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2285
02288 2288화
이성혁과 헤어진 태수는 뒤돌아섰다.
저쪽에 중대장과 소대장이 어색한 자세로 서 있는 게 보였다.
태수는 그쪽으로 다가가 인사부터 했다.
“정신없다 보니 인사가 늦었습니다.”
“아닙니다. 소식 듣고 상당히 기쁘고 또 놀라웠습니다. 감사합니다.”
박선교 중대장이 대표로 말했다.
태수는 그런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래서 보고는 잘 끝나셨습니까?”
“보고……. 아, 네. 소대장이 오해할 말을 한 모양입니다.”
“제가 또 어떤 오해를 하는 걸까요?”
“보고서 작성한 적 없습니다. 밤새 지방경찰청에서 조사받았습니다.”
그 소리에 태수가 눈을 크게 떴다.
“조사요?”
“저하고 박 순경하고 같이 받았습니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말을 맞춰야 했습니다.”
“음…….”
“안 그래도 소대장에게 들었습니다. 사실 정배랑 몇 마디 해 본 적 없습니다. 그래도 상경이라 얼굴은 익숙했습니다.”
박선교 중대장의 솔직한 말에 태수가 말문을 잊었다.
“…….”
“무심하다고 느낄지 모르겠습니다만…….”
그가 뭔가 말하려 하자 태수가 한 박자 빨리 입을 열었다.
“중대 인원이 많으니까 일일이 신경 쓰기 힘드시겠죠.”
“그것도 맞습니다. 그리고 웃기는 얘기지만 저랑 대원들은 안 친한 게 좋습니다.”
“네?”
“제가 정배에 대해 잘 알고 있다면 두 가지겠죠. 하나는 의경 생활을 정말 열심히 하거나, 그게 아니면 문제가 있다고 판단된 경우입니다.”
박선교 중대장의 말에 태수가 곰곰이 생각했다.
“음.”
“병원은 위아래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는 게 미덕이고, 그게 좋을 겁니다. 하지만 군대나 경찰은 다릅니다.”
“…….”
“의경 생활 정말 잘하는 것도 웃기는 겁니다. 아시잖습니까. 군대생활이란 적당한 게 가장 좋은 거란 거 말입니다.”
“어느 정도는요.”
태수가 대답하자 박선교 중대장이 말을 이었다.
“그런 의미로 본다면 이정배 상경은 그간 의경 생활을 아주 잘한 겁니다.”
“그건 또 그러네요.”
“좌우간 이정배 상경이 훌륭한 일을 한 건 맞고, 상부에서도 경찰 이미지 상승에 기여했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혜택이 있습니까?”
“네. 이정배 상경에게 몇 가지 특혜를 주기로 했습니다. 입원 기간에는 부모님과 친구들의 면회를 제한하지 않을 예정입니다.”
박선교 중대장의 말에 태수가 눈을 크게 떴다.
“그 자체로도 획기적인 혜택인데 또 있습니까?”
“퇴원 후에는 포상금과 포상휴가, 그리고 복귀한 후엔 경찰홍보단으로 전출 보낼 겁니다. 의경들에게 좋은 귀감이 될 수 있게 말입니다.”
“진짜 파격적이네요.”
“아직 먼 이야기지만 그렇게 진행될 겁니다. 그리고…… 아, 그거 보여 드려.”
박선교 중대장이 지시하자 조동주 소대장이 얼른 휴대폰을 꺼내 내밀었다.
“짧은 영상입니다.”
띡.
동영상 플레이 버튼을 누른 후였다.
휴대폰 화면 속에 수십 명, 아니 그보다 훨씬 많은 의경들이 모여 있었다.
그때 맨 앞에 선 의경이 커다란 목소리로 외쳤다.
-최태수 팀장님, 그리고 응급의료대 선생님들, 우리 정배 살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일동 차렷, 경례!
그의 우렁찬 목소리와 동시였다.
화면 속 모두가 일제히 바르게 서더니 동시에 거수경례하며 소리쳤다.
-충성!
휴대폰의 스피커가 찢어질 듯한 구호가 들려왔다.
이 많은 사람들에게 한목소리로 인사를 듣는 기분?
입이 찢어질 것 같았다.
태수는 화면 속 의경들을 바라보며 마주 거수경례했다.
“충성.”
군 기본 훈련은 받아서 그런지 경례 자세가 그럴 듯 했다.
태수는 그렇게 박선교 중대장에 대한 오해를 풀었다.
그리고 병실에 들어가 이정배 상경과 부모를 다시 만나 지금 상태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줬다.
이후 모든 관리는 화이트엔젤에서 성심껏 할 거란 말도 빼 놓지 않았다.
또 태수도 자주 들르겠단 약속도 했다.
그렇게 볼일을 마친 후에야 태수는 상황실로 향할 수 있었다.
원내에서 돌아다녔지만 여러 일들이 순식간에 일어나고 또 마무리되어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태수가 조금 지친 얼굴로 상황실 문을 연 순간이었다.
“어쭈시구리. 지금 시간이 몇 신데 이제 어슬렁어슬렁 나타나는 거냐? 니가 무슨 밀림의 왕이야?”
박성민의 시비 거는 목소리에 태수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진짜 정신없었습니다.”
“오호, 확실히 유명인사는 반응부터 달라. 잘잘못을 떠나서 엄청 당당하고 그냥 막 선배고 뭐고 대들고 그러네.”
“대든 적 없습니다.”
“우리 태수, 샤따 마우스. 인수인계 끝나자마자 나가서 퇴근할 때 다 돼서 들어온 녀석은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하여간 유명세 타는 애들은 말대꾸도 잘해.”
“또 왜 그러세요.”
태수가 억울해하자 박성민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목소리를 높였다.
“홍, 대령해라!”
“지금 대령하겠습니다!”
후다닥!
홍진만이 얼른 다가와 태수에게 자신의 휴대폰을 내밀었다.
여러 글씨가 보이자 태수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나 지금 피곤해서 눈이 좀 침침하거든?”
“그럼 읽어 드리겠습니다. 흠흠, 최태수!”
“뭐?”
“아니, 아직 안 끝났습니다. 최태수, 또 하나의 성공! 또 있습니다. 그러니까…….”
홍진만이 이어서 읽으려 할 때 태수가 휴대폰을 낚아채 들고 직접 확인했다.
-간 분야 전문가들, 응급의료대 극찬.
-시민들, 응급의료대의 소식에 든든함 느껴.
-응급의료대를 향한 드높은 응원의 소리.
호의성 가득한 기사들이었다.
작성한 기자들 이름을 보니 다들 안면이 있는 이들이었다.
그렇다고 응급의료대만 칭찬하는 건 아니었다.
-이정배 상경의 용기가 여러 생명을 구해.
-의경도 경찰이다. 알려지지 않은 선의들이 속속 드러나.
-이정배 상경이 보여 준 용기에 많은 청년들이 귀감 삼아.
-작은 관심이 더 큰 사고를 예방.
이정배 상경을 향한 찬사들도 가득했다.
그 외에 다른 기사들도 보였다.
-경찰지정병원, 쇄신 후 국민에게 더 다가가는 계기로.
-경찰을 향한 시선이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경찰은 누구보다 든든한 시민의 친구.
경찰에 대한 훈훈한 일화들 소개와 사람들의 반응에 대한 기사도 있었다.
제목만 쭉 둘러본 태수가 옅게 미소 지었다.
“그랬나?”
“뭐냐, 그 모든 걸 알고 있었단 음흉한 미소는?”
박성민이 턱밑까지 다가와 째려보며 물었다.
태수는 슬쩍 고개를 뒤로 빼며 대답했다.
“회장님은 이렇게 진행될 거라고 예상하셨습니다.”
“오호, 그러니까 윗분들하고 어울리는 최 팀장님은 우리 같은 아랫것들하고 놀기 싫다 이거지?”
“어떻게 얘기가 그렇게 됩니까?”
“됐어. 너랑 안 놀아.”
휙!
박성민이 거칠게 뒤돌아 자신의 책상으로 향했다.
의아한 태수가 홍진만에게 물었다.
“왜 저러셔?”
“아까부터 저러시는데, 짐작해 보면…… 박 팀장님 이름이 난 기사가 없어서 그런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 소리를 들은 태수가 숨을 한 번 크게 들이쉬었다.
박성민이 떼를 쓰면 진짜 답이 없다.
기분을 풀어 줘야 할 것 같았다.
태수는 짐짓 놀란 척하며 일부러 크게 말했다.
“음, 그래? 기자들이 우리 박 팀장님이 이번 수술에 얼마나 기여가 큰지 아직 몰라?”
“그런 거 같습니다.”
“나쁜 사람들이네. 박 팀장님이 흉부 수술을 혼자 다 하셨는데.”
태수의 말이 끝나자 저쪽에서 박성민의 반응이 들려왔다.
“됐거든! 넌 그때 수술 모니터링도 안 했거든!”
“선배, 제가 봐야 압니까? 안 봐도 뻔한 위대한 박성민 팀장님의 현란하고 화려한 수술을 어떻게 모르겠습니까.”
“됐거든! 네가 아무리 그래 봐야 버스는 이미 저만치 떠나갔거든!”
박성민이 계속 툴툴거렸다.
홍진만은 슬쩍 걱정을 내비쳤다.
“어쩝니까? 저렇게 삐치시면 꽤 가는데.”
“너 떠나간 버스가 후진했단 소리 들어 봤냐?”
“아니요.”
“이제 직접 두 눈으로 보게 될 거야.”
태수는 홍진만을 지나쳐 박성민에게 다가갔다.
박성민이 얼른 의자를 돌리려 할 때였다.
턱.
의자를 잡은 태수가 박성민을 강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오늘은 어제 못 마신 술 마셔야죠.”
“…….”
“한도 풀고 쏩니다.”
“훗. 날 돈으로 매수하려 하다니.”
“당연히 그게 끝이 아니죠. 형수님에게 외박 허락까지. 콜?”
태수의 제안에 박성민의 눈빛이 거칠게 흔들렸다.
“유, 유부남들의 로망인 그 공식 외박?”
“오늘 그 로망을 제가 이뤄 드리겠습니다.”
“진짜?”
“싫으시면 할 수 없고요.”
태수가 튕긴 순간이었다.
턱!
얼른 태수의 손을 잡은 박성민이 그렁그렁한 눈빛으로 말했다.
“태수야, 이러지 마. 날 포기하지 말아 줘.”
“그럼 콜?”
“코올!”
“그럼 전 형수님께 전화부터 할 테니까 형님은 알코올 드실 준비부터 하시죠.”
태수가 진하게 미소 지으며 거리를 벌렸다.
그러자 박성민은 의자에서 풀썩거리며 기쁨을 온몸으로 표현했다.
“아싸, 공식 외박! 아싸, 오늘 죽어라 마셔 보자!”
짓궂은 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본 김혁권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참 볼만하다.”
“왜요? 언제나 재밌으시잖아요. 당신이랑 비슷하고.”
송현미 간호사의 말에 김혁권이 울컥했다.
“나? 내가 저래? 진짜 저래?”
“가끔이요.”
“그건 아니지. 내가 어떻게 저런 경박한 모습을……. 절대 아니야.”
“그래요? 그럼 오늘 술은 안 마시……. 읍읍!”
송현미 간호사의 말을 얼른 막은 김혁권이 처연한 눈빛으로 부탁했다.
“왜 그래. 어제 힘들었잖아. 그래서 오늘 좀 마실 수 있는 거잖아.”
“…….”
“그래. 나 저 인간하고 똑같아. 그러니까 좀 봐주라.”
김혁권은 막은 입을 풀며 딴소리 못하게 사정사정했다.
그런 그들의 모습에 도성민과 유병태가 서로 진지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결혼이 좋은 거지?”
“……모르겠다.”
“나도 지금은 좀 그러네.”
유부남들의 실체를 목격한 충격이 상당한 모양이었다.
시간이 흘러 태수는 인수인계를 마무리하고 퇴근길에 올랐다.
그 주변엔 어제 수술에 참여해 고생한 팀원들이 모여 있었다.
슬쩍 둘러보던 서영우가 태수에게 물었다.
“정 선생 커플이 안 보이는데?”
“두 녀석은 병원에서 데이트한답니다.”
“환자 앞에서 꼴사납게.”
“정배 여자 친구도 왔다던데요. 같이 논다고 해서 그렇게 하라고 했습니다.”
대답을 마친 후였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시선에 태수가 눈만 움직여 바라봤다.
“왜들 그렇게 보시는지?”
“……술이나 마시러 갑시다!”
“송 간호사님, 왜 그렇게 보시냐니까요?”
태수가 지목하자 송현미 간호사는 휴대폰을 귀에 대며 괜히 통화하는 척했다.
“응, 수현 엄마, 난 술 안 마시고 들어갈 거야. 미안해. 내일 쉬니까 맛있는 거 먹자.”
그녀의 반응에 태수는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시선을 마주한 도성민이 얼른 두 손을 들었다.
“난 아군이야.”
“너 여자 친구 있다며.”
유병태가 따지자 도성민이 인상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헤어졌다니까!”
“쯧쯧. 태수야, 너 얘랑 놀아. 소현아, 우리는 가자.”
유병태는 최소현 간호사의 팔짱을 딱 끼고 보란 듯이 걸어갔다.
그 모습에 태수와 도성민이 눈을 부라렸다.
“저 새끼를 그냥.”
“아주 확!”
그때 이선정 간호사가 지나가며 슥 쳐다보더니 고개를 살래살래 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