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1829
01832 1832화
복막염의 무서움을 모를 리가 없었다. 단시간에 모든 내장을 염증으로 물들여 손을 쓸 수 없게 만들어 버린다.
거기에 복수가 차오르면?
생각하기도 싫었다.
정민수만큼 태수도 놀라고 있었다.
왜 이런 증상을 가진 아기가 이제야 찾아온 걸까?
하지만 그걸 생각할 시간은 많지 않았다.
태수는 재빨리 김혁권에게 말했다.
“수술실에 있는 아기는 진료실로 옮겨 주세요. 그리고 서 선생님한테 킵 해 달라고 하시고요.”
“바로 갑니다.”
타다닥.
김혁권이 재빨리 움직이자 태수는 정민수에게 말했다.
“너도 애 데리고 같이 들어가. 몸부터 식히는 거 잊지 말고, 준비되면 바로 마취 진행해.”
“넌?”
“바로 들어갈게.”
태수가 비장한 목소리로 말하자 정민수가 고개를 끄덕인 후 아기와 함께 김혁권을 따라 임시 수술실로 들어갔다.
의료진들의 부산함에 아기 엄마의 눈빛이 거칠게 흔들렸다.
혹시나 하는 마음이 역시나가 되니 마음이 철렁 내려앉은 모양이었다.
태수는 그녀에게 다가가 낮고 강한 목소리로 물었다.
“왜, 왜 지금 온 겁니까!”
“내 아기, 아기는요? 어, 어떤 상태인가요? 왜 데려가는 건가요?”
“수술해야 하니까요. 왜 대피소로 오지 않고 의료진들에게 보이지 않았는지부터 말씀하세요.”
태수는 보호자에게 윽박을 질렀다.
평소라면 생각지도 못할 모습이지만 이건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었다.
수술 준비가 끝나려면 약간의 시간이 필요하기에 그사이 태수는 이유부터 들으려고 했다.
그때 흑인 여자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발악하듯 소리쳤다.
“나도 데리고 오고 싶었어요! 나도 데려오려고 했다고요! 흑!”
“…….”
“아가…… 미안해. 아가…….”
그녀는 정신이 혼미한지 털썩 주저앉아 흐느껴 울었다.
지금은 더 자극하면 안 될 것 같았다.
태수의 시선은 그녀가 아닌 엔드류 델타 팀장에게 향했다.
“팀장님, 하실 말씀 없으십니까?”
“…….”
엔드류 델타 팀장이 침묵하자 태수 말이 많아졌다.
“이분이 오셨을 때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이 사정을 알고 계셨단 이야긴데, 제 예상이 틀립니까?”
“…….”
“팀장님!”
태수가 낮고 강하게 부르자 엔드류 델타 팀장이 입술을 살짝 깨물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었습니다. 팀원들에게 이 여자가 닥터 최와 의료진에게 접근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접근하지 못하게 하다니요?”
“한국 아기를 위해 온 길이었고, 그 목적을 이루는 게 우선이라고 제 임의대로 판단했습니다.”
“뭐요?”
태수가 놀라 눈을 크게 떴지만 엔드류 델타 팀장의 표정은 오히려 굳어졌다.
“덕분에 아기 수술이 무사히 진행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아기 상태가…… 수술한 아기보다 더 심각하다고 해도요?”
“네.”
그의 대답은 딱딱하면서도 단호했다.
꽈악.
그 대답을 듣는 태수의 주먹이 강하게 쥐어졌다.
지금까지 받은 도움이 없었다면 바로 한 대 쳐 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때 사이먼 기자가 다가와 태수를 만류했다.
“최, 이러면 안 되잖아.”
“…….”
“나도 옆에서 엿듣긴 했는데, 일단 좀 진정하자고.”
그때였다.
벌컥.
임시 수술실 문이 열리더니 서영우가 아기를 안고 나왔다.
“최 팀장.”
“일단 임시 진료소로 가십시오. 그리고 아기 좀 봐주시고요.”
“수술은?”
“선생님보다는 못하지만 저와 민수 모두 마취는 할 수 있습니다. 그 아기의 상태 변화만 신경 써 주세요.”
“……알았어.”
서영우는 두말하지 않고 안고 있는 아기를 데리고 임시 진료소로 들어갔다.
임시 수술실 안에서는 빠르게 준비가 이어지고 있을 터였다.
여기서 대화할 시간이 없었다.
태수가 엔드류 델타 팀장에게 말했다.
“수술부터 끝나고 다시 말씀하시죠.”
“괜찮으시겠습니까?”
“안 괜찮으면 어쩌라고요. 내 할 일 다 했으니까 그냥 모른 체하란 겁니까?”
태수 말이 격해지자 엔드류 델타 팀장이 서둘러 수습에 나섰다.
“그런 뜻은 아닙니다.”
“나중에 뵙죠.”
휙.
태수가 차갑게 돌아섰지만 엔드류 델타 팀장은 눈빛 하나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지금도, 아니 언제까지고 자신의 행동이 옳다고 믿을 터였다.
태수는 더 이상 그와 대화하지 않았다.
지금은 어떤 대화도 시간을 낭비하는 꼴이었다.
돌아서려던 태수가 멈칫하더니 주저앉아 울고 있는 여자에게 시선을 돌렸다.
스윽.
자세를 낮춘 그는 얼굴을 가리고 흐느끼고 있는 여자에게 미안함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사과했다.
“미안합니다. 몰랐습니다.”
“흑흑.”
“어떤 상황인지 아직 모릅니다. 늦었을지도…….”
“허윽!”
“하지만 절대 먼저 포기하진 않겠습니다. 죄송합니다.”
태수는 여전히 얼굴을 가리고 있는 그녀에게 깊숙이 고개 숙여 미안함을 전달하고야 자리를 떠났다.
촉각을 다투는 응급환자, 더구나 아직 약한 아기였다.
재차 사과할 시간이라면 차라리 수술실에 빨리 들어가는 게 그녀와 아기를 위한 일이었다.
다시 엔드류 델타 팀장에게 향한 태수의 눈빛이 따가웠다.
눈치를 보던 사이먼 기자가 얼른 다가와 태수를 달랬다.
“군인들 머릿속에는 1하고 0밖에 없어. 컴퓨터랑 다를 게 없다고.”
“됐고, 가자.”
“나? 난 왜?”
“엠부백 짜야지.”
“헉! 그건…….”
사이먼 기자가 놀라 기겁할 때였다.
턱.
태수는 사이먼 기자의 팔을 붙잡고 거침없이 임시 수술실로 들어갔다.
얼떨결에 끌려가게 된 사이먼 기자가 바락바락 소리쳤다.
“난 아니야! 난 의사가 아니라고. 간호사도 아니라니까!”
“엠부백 잘 짜는 종군기자란 거 알고 있어.”
“야, 이 나쁜 자식아! 마른하늘에 날벼락 맞을 놈아!”
“시끄러워. 빨리 와.”
태수는 사이먼 기자의 악담에도 개의치 않고 임시 수술실로 끌고 갔다.
곧 태수는 사이먼 기자와 임시 수술실로 들어갔다.
아기 우는 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삑, 삑.
ECG의 소리만이 임시 수술실을 울리고 있었다.
태수의 등장을 본 정민수가 빠르게 말했다.
“일단 마취했어. 근이완제도 투여했고, 항생제하고 리도카인까지.”
“수술 시작까지 얼마나 남았지?”
“3분 정도.”
“수술 가운부터 입자.”
태수는 정민수의 옆으로 걸어갔다.
혼자 멍하니 서 있는 사이먼 기자를 김혁권이 불렀다.
“사이먼, 뭐 해?”
“네?”
“왔으면 짜.”
숙, 숙.
김혁권은 지금 아기의 호흡을 돕는 엠부백을 쥐고 있었다. 그 역할을 대신할 사이먼 기자가 왔으니 부르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사이먼 기자의 입장은 그렇지 못했다.
“뭐 이렇게 자연스럽습니까?”
“여기 들어온 건 돕겠다는 뜻이잖아.”
“제가 자의적으로 들어온 건 아니란 말입니다.”
“그래서?”
김혁권이 따가운 눈빛으로 쳐다보자 사이먼 기자는 할 말이 없었다.
어찌 되었든 임시 수술실에 들어왔고, 누군가는 엠부백을 담당해야 하는데 적합한 인물은 아무리 둘러봐도 자신밖에 없었다.
사이먼 기자는 곧 모든 걸 내려놓고 엠부백을 규칙적으로 짜기 시작했다.
그사이 정민수가 태수의 수술 가운을 입혀 주었다.
허리끈을 조이던 정민수가 태수에게 물었다.
“어떨까?”
“열어 보기 전엔 몰라.”
“청진기로 살펴본 건 너라고.”
정민수의 말에 태수가 짧게 생각하고 대답했다.
“저 애가 더 위험한 상태겠지.”
“그렇겠지.”
“…….”
태수가 침묵하자 정민수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이어서 물었다.
“만약에, 정말 만약에 두 아이 상태를 동시에 알게 되었다면 어땠을까?”
“…….”
“우리는 누굴 먼저 수술했을까?”
정민수의 물음에 태수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곧 눈빛을 다잡은 태수가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더 위독한 아기 먼저 수술해야지.”
“그렇지?”
“그건 달라질 수 없는 철칙이니까.”
태수의 말에 정민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허리끈을 마저 조였다.
“당연히 그래야지. 자, 됐어.”
“고마워.”
“별말씀을. 그보다 이번 수술도 만만치 않을 거 같은데.”
“지랄. 끝내고 뻗어야지.”
태수가 거칠게 말하자 정민수는 옅게 미소 지었다.
“그래. 젠장. 말끔하게 마무리 짓고 뻗어 버리자고.”
“가자.”
태수가 수술대로 향하자 정민수는 바로 반대편의 어시스던트 자리로 향했다.
태수와 정민수가 제자리에 자리 잡고 섰다.
김혁권은 앞선 수술과 똑같이 수술대 아래쪽에 수술 도구를 넓게 늘어놓고 그곳을 지키고 있었다.
서영우도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아기의 팔에 연결된 IV는 머리 쪽이 아니라 김혁권과 가까운 다리 쪽으로 향해 있었다.
두 의사를 둘러본 김혁권이 먼저 말했다.
“난 준비 끝났습니다.”
그러자 정민수가 시계를 확인하더니 태수에게 말했다.
“됐어.”
“바로 시작하자. 잘 부탁드립니다. 메스.”
태수는 인사마저 간략하게 마무리 짓고 바로 김혁권에게 손을 내밀었다.
맥박과 혈압이 너무 좋지 않은 상황이라 여유롭게 인사할 시간도 부족한 탓이었다.
다들 알기에 이번에는 인사를 생략했다.
그 대신 김혁권은 빠르게 메스를 들어 태수에게 건넸다.
탁.
메스를 받아 든 태수는 아기의 복부를 명치부터 배꼽까지 길게 갈랐다.
피부가 갈라지자 정민수가 우선 썩션과 보비로 흘러나오는 출혈부터 해결했다.
콰륵. 치직.
썩션으로 흡입하고 보비로 지지는 과정이 빠르게 진행됐다.
미미한 출혈들이 사라지자 태수는 발포어(고정형 리트렉터)를 이용해 환부를 넓게 벌렸다.
그러자 곧 문제가 예상되는 복막이 드러났다.
그 순간 태수와 정민수의 눈빛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복막이 하얗게 물들어 있었다.
역시 복막염이었다.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되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민수야, 바로 간다.”
“응.”
정민수가 대답하자 태수는 메스로 복막을 갈랐다.
스르륵.
복막이 갈라지며 쌓여 있던 염증들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정민수는 다시 썩션을 들어 그 염증들을 모두 흡입했다.
복막염이라고 염증만 흘러나오는 건 아니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문제가 되고 있는지 몰라도 출혈도 있었다.
지금은 미미한 수준이라 해도 수혈팩은 꼭 필요했다.
바로 수술실로 들어온 아기라 혈액형도 모른다는 게 문제였다.
태수는 정민수가 염증을 걷어 내는 사이 김혁권에게 말했다.
“혈액형 파악하고 수혈팩부터 요청하세요.”
“이미 다 했습니다.”
“네?”
“여기.”
김혁권은 늘어진 수술 도구 옆에 있는 자그마한 기계를 가리켰다.
이전 수술에서 외부에 있던 사이먼 기자와 연락했던 바로 그 무전기였다.
태수가 놀라 쳐다보자 김혁권이 말했다.
“브랜든한테서 뺏어 뒀죠. 있으면 어떻게든 써먹으니까. 혈액형 파악해서 수혈팩 요청해 놨습니다.”
“역시!”
“그런 거에 일일이 감탄하지 말고.”
김혁권은 공치사 따윈 하지 않고 수더분하게 말했다.
언제나 적재적소에서 필요한 일을 소리 없이 해 주는 김혁권은 고마운 존재였다.
그리고 또 한 명, 정민수도 있었다.
어시스던트란 위치에 국한되지 않고 필요하면 언제든지 자기 목소리를 높이는 그가 있어 든든했다.
서로 의지하며 의료 행위를 했던 시간이 길어서 그런지 그 고마움을 일일이 표현하는 것도 어색할 정도였다.
태수의 기대에 부응하듯이 정민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얼추 걷어 냈어! 이거 장폐색이 장난 아닌데?”
“어디.”
태수는 잡생각을 지우고 바로 환부 내부를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