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1591
01594 1594화
모든 어머니들의 모성 본능은 언제나 자신보다 자식이 우선시한다.
태수는 눈빛을 굳히며 최성후 대원에게 물었다.
“의식 레벨이 언제부터 이렇게 떨어졌습니까?”
“30분 정도 됐습니다. 저희가 도착했을 때도 그렇게 의식이 좋은 편은 아니었습니다. 너무 지쳐 있었거든요.”
“이러면 곤란한데.”
태수가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산모는 투약에 상당히 많은 제약이 걸린다. 특히 마취제나 진통제를 사용할 때 상당히 조심스럽다.
정민수가 용도에 맞게 투여하고 있지만, 그조차도 소량으로 제한되고 있는 상황이다.
무통분만이란 시술 방법도 나왔지만, PCA(자가통증조절장치)가 필요한데 여기선 꿈도 꿀 수 없는 장비였다.
태수는 손가락까지 정신없이 꿈틀거리며 초조하게 생각을 이어 갔다.
그러던 중이었다.
“선생님, 좀 심각해요.”
“어떻게요?”
“보셔야겠어요.”
어느새 치마 밖으로 나온 송현미 간호사가 심각한 얼굴로 권했다.
태수는 두말하지 않고 치마 속으로 고개를 집어넣었다.
“…….”
잠시 그대로 있던 태수가 빠르게 치마 밖으로 빠져나오며 송현미 간호사를 바라봤다.
“산도가 너무 좁은데요.”
“네. 아이 머리가 반도 나오지 못했어요.”
“난산이라고 하기에는 출혈이 좀 심한 편인 게 마음에 걸리고요.”
“회음부를 좀 절개하는 건 어때요? 산도가 좀 넓어질 수 있잖아요.”
지금 상황에선 송현미 간호사의 의견이 적절했다. 산모가 너무 힘들어한다면 그런 방법으로 자연분만을 유도할 수 있었다.
그 생각으로 태수가 고개를 끄덕이려던 찰나였다.
정민수의 목소리가 급하게 들려왔다.
“태수야!”
“왜?”
“이상해. 바이탈이 이상하게 잡힌다고.”
“산모 바이탈은 태아에게 영향을 받잖아. 그러니까 당연히 이상하겠지.”
“그걸 누가 모르냐고, 자식아. 좀 보고 말해.”
정민수가 자동 혈압계를 태수의 얼굴에 들이밀었다.
태수가 얼른 확인하고 눈빛이 급속도로 굳어졌다.
“이 수치, 뭐야?”
“내 말이. 이거 혹시 preeclampsia(자간전증) 아니야?”
“출혈이 있는데 혈압이 높으면 가능하긴 한데. 잠깐만. 확실한 걸 확인할 때까진 섣부르게 판단하면 안 돼.”
“나도 그러고 싶은데…….”
정민수는 어느 정도 확신을 굳힌 모양이었다.
태수도 이 정도 혈압 수치라면 자간전증을 의심하는 게 무리가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었다.
임신 중, 후기에 관찰되는 증상으로 예전엔 임신중독이라고 명명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증상으로는 고혈압, 그리고 또 하나가 있었다.
바로 단백뇨(proteinuria)였다. 일정량 이상의 단백질이 섞여 나오는 오줌으로, 거품이 나는 게 특징이었다.
그 순간 태수의 머릿속에 방금 본 산모의 하체 영상이 스쳤다.
눈빛이 굳어진 태수가 송현미 간호사에게 부탁했다.
“송 간호사, 거즈…….”
“여기요.”
송현미 간호사는 어느새 산모 다리 사이에서 나와 태수에게 거즈를 내밀었다. 놀랄 일도 아니었기에 태수는 거즈부터 확인했다.
그 거즈 아래쪽엔 출혈이 묻어 있었고, 위쪽엔 노란 거품이 보였다.
동시에 살짝 흔들린 태수의 시선이 송현미 간호사에게로 향했다.
송현미 간호사는 아랫입술을 꽉 다문 채 고개를 끄덕였다.
단백뇨가 맞단 고갯짓이었다.
마땅한 검사 장비가 없다지만, 야전에서 너무도 많은 경험을 한 송현미 간호사이기에 확신하고 있었다.
물론 태수도 마찬가지였다.
그걸 본 태수의 눈빛이 가늘게 변했다.
“자간전증이라면 수술이 불가피합니다.”
“…….”
송현미 간호사가 바라만 보고 있자 태수의 시선이 정민수에게 향했다.
“아무래도 째야겠는데.”
“젠장. 우리가 왔다고 아이가 쑴풍 나오는 게 더 이상한 일이긴 하지.”
정민수의 넉두리에 태수가 어이없다는 듯 바라봤다.
“닥치고 일단 수술 준비부터 할 생각은 없어?”
“내 손은 움직이고 있잖아. 그 전에 산모 몸부터 좀 청결하게 해야 하지 않아?”
“할 거야, 송 간호사님이.”
태수의 말에 송현미 간호사가 빠르게 말했다.
“따뜻한 물 좀 준비해 주세요. 산모 몸이 많이 식어서 따뜻한 물로 해야 돼요.”
“아까 민수가 부탁하지 않았어?”
태수가 말하며 바라보자 최성후 대원이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네. 지금쯤 준비가 됐을 겁니다.”
“그거부터 가져다주세요.”
“네!”
구급대원이 얼른 밖으로 나갔다.
그사이 태수도 자리에서 일어나며 정민수와 김혁권에게 말했다.
“두 분은 수술 준비부터 마무리해 주시고요. 민수야, 부분마취로 가자.”
“내가? 넌?”
“잠깐 밖에. 수술인데 허락은 받아야지. 그리고 상황을 충분히 설명해 드려서 안심시켜야 하고.”
“그래, 다녀와. 준비부터 확실히 마무리하고 부를게.”
“아이 머리를 다시 안으로 밀어 넣고 있어. 빨리 올게.”
태수는 그렇게 말하고 방문 쪽으로 향했다.
잠시후 살짝 흥분된 표정으로 서둘러 방 안으로 돌아온 태수는 산모부터 살폈다. 그때 정민수가 얼른 물었다.
“동의 받았어?”
“자세한 건 나중에 이야기하고 수술하자.”
태수 말이 의미심장했다.
정민수는 고개를 갸웃했지만 그뿐이다.
수술만 할수있다면 나머지 이야기는 사족일뿐이다.
“하으으…….”
진통제의 효과로 고통이 줄었는지 흐느낌이 약해졌지만 아직 아픔을 내뱉고 있었다.
수술포를 넓게 세워 가슴에 걸쳐서 수술 준비도 어느 정도 마무리되었다. 그런데 그 이상 어떤 문제가 있는지는 육안으로 보이지 않았다.
태수는 좀 더 신중하게 둘러보며 정민수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야? 혈압이 안 좋아?”
“그보다 더 큰일…….”
“차분하게 말해.”
태수가 목소리를 낮출 무렵 송현미 간호사가 빠르게 손짓했다.
“팀장님, 이쪽.”
다리 사이?
태수는 송현미 간호사가 들치고 있는 산모의 치마 속으로 다시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 순간 산모의 다리 사이에 노랗고 울퉁불퉁한 무언가가 보였다. 표면을 타고 흐르는 출혈도 상당했다.
그걸 본 태수의 눈빛이 가늘게 떨렸다.
“저거 혹시 태반 아닙니까?”
“맞아요.”
“애는요?”
“아직.”
송현미 간호사의 대답에 태수가 작게 동요했다.
“abruptio placentae(태반조기박리)라고요?”
“네. 말씀대로 아기 머리를 안으로 밀어 넣으니까 태반이 저렇게 나왔어요.”
훌렁!
치마 속에서 빠르게 벗어난 태수가 빨간 핏물이 가득한 양동이를 들고 나가려는 최성후 대원에게 물었다.
“최 대원, 진통이 몇 시간 됐다고 했습니까?”
“지금까지 5시간이 좀 넘었습니다.”
“젠장!”
퍽!
태수 얼굴이 긴장으로 삽시간에 굳어갔다.
“정민수, 이런 상황이면 미리 전신마취를 했어야지!”
“나도 지금 너한테 들은 거라고!”
“일단 빨리 진행해!”
“기다려. 혁권 씨, 인튜베이션(기도 삽관)할 거 가져오셨죠?”
정민수가 바쁘게 묻자 김혁권이 바로 가방에서 엠부백과 튜브 등을 꺼내 들었다.
“준비했습니다.”
“인튜베이션부터 합니다.”
“걱정 마시고 진행해요.”
김혁권이 보조하자 정민수도 빠르게 수술 장갑을 끼고 기도부터 확보하기 시작했다.
두 사람이 바빠지는 사이 태수와 송현미 간호사 또한 다급해졌다.
“송 간호사님, 지혈제, 승압제, 강심제를 차례로 투여해 주세요.”
“알았어요.”
“민수야, 삽관 끝나면 바로 전신마취제하고 근이완제 투여하고.”
“이쪽은 걱정 말고!”
정민수가 소리치자 태수도 얼른 수술 장갑으로 손을 뻗었다.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최성후 대원과 시선을 마주한 순간 태수가 물었다.
“도와주실 거죠?”
“제가 도와 드릴 일이 있으면 당연히요.”
“엠부백 설치 끝나면 호흡 좀 맡아 주십시오.”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왜 이러시는 겁니까?”
최성후 대원이 묻자 태수가 수술 장갑을 끼며 빠르게 대답했다.
“산모와 태아 둘 다 위급합니다. 태반이 나왔다는 건 태아가 정상적으로 산소와 영양분을 공급받지 못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것도 5시간 동안 말입니다.”
“헉! 그, 그럼…….”
“그러니까요. 애부터 최대한 빨리 꺼내야 합니다. 양동이만 밖에 내놓으시고 물은 밖에 계신 분에게 날라 달라고 하세요. 그리고 호흡 좀 부탁합니다.”
“알겠습니다!”
최성후 대원도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식겁한 얼굴로 변했다.
태수는 그 표정을 지켜보고 있을 틈이 없었다.
이미 준비되어 있는 수술 용품과 도구들을 주변에 둘러놓는 등 수술을 바로 시작할 수 있도록 서둘렀다.
태반이 박리된 걸 알게 된 이 순간부터는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5분.
네 사람이 수술을 준비하는 데 소요된 시간이다.
쑤욱. 쑤욱.
최성후 대원이 엠부백을 규칙적으로 누르며 산모의 호흡을 돕고 있었다. 이미 수술 준비도 깔끔하게 끝낸 상태였다.
하지만 다들 수술을 진행하지 못하고 방 안의 시계만 쳐다봤다.
성격 급한 김혁권이 짜증을 버럭 냈다.
“미치겠네.”
“진짜 환장하겠네요.”
정민수는 양손에 쥔 수술 도구만 계속 만지작거렸다.
그런 사정은 태수도 마찬가지였다. 날카로운 메스를 오른손에 쥐고 있지만 환부를 가르지 못했다.
송현미 간호사가 태수를 바라보며 말했다.
“근이완제가 완전히 퍼지려면 3분 정도 남은 거죠?”
“네. 하지만 1분만 더 지나고 나면 시작해도 됩니다.”
“지금부터 시작해도 살을 가르다 보면 1분은 지나지 않을까요?”
송현미 간호사도 빨리 수술을 시작해야 한단 압박감에 태수에게 물었다. 알지만 태수는 고개를 저었다.
“근육이 수축되면 메스 날이 물립니다. 그럼 근육이 완전히 풀어질 때까지 기다려야 하고요. 아시잖습니까.”
“그래도요.”
“30초만요. 최소한 그때까진 기다려야 합니다.”
꽈악.
태수는 메스를 쥐고 있는 손에 힘을 더했다.
지금 이렇게 흘러가는 1분이 아기에게 얼마나 부담이 될지 알고 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째각, 째각.
초침 소리만이 방 안을 가득 울렸다.
모두 눈이 빠져라 시계를 지켜봤다.
흘러가는 시간이 초조하게만 느껴졌다.
시계를 보고 또 봐도 불과 2초밖에 지나지 않을 정도였다.
잠깐 한숨 돌릴 때면 후딱후딱 지나가던 시간인데, 왜 똑같이 흘러가는 시간이 지금은 이렇게까지 더디게 흐르는지 갑갑하기만 했다.
성질같아선 초침을 쫙 밀고 싶은 심정이었다.
다행스러운 건 그래도 시간은 흘러가고 있었다.
30여 초가 지난 순간 태수가 메스를 위로 들며 모두에게 말했다.
“응급 제왕절개 수술 시작합니다.”
스윽.
태수의 메스가 산모 배꼽 아래를 길게 가르기 시작했다.
상처 사이로 피가 흐르자 송현미 간호사가 빠르게 거즈로 닦아 냈다. 그 손길이 평소와 달리 거칠고 투박했다.
그녀의 마음이 그만큼 급하단 걸 알아챈 김혁권이 나지막이 타일렀다.
“수술 시작했잖아. 마음 좀 가라앉혀.”
“…….”
“현미야.”
“다들 문제가 없길 바라시겠죠. 알아요. 그런데 전 아기 앞에선 침착해질 수가 없어요.”
송현미의 목소리는 평소답지 않게 떨리고 있었다.
다른 이들은 이해 못할지 몰라도 김혁권은 그 심정을 이해하고 있었다.
“아는데, 진정하라고.”
“…….”
“두 사람, 현미가 좀 거칠어도 이해해 줘요.”
김혁권은 송현미 간호사를 설득하는 걸 포기한 눈치였다.
그런 부탁을 하는 경우는 지금껏 처음이다.
정민수의 눈썹이 의아하게 꿈틀거렸지만 태수는 왜 그런지 대충 감이 잡혔다.
두 사람은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아이 소식이 없었다. 송현미 간호사가 아기에 유독 민감한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태수는 차분한 목소리로 송현미 간호사에게 말했다.
“스스로 감당되지 않을 때가 오면 손 놓으세요.”
“수술부터 해요.”
“그렇지 않을 걸 알지만, 만약을 말하는 겁니다.”
“수술부터 하라고요!”
송현미 간호사의 목소리가 날카로웠다.
정민수가 멈칫할 정도였다.
하지만 태수는 그런 송현미 간호사를 힐끔 바라보고는 계속 수술을 진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