흘렀다.
“하, 이놈들 봐라? 이거 진짜 제법이잖아?”
특히 동호표국주는 최소한 백여 초는 겨뤄야 쓰러뜨릴 수 있을 듯했다.
진짜 강자라는 뜻이다.
나머지도 만만치 않았다. 적어도 자신이 데려온 천금련 무사들로는 저들 중 몇 명도 제대로 감당하기 어려워 보였다.
서도군이 뒷머리를 긁적였다.
“이거야 원. 애들 좀 더 데려왔어야 하는 건데.”
말은 그렇게 하지만 그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전혀 없었다.
어차피 이기는 건 기정사실이었다. 다만 시간이 좀 걸리고, 잘못하면 몸에 생채기도 좀 날 수 있을 것 같아서 짜증이 날 뿐이었다.
동호표국주가 그런 서도군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말했다.
“여기서 싸우면 객잔 다 부서질 것 같으니 나가는 게 어떤가?”
서도군이 피식 웃었다.
“투지가 좋은데? 좋아. 이 객잔, 나도 마음에 드니까 너희들 싹 때려잡은 다음에 가끔 와서 쉬는 것도 괜찮겠지.”
서도군이 돌아서서 객잔 밖으로 성큼성큼 나갔다.
저들이 이러는 사이 도망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아예 염두에 두지도 않고 있었다.
한 놈이라도 더 있어야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더 버틸 수 있다는 걸 다들 잘 알고 있을 테니까.
서도군이 나가자, 천금련 무사들도 따라 나갔다.
동호표국주는 그 뒷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입을 열었다.
“충삼아.”
“예.”
마충삼이 긴장한 표정으로 동호표국주를 바라봤다.
“너 얼른 공자님께 달려가라.”
“예.”
“가서, 우리가 전부 덤벼도 이길 수 없는 놈이 찾아왔다고 전해라.”
마충삼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정도입니까?”
“그 이상이다. 가늠이 안 돼. 다들 죽을 각오해라.”
그들의 눈빛에 두려움은 없었다. 다들 투기를 뿜어내며 단전의 기운을 올올이 풀어냈다.
동호표국주가 온몸으로 쏟아지는 따가운 기세를 느끼며 씨익 웃었다.
“가자. 가서 어디 한 번 적과 싸우다 죽어보자.”
“하!”
일제히 기합을 내지른 비천단원들이 객잔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마충삼은 객잔 뒷문으로 빠져나갔다.
그곳에는 천금련 무사들이 열 명이나 있었다. 혹시 도망치는 놈이 있을지 몰라 서도군이 미리 이쪽으로 보낸 것이다.
당연히 마충삼도 이럴 줄 알고 있었다.
마충삼이 품에서 새까맣고 작은 구슬 하나를 꺼냈다.
“이게 뭔지 알아?”
마충삼이 씨익 웃으며 구슬을 천금련 무사들 근처 바닥에 냅다 던졌다.
* * *
펑!
새까만 구슬이 바닥에서 깨지며 검은 가루가 퍽 터져 나왔다.
가루가 어찌나 고운지 순식간에 안개처럼 주변을 장악해 버렸다.
흑월검은 반사적으로 호흡을 멈췄다. 등자엽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 사이 육태구가 창밖으로 훌쩍 뛰어내렸다.
흑월검과 등자엽은 그 광경을 어처구니없는 눈으로 바라봤다.
“뭐야, 고작 한다는 짓이 독 뿌리고 도망치기?”
등자엽은 정원에 서서 이쪽을 올려다보고 있는 육태구를 노려봤다.
한데 그 순간, 흑월검이 갑자기 괴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끄아아아!”
등자엽은 화들짝 놀라 흑월검을 쳐다봤다.
얼굴이 불룩불룩 튀어나왔다 들어가는 걸 반복했다. 핏줄이 터질 듯 부풀었다가 가라앉는 것이다.
그걸 보니 덜컥 겁이 났다.
숨을 멈췄는데도 중독되었다는 뜻 아닌가.
한데 신기하게도 등자엽은 정말 아무렇지도 않았다.
“크아아아!”
흑월검은 괴성을 내지르며 갑자기 사방으로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꽈과과과광!
전각 곳곳이 부서지고 터졌다.
흑월검의 눈에 핏발이 섰다. 아무래도 제대로 이성을 유지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그는 가장 가까이 있는 등자엽에게 달려들었다.
꽈아아앙!
등자엽은 간신히 흑월검의 공격을 막아냈다. 하지만 그 대가로 창을 부수고 밖으로 날아갔다.
허공에서 균형을 잡아 간신히 바닥에 착지했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어 위를 바라보니, 어느새 흑월검이 훌쩍 뛰어내리면서 그대로 검을 내리치고 있었다.
피할 엄두가 나지 않아 이를 악물고 검을 들어 막았다.
꽈아아앙!
“쿨럭!”
결국 피를 토했다.
그리고 흑월검이 힘없이 쓰러지는 광경을 지켜봐야 했다.
온몸이 쭈글쭈글해진 걸 보니 잠력을 모조리 쏟아내고 절명한 것이 분명했다.
“이 무슨······!”
등자엽이 어이없는 눈으로 흑월검의 시체를 내려다보고 있을 때, 육태구가 다가와 두 명의 부하와 함께 등자엽을 포위했다.
“그냥 단전만 부술게.”
등자엽은 순식간에 다가온 육태구의 움직임에 미처 반응하지도 못했다.
꽝!
“끄어어어!”
단전에 엄청난 충격이 밀려왔고,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 * *
“하······ 이 모기 같은 새끼들. 진짜 짜증나네.”
서도군은 인상을 쓰며 검을 촥 털었다.
핏방울이 바닥에 후두둑 쏟아졌다.
서도군의 난폭한 시선이 주위를 슥 훑었다.
“계획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군.”
일단 시작부터 꼬였다.
서도군이 가장 먼저 맞이한 건 새까만 구슬이었다.
동호표국주가 바닥에 던진 새까만 구슬에서 검은 가루가 퍽 터져 나왔고, 그것이 주변을 장악하자마자 천금련 무사들이 날뛰기 시작했다.
마침 그놈들 한가운데 서도군이 서 있어서, 달려드는 놈들의 목을 자신의 손으로 잘라 버렸다.
흑도 놈들이 도망가지 못하게 하려고 데려온 놈들이었는데, 자신이 직접 죽여 버리고 나니 정말 허무했다.
상황을 보아하니 객잔 뒤로 보낸 놈들도 똑같은 꼴을 당했음이 분명했다.
그 뒤로 차륜전이 펼쳐졌다.
뭔가 묘한 검진을 쓰는 건지, 예상했던 것보다 다들 빠르고 강했다.
물론 그럼에도 서도군은 그들을 상대로 우위를 점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비천단원들의 몸에 상처가 계속 늘어났다. 하지만 제대로 된 일격을 먹이는 건 만만치 않았다.
서도군은 짜증이 어린 눈으로 동호표국주를 노려봤다.
동호표국주 역시 몸 곳곳이 피로 물들어 있었다.
“하나만 묻자. 아까 그 검은 구슬은 대체 뭐냐?”
시간을 끌어서 나쁠 것이 없는 상황이었기에 동호표국주는 적극적인 자세로 대답해주었다.
“네놈들이 잠력을 터트리는 묘한 약을 쓴다고 들어서 준비한 대비책이다.”
“하! 의창 거점을 털린 게 이렇게 돌아오는구나.”
그게 아니라면 이들이 어떻게 이리도 빠르게 증혈단에 대비할 수 있었겠는가.
서도군은 문득 떠오른 궁금증에 또 물었다.
“그건 그렇고, 너희들 진짜 정체가 뭐야? 고작 흑도 나부랭이는 절대 아닌 것 같고······ 싸우는 걸 보면 정파보다는 사파에 좀 더 가까운 것 같은데, 또 그런 것 같지도 않고. 도저히 짐작이 안 간단 말이지.”
동호표국주는 담담히 대답했다.
“표사다.”
“표사?”
서도군이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대체 그 표국 어디냐? 무슨 천하제일표국이라도 돼? 고작 표사가 이렇게 강하다고? 설마 내가 그 말을 믿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천하제일표국은 황룡표국이다.
서도군이 보기에 이들은 황룡표국과 견주어도 전혀 모자라지 않았다. 아니, 그보다 더 위에 있었다.
“후우우우.”
서도군이 조용히 호흡을 골랐다. 그리고 단전에 뭉친 기운을 부드럽게 풀어냈다.
차분하면서도 무겁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서도군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너희 뒤에 있는 것이 벽태산인가?”
동호표국주는 가타부타 대답하지 않았다. 다른 건 몰라도 이 질문에 대해서는 대답해줄 수 없었다.
물론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겠지만.
서도군은 아쉬움과 약간의 분노를 담아 중얼거렸다.
“애초에 그놈부터 죽였어야 하는 건데.”
“죽일 수 있긴 하고?”
뒤쪽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서도군이 천천히 돌아섰다.
그리고 어금니가 부서져라 으드득 갈았다.
“벽태산······!”
어느새 서도군과 싸우던 비천단원들이 뒤로 물러나 질서정연하게 도열했다.
그들은 벽태산을 향해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공자님을 뵙습니다.”
벽태산은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성큼 앞으로 한 발 걸었다.
그런 벽태산의 뒤에 마충삼이 공손한 자세로 서 있었다.
그리고 천경완과 유서연, 천추신의와 일침괴가 나란히 서서 눈을 반짝반짝 빛내고 있었다.
천추신의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바닥에 쓰러진 시체를 확인했다.
“저것들 그거 맞는 것 같은데? 형님, 안 그렇소?”
“맞는 거 같다. 그 이상한 단약 먹고 잠력 터트렸다가 뒈졌어.”
“뒈지는 게 뭐요? 어휘 선택 좀 가려서 하쇼. 하여간 격조가 없어.”
“격조 있게 맞아볼래?”
천추신의는 말을 돌렸다.
“그나저나 저놈 하나밖에 안 남은 모양인데, 괜히 다 몰려온 거 아니오?”
“그러게 말이다. 차라리 낭인시장 쪽으로 갈 걸 그랬나?”
그 말을 들은 서도군이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허! 설마 그것까지 알고 있었나? 이거 완전히 부처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난 꼴이로군.”
천추신의가 약간 어색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어······ 솔직히 그 정도까지는 아니고, 어쩌다보니 이렇게 됐네. 아니, 사실 너희가 너무 운이 없었어. 하필이면 건드려도 거기랑 여기를 건드리냐.”
말을 하다 보니 자신도 기가 막혔는지 결국 낄낄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