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1719
01722 1722화
그래도 태수는 침착하게 할말을 꺼냈다.
“그리고 병원장 할아버지, 성민이 아저씨, 나도 마찬가지고. 여기 모두가 똑같아. 웃는 유선이가 좋아. 행복한 유선이가 좋아.”
“…….”
“더 행복하고 즐겁게 해 줄게. 매일 아침 눈을 뜨는 게 설레게 해 줄게. 조금만 힘을 내 줄 수 있겠니?”
태수는 차분하면서도 진지하게 정유선을 설득했다.
어제 너무 많이 운 정유선이었지만 지금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태수는 가까이 다가가 손등으로 가볍게 눈물을 훔쳐 줬다.
그런 태수의 행동에 움찔했는지 정유선의 볼살이 가볍게 떨려 왔다.
“저…… 저 흉하지 않아요?”
“아니.”
“이렇게 얼굴이…….”
“그건 병이야. 병은 고칠 수 있어. 하지만 유선이의 밝고 행복한 마음이 어두워지는 건 아무도 고쳐 줄 수가 없어. 유선이만 바꿀 수 있는 거야.”
태수의 말이 끝난 후였다.
정유선은 입술을 계속 꾸물거렸다.
그러던 그녀가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저…… 손잡아 주실 수…… 있어요?”
“얼마든지. 자, 이렇게 잡았어. 우리 유선이 손은 여전히 따뜻하네.”
태수의 그 말이 끝남과 동시였다.
정유선의 눈에서 또다시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흐윽. 윽, 흑흑.”
“…….”
“못되게…… 나쁘게 해서…… 죄송해요. 으아앙!”
목 놓아 울기 시작한 정유선은 어느새 어둠이 걷히고 본래 아이와 같은 순수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태수는 그런 정유선의 손을 먼저 놓지 않았다.
이제 13살, 삶의 반을 고통과 싸워 온 아이였다.
악독한 마음 한 번 품은 게 잘못된 건 아니었다.
그리고 이제 다시 이렇게 어린아이처럼 펑펑 울고 있으니 됐다.
툭툭.
태수는 정유선의 팔을 가볍게 쓰다듬으며 마음껏 울어 남아 있는 찌꺼기까지 모두 흘려보낼 수 있게 도왔다.
정유선이 한참 울고 난 후였다.
밖에서 지켜보고 있던 공우혁이 상황을 파악하고 들어와 얼굴 곳곳에 정성껏 줄기세포를 주사했다.
“아, 아!”
“조금만 더 하자. 거의 다 됐어.”
“아, 아파요.”
정유선의 고통어린 신음이 들리자 공우혁이 안타까운 듯 달랬다.
“그래그래. 미안. 조금만 더.”
“아으…….”
정유선은 따가운지 앓는 소리를 냈다.
그때마다 공우혁의 손길은 더욱 조심스러워졌고, 태수는 혹시나 하는 표정으로 대기하고 있었다.
그런 주변의 관심 속에서도 정유선은 한 번도 주사기를 피하거나 조금 전처럼 과격하게 반응하지 않았다.
정말 아플 때엔 오히려 눈을 뜨고 옆을 봤다.
유리벽에는 태수가 가져온 수술 후의 모습이 붙어 있었다.
그걸 본 정유선은 따가운 주삿바늘도 아랑곳하지 않고 희미하게 미소를 보였다.
곧 태수와 공우혁이 정유선의 병실을 나섰다.
병실 문을 닫음과 동시에 공우혁이 태수를 향해 엄지를 내밀었다.
“사람 설득하는 데는 일인자야.”
“진심이 통한 거죠.”
“그렇게 진심을 꿰뚫고 다가갈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냐고. 김성용 씨 케이스 이후로 정신과 과장님이 최 팀장 노린다던데. 이 정도면 그럴 만하지.”
공우혁의 농담에 태수가 어색하게 미소 지으며 화제를 돌렸다.
“그래서 반응은 언제쯤 확인할 수 있는 겁니까?”
“오늘 오후쯤.”
“좀 더 기다려야겠네요. 그리고 유선이 어머니는 어떻게 됐습니까?”
그제야 생각난 듯 태수가 묻자 공우혁이 차분하게 말했다.
“본동 피부과에 입원했어. 화이트엔젤까지 올 정도는 아니니까. 그쪽 피부과에서 상당히 심혈을 기울이고 있단 소식도 들었고.”
“다행이네요. 퇴원할 땐 두 사람 모두 말끔해졌으면 좋겠습니다.”
태수의 말을 듣고 있던 공우혁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수술할 거야? 아직 확인도 안 됐잖아.”
“이런 상황에서 반응이 없다손 치더라도 수술을 접자고 할 수 있습니까?”
“그건 힘들지. 애써 안정을 찾았지만 희망을 봤으니까 억눌린 걸 테고.”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지금 유선이에게서 희망을 빼앗으면…….”
태수가 말문을 흐리자 공우혁도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돌이킬 수 없겠지. 육체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부분도 말이야.”
“그건 피해야죠.”
태수의 말에 공우혁은 묵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른 아침에 일어난 그 일은 의국 회의에서 태수와 공우혁이 다시 한 번 모두에게 공표했다.
이미 소문이 파다해서 걱정만 가득했던 의국 분위기가 조금은 밝아졌다.
하석준 팀장이 공우혁에게 물었다.
“오후나 되어야 반응을 확인할 수 있다고?”
“맞습니다.”
“그럼 그때까지 기다려야 하나?”
그 질문에는 태수가 대답했다.
“수술 준비를 할까 합니다.”
“음, 역시 이젠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린 거겠지.”
“팀장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내가 지금 반대하면 유선이를 방치하잔 얘기밖에 더 되나?”
하석준 팀장이 반문하자 태수가 오히려 머쓱해졌다.
“그런 뜻은 아니고요.”
“알아. 그리고 수술에 대해 확신이 있는 상황이 아니란 것도 말이야.”
“…….”
“그래서 말인데, 의국 회의 끝나면 최 팀장이 수술 팀원들 모아서 바로 수술 회의 진행해. 필요하다면 병원장님이라도 요청하도록. 안 되면 내가 부탁할 테니까.”
하석준 팀장이 든든한 지원군을 자청하자 태수가 묵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말씀대로 수술 팀원부터 소집하겠습니다.”
“이후 과정에 대해서는 구태여 나에게 보고할 필요 없는 거 알지?”
“틈틈이 조언은 구할 겁니다.”
“정 필요하다면.”
하석준 팀장이 태수와 거기까지 대화를 나눈 후였다.
탁!
거칠게 회의 테이블을 후려친 그가 모두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리고 팀장으로서 거대한 존재감을 내뿜으며 모든 팀원들에게 공표했다.
“다들 들었지만 다시 말합니다. 이 시간부로 코드 화이트엔젤 발령합니다.”
“…….”
“이 비상 체제는 정유선 환자의 수술이 끝날 그 순간까지 유지합니다. 그리고 그때까진 최태수 팀장의 오더를 최우선으로 합니다.”
“네!”
모두가 힘차게 대답했다.
10퍼센트의 성공률을 향한 수술을 위한 노력이 이제부터 시작될 터다.
누구도 자신이 선택되지 않길 바라는 소극적인 모습은 없었다.
전문의는 물론 레지던트와 인턴, 심지어 간호사들까지.
누구 하나 눈빛을 번뜩이지 않는 의료진이 없었다.
단 한 명의 환자를 위해 100명이 노력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곳이 바로 화이트엔젤이었다.
긴 오전 회의가 끝난 후였다.
수술이 잡혀 있거나 진료가 예약되어 있는 의료진들은 먼저 자리를 떴다.
그 외에 남은 수십 명의 인원은 모두 자리를 지키며 태수를 보고 있었다.
자신이 호명되길 바라는 눈빛들이 강렬했다.
실패 확률이 높은 수술이란 걸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들의 열정은 절대 환자가 가진 아픔을 외면하지 않았다.
태수는 그 눈빛이 좋았다.
화이트엔젤을 만든 이유가 바로 이런 의료진들의 모습을 원해서였다.
하지만 모두를 참여시킬 순 없는 법이었다.
태수는 먼저 내과에 필요한 의료진들을 호명했다.
“공우혁 선생님, 김아름 선생.”
“말해.”
“네.”
두 사람이 대답하자 태수가 차분하게 말했다.
“두 분이 간호사분들과 연계해서 유선이를 24시간 모니터링해 주십시오. 줄기세포에 대한 반응도 지속적으로 확인해 주시고요.”
“오케이.”
공우혁이 짧고 굵게 대답하는 걸로 내과 쪽 오더가 마무리됐다.
그 후로 태수는 필요한 전문의들을 차례로 불렀다.
“민태경, 박인수, 성이현, 박창준, 그리고 황남철 선생님은 남아 주십시오. 다른 분들은 필요에 따라 호출하겠습니다.”
“…….”
이름이 불리지 않은 의료진들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실망하진 않았다.
아직 완전히 배제된 게 아니기에 언젠가 호출해 줄 걸 기대했다. 그리고 해당하지 않은 의과 전문의들은 다음을 기약했다.
열정이 너무 앞서는 레지던트들이 아쉬움을 보였지만 끼어들 때가 아닌 일이라 몸을 돌려야 했다.
곧 태수가 호명한 의사들 외에는 모두가 의국을 나갔다.
태수는 남아 있는 5명의 의사들에게 말했다.
“내과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일주일 전후로 수술을 예상하고 있습니다.”
“흠, 바빠지겠어.”
“아무래도요. 그리고 우리 쪽 데이터가 부족한 관계로 존스홉킨스에서 자료를 요청해 받아 놓은 상태입니다.”
“오오.”
다들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존스홉킨스란 이름만으로도 든든한 표정들이었다.
태수도 같은 마음이었지만 침착하게 이어서 말했다.
“그 데이터와 정유선 환자를 비교하며 수술 계획을 좀 더 가다듬도록 하겠습니다.”
“질문.”
피부과 성이현이 손을 들자 태수가 바로 정중하게 손짓했다.
“말씀하십시오.”
“단순 피부 절개가 아니라 상당히 까다로워. 솔직하게 말하면 나도 자신 없는 부분이고.”
“그건 저와 정민수 선생이 맡겠습니다.”
태수의 대답에 성이현이 미소를 보였다.
“두 사람이 나선다면 나야 안심이지.”
“그럼 오후 1시까지 모든 뒷일을 정리하고 이 자리에 모이는 걸로 하겠습니다.”
태수는 그렇게 회의를 마무리 지었다.
회의실을 나선 태수는 응급의료대 상황실로 향했다.
박성민은 태수가 들어서자마자 눈을 가늘게 뜨며 핀잔했다.
“너 요즘 자주 본다?”
“유선이 소식 들으셨습니까?”
“그거 자랑하러 왔지? 너 잘했다고 칭찬해 주라고 지금 일부러 온 거지?”
“아니요. 민수 데리러 왔습니다.”
태수의 말에 저쪽에서 음료수를 마시고 있던 정민수가 사레에 들렸다.
“나? 쿨럭쿨럭!”
“음료수는 삼키고 대답하지.”
김은영이 얼른 다가가 등을 두들겨 줬다.
곧 괜찮아졌는지 정민수가 김은영에게 고맙다고 인사한 후 태수에게 다가왔다.
“갑자기 난 왜?”
“우리 수술 하나 하자.”
태수의 눈빛이 강렬하게 변했다.
반면, 정민수는 어색하게 웃으며 불길한 느낌을 지우지 못했다.
점심시간 후.
오후 일과가 시작되기 직전이었다. 화이트엔젤 의국 문이 열리더니 태수와 정민수가 나란히 들어왔다.
눈빛이 강렬한 태수와 반대로 정민수는 어깨가 축 처져 있었다.
먼저 자리하고 있던 민태경이 정민수를 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정 선생, 어째 도살장에 끌려오는 느낌이야?”
“정확하게 보셨습니다.”
“그러면 쓰나. 지금 여기가 어떤 상황인데.”
“저도 유선이 일은 안타깝게 생각하고, 같이 수술할 마음이 굴뚝같습니다. 그거 때문에 이러는 게 아니라고요.”
정민수의 억울한 표정을 본 민태경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럼 왜 죽을상인데?”
“이렇게 사람 강제로 끌고 오면서 최 팀장이 오늘 점심으로 뭘 사 줬는지 아십니까?”
“스테이크? 아니면 한정식?”
“국밥이요. 2,900원짜리 콩나물국밥 말입니다.”
“하하하. 우리 팀장답네.”
민태경이 소리 내 웃자 정민수가 뚱한 표정으로 말했다.
“우리 팀장도 됩니다. 팀원 대우가 이렇게 저렴한 팀장은 처음인 거 같습니다.”
“맛이 없었어?”
“…….”
“맛있었으면 됐지.”
“맛과 가격은 좀 별개라니까요.”
정민수가 투덜거리는 사이 태수는 이미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만하고 앉지?”
“좀 더 하고 싶습니다만, 최태수 팀장님.”
“꼬인 척하기는. 콩나물국밥이 그렇게 불만이면 저녁 식사는 삼각김밥을 사 줄까?”
“내가 사 먹고 만다. 치사한 놈.”
“비싼 게 맛있는 게 아니라고. 맛있는 게 저렴하면 그게 최고라니까.”
태수의 말에 정민수가 투덜거렸다.
“나도 안다고. 그래도 좀 억울하다고.”
“알아서 억울해하시고. 다 모인 거죠?”
태수가 화제를 돌려 모두에게 묻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모두 뒷정리 말끔하게 마치고 모였어.”
“준비한 자료는 곧 이성혁 선생이 복사해서 가져올 겁니다. 그 전까지는 앞서 수술 계획 잡았던 걸 다시 한 번 상의하도록 하겠습니다.”
태수는 곧바로 회의에 들어갔다.
그 순간 투덜거리던 정민수도, 웃고 있던 다른 전문의들도 바로 집중하기 시작했다.
삽시간에 후끈해진 의국에선 의사들의 의견이 끊임없이 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