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1832
01835 1835화
그런 태수의 모습에 정민수가 물었다.
“너 몰래 뭐 먹었냐?”
“미친. 근육빨이다.”
“나도 근육 있는데…….”
“물근육하고 참근육은 다르다고.”
태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서영우가 질책했다.
“말할 시간에 한 땀이라도 더 꿰매. 마무리가 되어야 끝이 날 거 아니냐고.”
“하고 있습니다. 그보다 상태는요?”
“안 좋아.”
“…….”
태수가 입을 다물자 서영우가 이어서 말했다.
“아마 오늘 밤이 고비가 될 거야.”
“음, 너무 무리해서 수술한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 이번에는 이만큼 수술하고 다음에는 저만큼 수술할 건가?”
“그럴 순 없죠.”
“내 말이. 수술이야 어떻게든 끝낼 수 있지만, 아기가 그걸 버텨 주느냐 아니냐가 문제니까.”
서영우의 목소리가 점점 가라앉아 갔다.
그러나 그 말에 누구도 반박할 수 없었다.
옳은 소리였다.
수술은 환자가 어떤 상태든지 진행할 수 있다.
하지만 수술의 난이도가 결정되고, 가능과 불가능을 판단하는 건 바로 환자가 이겨 낼 수 있느냐는 거였다.
사실 이번 수술은 무리한 진행이었다. 의료진들의 체력적인 문제도 그렇고, 환자의 건강 상태도 좋지 않았다.
보통 이런 경우에는 수술을 진행하지 않는 게 정석이었다.
하지만 환자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았다.
복수가 차오르면 그때는 정말 답이 없는 탓이다.
수술을 진행한 건 후회하지 않았다.
문제는 역시 아기가 이 고통의 순간을 이겨 낼 수 있느냔 사실이다.
삶에 대한 애착과 간절함이 가장 중요한 문제일 터였다.
1살이라면 이성적인 생각보다 본능에 충실할 때였다.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의 기본적인 열망은 삶이다.
거기까지 생각한 태수가 서영우에게 말했다.
“이겨 낼 수 있을 거라고 믿어야죠.”
“물론 그거야 그렇지.”
“그러면 그냥 믿는 게 좋은 거 같습니다. 그리고 수술 끝.”
태수가 봉합사를 끊으며 짧고 굵직하게 말했다.
그와 동시에 모두가 이번에도 똑같이 수술대를 향해 깊이 고개 숙였다.
“수고하셨습니다.”
휘청.
단순히 허리를 숙이는 동작임에도 불구하고 태수를 비롯한 모두의 몸이 크게 흔들렸다.
다들 간신히 수술대를 부여잡고 섰다.
넘어지는 꼴사나운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극심한 탈진까지 숨기진 못했다.
어찌 되었든 수술은 끝났다.
다들 개운한 얼굴이어야 하는데 그럴 수가 없었다.
“흠.”
짧게 내쉬는 숨 속에 많은 의미가 담겨 있었다.
그런 의료진들 사이에서 사이먼 기자는 슬쩍 눈치를 보고 있었다.
이 수술의 숨은 공로자는 누가 뭐래도 바로 그였다. 몇 시간이 흘렀는지도 모를 지금까지 엠부백을 놓지 않은 것이다.
그로 인해 팔이 끊어질 것처럼 근육이 부풀어 올라 있었다.
하지만 앓는 소리 한 번 내지 않았다.
아니, 낼 수가 없었다.
지금 이 분위기에서는 손아귀가 찢어질 것 같아도 자신의 아픔을 알리지 못했다.
조금 시간이 지난 후였다.
끼익.
임시 수술실 문이 열리고 태수를 선두로 김혁권과 정민수, 그리고 사이먼 기자가 밖으로 나왔다.
서영우는 아기를 지켜보겠다며 남기로 했다.
태수가 항변하자 서영우는 설득하다 안 돼서 의학 선배라는 강수까지 펼쳐 결국 쫓아냈다.
그런 이유로 서영우를 제외한 모두가 밖으로 나왔다.
거실 내부는 임시 수술실에 다시 들어갈 때와 많이 달라져 있었다.
천장에 달린 전등에 불이 밝혀져 있었고, 밖은 어두컴컴했다.
그때 태수 앞으로 엔드류 델타 팀장과 패드릭이 다가왔다. 패드릭은 아기의 엄마인 흑인 여자를 부축하고 있었다.
그녀는 입술을 꽉 깨문 채 불안하고 초조한 눈빛으로 태수를 바라봤다.
물어보고 싶은 게 산보다 더 높이 쌓였을 터다. 하지만 눈물만 그렁그렁한 채 입을 열지 못했다.
물어보고 싶은 용기보다 두려움이 더 큰 탓이다.
혹시라도 안 좋은 대답이 나올까 두려워 아무것도 묻지 못하는 그 모습에서 두려움과 공포가 가득 느껴졌다.
태수는 그런 그녀에게 비틀거리며 다가갔다.
이내 앞에 선 태수가 천천히 손을 뻗어 두 손으로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가늘게 미소 지었다.
“수술…… 성공했습니다.”
“하으윽.”
그녀는 검은 피부가 누렇게 변할 정도로 긴장했던 마음을 한순간에 풀어 버렸다.
그녀가 휘청거리자 패드릭이 뒤에서 단단하게 받쳤다.
태수는 그런 패드릭에게 눈빛으로 인사하고 다시 흑인 여자를 바라봤다.
아직 놓지 않은 손을 더욱 꽉 잡으며 뒷말을 이어 갔다.
“그런데 좀 더 지켜봐야 합니다.”
“…….”
“오늘 밤만 무사히 넘기면…… 아니, 무사히 넘길 때까지만 좀 지켜봐야 합니다.”
“그, 그게 무슨…….”
정신이 혼미한 그녀의 두 눈이 세차게 떨렸다.
삽시간에 천국에서 지옥으로 떨어지는 기분이 얼굴에 그대로 표현되었다.
태수는 그녀의 손을 여전히 잡은 채 말했다.
“의사가 지켜보고 있습니다. 끝까지 한눈팔지 않고 지켜볼 겁니다.”
“아흐흐.”
“아니요. 아직 울 때가 아닙니다. 울면 안 됩니다.”
태수가 낮고 강하게 말하자 그녀의 눈에 그렁그렁한 눈물이 뚝 떨어지려다 이내 쏙 들어갔다.
태수는 그런 그녀를 향해 더욱 강하게 말했다.
“들어가세요. 들어가서 아기 손을 잡고 응원해 주세요. 아기가 힘을 낼 수 있게 말입니다.”
“그럴게요. 꼭 그럴게요.”
“대신 울면 안 됩니다. 인상을 찌푸려서도 안 됩니다. 부드럽게 말하고 웃으며 지켜봐야 합니다. 가능하시겠습니까?”
끄덕.
그녀가 고개를 빠르고 반복적으로 끄덕였다.
태수는 그런 그녀에게 사과했다.
“미안합니다. 먼저 찾아가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저희가 할 수 있는 게 여기까지라서 면목이 없습니다.”
“…….”
“저희가 부족한 부분을 조금만 도와주세요. 아기가 가장 사랑하고 믿고 의지하는 엄마로서 조금만 힘을 보태 주십시오.”
태수는 흔들리지 않는 눈빛으로 진심을 전했다.
그러자 어안이 벙벙했던 그녀의 눈에 점점 힘이 들어갔다.
꽈악.
그녀는 입술을 악문 채 태수와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 물었던 입술을 서서히 떼며 꽉 막힌 목소리로 속삭이듯이 말했다.
“고마워요.”
“아직 그 인사는 이릅니다.”
“아니에요. 고마워요.”
그녀는 다른 손을 들어 태수의 얼굴을 가볍게 쓸었다.
터진 입술과 충혈된 두 눈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에 눈물이 또다시 맺혔다.
아기에 대한 걱정이 아니었다.
이건 태수와 의료진들을 향한 고마움의 눈물이었다.
이전 수술에 이어 이번 수술로 만신창이가 된 의료진들을 향한 보호자의 위로였다.
고마움을 이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는 미안함과 안타까움도 시선 속에서 느껴졌다.
태수는 그런 그녀를 향해 옅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들어가 보세요.”
“네.”
그녀는 짧게 대답하고 부스스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이미 천국과 지옥을 넘나든 충격이 남아 있어 기운을 차리지 못했다.
태수는 패드릭에게 눈짓했다.
끄덕.
고개만 끄덕인 패드릭이 그녀를 부축해 같이 임시 수술실로 들어갔다.
그러고 나서야 태수와 의료진들은 자유가 되었다.
그 말은 곧 긴장이 풀렸단 뜻과도 같았다.
털썩.
태수를 비롯한 정민수와 김혁권이 동시에 바닥에 주저앉았다.
“하.”
한숨이 절로 쉬어졌다.
그때 지켜보던 엔드류 델타 팀장이 태수에게 조심스럽게 권했다.
“위로 올라갈 수 있게 도와 드리겠습니다.”
그의 사인에 뒤에 서서 대기 중이던 팀원들이 천천히 다가왔다.
턱.
그들이 양쪽에서 부축하며 태수와 정민수, 김혁권을 일으켰다. 사이먼 기자는 2층으로 올라갈 인원이 아니라서 제외했다.
델타 팀원들의 손에 이끌려 2층으로 향하기 직전이었다. 태수가 갈라져 얇게 피가 흐르는 입술로 말했다.
“잠깐만요, 잠깐만.”
“…….”
델타 팀원들이 멈추자 태수가 슬쩍 시선을 돌려 엔드류 델타 팀장에게 물었다.
“뭐 하실 말씀 없습니까?”
“없습니다.”
“끝까지 미안하지 않으십니까?”
태수가 수술 전에 보였던 분노를 다시 내보였다. 그러나 극도로 지친 상태여서 몸을 격하게 움직이진 못했다.
반대로 눈빛은 더욱 날카롭고 흉흉했다.
그러나 엔드류 델타 팀장은 그런 태수를 바라보며 나지막이 대답했다.
“어떤 비난도 감수하겠습니다.”
“입장이 다른 건 이해합니다. 하지만 어떤 상황이라도 생명의 무게를 저울질하면 안 되는 겁니다.”
“…….”
침묵하는 엔드류 델타 팀장에게 태수가 인상을 썼다.
“그래서 이번 일은 솔직히 화가 납니다.”
“저도…… 그러실 거라고는 생각했습니다.”
엔드류 델타 팀장이 어렵게 말하자 태수는 옅게 미소 지었다. 그에게 화를 내기에는 고마운 일이 너무도 많았다.
그리고 어떤 고생을 했든지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아직 아기 상태는 좋지 않지만, 화를 낸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태수가 어색하게나마 웃을 수 있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태수는 그렇게 옅게 미소 지은 채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그거면 됐습니다. 화를 내기에는 솔직히 너무 힘들어서요.”
“일어나시면 그때 다시 화를 내십시오.”
“제 기억력이 좋지 않아서요. 이미 지난 일에는 미련을 두지 않는 편입니다.”
“음.”
“그런데 혹시 다른 정보를 숨긴 게 있으십니까?”
태수의 물음에 엔드류 델타 팀장이 고개를 저었다.
“없습니다.”
“지금 솔직히 말씀하세요.”
“진짜 없습니다.”
“알겠습니다. 추후에 같은 문제가 일어나지 않길 바랍니다. 그땐 저도 정말 화가 날 거 같으니까요.”
태수는 거기까지 말하고 부축하는 델타 팀원들에게 눈짓했다.
그런데 팀원들은 쉽게 움직이지 못했다. 엔드류 델타 팀장과 의미 깊은 대화가 오가는 중이라 눈치를 봤다.
그런 그들을 향해 엔드류 델타 팀장이 입을 열었다.
“모시고 올라가.”
“썰.”
짧게 대답한 그들은 조심스럽게 태수와 정민수, 김혁권을 부축해 위로 올라갔다.
잠시 후.
2층에 설치된 텐트 속에 세 사람이 누워 있었다.
일어날 힘?
아니, 손을 뻗을 힘도 없었다.
“…….”
“…….”
침묵만이 가득한 순간이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텐트 속에서 정민수의 목소리가 자그맣게 울렸다.
“중간에 일어나야 되겠지?”
“아무래도.”
“일어날 수 있어야 할 텐데.”
걱정 가득한 목소리였다.
너무 피곤한 상태라서 꼭 일어날 수 있을 거라 장담하기 힘들었다.
그건 정민수가 나약하다고 말할 게 아니었다.
사실 태수도 자신이 없었다.
“…….”
“…….”
태수와 김혁권도 쉽게 답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런지 텐트 속 침묵이 너무도 무겁게 느껴졌다.
당장 지금도 눈꺼풀이 무거워서 견디기 어려웠다. 그러니 몇 시간 자고 일어나야 한다는 사실이 심적인 부담감이 아닌 압박으로 다가왔다.
그러던 중이었다.
띠릭.
무전기 소리가 들리자 태수가 눈만 깜빡이며 물었다.
“어디서 무전기 소리가…….”
“아, 납니다. 내가 가지고 있었어요.”
“누군데요?”
“기다려 봐요. 소리 좀 키우고.”
김혁권의 가라앉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곧 무전기로 대화하는 소리로 이어졌다.
“누구십니까?”
-띠릭. 저 서영우입니다.
그 소리에 태수는 몸이 가볍게 경직됐다.
혹시 또?
문제가 있다면 다시 일어나 내려가야 한다.
천근만근 무거운 몸도 환자의 상태가 좋지 않다면 무시해야 한다.
“후욱, 후욱.”
옆에서 정민수의 긴장된 숨소리도 들려왔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같은 생각임이 틀림없었다.
그렇게 두 사람이 긴장하는 사이 김혁권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왜요, 무슨 일인데?”
-띠릭. 아기가.
“아이가 왜요!”
김혁권의 목소리가 바짝 긴장된 채 높아졌다.
“끄응!”
앓는 소리와 함께 태수는 몸을 반쯤 일으켰다. 그 옆에선 정민수가 부스럭거리는 소리도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