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1315
01318 1318화
그건 박성민뿐만 아니라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김혁권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이리저리 뒤틀었다.
“꼴을 보아하니 오늘도 일찍 들어가긴 글렀네.”
투정하는 목소리와 달리 김혁권의 시선은 태수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그사이에도 태수는 의료진을 뒤로하고 119 구급 대원과의 통화에만 집중했다.
“환자 의식은요?”
“희미하게 있습니다. 숫자는 셀 수 있지만, 여기가 어딘지는 명확하게 떠올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혹시 신고자 있습니까? 있다면 그쪽에서 뭘 건드린 건 없고요?”
“등산 동반자가 한 명 있고, 그분이 신고한 겁니다. 또 저희가 올 때까지는 계속 말을 걸기만 했지, 건드린 건 없답니다.”
119 구급 대원의 말을 들은 태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신고자가 섣부르게 건드려서 상처가 벌어졌다면 더 다급한 상황이 됐을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았단 건 최소한의 응급처치 지식이 있단 이야기다.
지금 당장 그 점을 칭찬할 여유가 없기에 태수는 곧바로 다음 질문을 던졌다.
“그럼 구급대 쪽에서는 어떤 응급처치를 진행했습니까?”
“저희가 준비해 온 리도카인(국소마취제)을 곳곳에 투여해 통증을 완화시켰고, 준비한 수혈팩과 포도당을 달아 놓았습니다.”
“수혈팩과 포도당이요? 그걸 준비해 가셨단 말입니까?”
“이맘때 인수봉은 낙상 사고가 많은 편이라서요.”
준비를 잘했다는 것보다 이런 준비를 해야 하는 현실이 더 안타까운 목소리였다.
태수도 같은 심정으로 이어서 물었다.
“이송은 가능합니까?”
“제 판단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구급 헬기가 지원되지 않는다고요?”
“아닙니다. 그게 아니라 몸을 관통한 나뭇가지를 뽑을 자신이 없습니다. 아니, 뽑으면 안 될 거 같아서 연락부터 드린 겁니다.”
그의 생각이 현명했다.
무턱대고 뽑았다간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를 상황이다.
태수는 머리를 굴리며 물었다.
“그럼 헬기가 착륙할 장소는요?”
“없습니다. 있다면 정상에서 뛰어 내려오는 방법입니다.”
“1킬로미터가 장난도 아니고…… 안 되겠네요.”
태수가 고민 끝에 이야기하자 119 구급 대원의 목소리가 급격히 떨렸다.
“안 됩니까……? 팀장님, 정말 안 되는 겁니까?”
“의료헬기론 어려우니 구조 헬기를 저희 병원으로 지금 당장 보내 주세요.”
“그럼 여기로 오신다는 건…….”
“가야죠. 환자가 못 오는데 의사가 가는 게 당연한 겁니다.”
태수의 말에 119 구급 대원의 목소리가 흔들렸다.
“팀장님.”
“지금 그런 얘기 할 때가 아닙니다. 저희가 갈 때까지 최대한 체온을 보존해 주시고, 환부를 건드리지 않는 내에서 출혈을 최대한 억제해 주세요.”
“네! 그리고 또 뭘 하면 됩니까?”
“출혈양과 수혈팩의 남은 양 좀 알려 주세요.”
“그러니까…….”
119 구급 대원이 대답하자 태수가 머릿속으로 계산하며 이어서 물었다.
“현재 주변에 있는의료물품은 뭐가 있죠?”
“거즈, 붕대, 가위…….”
빠르게 말하고 있지만 정말 응급처치할 수준이었다.
문제는 의사들이 아니어서 응급처치 수준 차이가 난다는 점이다.
태수는 눈을 올려 뜰 정도로 정신없이 머릿속을 뒤적이고 얘기했다.
“우선 환자가 움직이지 않는 게 중요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최대한 체온을 유지시켜 주시고, 출혈에 각별히 신경 써 주세요.”
“그 외에는요?”
“주변에 사람이 뚝 떨어질 만한 공간 좀 만들어 주세요.”
“네?”
“뛰어서 내려갈 거리가 아니라면…… 하늘에서 뛰어내려야죠.”
태수는 똑 부러지는 목소리와 함께 눈빛을 강하게 빛냈다.
구조 헬기를 최대한 빨리 병원 옥상으로 보내 달라고 부탁한 후에야 태수는 전화를 끊었다.
자신과 전화할 시간에 환자에게 더욱 집중하는 게 무조건 이득이었다.
휴대폰을 강하게 주머니에 쑤셔 넣은 태수가 주변을 둘러봤다.
의료진들은 이미 상황을 직감하고 모두 일어나 뛰어나갈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태수는 그중에서 바로 김혁권과 시선을 마주쳤다.
“등산 가방에 A형 수혈팩 반 이상, 제 수술 도구, 모르핀, 부피바카인, 지혈제…… 등등 준비해서 바로 옥상으로 올라가세요.”
“오케이. 바로 준비하고 뛸게요.”
김혁권은 재빨리 몸을 움직여 의국 밖으로 뛰어나갔다.
태수는 남은 의료진들 중 박성민에게 말했다.
“선배.”
“그래, 난 뭘 챙겨서 올라갈까?”
“수술차 준비해 주세요.”
“그래, 수술…… 뭐?”
박성민뿐만 아니라 모든 의료진들이 동시에 놀랐다.
아직 한 번도 출동한 적이 없었다.
항간에는 보여 주기로 만들어 놓은 거다, 견학용이다, 이런 소문들이 암암리에 돌고 있었다.
그 수술차의 첫 출동이라니.
다들 수술차를 사용한다는 기쁨보다 환자의 상태에 대한 걱정이 앞섰다.
태수는 그런 의료진들에게 말했다.
“동행할 의사는 서영우, 박성민, 도성민, 유병태, 이강목…… 마지막으로 이성혁, 이상입니다.”
태수에게 호명받은 의사들의 표정이 비장하게 변했다.
출동 인원을 생각해 보니 태수의 의도를 정확하게 알 수 있었다.
수술 메인 1개 팀, 보조 1개 팀. 레지던트들은 필요에 따라 투입될 최소한의 지원 인력이었다.
첫 출동이라서 좋아하는 기색은 누구에게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건 항상 야망 가득한 이성혁도 마찬가지였다.
동부간선도로의 끔찍했던 사고가 아직도 머릿속에 가득했다.
그런데 수술차까지 출동한다는 건 그와 동급 혹은 그 이상의 응급 상황이란 의미였다.
그때의 사망자들이 떠오르자 출동하는 의료진들의 눈빛이 살벌하게 변했다.
이번에는 생명을 놓칠 수 없다.
그 하나의 생각만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반면, 출동에서 제외된 대다수의 의료진들의 표정은 그리 좋지 않았다.
그중 성재경이 반발했다.
“인원이 너무 적은 거 아니야?”
“수술차에 몇 명이 들어갈 수 있습니까?”
“빡빡하게 한 팀.”
“아시다시피 거기서 수술을 완료할 수도 없습니다.”
“…….”
성재경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출동하고 싶단 열의에서 비롯된 항변이기에 태수도 더 질책하지 않았다.
다만, 다른 의료진들에게 냉정하게 말했다.
“수술차는 준비되는 대로 바로 북한산 입구로 출발합니다. 그 준비를 모두가 도와주셔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알고 끝입니까?”
태수가 나지막이 묻자 박성민이 기다렸다는 듯이 나섰다.
“레지던트들! 각 의과에서 필요한 것들부터 챙겨서 수술차에 밀어 넣어.”
“알겠습니다. 의과별로 빨리 찢어져!”
“김 간호사, 박 간호사하고 먼저 수술차에 올라서 비치된 거 확인해 주시고, 병아리들이 실어 나르는 것들을 차곡차곡 정리해 주세요.”
“알았어요. 얘들아, 가자!”
김수진 간호사가 외치자 간호사들도 정신없이 움직였다.
그들뿐만이 아니라 출동이 정해진 의사들도 바빠졌다.
“필요한 거 챙기자고. 움직여. 빨리, 빨리!”
우르르.
의국 내부에 불이 난 듯이 의료진들의 움직임은 날렵하고 재빨랐다.
그렇게 정신없는 사이 태수는 민태경을 바라봤다.
“민 선생님.”
“말해.”
“흉부, 복부만 응급수술하고 바로 이쪽으로 이동할 겁니다. 수술실 대기시켜 주시고, 도착하면 유동적으로 수술에 들어갈 수 있게 준비해 주세요.”
그만큼 상황이 어떻게 될지 예측하기 힘들단 뜻이었다.
박성민과 서영우를 제외하고 그가 최선임 의사였기에 부탁했다.
그걸 바로 알아들은 민태경이 묵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흉부 1팀, 외과 1팀, 나머지도 팀을 꾸려서 대기하고 있을게.”
“코드 엔젤 상황입니다. 다른 환자가 발생해도…… 최대한 양해를 구하고 빨리 준비하시라고 전해 주십시오.”
“그런 건 이쪽에서 알아서 한다니까. 빨리 움직여!”
민태경이 낮게 소리치자 태수는 바로 고개를 끄덕이고 의국을 뛰어나갔다.
타다닥.
복도를 미친 듯이 뛰어가는 태수의 얼굴에 어떤 감정도 나타나지 않았다.
이미 일은 벌어졌다.
도착하기 전까지 안달복달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무조건 냉정해야 했다. 최대한 감정 표현을 줄여 미미하게 소모되는 체력까지도 보존해야 했다.
최소한 지금은 그래야 했다.
태수는 그길로 곧장 옥상으로 질주했다.
지금 달리는 일초 일초가 응급환자에게 얼마나 고통스런 시간일지 너무도 잘 알기에 심장이 터져라 달릴뿐이다.
벌컥!
옥상 문을 열고 박차듯이 나오자 저 멀리 헬기 착륙장이 보였다.
아쉽게도 아직 구조 헬기는 도착하지 않았다.
멀리서 소리도 들리지 않는 걸 보니 조금 더 시간이 소요될 듯했다.
“젠장.”
태수의 얼굴이 초조함으로 물들었다.
여기서 북한산은 가까웠다.
하지만 기상 상황이 언제 변할지 모른다.
더구나 환자 상태가 어떨지 몰라 입술이 바짝 말랐다.
태수가 마른침을 삼키며 구조 헬기를 기다릴 무렵.
끼익!
또 한 차례 옥상 문이 열리더니 김혁권이 배낭 2개를 앞뒤로 메고 얇은 패딩도 하나 들고 달려왔다.
물론 그도 패딩을 입은 모습이었다.
그는 도착과 동시에 태수에게 패딩부터 불쑥 내밀었다.
“헉헉. 여…기.”
“어디서 구하셨습니까?”
“레지던트…들 겨울옷 뺏어 온 겁니다. 후욱! 거 숨쉬…기 힘든데 말…시키기는.”
“이 상황이 어째 익숙하네요.”
태수가 배낭을 등에 메며 추억서린 목소리로 말하자 김혁권이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이어 없단 미소를 지었다.
“후우! 익숙하지. 빌어먹게도 말입니다.”
“그러게요.”
카슈미르에서 함께 경험했던 일들이 떠올라 두 사람의 표정이 아련했다.
한국에서는 이런 일이 없을 줄 알았다.
헬기로 환자를 이송한다는 게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여러 가지 변수가 많아 생존 확률도 높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태수에게 북한산은 평생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을 장소였다.
하지만 태수는 그 이상 생각하지 않았다.
언제까지 과거에 얽매여 살 순 없는 법이다.
초곡리 산기슭에서 조난당한 조홍찬을 구하며 카프레네에 대한 미안함을 많이 덜어 냈다.
조홍찬은 지금 레스토랑을 운영하며 지낼 만큼 건재했다.
가끔 얼굴을 보기도 했다.
그런 그가 있기에 북한산을 떠올려도 예전처럼 가슴이 짠하지만은 않았다.
이 순간도 무사히 넘어갈 거다.
그저 긍정적으로 생각할 뿐이다.
구조 헬기를 찾아 다급하게 사방을 둘러보던 태수와 김혁권의 시선이 마주쳤다.
헬기를 타고 카슈미르 전역을 돌아다녔던만큼 두 사람의 눈빛은 무척이나 비슷했다.
김혁권이 살짝 짜증난 목소리로 물었다.
“헬기는요?”
“금방 올겁니다.”
태수가 말하면서도 예리한 눈빛으로 허공을 노려봤다.
저 멀리 못 보던 점이 생겨났다.
두두두.
뒤늦게 미약한 프로펠러 소리까지 들려왔다.
얼굴이 반색으로 물든 태수가 소리쳤다.
“저기.”
“거 자식들. 더럽게 늦네.”
“준비합시다.”
태수와 김혁권은 등에 멘 등산 가방을 비장한 눈빛으로 한 번 더 고쳐 맸다.
타타타.
119에서 파견해 준 구조 헬기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천천히 병원 옥상에 내려섰다.
프로펠러가 강렬하게 회전하며 밀어내는 공기에 머리카락이 휘날리고, 몸이 휘청휘청거렸다.
태수와 김혁권은 최근에도 경험한 일이라 능숙한 몸놀림으로 자세를 낮춰 빠르게 헬기로 달려갔다.
드륵!
헬기의 슬라이드 문이 열리자 헬멧을 쓴 구조대원이 내리려 했다.
탑승을 도와주려는 모양이었다.
태수와 김혁권은 그에게 손을 뻗어 제스처를 취한 후, 배낭을 먼저 던져 놓고 신속하게 올라탔다.
도움을 주려던 구급대원이 멈칫했지만 그뿐이다.
구급대원은 얼른 주변을 한 번 더 확인한 후에야 손을 움직였다.
탁!
다시 문을 닫자마자 구조 헬기는 수직으로 솟구쳐 북한산 방향으로 날아갔다.
구조 헬기가 병원 옥상에 내려선 시간은 채 1분도 되지 않았다.
그렇게 태수와 김혁권을 태운 구조 헬기는 서울 도심을 금방 벗어나 북한산 상공에 진입했다.
헬기 내부에선 이제 막 탑승한 태수와 김혁권의 손이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헬기 레펠을 준비하는 중이었다.
척, 척.
레펠 장비를 착용하는 두 사람의 모습이 너무도 익숙하고 신속했다.
같이 앉아 있던 구조대원은 눈을 끔뻑거리며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이해가 안 되는 표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