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1766
01769 1769화
“다만?”
“조금이라도 더 확률을 올리기 위해 수술 자체에 대해 좀 깊게 토의를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겠지.”
하석준 팀장의 대답에 가만히 있던 태수가 말했다.
“팀장님, 죄송한데 다빈치 수술 스케줄 좀 잡아 주실 수 있겠습니까? 아마 지금부터 연구를 시작해야 할 거 같습니다.”
“그런 건 걱정하지 말고. 여기에는 누구, 이성혁 선생을 둘 건가?”
“아니요. 김아름 선생에게 도움을 청할 겁니다.”
태수의 말에 하석준 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내가 하도록 하지.”
“네?”
“이쪽은 신경 쓰지 말고 두 사람이 해야 할 일만 집중하라고.”
“감사합니다.”
태수와 정민수는 냉큼 고개 숙여 인사했다.
지금은 예의 차린다고 사양하며 시간 끌 때가 아니었다.
하석준 팀장에게 뒷일을 일임한 태수는 이성진에게 시선을 돌렸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 수술을 받는다고 더 오래 사시는 건 아닙니다.”
“그럼…….”
“조금이나마 고통을 줄여 드릴 방법입니다.”
“더 좋은 방법 같은 건 없습니까?”
이성진은 눈꼬리가 축 처진 채 애원했다.
그의 입장은 충분히 이해가 되지만 태수는 냉정할 정도로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없습니다.”
“…….”
“독한 항암 치료를 당장이라도 시작하면 조금 더 시간을 벌 순 있겠죠. 하지만 그게 저분을 위한 걸까요?”
태수의 질문에 이성진이 힘없이 대답했다.
“그건…… 아니겠죠.”
“그래서 없다고 한 겁니다. 더 현실적으로 말씀드리면 그 어떤 신약이라 해도 견뎌 낼 체력도 없는 상태고요.”
태수는 사실 그대로만 말했다.
그래서 그런지 이성진은 고개를 푹 숙였지만 이해하려 애썼다.
“알겠습니다.”
“병상에 계시는 동안은 대화를 나누실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면회 시간도 제한할 겁니다. 그 이유도 아실 거라고 믿습니다.”
“네. 짐작이 갑니다.”
“협조 부탁드립니다. 이 모든 건 저분을 위해서란 걸 꼭 기억해 주시고요.”
태수가 한 번 더 당부하자 이성진은 고개만 끄덕였다.
그 후로 태수는 김아름을 김현진의 병실에 상주하게 했다.
그녀 혼자 24시간 돌본다는 건 불가능했기에 공우혁과 상의해 의료진들을 유동적으로 교대할 수 있게 부탁했다.
그 외에는 하석준 팀장이 다빈치 수술 일정을 잡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태수와 정민수는 박성민에게 상황을 모두 설명하고 화이트엔젤의 소회의실에 자리하고 있었다.
뜻밖에도 김혁권 역시 그 자리에 같이 있었다.
김혁권의 모습에 정민수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혁권 씨는 인도에서 다빈치 수술을 참관만 하셨잖습니까.”
“나도 그렇게 기억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왜 계십니까?”
정민수의 물음에 김혁권이 날카롭게 째려봤다.
“이 닥터가 뭔 소리를 하는 거야? 내가 미국에서 놀다 온 줄 알아요? 아니면 제임스가 날 놀렸겠어?”
“그건 아니겠지요.”
“다빈치 수술? 제임스가 말하길 최단 시간 숙련자라고 하던데. 간호사 중에서는.”
“와우!”
정민수가 진심으로 크게 감탄하자 김혁권이 차갑게 미소 지었다.
“사고뭉치 닥터들이 뭔 짓을 저지를지 몰라서 배워 놓은 것도 있고.”
“역시 혁권 씨가 최곱니다.”
“이제 와 그런 칭찬 하지 않아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고. 그래서 캡틴, 어떻게 하자고요.”
김혁권이 시선을 돌려 묻자 태수는 손을 먼저 움직였다.
팟.
빔 프로젝터를 통해 하얀 벽이 꽉 차도록 씨암 결과가 떠올랐다.
유심히 살펴보던 김혁권의 인상이 팍 일그러졌다.
“이거 해도 해도 너무하는 거 아닙니까?”
“너무한 저 병을 저희가 억제해야 하고요.”
“……그래서요?”
“제가 다빈치 수술을 결정한 건 저 부분 때문입니다.”
태수가 빨간 레이저 포인터로 한 부분을 가리켰다. 그러자 정민수와 김혁권이 그 부분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김혁권은 이해하지 못한 표정이었지만 정민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음, 그러면 가능하지.”
“도대체 뭔데?”
“쉽게 얘기하면, 암세포로 유착된 간과 복막을 떼어 내는 게 1차고요, 두 번째는…….”
정민수가 말을 잇기 전에 태수가 끼어들었다.
“2차 수술은 암으로 가득한 부분을 조금씩 자르는 겁니다.”
“왜 자른다는 겁니까?”
“아직 간이 암에 완전히 잠식되진 않았습니다. 특히 혈관이 연결된 안쪽 말입니다. 그쪽으로 침투해 조금씩 잘라 내면…….”
태수의 말이 끝나기 전에 이번에는 정민수가 끼어들었다.
“간 내부에서 출혈이 나겠죠. 간은 그 부분을 회복하려고 계속 활동을 할 겁니다. 그렇게 간이 활동할 틈을 만들어 주자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지금보다는 아주 조금이라도 간의 활동 범위가 넓어지니까 출혈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겠죠. 물론 고통도요.”
정민수가 대답하자 태수가 이어서 말했다.
“그 외에 췌장과 위장에 전이되어 달라붙은 암세포도 잘라 낼 겁니다. 그렇게 각 장기를 떼어 놓는 게 목표고요.”
“그러니까 하나로 뭉쳐 있는 걸 따로따로 떼서 조금이라도 활동을 할 수 있게 하겠다는 겁니까?”
“바로 그겁니다.”
태수가 고개를 크게 끄덕거리자 김혁권이 눈을 굴리며 물었다.
“그럼 수술 도구를 엄청나게 교체해야겠네.”
“좀 고생하시겠죠.”
“그럽시다. 언제는 고생하지 않은 수술이 있었나.”
김혁권이 투덜거리자 정민수가 슬쩍 지분거렸다.
“저도 이번 수술은 어시스던트하기 엄청 까다로울 겁니다. 절 보면서 위안 삼으세요.”
“그럽시다. 별로 위안은 되지 않지만.”
“왜 또 그러십니까?”
“어리광은 나중에 닥터 김에게나 부리고. 자, 이제 궁금한 거 풀렸으니까 진행해요.”
김혁권의 말에 태수가 묵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와 동시에 장난기 다분하던 정민수의 표정도 딱딱하게 변했다.
그때였다.
끼익.
문이 열리며 서영우와 노지연 간호사가 들어왔다.
“아직 시작 안 했지?”
“참여하십니까?”
“당연히 해야지. 난 다빈치 수술이 그렇게 익숙하지 않다고.”
서영우가 얼른 자리를 잡고 앉으며 말하자 김혁권이 김샌 얼굴로 쳐다봤다.
“이제 막 열 오르려고 하는데. 닥터 서, 때 좀 맞춰서 들어오시지.”
“날 빼놓고 시작하려고 하시니까 벌 받는 겁니다.”
“그렇다고 칩시다.”
“감사합니다.”
서영우와 김혁권은 서로 예의 바르게 정곡을 찔렀다.
비슷한 연배라 오히려 쉽게 대화가 됐다.
탁.
태수가 가볍게 테이블을 내리치자 부산해진 분위기가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다들 굳은 눈빛으로 바라본 순간 태수가 나지막이 말했다.
“회의 시작합니다.”
“네!”
모두의 대답이 울려 퍼진 순간 날카롭고 서늘한 분위기 속에서 회의가 시작되었다.
회의는 정신없이 진행됐다.
어느새 다들 웃옷을 벗어 던지고 갖가지 자료들을 뒤적였다.
단순히 이렇게 수술을 할 거라고 통보하는 게 전부가 아니었다.
수술이 어떻게 진행되고, 그때그때 어떤 위치에서 어떻게 보조해야 하는지도 끊임없이 대화했다.
특히나 다빈치 수술에 익숙하지 않은 서영우와 노지연 간호사에게 많은 걸 이야기했다.
전체적인 마취 방법은 같겠지만 좀 더 신경 써야 하는 부분들이 있었다.
그걸 서영우와 노지연 간호사도 제대로 알아듣고, 또 필기하며 이해하려 노력했다.
중간에 공우혁이 들어오자 현재 김현진의 상태를 말해 주고, 이후 회복 과정에 대해서도 같이 상의했다.
심각하게 이어지던 회의는 새벽 3시가 되어서야 겨우 끝이 났다.
탁.
먼저 노트를 덮은 태수가 모두에게 말했다.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아후.”
다들 앓는 소리를 내며 팔을 돌리거나 허리를 폈다. 그러나 노트를 덮은 의료진은 아무도 없었다.
회의의 끝은 잠시 쉬는 시간일 뿐이었다.
한숨 돌리고 나서 다시 수술의 시작부터 끝까지 되짚어 봐야 했다.
특히나 서영우와 노지연 간호사는 다빈치 수술에 익숙하지 않기에 더더욱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다.
정민수와 김혁권, 그리고 공우혁도 각자의 역할을 한 번 더 확인하기 시작했다.
회의는 끝이 났는데 여전히 이어지는 분위기였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태수는 지체하지 않고 회의 책상을 손으로 내리쳤다.
딱!
“회의 끝났습니다.”
“알아.”
대충 대답한 서영우가 노트로 시선을 돌리려 하자 태수가 이어서 말했다.
“이렇게 밤새우실 겁니까? 수술 준비하셔야지요.”
“…….”
“저도 이 회의로는 부족하단 건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지금 끝냈는지는 다들 아실 거 아닙니까.”
태수가 재차 낮게 다그쳐 말했다.
태수의 말대로 지금 회의를 끝낸 이유를 모두가 알고 있었다. 최소한의 수면 시간과 휴식 이 필요했다.
물론 지금 휴식이 마음 편할 의료진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사람인 이상 쉬지 않고 계속 달릴 순 없는 노릇이었다.
그걸 강조한 태수의 말이었기에 다들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그때였다.
탁.
김혁권이 노트를 덮고 일어나며 말했다.
“난 먼저 가서 쉽니다. 맨날 집 놔두고 숙직실에서 자네. 이러다가 현미한테 바가지 긁히겠어. 좌우간 이따가 봅시다.”
“저도 ICU에 가 봐야 해서. 그럼 수술 끝난 후에 뵙겠습니다.”
공우혁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게 되자 서영우와 노지연 간호사가 고민하기 시작했다.
태수는 그런 두 사람에게 나지막이 말했다.
“서 선생님, 노 간호사님, 지금은 쉬어야 할 때입니다.”
“누가 모르냐고. 불안하니까 이러지.”
“그래도 쉬어야죠.”
태수가 재차 말하자 서영우도 결국 고개를 끄덕이며 노트를 덮었다.
“후. 잠이 올지 모르겠지만 일단 누워 보긴 해야지.”
“곧 잠드실 겁니다.”
“해 보고. 일단 오전 10시까지 다시 모이는 거지? 그때 보자고.”
서영우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노지연 간호사도 더 말하지 않고 뒤따랐다.
탁.
문이 닫히고 나자 태수와 정민수만이 회의실에 남았다.
두 사람은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잠시 후, 태수와 정민수는 건물 옥상에 따뜻한 커피를 들고 서 있었다.
태수가 커피를 한 모금 마시는 사이 정민수가 말했다.
“야경 죽인다.”
“그러게.”
“죽이는데, 진짜 멋있는데…….”
“왜 그렇게 감성적이야?”
태수가 묻자 정민수가 종이컵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저렇게 화려하고 아름다운 야경 속에서도 누군가는 죽어 갈 거니까. 그게 이상하게 슬픈 새벽이네.”
“쓸데없이 감성적이긴.”
“넌 그런 생각 한 적 없어?”
“없진 않지. 그런데 이건 확실히 알고 있어. 사람은 누구나 때가 되면 이별을 해야 한다는 거.”
태수의 말에 정민수의 한쪽 입꼬리가 살짝 말려 올라갔다.
“그래. 언젠가는 이별을 해야지. 그런데 그런 관점으로 보면 우리가 왜 이런 일을 하고 있느냐는 말이지?”
“물론 있지. 최소한 부적절한 이유로 이별하면 안 되니까.”
“그런가. 그래, 그렇지. 사고나 몹쓸 병으로 말도 안 되는 이별은 피해야 하지.”
정민수의 작은 목소리에 태수가 목소리를 높였다.
“그리고 어쩔 수 없다면…….”
“없다면?”
“아름답게 이별할 수 있게 도와주는 거겠지.”
태수가 나지막이 말하자 정민수는 야경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름다운 이별이라. 그러네. 그 말이 맞아.”
“이번에도 그렇게 해야 하고.”
“…….”
“우리뿐만이 아니라 다들 알고 있는 일이기도 하고.”
태수의 말에 정민수의 눈썹 끝이 축 내려갔다.
“알고 있지. 하나 묻자. 수술 후에 얼마나 견딜 수 있을까?”
“그건 본인 의지가 제일 중요하잖아. 회복 과정을 어떻게 이겨 내느냐도 관건이겠고.”
태수의 기본적인 예상에 정민수가 우려가 그득한 질문을 던졌다.
“원하는 결과가 나오면 마지막 무대는 잘 마무리될 수 있을까?”
“그건 아무도 모르지.”
태수의 말에 정민수가 빈손으로 난간을 꽉 쥐었다.
“좀 화난다.”
“갑자기 왜?”
태수가 고개를 돌리자 정민수가 씹어뱉듯이 말했다.
“열심히 살았는데 그 끝이 왜 저래야 하는데.”
“…….”
“누구는 숨만 쉬어도 돈 번다며. 또 누구는 서류에 사인 몇 개만 해도 떵떵거리며 산다며. 그런데 왜 일평생 고생만 해 온 사람의 끝이 저 모양이어야 하냐고.”
정민수의 목소리에 짜증이 가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