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2052
02055 2055화
태수는 무전기를 들고 오민석 기장을 호출했다.
“최태수입니다, 오민석 기장님.”
-띠릭. 그쪽으로 갑니까?
“아니요. 지금부터 사고 현장 내 모든 헬기를 상판 환자 이송에 집중해 주십시오.”
-띠릭. ……알겠습니다.
오민석 기장의 반응이 약간 늦었다.
그도 뭔가 짐작한 느낌이었다.
가장 처음 태수와 도성민에게 상판이 가라앉는단 말을 한 게 바로 그였기에 직감했을 터였다.
태수가 바쁜 사이 정민수도 무전기를 들고 오더를 내렸다.
“서쪽과 남쪽으로 이송 수단을 집중했으니 응급 환자 순서대로 차근차근 뭍으로 이송 바랍니다.”
-띠릭. 나 공우혁이야. 갑자기 왜 우리 쪽으로 쏠리는 건데?
“여기 상황 빨리 정리해야 우리도 좀 쉬죠. 그리고 헬기도 각 구역으로 계속 날아들 겁니다. 그것도 유동적으로 진행해 주십시오.”
정민수가 애써 포장해 무전했다.
그러자 곧 무전기가 울렸다.
-띠릭. 소지훈입니다. 정 선생, 여기 북쪽은 왜 지원하지 않는 건데? 이쪽도 상황이 좋지 않아.
“그…….”
정민수가 무전기를 들려 하자 태수가 손을 뻗어 막았다.
그리고 자신이 직접 의료용 무전기를 들고 말했다.
“소 선배, 저 태수입니다. 곧 유람선이 출발한답니다. 북쪽 환자분들은 동쪽으로 이동시켜 주십시오.”
-띠릭. 이 많은 분들을 우리끼리?
“구조대원분들이 그쪽으로 갈 겁니다. 그리고 유람선에도 지원할 인원이 있답니다. 조금만 버텨 주세요.”
-띠릭. 알았어. 그런데 최 팀장, 아까부터 바닥이 계속 가라앉는 느낌이야. 물도 점점 차오르고.
소지훈의 말이 끝나자 공우혁의 무전 소리가 이어서 들려왔다.
-띠릭. 나 공우혁이야. 여기 서쪽 상황도 그래.
“…….”
태수가 바로 무전하지 못하고 정민수, 홍정규 대원과 시선을 마주쳤다.
고민하던 그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바보가 아닌 이상 현 상황을 유야무야 넘어갈 순 없었다.
눈 가리고 아웅도 정도가 있다.
알아야 할 사람은 알고 있어야 한다.
결심한 태수가 나지막이 말했다.
“이 무전 소리가 들리는 모든 분들은 잠깐 조용한 곳으로 이동해 주십시오. 그리고 소리도 좀 줄여 주시고요. 중요한 문제입니다.”
잠깐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리고 곧 다시금 무전 소리가 들려왔다.
-띠릭. 말해.
-띠릭. 말씀하십시오.
몇몇 무전이 더 이어지자 태수가 무전기 버튼을 눌렀다.
“동요 없이 들으십시오. 상판이 가라앉는 중입니다.”
-…….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모릅니다. 이송 수단을 서쪽과 남쪽으로 편중시킨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결국 알렸다.
의료진은 물론 구급대원들도 알고 있어야 했다.
그들이 동요할진 미지수였다.
하지만 태수는 믿었다.
응급의료대와 화이트엔젤, 그리고 구조대원들의 정신력을 의심하지 않았다.
곧 무전기에서 반응이 왔다.
-띠릭. 공우혁입니다. 서쪽 확인. 오더대로 진행할게.
-띠릭. 북쪽도 확인.
-띠릭. 남쪽도 확인했습니다.
그 말이 끝이었다.
태수는 고개를 들어 멀리 둘러봤다.
의료진들이 움직이고 있다.
하지만 다급하고 정신없는 모습은 아니었다.
그런 모습만으로도 동요를 최소한으로 억누르고 있단 걸 짐작할 수 있었다.
어려운 일일 터였다.
이 상황에 무섭지 않을 의료진은 없었다.
그러나 그들 앞엔 환자가 있다.
그 하나의 이유로 그들은 동요하지 않고 침착하게 오더를 하나씩 이행했다.
그 정신력에 태수는 마음이 먹먹해져 왔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빠라밤.
하석준 팀장의 전화였다. 그도 의료진과 함께 무전을 듣는 입장이었다.
태수는 바로 받아 들었다.
“네, 팀장님.”
“사실이야?”
“네, 사실입니다.”
“이런! 이쪽에서는 뭘 어떻게 해야 해?”
하석준 팀장의 목소리가 다급해졌다.
당장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생각하던 태수가 눈빛을 반짝였다.
“거기 의사들이 많이 늘었죠?”
“그렇다니까.”
“그럼 화이트엔젤은 강변으로 내려가 주십시오. 거기서 환자 상태 보시고 응급수술을 하든 이송을 하든 혼란을 줄여 주십시오.”
“그 정도는 가능해. 바로 준비해서 움직일게.”
“부탁합니다.”
“위험……. 아니야. 나한테 소주 얻어먹으려면 부지런히 움직여.”
뚝.
하석준 팀장이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그의 마지막 말은 협박이다.
무사히 빠져나오란 의미의 협박.
위험을 강조해 봐야 소용없을 걸 알고 에둘러 말했다.
태수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휴대폰을 가볍게 쥐었다.
“팀장님이 사 주시는 소주는 꼭 마셔야죠.”
중얼거린 태수는 눈빛이 번들거렸다.
그런 상황도 잠시, 물웅덩이가 어느새 운동화 밑창 위까지 올라왔다.
상의하고 결론을 내는 데 소모된 시간은 5분도 되지 않았다.
그런데 수면이 최소 3센티미터 이상 올라왔다.
아주 적은 수치일지 모른다.
태수와 정민수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러나 최선범 잠수대원의 표정은 급격히 어두워졌다.
“빨리 움직여야 합니다. 빨리요!”
“네?”
“허벅지, 아니 허리! 그래요. 물이 허리까지 차오르면 위험해집니다. 가슴까지 차오르면 그땐 끝이고요!”
그의 격한 목소리에 태수의 눈빛이 가늘게 흔들렸다.
이 속도라면?
정말 시간이 별로 없었다.
“그걸 왜 이제 말해요!”
“저라고 이렇게 빨리 차오를 줄 알았겠습니까?”
“이런! ……죄송합니다. 이제 진짜 시간 없으니까 저희 먼저 가겠습니다.”
“얼른 가 보세요. 전 한 번 더 물속에서 상황 파악하고 연락드리겠습니다.”
그 소리에 돌아서려던 태수가 멈칫했다.
“조심하세요. 말려 들어가면 끝이라면서요.”
“내가 잠수 경력이 몇 년인데 주의를 주십니까?”
“사고는 바로 그 ‘난 괜찮다.’란 생각에서 비롯됩니다. 진짭니다.”
“바쁘다면서 잔소리는.”
“할 만하니까 하잖아요. 조금이라도 위험하면 바로 도망치세요. 약속하신 겁니다.”
태수가 재촉하자 최선범 대원이 어이없다는 듯 바라봤다.
“알았습니다. 알았다고요.”
“그럼 갑니다. 민수야, 가자!”
타다닥.
태수와 정민수가 빠르게 동쪽 끝으로 향했다.
그때였다.
“……그래. 그렇게 진행하고 있어. 금방 갈게.”
무전을 마친 홍정규 대원이 무전기를 빙글빙글 돌리며 최선범 대원 옆으로 다가섰다.
“어때요? 내 말이 맞죠?”
“그러게 말이야. 나도 최 팀장 소문은 익히 들었는데, 이 와중에도 신경 써 주네.”
“신경만 써 줍니까? 나중에 찾아오라고 할 겁니다. 차 마시러 오란 핑계로 온몸을 아주 샅샅이 살펴봐 줄 겁니다.”
“그럼 잠수할 맛이 나지. 그보다 바쁘지 않아?”
최선범 대원이 묻자 홍정규 대원이 무전기를 거칠게 허리춤에 꽂았다.
“저도 가야죠. 애들만 뺑이 치게 둘 순 없으니까. 그럼 형님, 안전!”
“그래. 너도 안전! 무사히 보자.”
“이 양반이 재수 없게. 얼른 가 버려요. 나도 갑니다!”
홍정규 대원은 거칠게 핀잔을 주며 남쪽으로 달렸다.
가장 먼 거리였기에 서두르는 모양이었다.
투박한 인사를 마친 최선범 대원도 내려 둔 잠수 장비를 들었다.
조심하라는 태수의 걱정이 잠깐 귓가에 울렸다.
어느새 저쪽에 도착해 환자를 신경 쓰는 태수를 보며 최선범 대원이 옅게 미소 지었다.
“……쓸데없는 오지랖은.”
중얼거림을 마친 후였다.
상판 끝 난간에 서서 잠수 장비를 착용한 그는 한치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한강으로 뛰어들었다.
한편, 태수는 정민수와 함께 동쪽 끝에 도착했다.
아직 많은 환자들이 고통스런 표정으로 누워 있었다.
더 안 좋은 건 물은 점점 차오르고 있단 사실이다.
몸을 가누지 못하는 환자들이 대부분이기에 그들의 등과 머리카락이 조금씩 물에 잠기고 있었다.
물론 의료진들이라고 넋 놓고 쳐다보는 건 아니었다.
“그 환자분부터 이쪽으로 이동해.”
“거기 뭐 하나! 둘이 안 되면 셋이 하란 말이야.”
“환자분들의 부담을 줄여라. 그리고 너희들은 무쇠로 만든 인간들인줄 알아? 힘을 적당히 분배하란 말이야.”
여기저기에서 서로를 재촉하고 또 독려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렇게 움직이며 환자들이 조금이라도 물에 덜 젖게 노력하고 있었다.
곧 북쪽에서도 의료진들과 구급대원들이 환자와 함께 이동해 왔다.
들고 또 들것에 싣고.
그리고 움직일 수 있는 환자가 더 상황이 좋지 않은 환자를 부축해 오기도 했다.
조금 상태가 좋은 환자는 등에 업고 오는 모습도 보였다.
투다다다!
하늘에선 헬기가 수도 없이 오갔다.
민간 헬기부터 구조 헬기, 경찰 헬기, 소방 헬기까지.
모든 종류의 헬기들이 가까운 강변과 상판을 끊임없이 오가며 환자를 이송했다.
저 멀리 보트와 요트들도 바지런히 움직였다.
하늘에 떠 있는 방송 헬기들이 그 모습을 놓칠 리 없었다.
-구조 작업이 활기를 띠는 가운데 상판 위가 부산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헬기들이 계속 환자를 이송하는 걸 보아 상판 상황부터 정리할 계획으로 보입니다.
-유람선이 접근하고 있고, 충효종합병원에서도 두 팔을 걷어붙이고 지원에 나섰습니다.
아직 정확한 상황을 모르던 헬기 속 기자들이 보이는 부분에만 치중해 보도했다.
SNS에서도 난리였다.
-이야, 이제 좀 뭔가 제대로 돌아가나 보네.
-최태수 팀장님이 확실히 다르긴 달라.
-아까 다리 위쪽에 사람들 달려드는 거 봤어? 진짜 짜릿했다니까.
-저기 지원금이라도 보내 줄 방법이 없나? 계좌번호는 이럴 때 좀 써먹으라고.
다들 내막을 몰라 좋은 소리만 가득했다.
그런 반면 동쪽 상판 위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단순히 이송만 준비한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그동안 시간이 많이 지나 있었다. 그만큼 악화된 상처로 인해 이젠 응급수술을 해야 하는 환자들도 많이 늘었다.
북쪽에선 계속 환자가 도착하는 중이었다.
태수와 정민수는 가까운 환자부터 현재 상황을 다시 확인했다.
그들뿐만이 아니라 박성민, 도성민, 유병태, 서영우도 발 빠르게 움직였다.
간호사들도 마찬가지였고, 홍진만을 비롯한 다른 응급의료대 팀원들도 정신이 없었다.
“이 환자분은 상태가 악화됐습니다!”
“다시 파악하고 종이에 적어 놔.”
“그래도 이동 시간이 있는데요.”
“정 급하면 유람선에서 응급수술 들어가야지.”
“알겠습니다. 대비해 놓겠습니다.”
곳곳에서 목소리가 시끄럽게 울렸다.
의도하진 않았지만 북쪽과 동쪽 의료진은 응급의료대가 대부분이었다.
화이트엔젤은 남쪽과 서쪽에 치중되어 환자를 돌보고 있었다.
중간중간 무전도 들려왔다.
-띠릭. 서쪽 공우혁이야. 이쪽은 이송에 속도가 나고 있어.
-띠릭. 남쪽입니다. 환자들이 많이 뭍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태수는 그 소식을 들은 후 바로 추가 오더를 했다.
“서쪽과 남쪽 의료진은 응급 환자가 있으면 같이 뭍으로 향합니다. 이후 환자가 일정 부분 이상 빠지면 의료진도 같이 철수합니다.”
-띠릭. 그럼 동쪽은 어쩌고?
“이쪽은 추가 인원이 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홍정규 대원!”
태수가 찾자 홍정규 대원의 목소리가 바로 들려왔다.
-띠릭. 말해요.
“구조대원도 군인도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현 위치 상황이 마무리되면 모두 같이 탈출하십시오.”
-띠릭. 됐습니다. 내 생전 요구조자를 남겨 놓고 철수했단 구조대원이 있단 소리를 들어 본 역사가 없습니다.
“여기 상황이 훨씬 좋다니까요. 고집 부리실 때가 아닙니다.”
-띠릭. 그건 내가 알아서 잘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시고, 그쪽 상황에나 신경 써요.
그 말로 그의 무전이 끝났다.
태수는 조용해진 무전기를 내려다보며 결국 한마디 쏘아붙였다.
“하여간 고집불통!”
“버튼 누르고 소리쳐야 들리지. 그렇게 허공에 소리친다고 저기 남쪽까지 들리겠냐?”
박성민이 옆에서 슬그머니 딴지를 걸자 기다렸다는 듯이 김혁권이 바로 태수 대신 응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