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2109
02112 2112화
그 생각을 하던 중이었다.
턱.
갈색 소독약이 가득 묻은 검은 손이 갈라진 살의 위아래를 잡았다.
제이의 손이다.
태수는 그를 쳐다보지 않고 말했다.
“비켜. 방해돼.”
“끙!”
제이는 대답하지 않고 앓는 소리를 냈다.
환부가 서서히 양쪽으로 벌어졌다.
벌리기만 하면 돼서 그런지 태수가 한 손으로 힘을 줄 때보다 훨씬 많이 벌어졌다.
살이 약간 찢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도 개의치 않고 더욱 벌리려 용을 쓰고 있었다.
제이가 마음을 굳힌 모양이다.
그런 느낌이 왔지만 태수는 그래도 그의 얼굴을 보지 않았다.
환자에게만 집중할 때였다.
태수는 그렇게 넓게 벌어진 사이로 소형 플래시를 비춰 봤다.
팟!
작지만 강한 빛을 뿜어내기에 그 속이 훤히 보였다.
하지만 태수의 눈에 보이는 건 일부였다.
태수는 개의치 않고 최대한 자세히 살폈다.
특히 간과 출혈 위치를 파악하려 노력했다.
둘러보던 태수의 미간이 좁혀졌다.
출혈 위치는 안쪽인지 찾을 수 없었다.
지금 확인할 수 있는 건 간이 많이 비대해졌고, 혈액순환이 제대로 되지 않아 고유의 색을 잃어 간다는 거였다.
개복하기 전에는 더 이상 확인이 불가능했다.
아니, 방법이 있었다.
태수는 거침없이 에디의 복부 속으로 손을 밀어 넣었다.
그리고 간을 전체적으로 조심스럽게 더듬었다.
먼저 드는 느낌은?
차다.
보통 간의 온도에 비해 상당히 낮았다.
태수는 차가움을 느끼며 손을 더 안쪽으로 집어넣었다.
이어서 위장, 십이지장, 췌장도 하나씩 손끝에 닿았다.
그 느낌을 토대로 머릿속에 그림을 그렸다.
‘이쯤이고, 위치는 여기고.’
그림을 그리는 사이 출혈 부위도 찾았다.
간 아래쪽이다.
오른간엽과 왼간엽 사이에 있는 Falciform Ligament(낫인대) 주변이었다.
간문맥이 문제가 됐을지 모른단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멈칫한 태수가 곧 고개를 저었다.
간이 찢어져 출혈이 있는 거지, 간문맥에서 발생했다고 확신할 수 없었다.
간에는 총 3개의 혈관이 흐른다.
간동맥, 간정맥, 간문맥,
아니, 그 외에 다른 혈관들도 있었다.
바로 간 속에 있는 자잘한 혈관들이었다.
특정 혈관의 문제로 단정 짓기엔 자잘한 혈관들이 너무 많았다.
대신 다른 방법은 있었다.
간혈관종이 생겨난 위치를 찾는 것이다.
그건 어렵지 않았다.
간이 찢어진 부분에 간혈관종이 있을 터였다.
필요 이상으로 부풀어 오른 간이 팽창을 이기지 못해 처진 거니 확실했다.
확인은 거기까지였다.
태수는 원하는 정보를 모두 얻었기에 거즈를 밀어 넣었다. 그리고 그 거즈에 액상 지혈제를 모두 쏟아 부었다.
액상 지혈제가 빠르게 굳으며 거즈를 물들인 피를 굳혀 갔다.
거기까지 응급처치한 후에야 태수는 손을 뺐다.
시뻘건 피가 가득한 손으로 봉합사를 집어 들며 말했다.
“이제 놔도 돼.”
“…….”
제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명확히 알아들었는지 검은 손들이 곧 태수의 시야 밖으로 나갔다.
태수는 그사이 봉합사를 꺼냈다.
봉합사 끝에는 봉합 바늘이 연결되어 있었다.
이건 어떤 봉합사나 마찬가지였다.
문제는 그 바늘을 잡아 줄 니들홀더가 없다는 골치아픈 현실이다.
대신 구급상자에 담아 두는 집게는 있었다.
이 정도면 충분했다.
태수는 집게로 니들홀더를 대신했다.
사용 방법은 물론 쥐는 감각까지 전혀 달랐다. 그러나 태수의 손은 감각이 이상한지 니들홀더와 크게 차이 나지 않았다.
슥슥.
한 손은 피부를 누르고 다른 손으로 꿰맸다.
그리고 준비한 카테터를 중간에 끼워 출혈이 배출되는 것까지 신경 썼다.
탁!
봉합사를 가위로 자르며 응급처치가 마무리됐다.
태수는 다시 바이탈을 확인했다.
맥박과 혈압에 약간 변화가 있었다.
그게 전부였다.
열악한 응급처치치고 결과가 나쁘지 않았다.
태수가 주변에 늘어진 피 묻은 거즈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조용히 검은 손이 다가오자 태수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고생했어.”
“…….”
“쉽지 않지?”
“…….”
제이의 대답이 전혀 들려오지 않았다.
태수는 검은 손을 따라 고개를 들어 제이의 얼굴을 봤다.
검은 얼굴이 하얗게 보일 정도로 질려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눈물, 콧물, 침까지.
거기에 인상도 어떻게 저렇게 찡그리는지 딱히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일그러져 있었다.
태수는 왜 그런 모습인지 알기에 다시 입을 열었다.
“내가 그랬잖아, 결국 당신의 눈에는 에디로 보일 거라고.”
“……흐윽.”
“환부를 벌려 준 것만으로도 대단한 거야.”
“흑…… 흐읍.”
그가 억지로 자신을 달래려 노력했다.
태수는 그런 그를 바라보며 옅게 미소 지었다.
“가서 세수라도 좀 하고 와.”
“잠시만…….”
제이는 말을 마치지도 못한 채 비틀거리며 방 밖으로 나갔다.
태수는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에디에게 시선을 돌렸다.
“에디야, 너희 아빠 진짜 대단한 사람이야.”
태수의 속삭임에 진심이 가득했다.
또한 진실이었다.
방금 그 모습이 유약하다?
그건 이 상황을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들의 생각이었다.
의료인이 아닌 사람은 환자가 아닌 이상 수술실에 들어올 일이 거의 없다.
그래서 그 속에서 얼마나 끔찍한 일이 일어나는지 모른다.
태수도 의대생 때 처음 수술을 참관한 날이 아직도 선명했다.
첫 수술 참관이란 소리에 선배들이 청심환을 챙겨 줬다.
사이가 좋지 않은 선배도 그날만큼은 절대로 자극적인 말을 건네지 않았다.
간호사들은 수술실에 들어갈 때 비닐 봉투를 챙겨 줬다.
그때까지는 그 모든 이유를 몰랐다.
하지만 수술이 시작된 후 그 모든 게 왜 필요한지 절감했다.
수술이 시작된 후 처음 느끼는 감정은 공포였다.
피가 낭자하고 살을 찢고, 뼈를 잘라 꺼내는 그 모든 과정들을 지켜보며 엄청난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
같이 들어간 동기들 중에는 기절한 친구도 있었고, 구토를 한 친구도 있었다.
태수는 그 정도까진 아니었다.
하지만 첫 참관 수술 후 며칠 동안 식사를 못했다.
그때 그 장면들이 계속 머릿속을 떠돌아다닌 탓이다.
그렇게 의사가 되는 과정 중 가장 처음 배우는 건 수술에 대한 기교가 아니었다. 수술실에서 견뎌 낼 정신력이 가장 우선됐다.
그 끔찍함이 익숙해진 후에야 수술에 필요한 기본적인 기교들을 익힐 수 있었다.
그 과정을 이겨 낸 사람을 의사라고 했다.
하지만 제이는 의사를 꿈꾸는 의대생이 아니었다.
하물며 환자는 자신의 아들이다.
남의 손이 그 배 속을 드나드는 걸 봐야 했고, 또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피를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
그 속이 문드러지지 않으면 그게 이상한 것이다.
또 엄청난 정신적 충격을 받았을 게 분명했다.
그런데도 끝까지 자리를 지키고 또 환부를 벌려 준 건 대단한 거였다.
태수가 그가 유약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이유였다.
오히려 아버지라 보일 수 있는 엄청난 강인함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제이는 쉽게 방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아마 속을 진정시키려면 좀 더 시간이 필요할 터였다.
태수는 재촉하지 않았다.
홀로 에디 곁을 지키며 바이탈을 지속적으로 확인했다.
응급처치가 잘됐는지 맥박과 혈압은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지지 않았다.
일단 더 위험해질 만한 상황은 피했다고 판단했다.
태수는 에디를 안타까운 눈빛으로 간호했다.
간혈관종은 앞서 말했듯이 병원에서 검사하며 우연히 발견되는 증상이다.
그 정도로 자각증상이 없다.
수술이 필요 없는 경우도 허다했다.
만약 수술을 해야 된다고 해도 2시간이면 수술이 끝나고, 3일 후에 멀쩡하게 퇴원할 수 있다.
3일이란 시간은 간과 피부가 아무는 시간이다.
딱히 특별한 치료가 필요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병이라고 정의하기보다는 증상이라고 표현한다.
그 간단한 문제가 이렇게 커졌다.
그게 안타까웠다.
이 할렘가에 이런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
하지만 태수는 그들 모두를 걱정하지는 않았다.
에디처럼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가 어른들의 문제로 고통을 당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한국이라고 다를까.
시선이 닿지 않는 어딘가에 사람들이 모르던 에디가 있을 수도 있다.
태수가 정말 구하고 싶은 건 이런 아픔을 겪는 사람들이었다.
그 순간 태수는 오늘 하루 종일 고민했던 문제들이 다시 떠올랐다.
앞으로 응급의료대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공원을 거닐며 거듭 고민해도 결국 답을 찾지 못했다.
그런데 이제 그 답을 찾은 느낌이었다.
아직은 막연했지만 조금 더 고민하면 실체가 잡힐 터였다.
스윽.
태수가 땀으로 축축해진 에디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 줬다.
그런 태수의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고민거리가 풀렸으면 됐다.
애초에 돈을 바라지도 않았지만, 더더욱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할 이유로 차고 넘쳤다.
그런 생각을 하던 중이었다.
“제이, 제이? 너 얼굴이 왜 이래?”
로벤의 목소리였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곧바로 영어가 아닌 한국어가 들려왔다.
“태수야, 여기 맞아?”
도성민의 목소리에 태수가 바로 목소리를 높여 위치를 알렸다.
“나 여기 있어!”
대답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도성민과 서영우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여기서 이렇게 만나니 재회의 기분이 색달랐다.
“이야, 인질들 오셨습니까?”
태수가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그러나 태수보다 어지러운 방 안을 먼저 둘러보던 두 사람 중 도성민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난리가 났네.”
“최 팀장, 애 상태는 어때?”
서영우가 한 발 더 가까이 들어오며 물었다.
태수는 가능한 한 침착하게 상황을 설명했다.
“응급처치로 일단 어느 정도 안정선을 유지하고 있는데, 아직 불안합니다.”
“음, 피가 여기저기 있는 거 보니까 일단 수혈부터 해야겠네.”
“피는 어디서 났습니까?”
“호텔 숙박객들한테 부탁했어. 자세한 얘기는 나중에 하자고.”
“와! 역시! 제가 하겠습니다. 이리 주십시오.”
태수가 손을 내밀었다.
그러나 서영우는 내린 가방에서 수혈팩을 꺼내 들고 말했다.
“이리 나와.”
“제가 해도 됩니다.”
“딱 봐도 수술해야 할 거 같은데, 어차피 바이탈 관리는 내 몫이니까 그냥 나오라고.”
서영우가 거칠게 손짓하자 태수가 어색한 얼굴로 일어났다.
“부탁합니다.”
“됐고, 이게 무슨 난리야. ……아이고, 얘야, 이렇게 귀엽게 생겨서 왜 그렇게 아프고 그러냐.”
서영우는 안타까움부터 표현했다.
그런 중얼거림과 반대로 두 손은 빠르게 수혈팩을 연결했다.
그뿐 아니라 자동 혈압계로 바이탈을 확인하고, 파우치에서 앰풀과 주사기를 꺼내 몇 가지 약을 추가했다.
그러면서 태수에게 말했다.
“앞으로 20분 정도? 그래, 그 정도는 지켜봐야 해.”
“너무 느긋하게 잡으시는 거 아닙니까?”
“아직 애야. 딱 보니까 학교 다닐 나이도 아닌 거 같은데.”
“5살이랍니다.”
“그러니까 하는 말이야. 최대한 바디 컨디션을 끌어올린 후에 수술 들어가야지. 그래야 탈이 없잖아.”
서영우의 의견에 태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어차피 여기 있을 거니까 말씀해 주세요.”
“그러자고. 한 10분만 나한테 말시키지 말고 둘이서 얘기해.”
서영우는 그렇게 말하고 에디의 바이탈을 면밀히 살피기 시작했다.
태수를 밀어내는 말투가 너무도 자연스러웠다.
그럴 만도 했다.
한 우물만 파고 또 판 결과였다.
그 점이야말로 태수도 인정하는 바였다.
그때 옆에서 도성민이 어이없는 시선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이렇게 납치당하기도 쉽지 않은데.”
“너도 납치당했어.”
“그러니까. 어떻게 같이 죽겠다고 친구까지 끌어들이냐고.”
“그럼 혼자 죽을까?”
태수가 묻자 도성민이 옅게 미소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