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2300
02303 2303화
그런 두 사람을 뒤따라 걷는 송현미 간호사와 이선정 간호사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있었다.
같이 출근할 때마다 보는 모습이라 말릴 생각도 없어 보였다.
태수의 옆에는 브레드 김이 함께했다.
브레드 김이 먼저 태수를 바라보며 물었다.
“왜 웃고 있는데 눈두덩은 꺼매?”
“악몽 꿨습니다.”
“웬 악몽?”
“어제 그렇게 시달렸는데 멀쩡히 잠이 오겠습니까?”
태수가 투덜거리자 브레드 김이 미소 지었다.
“어느 나라에서나 잘난 건 죄야.”
“그만큼 잘나 봤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저런 대형 건물을 가지고 있어?”
브레드 김이 한방 날리자 태수가 얼른 방어에 나섰다.
“명의만 제 겁니다. 다 거주하는 분들의 공동 소유죠.”
“그건 캡틴 지론에 동감인데, NGO의 파벌 싸움은 어떻게 할 거야?”
브레드 김이 날카롭게 정곡을 찌르자 태수가 눈을 흘겼다.
“그 소리 좀 그만하시라고요. 악몽까지 꿨다니까요.”
“알았어. 째려보기는.”
브레드 김이 설렁설렁 손짓하며 대충 넘어갔다.
태수도 더 따지고 들 생각이 없었기에 그쯤에서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소란스런 출근길이 이어지더니 모두 함께 성호종합병원 정문을 넘어섰다.
사람과 차가 많이 다니는 교대 시간이었다. 출근길에 오르는 많은 사람들과 가볍게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그런 그들보다 눈에 띄는 건 경비원들 모습이었다.
정문을 기준으로 양쪽에 늘어서서 적극적으로 차량과 인원의 안전을 통제하고 있었다.
삑삑!
“거기, 속도 줄여요!”
“아이고, 안녕하십니까. 좋은 아침입니다.”
인상 좋은 경비원들은 도보로 이동 중인 사람들에게 인사하기도 했다.
그렇게 경비원들을 지난 순간이었다.
브레드 김이 슬쩍 뒤를 돌아보며 조용히 물었다.
“오늘 무슨 날인가? 평소에도 친절한 분들인데 오늘따라 더 친절하시네.”
“저도 좀 의아하긴 합니다.”
“혹시 연봉 협상 때가 됐나? 아, 성호종합병원의 모든 직원은 직접 계약이라지?”
브레드 김이 고개를 갸웃거렸으나 태수가 간단하게 대답했다.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어느 아파트에선 세대당 부가되는 그 몇천 원이 아깝다고 고용한 경비원도 밖으로 내몬다던데.”
브레드 김은 혼자 시간에 뉴스를 많이 시청하는 모양이었다.
태수는 그의 말에 가볍게 인상을 찌푸렸다.
“그거만큼 이기적인 게 어디 있습니까.”
“최 팀장 오피스텔은 어때?”
“안 그래도 관리소장님이 물가 상승이 어쩌구 하면서 경비원 감원에 대해 슬쩍 묻더라고요.”
“그래서?”
“한 번 더 그런 소리 하면 관리사무소부터 자세히 파고든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조용하던데요.”
태수의 으름장에 브레드 김이 환하게 미소 지었다.
“그래. 마켓에서 뭐 하나 사면 나오는 돈이 아깝다는 발상 자체가 지랄 맞은 거지.”
“그 몇천 원으로 한 달 내내 안전하게 살아가는 걸 먼저 생각해야죠. 경비원분들도 그 월급으로 살아가시는 건데요.”
“옳은 소리야. 그 몇 푼이 아깝다며 내보내는 건 죽으라는 거지.”
“그러게 말입니다. 또 며칠 전에는 퇴근하면서 경비실을 보니까 저녁인데도 창문 열어 놓고 선풍기 틀고 계시더라고요.”
“한국의 여름밤은 유독 덥긴 하더라.”
브레드 김이 입고 있는 반팔을 풀럭이며 답했다.
그러자 태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일단 아이스크림부터 좀 사 드리고, 바로 관리소장님에게 따졌습니다. 당신들은 시원한 데서 일하는데 왜 이분들은 더운 곳에 계시냐고.”
“그랬어? 어쩐지. 어제저녁에 들어가는데 창문이 닫혀 있더라고.”
“네. 어제 출근 전에 설치하더라고요. 설치 끝났단 전화 받고 출근길에 들르니까 아주 시원하니 좋데요.”
“여름엔 시원해야 맛이지.”
“그럼요. 관리소장님에게 한 번 더 전화드려서 수고하셨다고 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도 했습니다.”
태수의 말에 브레드 김이 빙긋 미소 지었다.
“관리소장은 건물주 바뀐 다음에 똥줄 여러 번 타네.”
“내가 더우면 남도 더운 겁니다. 그깟 전기세 얼마나 나온다고요. 공용 전기는 일반 전기라서 하루 종일 틀어 봐야 5천 원도 안 나옵니다.”
“설마 그게 아까울까.”
“그게 아깝다고 하는 입주민 있으면 말하라고 했습니다. 그 세대는 부과하지 않는 대신 무슨 일이 있어도 바로 해결해 주지 말라고도 했고요.”
태수가 강단있게 말하자 브레드 김이 크게 웃었다.
“크하하! 이거 악덕 건물주네.”
“그런 일로 먹는 욕은 얼마든지 환영입니다. 하지만 욕할 자격이나 될까요?”
“나 보면서 그러지 마. 난 입주한 지 아직 한 달도 안 됐어. 앞으로 관리비 불만 없이 잘 낼게.”
브레드 김이 두 손을 들며 질색하자 태수가 미소 지었다.
“한 푼도 불만 갖지 말고 내세요.”
“알았다고.”
“대신 문제 있으면 바로 관리소에 말씀하시고요.”
“거참, 이제 그만 말해도 된다니까. 자자, 이제 다 왔으니까 그만하자고.”
그 소리에 태수가 주변을 둘러봤다.
어느새 별관 건물 근처였다. 열이 뻗쳐 대화하다 보니 여기까지 어떻게 걸어왔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흠흠.”
태수는 너무 열을 낸 게 무안해 헛기침을 흘렸다.
그것도 잠깐이었다.
이제 화이트엔젤과 응급의료대로 나눠져야 할 순간이기도 했다.
서로 인사를 하려는 사이였다. 병원 곳곳에 설치해 둔 게시판 앞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연령대도 다양하고 옷차림도 각양각색이었다.
한곳에 몰려 무언가를 보며 쑥덕거리는 모습에 자연스럽게 눈길이 갔다.
언제나 호기심 천국인 박성민의 두 눈이 그쪽에 고정되어 있었다.
“뭘까? 뭐지?”
“가 보면 알 거 아닙니까.”
“그렇죠. 김씨 아저씨도 딱 궁금하죠?”
“난 별로.”
“별로는 무슨. 갑시다.”
턱.
박성민은 얼른 김혁권을 잡아채 게시판 쪽으로 향했다.
의외로 김혁권은 그 손길을 뿌리치지 않았다.
내심 궁금한 모양이었다.
그들이 먼저 나서자 태수와 다른 팀원들도 자연스럽게 뒤따랐다.
그때 앞서 도착한 박성민의 시끄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로췌! 바로 이거지!”
“호들갑은.”
“아저씨, 이 훌륭한 소식을 이렇게 무심하게 받아들이면 안 되죠.”
“됐다니까.”
김혁권이 퉁명하게 반응하자 박성민이 옆의 다른 의료인을 둘러봤다.
모두 반갑지만 특히 반가운 인물이 있는지 그를 물고 늘어졌다.
“아이고, 여기 우리 정형외과 차석 전문의 선생님께서 계셨네요. 박 선생님, 이건 이렇게 막 흥분하고 뛰어야 정상 아닙니까?”
“그렇죠. 그래도 될 일이죠.”
“역시 박 선생님께서는 흥이 넘치는 분이시라니까. 그런 의미에서 같이 뛰어 볼까요?”
“네? 아니, 그건 좀. 다들 쳐다보는데.”
“쑥스러워하시기는. 그래도 기분 좋은 아침입니다. 으하하!”
박성민은 홀로 웃어 젖혔다.
대화하던 정형외과 차석 전문의는 머쓱한 얼굴로 슬쩍 거리를 벌리며 경계했다.
그런데 박성민만 즐거워하는 건 아니었다.
다른 의료진들도 공고 내용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지.”
“역시 대단하셔. 이게 진짜 복지라니까.”
“그럼, 그럼. 돈 몇 푼 던져 주는 게 복지가 아니라고.”
분위기가 훈훈하니 좋았다.
그제야 게시판 앞에 도착한 태수와 다른 팀원들도 공고 내용을 확인했다.
정용철 이사장의 직인이 찍힌 공문이었다.
내용을 쭉 읽어 내려가던 태수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떠올랐다.
-최우선 전달 사항.
-첫째, 구급차 운전자는 응급 환자 이송을 최우선으로 한다.
-둘째, 만약 이송에 제한이 될 경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신속한 이송 방법을 강구한다.
-셋째, 그 어떤 재산 피해보다 환자의 생명을 중시하도록 한다.
-넷째, 모든 피해 사항은 선 조치 후 보고를 원칙으로 한다.
-다섯째, 위의 경우로 발생한 모든 사고에 대해선 성호 종합병원이 무조건적인 책임을 진다.
“음.”
태수가 묵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 옆에 두 번째 공고도 붙어 있었다.
태수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
-정용철 이사장이 인사드립니다.
-우선 불철주야 병원을 위해 고생하시는 모든 성호종합병원 식구들에게 고개 숙여…….
인사 문구부터 정중함이 느껴졌다.
그 후로 날씨를 언급하고 하늘을 언급하는 등 꽤 장황한 내용이 이어졌다.
그러나 핵심은 굵은 글씨로 인쇄되어 정확하게 파악됐다.
-환자의 안전에 위협이 된다고 판단되는 모든 상황에 적극적으로 대처할 것.
-그 상황에 대한 경위서만 정확히 제출하면 어떤 책임도 묻지 않을 것.
-그간 말 못한 내용이 있다면 언제든지 원무과를 찾아 상담받을 것.
눈으로 쭉 읽어 내려간 핵심이었다.
그리고 정용철 이사장이 전하는 마지막 문구도 있었다.
-성호종합병원의 주인은 바로 여러분입니다.
짧지만 강한 문구였다.
또 가슴 뜨거워지는 문구다.
그 문구에 태수의 시선이 계속 머물러 있었다.
김영진 기사의 일을 보고한 후 불과 12시간 만에 붙은 공고였다.
정용철 이사장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수습에 나섰는지 알 수 있는 모습이었다.
태수가 좀 더 바라보는 사이 김혁권이 다가와 물었다.
“회장님 성함은 안 보이는데요?”
“빼라고 하셨을 겁니다.”
“왜?”
“지금 경영진의 대표는 이사장님이니까요. 이사장님께 힘을 더해 주시려는 의도일 겁니다.”
“그 노인네가 퇴물이라고? 자신을 그렇게 생각하겠지. 하지만 누가 정말 그렇게 생각할까?”
김혁권의 격한 표현에 태수가 미소 지었다.
“그건 저도 모르죠.”
“다들 이 공문을 보고 회장님과 이사장님을 같이 떠올릴 겁니다. 그 두 분의 인품을 모두 알고 있으니까.”
“아마도요.”
“그보다 오늘따라 원내가 깨끗해 보이네요. 아, 경비원들도 그래서 나와 있었나 보네.”
김혁권의 말에 태수도 평소와 조금 다른 아침 풍경이 이해가 됐다.
주변을 둘러보니 그의 말대로 유독 깨끗한 것 같았다.
병원 속 공기에 흐르는 공기가 밝다고 해야 할까?
눈에 보이는 건 아무것도 없지만 막연하게 느껴지는 감정이 그러했다.
태수의 얼굴에 지어진 미소가 짙어졌다.
공고가 붙을 거란 건 어제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효과가 이토록 즉각 눈에 확연히 나타나자 기분이 더 좋아졌다.
또 이런 신속한 대처야말로 태수가 한국을 떠나기 싫은 가장 큰 이유이기도 했다.
세상 어느 곳에서도 이렇게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병원이 없었다.
그 이상 최고의 직장이 어디 있을까.
태수는 오늘도 성호종합병원에 소속된 의사란 사실이 즐거웠다.
기쁨을 한껏 품은 태수가 팀원들에게 물었다.
“이제 헤어질까요?”
“오늘 하루, 파이팅하게 가자!”
“아자자! 다들 해브 어 파이팅 데이.”
“갑시다!”
태수가 힘차게 말한 순간 팀원들은 두 갈래로 나뉘어 걸어갔다.
각자 일터로 향하는 모습에 자부심이 가득했다.
그건 태수와 팀원들뿐만이 아니었다.
게시판의 공문을 확인한 의료진들과 직원들 모두 마찬가지였다.
일할 맛이 나는 일터.
그게 바로 성호종합병원이었다.
곧 태수는 별관 1층 화이트엔젤 의국에 들어섰다.
복도를 걷는 태수의 좌우에는 김혁권과 이선정 간호사가 함께했다.
세 사람의 표정 모두 너무도 좋았다.
다들 공문 소식을 접했는지 마주한 의료진들 또한 오늘따라 더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렇게 걸어가던 중 간호사실에 다가섰다.
화이트엔젤의 모든 업무를 전반적으로 다루는 장소다 보니 널찍하고, 근무하는 간호사들도 많았다.
그들이 먼저 자리를 털고 일어나 부드럽고 밝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와 보네요.”
“그러게요. 팀장님, 너무하셨어요. 차 한잔 드시러 오시지.”
“이젠 그렇게 해야죠. 잘 부탁드립니다.”
“저희도요.”
상호간에 예의와 존중이 서린 인사를 나눴다.
그 후 김혁권이 간호사들에게 다가가더니 보기 드문 밝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오빠 왔다.”
“호호호! 오라버니, 오랜만이세요.”
“다들 왜 이렇게 수척해졌어? 누가 괴롭혀? 어떤 놈인지 말해. 오빠가 다 해결해 줄게.”
“호호호, 역시 오라버니세요.”
간호사들의 웃음소리가 활기찼다.