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Fantasy Genius Demon Hunter RAW novel - Chapter 96
100화
변화
타이저의 추측은 반만 맞고 반은 빗나갔다.
강화된 신성 폭발의 원인이 그들에게 있다는 것은 맞았지만, 그들이 신성 방어막 내부의 중요한 인사라는 것은 틀린 추측이었다.
당연했다.
그 셋은 이곳에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조차 알지 못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신성 폭발에 관여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하나다.
켄트가 여신의 오라클이었기 때문이다.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거리를 띄우고 타이저의 군대를 추격해 온 세 사람.
그들이 현장에 도착한 건, 한창 공방이 오가던 순간이었다.
“저기예요! 저기에 성물이 있어요!”
켄트는 먼 거리였음에도 불구하고 성물을 인지하고는 흥분해 말했다.
“쉿!”
가온은 재빨리 켄트의 뒷덜미를 잡아 아래로 힘을 줘 낮은 자세를 취하게 했다.
공방이 오가며 큰 소음이 전장을 가득 메우고 있는지라, 먼 곳에 있는 그들의 기척을 알아채는 게 불가능에 가깝다는 건 안다.
하지만 전투로 인해 감각을 예민하게 벼린 상황.
그러니 타이저가 그들을 발견한다 해도 결코 이상하지 않았다.
켄트도 뒤늦게 자신의 실수를 알아채곤, 입술을 입안으로 말아 넣으며 바닥에 배를 바짝 붙였다.
하지만 상황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어, 어?”
켄트의 몸에서 신성력이 일어나 은은하게 빛을 발하기 시작한 것이다.
가온과 레이나의 시선이 그를 향했다.
켄트가 당황한 얼굴로 손사래를 쳤다.
“제가 한 게 아니에요. 이게 그러니까…….”
켄트도 퍼뜩 자신의 몸에서 일어난 기현상에 대해 설명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순간, 가온의 머릿속을 가로지르는 한 장면이 있었다.
“설마……!”
치히스에서 성물 하펠드를 집어 들던 켄트의 모습이었다.
“성물.”
“네?”
“성물 데이지가 너와 공명을 시작한 거겠지.”
“어?!”
켄트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지만 거리가 이렇게나 먼데…….”
그럴 리 없다는 듯 상황을 부정해보지만, 가온의 생각은 점점 더 확고해졌다.
“아니야. 치히스 때에는 완전히 기능을 잃고 부서진 조각이었기 때문에 네가 닿기 직전에야 성물이 반응했던 거라면?”
켄트가 두 눈을 빠르게 깜빡거렸다.
가온의 말에 따라 지난 기억을 되짚고 있었다.
“지금은 보시다시피 커다란 방어막을 펼친 채, 저 많은 언데드를 막아내고 있잖아. 치히스와 달리 온전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거다.”
“아……! 그런 거라면 말이 돼요!”
그제야 켄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어서.”
가온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언제는 몸을 낮추라고 해놓고, 갑자기 몸을 세운단 말인가.
켄트가 빨라도 너무 빠른 가온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고개를 추켜들었다.
“네?”
“당장 움직여야 해.”
“왜지?”
레이나가 물었다.
하지만 가온은 켄트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너와 성물 사이에 이루어지는 이 공명. 네 의사완 전혀 상관없이 이루어지는 거 아니야?”
“어?”
켄트는 가온의 말을 듣고 나서야 상황을 컨트롤해 보려 했지만,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켄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의 세기가 조금씩이지만 더 강해지고 있었다.
“이, 이거 왜 이러지?”
당황한 켄트의 목소리가 떨렸다.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다. 조만간 이상 현상을 언데드들도 눈치챌 거다. 그때 가서 접근하려면 늦어. 당장 움직여야 해.”
가온은 빠르게 상황 판단을 끝마쳤다.
이 공명 끝에 무슨 현상이 일어날지는 모르지만, 분명한 건 가만히 있다간 놈들에게 발각돼 붙잡힐 게 분명하다는 거였다.
“움직이지.”
여전히 어안이 벙벙한 켄트와 달리 레이나는 잽싸게 몸을 일으켰다.
그녀는 치히스의 사태를 함께 겪진 못했기에 성물이니 공명이니 하는 이야기를 온전히 이해하긴 힘들었다.
그럼에도 빠르게 행동한 것은 가온의 판단이란 늘 올바른 방향으로 향한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전투가 일어났을 때, 그의 판단은 더욱더 신뢰할 만했으므로.
켄트도 따라 일어섰다.
“달려.”
가온은 그 말과 함께 숨어있던 곳에서 뛰쳐나왔다.
빠르게 발을 놀려 전장과 가까워지고 있었지만, 단순하게 일직선으로 움직이는 건 아니었다.
그들이 눈치채기 전까지 최대한 거리를 좁힐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그 미이라.’
가온은 타이저를 경계하며 지형지물을 최대한 이용해 거리를 좁혀나갔다.
켄트와 레이나도 조심스레 가온을 뒤따랐다.
하지만 그건 오래가지 못했다.
“가, 가온 님.”
당황한 켄트의 목소리.
뒤를 돌아볼 필요는 없었다.
공명 현상으로 발한 빛이 뒤를 돌아보지 않아도 보일 만큼 선명하게 퍼져 나오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때, 보호막으로부터 신성 폭발이 일어났다.
가온은 본능적으로 외쳤다.
“전력 질주!”
더 이상 기척을 죽일 필요가 없다는 그의 판단이었다.
레이나와 켄트가 서로에게 버프를 걸고 질주를 시작했다.
푸시시.
가온의 입에서도 허연 수증기가 피어올랐다.
쿠와아아앙!
공명으로 인해 발생한 강한 폭발이 보호막을 둘러싸고 있던 언데드들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땅속으로 몸을 숨긴 하급 언데드는 비명도 내지르지 못하고 소멸했다.
타이저의 방어막 안에 몸을 숨겼던 것들도 폭발에 휘말려 만신창이가 되었다.
오직 가온 일행만이 폭발 속에서 무사했다.
물론 그들의 거리가 폭심지와 제법 멀었던 탓도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산적해 있었다.
‘늦어.’
가온은 아직도 한참 남은 보호막과의 거리에 미간을 구겼다.
마음이 급해서였다.
타이저가 폭발에 휘말려 날아가긴 했지만, 그걸로 큰 피해를 입었을 거라곤 생각되지 않았기에.
곧 몸을 일으킬 것이고, 폭발의 원인을 찾으려 할 것이 분명했다.
아니나 다를까.
놈들이 쓸려나간 방향에서 악의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게 느껴졌다.
동시에 퍼져나오는 마기도.
“……!”
가온은 순간적으로 우둘투둘 솟아오르는 소름에 휘청일 뻔했다.
이내 겨우서야 앞으로 기운 무게중심을 억지로 바로 세웠다.
이어지는 방어 자세.
머리수집가와 싸우며 갑옷은 완전히 형태를 잃었지만, 방패는 아직 남아있었다.
가온은 만약의 상황을 대비해 출발 전부터 손에 들고 있던 방패를 들었다.
팔꿈치는 옆구리에 딱 붙이고 방패는 상체를 충분히 보호할 수 있게끔 앞으로.
그리고 전신에 힘을 잔뜩 주며 몸을 동그랗게 말았다.
가온의 방어는 정확한 타이밍에 이루어졌다.
타이저의 망치 모양을 한 붕대가 방패를 가격했다.
쩌엉──!
천으로 된 붕대와 금속으로 만들어진 방패가 만나 내는 소리라고 할 수 없을 만큼 청명한 소리가 퍼졌다.
하지만 가온은 그 충돌음을 즐길 수 없었다.
막대한 충격량이 가온은 덮쳐왔기 때문이다.
‘컥!’
소리와 달리 둔중한 충격은 그를 몇 바퀴고 바닥을 굴리기에 충분했으나, 하체에 있는 힘껏 힘을 주고 초인적인 인내력으로 이를 버텨냈다.
하지만 동력을 잃고 완전히 멈추어 서는 것까지 막을 순 없었다.
[오호?]단숨에 선두를 와해시킬 생각이었던 타이저는 자신의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음에 호기심을 드러냈다.
“……가.”
가온은 자신을 따라 멈춰선 켄트와 레이나에게 나직이 말했다.
“하, 하지만…….”
망설이는 켄트.
가온은 더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치히스 때를 겪어 봐놓고도 그런 소리를 하는 거냐? 네가 가는 게 날 도와주는 거란 걸 모르지 않을 텐데?”
그건 따끔한 질책이었다.
“레이나.”
켄트를 챙겨 서둘러 보호막으로 향하라는 뜻이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고 켄트에게 움직일 것을 종용했다.
“가자.”
켄트가 레이나를 따라 움직였다.
[이런, 눈물겨운 우애로군.]그 모습을 타이저가 비꼬았다.
가온은 대꾸하지 않고 반쯤 우그러진 방패와 검을 들어 올렸다.
[뭐, 그 얼굴이 좌절로 일그러지는 걸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타이저가 피식, 비웃었다.
자신을 희생해 일행을 살리고자 하는 마음.
그 판단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이었는지 깨닫는 데에는 고작 몇 분도 걸리지 않으리라.
‘저 녀석이 중요한 인물인 건 분명하군. 이놈은……보호자쯤 되는 모양이고.’
타이저는 가온의 행동에서 그들의 관계를 짐작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눈앞의 놈이 더 낮은 계급이고, 도망치는 꼬맹이가 인질로 더 높은 가치를 가졌다 해도.
당연했다.
저들이 자신에게서 몇 발자국 더 벗어난다고 해도 얼마든지 쫓아가 잡아 올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의 말투엔 업신여김이 가득했고, 생각도 거만했다.
그러나 손속을 둠에 있어선 방심이 없었다.
가온과 싸움을 길게 이어나갈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접전의 목적은 단 하나.
세 사람을 사로잡아 신성 방어막 내부에 동요가 일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타이저의 이러한 생각엔 약간의 오해가 있었지만, 그 결이 터무니없이 엇나가 있는 건 아니었다.
그러니까 타이저는 모로 가도 서울은 가고 있는 셈인 거다.
가온에게 내지른 일격에 담긴 묵직한 위력이 이 모든 걸 말해주고 있었고.
“커흑!!”
아찔한 충격이 가온의 머릿속을 새하얗게 휘발시킨다.
방패로 타이저의 공격을 막았으나, 기실 막은 게 아니었다.
신성 방어막으로 향하던 일행의 발걸음을 붙잡아 세웠던 첫 공격과는 그 성격이 판이했다.
타이저의 공격은 디산즈가 공들여 만든 방패를 단숨에 흉물로 만들었다.
형편없이 구겨진 방패는 붕대에 담긴 거력의 편린만을 해소할 뿐이었다.
우지직!
왼쪽 팔이 처참하게 부서졌다.
피해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붕대가 하늘하늘 뿜어낸 마기도 큰 상처를 입혔다.
폭급한 기운은 가온의 피부를 단숨에 난도질해 너덜너덜하게 만들었다.
[음?]비루하게 나가떨어지는 가온의 모습에 타이저는 순간적으로 당황하고 말았다.
물론 찰나에 불과한 작디작은 감정 조각에 불과했지만.
그만큼 가온이 타이저가 생각했던 것에 미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 탓이다.
[뭐야, 4레벨도 못 된 얼간이었어?]타이저는 김이 팍 샜다는 듯 말했다.
그러곤 다시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아닌데? 3레벨이 낼 수 있는 운동 신경이 아니었는데?]혼동은 일시적이었다.
금방 공격을 털어내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가온의 모습에서 타이저는 무엇을 착각하고 있었는지 곧바로 깨우친 것이다.
[뭐야, 얼간이가 아니라 반푼이었잖아?]타이저는 비릿한 미소로 조소했다.
비록 팔이 부러지긴 했으나 붕대에 담았던 막대한 충격은 받아낸 반면 곁가지로 딸려간 마기 조각은 어쩌지도 못하고 있었던 까닭이다.
[고작 마기의 잔재조차 어쩌지 못하는 녀석이 어떻게 4레벨이 됐을까?]호기심이 일었다.
하지만 그게 다였다.
놈의 목을 분쇄해 듀라한으로 만들면 충분히 그 몫을 해주리라.
어쩌면 언데드로 다시 태어나는 순간, 5레벨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결정했다.]타이저는 나른한 말투로 가온에게 말했다.
[여기서 널 죽여 중히 쓰겠노라고.]반박은 듣지 않겠다는 듯한 확언이었다.
타이저는 힘을 끌어올렸다.
혹여 가온이 제 손을 벗어나 죽어 성화에 불탄다 치면, 언데드로 되살린다는 그의 계획은 물거품이 되어버리니 말이다.
“누구……맘대로?”
가온은 비릿하게 올라온 핏덩어리를 퉤, 뱉으며 한쪽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완전히 망가진 왼팔을 죽 늘어뜨리면서도 투지를 잃지 않고 오른팔로 무기를 들었다.
[용기는 가상하다만……,]타이저의 모습이 사라졌다.
순간적으로 이를 놓친 가온.
본능적으로 가드를 끌어올렸다.
[과연 그 용기가 보상받을 수 있을까? 난 봐줄 생각이 없는데 말이야.]가온의 눈앞에 나타난 타이저가 가온의 가드를 피해 옆구리에 주먹을 박아넣었다.
콰드득!
“우웨엑!”
가온이 참지 못하고 구역질을 했다.
후두둑.
쪼개진 내장 조각이 선홍빛의 핏물과 함께 쏟아진다.
그럼에도 가온의 눈은 여전히 선명하게 살아있었다.
모든 걸 포기한 자의 눈빛이라고 할 수 없었다.
가온은 이 위기를 모면할 타개책을 끊임없이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도 완벽한 몸 상태일 때에나 가져볼 희망이었을 따름이다.
‘옆구리……하다못해 왼팔이라도 성했다면.’
그런 생각이 드는 건 너무나 당연한 흐름이었다.
그리고 그 염원에 화답하듯 변화가 일어났다.
다크 판타지의 천재 마수사냥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